떨립니다.
누구에게 내 이야기를 선보인다는 것이.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즐겁게 해 드리자, 이렇게 다짐해 봅니다.
http://novel.naver.com/challenge/detail?novelId=1125405&volumeNo=1
<Part1>
1화
교내 성추행범
홍설은 마음이 급했다. 면접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게 어그러졌다.
오늘따라 휴대폰을 두고 나와 집으로 다시 뛰어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지하철까지 연착이었다.
제발, 제발 1분만 늦자.
그녀는 이번에 꼭 미술사학 연구 조교로 들어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논문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었다. 단 하루도 미룰 수 없는 결정이었다.
때마침 신임 교수의 연구 조교 모집 공고가 났을 때 하늘도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 좋다. 이 사람이라면 나를 도와줄 수 있겠지. .
그렇게 중요한 면접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어떻게든 교수님 눈에 들어야 하는 이 순간에 지각이라니!
+
홍설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죽을 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한달음에 교수실 앞에 섰다.
숨이 넘어갈 듯 했지만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 더 잠그고 길게 숨을 들이마신 뒤 노크를 했다.
똑똑.
답이 없었다. 딸깍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뭐야, 토 나오도록 뛰었더니. 교수라는 사람이 시간도 안 지키나? 설마 면접 시간을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다리에 힘이 풀렸다. 뚜벅뚜벅 조교실로 향했다. 교수님 연락처라도 알아볼 생각으로.
무심결에 노크하는 것도 잊고 조교실 문을 획 열었다.
“저…….”
창가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처음에는 긴 실루엣이었다가 금새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창백한 듯 하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 푸른 빛이 감도는 눈동자.
그는 놀라지도 않고 홍설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카락이 빛났다. 아름다웠다. 어디선가 실려오는 향기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홍설은 천천히 다가 서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차갑고 부드러웠다.
그의 눈동자는 무엇이든 허락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홍설은 홀린 듯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누구……?”
“네?”
남자의 말에 홍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아아아아아!”
홍설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 입을 맞추고 있는 자신을 깨달은 건 그 순간이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홍설은 조교실에서 뛰쳐 나오고 말았다.
아니, 내가 미친 건가? 돌은 건가? 이건 꿈인가?
도망치듯 달려 나온 홍설은 건물 뒤편에 숨었다.
자신이 왜 숨는 건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냥 머리 속이 새하얘졌다.
지금 나 정상이 아닌 거다. 확실하다. 그런데……좋다.
홍설은 미친 입맞춤의 여운을 마음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
홍설은 교내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커피를 한 잔 샀지만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니고 약을 먹는 것도 아니고. 혹시 나 성적 충동을 참지 못하는 변태일까?
병원에 가서 정신 감정이라도 받아 봐야 하나?
정신이 돌아오자 뒷일도 걱정되었다. 일단 그가 누군지 알아보아야 했다.
조교일지도 몰랐다. 같이 일하려면 피해 다닐 수만은 없을 것이 뻔했다.
교내 성추행으로 신고 당하면 친구들과 아버지에게는 어떻게 설명할지도 난감했다.
머리를 쥐어 짜 보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일이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 순간 눈치 없이 휴대폰이 울렸다.
<이홍설 씨 휴대폰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오늘 면접 보러 안 오십니까? 저 서강이라고 합니다만.>
“앗, 서강 교수님!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얼른 뛰어가겠습니다!”
교수실 앞에 돌아온 홍설은 범죄 현장을 다시 찾은 범인의 마음이었다.
마침 복도를 지나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조교실에서 누가 나오기라도 할까 조마조마했다.
조교실 쪽으로 가는 눈길을 애써 피하고 교수실로 서둘러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사실은……”
교수의 얼굴을 마주한 홍설은 말문이 막혔다.
눈 앞에 아까 입맞춤 했던, 아니 성추행 당했던 피해자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악!”
또 다시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간신히 참았다.
