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명 시집 - 자작나무 숲에서
책 소개
이봉명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자작나무 숲에서』가 <도서출판 두엄>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5부에 나뉘어 엮어진 88편의 시편들은 적상산의 품만큼이나 깊은 울림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적상산 그늘에 적힌 존재론적 원형질의 시학
이봉명의 시편들은 나뭇잎과 풀잎, 시냇물 소리와 바람 등에 삶의 실재를 대응시켜 놓음으로써 시에 오늘을 들인다. 시적 대상의 인간적 형상화라는 언어 미학을 성취한 셈이다. 또한 기억 속의 풍경을 재현해내는 언어의 결은 주변부의 쓸쓸한 풍정을 호출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시에 언표된 자연과 일상은 따뜻하다. 느리게 어제가 되어 가는 슬레이트 지붕과 돌담과 거기에 넌출진 호박잎이며 멀리 떠나간 사람들까지.
하지만 그의 시편들은 독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다. 농경문화의 삶이 가졌던 오랜 풍정을 추체험케 할 뿐이다. 현대성이란 말에 개의치 않는 그의 시편들은 시의 중심부에서 삶의 외연으로까지 번지는 존재론의 샘물을 길어 올릴지언정 두메산골 또는 산촌(山村)이라는 외피를 두르지 않았다. 갈수록 동네가 텅텅 비어가도록 삶을 간섭하는 누구를 탓함이 없고 시간의 무상함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이봉명 시인은 『꿀벌에 대한 명상』 이후 『가풀막』에 이르기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시독법이며 창작법은 물론 시어가 뿜어내는 빛깔의 회로까지 몸에 적혔을 시인. 그래서일까. 그의 시편들엔 문명적 징후에 눌린 강박이나 지루한 산문적 진술은 없다. 이미지에 포획된 언어의 날렵한 섬광, 시상 비약의 경쾌한 상상력과 과감한 생략을 통한 시상의 돌연한 울림이 시편들 곳곳에서 반짝인다. 적상산의 토박이 정서에 활착된 시편들, 삶에 내재한 불가피성까지 끌어안는 그의 시 세계는 해맑음을 놓치지 않았다.
- 이병초(시인)의 해설 중에서
시집을 먼저 읽고 기꺼이 표4글을 써 주신 유용주 시인의 촌평을 들어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골이 깊으면 물이 풍부하다. 거기에 온갖 나무와 풀과 꽃이 자란다. 이름도 다 기억할 수 없는 새와 산짐승과 벌레와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열목어와 금강모치가 산다. 숱한 짐승 중에 사람만이 냄새를 풍기고 자연을 더럽히고 있는데 그중 이봉명은 덜 오염시키는 종족에 속한다. 티를 안 내어 좋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쉽게 삐지고 시야가 좁아지고 고집 센 노인으로 변하기 마련인데 그이는 세상을 보는 눈이 넓고도 풍성하다. 뻥 치지 않는다. 조곤조곤 진실만을 이야기한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여린 유산들을 눈물겹게 바라본다. 희끗희끗 머리카락에 눈발 날리는 사내는 그것을 보듬고 순결한 시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사람과 산은 겪어 보아야 비로소 보인다. 적상산 아래 포내리에 사는 이봉명의 모든 작품은 가난한 살림에 대한 착한 보고서이다. 작은 마을에 단풍 들고 눈이 내린다.
유용주(시인)
이봉명 시인 약력
1956년 전북 무주 출생. 1991년 『詩와意識』으로 등단. 무주작가회의, 전북작가회의, 한국장애인문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문집 『아직도 사랑은 가장 눈부신 것』 시집으로 『꿀벌에 대한 명상』, 『아주 오래된 내 마음속의 깨벌레』, 『포내리 겨울』, 『지상의 빈 의자』, 『지상을 날아가는 소리』, 『바람의 뿌리』, 『가플막』이 있으며, 산문집 『겨울엽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