이 사람이 서강 교수라니.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그가 이렇게 젊은 남자일거라고 짐작하지 못했다.
홍설은 서강 교수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외모는 같았지만 분위기는 다른 사람 같았다.
사람 홀리던 묘한 미소는 어디 가고 냉랭하고 사무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앉으세요.”
서강 교수는 지원서와 홍설의 지난 학기 페이퍼를 천천히 넘기며 살폈다.
일단 면접을 통과하려면 최대한 멀쩡한 사람으로 보여야 했다.
홍설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까는 시간 맞춰 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안 계셔서 기다리다 다시 왔어요.
조금 늦었지만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
종이를 넘기는 길고 하얀 손가락이 홍설의 눈에 들어왔다.
홍설은 이 순간에도 남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확실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홍설 씨 지난 학기 페이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학술지에 실릴 만한 수준이라고 봤어요, 난.
준비하고 있는 논문하고도 좀 통하는 면이 있고요. 나를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교수님 돕겠습니다!”
홍설은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 꾸벅 인사를 했다. 주먹도 꽉 쥐어 올렸다.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보여 주듯. 순간 너무 허둥대는 자신이 민망해 얼굴이 닳아 올랐다.
“그럼 이 조교 다음 월요일에 봅시다.”
서강 교수는 홍설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홍설은 떨리는 두 손으로 그의 길고 아름다운 손을 감싸 쥐었다.
+
홍설은 친구 새미에게 합격의 소식을 제일 먼저 전했다.
새미에게 성추행 피해자의 조교가 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싶었지만
이 현실감 없는 상황을 정리해 말하려면 좀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야, 그 교수님 중국 거쳐, 일본 거쳐 온 실력자라길래 나이 지긋할 줄 알았더니 너무 젊던데?
아까 나도 봤거든. 그 얼굴에 미대 오빠도 아닌 교수님이면 너무 심한 사기캐 아니냐고.”
그래, 그 사기캐에게 홀린 게 바로 나다.
“애들이 너도나도 소문 듣고 아직 개강도 전인데 학교 오겠다더라. 부럽다, 홍설.
날마다 안구정화 해 주는 교수님을 만날 수 있으니까."
홍설은 매일이 마지막인 듯 뜨겁게 살았다. 사람이든 공부든 일이든 늘 진심을 쏟았다.
이런 그녀에게 문제가 있다면 긴 연애에는 재주가 없다는 것이었다.
생글거리는 예쁜 얼굴에 친절하면서도 솔직한 그녀 주변에는 늘 새로운 남자가 다가왔다.
오는 남자 안 막고 가는 남자 안 붙잡는 지나치게 쿨한 기질은 한 달을 못 가는 단기 연애로 이어졌다.
그렇다 해도 오늘의 행동은 전혀 그녀답지 않았다.
서강 교수는 아까 그 일을 왜 모른 척 넘긴 것일까? 무슨 꿍꿍이라도 있나?
홍설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는 결정적인 때가 오기까지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숙제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홍씨 집안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서강 교수에게서 신뢰를 얻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
첫 출근 이후 한 달은 너무나 순조롭게 흘러갔다.
서강 교수는 때로는 붓 끝 같고, 때로는 칼 끝 같았다.
조교들에게 깎듯이 존대를 하고, 한지에 분홍 물감이 스민 듯 온화한 미소로 눈을 맞추며 인사해 주었다.
게다가 어떤 바보 같은 질문이든 무시하는 기색 없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가끔 그가 연구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그의 붓 끝에서는 뜻밖에 조선시대 화첩에서나 본 듯한 섬세한 선이 나왔다.
그가 그린 그림만큼이나 아름다운 이 순간을 관람하기 위해 몇몇 여학생이 상담을 핑계로 불쑥 찾아오기도 했다.
반면 일을 할 때는 엄격했다. 데드라인 엄수는 기본이고, 조교가 작성한 자료 내용이 성의가 부족하거나 본인의 의도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매서운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반박을 해보려 해도 그가 하는 말에는 허튼 부분이 조금도 없었다. 서강 교수가 칼끝을 휘두른 날은 조교들에게 꼼짝없이 철야의 날이 되고 말았다. 조교들은 서슬 퍼런 작두 위에서 꽃 비를 맞는 기분이라고들 했다.
긴장 속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며 홍설의 지난 실수는 잊혀지는 듯 했다.
서강 교수의 갑작스런 부름이 있기 전까지는.
“이 조교, 오늘 저녁에 약속 있습니까?”
“네……네? 저요? 저만요? 왜요?”
“오늘 해외에서 자료가 와요. 몇 년을 기다린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 조교가 나와 같이 정리해 주었으면 하는데요.
김 조교는 오늘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어렵다고 하더군요.”
“네에……. 알겠습니다.”
홍설은 착한 아이가 된 듯 조용히 대답했다. 이 재난을 피해갈 수 없으리라.
어느새 저녁이 되자 동료 조교인 김선호 선배가 미안하다며 먼저 퇴근을 하고 홍설은 혼자 남게 되었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짜 보았다. 혹시 서강 교수가 직설적으로 물어본다면 몽유병이 있다고 할 작정이었다.
사무실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실수했다고.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다고 하는 방법도 있다.
그날따라 렌즈를 끼지 않아 잘못 봤다고. 생각해 보니 몽유병 보다는 착각했다고 하는 편이 더 정상적으로 보일 것 같았다.
솔직한 고백은 어떨까? 그런데 솔직한 고백이 무엇일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당신의 아름다운 실루엣에 이끌렸습니다.
그런데 당신도 나를 원하는 눈빛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미쳤어, 미쳤어. 단 둘이 있는데 꼬시는 멘트라도 날리겠다는 건가?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가 홍설한 솔직한 고백에 갑자기 가까이 다가온다면?
미친 키스에, 미친 고백에, 미친 상상까지. 그럴 일은 없다. 그의 빈틈 없는 성격에 조교와의 스캔들이라니.
“이홍설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몇 번을 불러도 대답도 않고.”
서강 교수가 홍설의 등 뒤에 서 있었다.
“네…...네? 못 들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배송 업체에서 아직 연락이 없네요. 도착이 늦어질 것 같아요.”
“가방 챙겨요. 나갑시다.”
“어디로요?”
“내 집으로 갑니다. 그림은 그쪽으로 올 겁니다.”
홍설은 서둘러 서강 교수를 따라 그의 차에 올랐다.
평소 그의 젠틀한 태도나 행동을 생각해 보면 무섭지는 않았지만 아직 그에 다 아는 것이 아니므로 속단은 금물이었다.
어쩌면 그가 더 경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미 한 번의 전적이 있으니.
그런데 왜 굳이 자기 집으로 데려가는 것인가?
“집에 개인 작업실이 있습니다.”
“네?”
속 마음을 읽힌 듯 해서 홍설의 얼굴이 붉어졌다.
“가끔 고서나 그림 복원할 때 쓰는 곳이죠. 저녁은 먹었습니까?”
“아뇨.”
“좌석 아래쪽에 쇼핑백 있을 겁니다. 배고플 텐데 먹고 시작하지요.”
홍설은 쇼핑백을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초밥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그의 각별한 배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게 수작이든 일이든 극히 개인적인 그만의 공간에 초대되었다는 것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첫댓글 홍설과 서강 교수의 맞남이 어떤 전개로 이어질지 기대됩니다. 2화 예약!!
응원 감사드립니다
꺄야~~~어머 ~어머~ 홍설 ~~
첫 만남에 입맞춤이라니~~
서강교수 만찢남일듯~~~
감사해용. 앞으로 더 재밌게 써볼게요. 오늘 배운 챗gpt 친구와 함께.
나중에 출판사랑 계약하셔도 잠수타기 없기~~!!
넹. 약쏘옥~ 근데 그런날이 올까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