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어김없는 일상의 시작이 열리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별을 바라봐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 기계처럼 이어지는 생활의 반복을 거듭하는 사이, 벌서 올해의 마지막 날 새벽을 맞으며 작업화 끈을 조이는 손에는 왠지 힘이 빠져 있었고 지나온 일들이 머리를 스치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지.
저녁을 먹으면 내일 일을 위하여 잠자기 바빴고 눈뜨면 일터에 나가서 시간에 쫓기는 반복에 반복된 생활의 쳇바퀴 안에서 점심 먹는 시간의 절약을 위하여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면서 한 손으로 빵 조각을 떼어 먹으며 다음 작업장으로 이동하는 생활의 고달픔은, 일해야 식구들이랑 먹고 살 수가 있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비장한 세월이 자신을 그렇게 외면하고 살게 만들어 버렸고 인생을 논하고 건강을 논하는 여유로운 생각들은 나에겐 사치스러운 일로만 생각되었다고 소회를 들려줬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까지는 나의 목적을 달성해야 식구들의 양식을 준비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의 노예가 되어 미친 사람처럼 살아온 나날들이 경제적 여유로움은 고사하고 항상 달달거리며 은행 계좌 마이너스 메우기에 정신 없는 생활의 연속에서 짜증과 괴로움이 생의 마감을 유혹하고 삶에 의욕을 갉아먹고 있다는 그의 서글픈 넋두리는 메아리 되어 구름 위를 나르고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몸의 힘이 없어짐을 느끼면서도 돈을 벌자, 면 이만한 힘도 들이지 않고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냐고 자위하면서 지나오는 동안 병마도 찾아오고, 팔다리 허리 아픔은 일상의 일처럼 언제나 함께 붙어있어 나를 괴롭히고 식구라고는 이혼한 아들 하나와 손주 넷, 그들에게 게까지도 짜증과 불만을 뱉곤 하는 이상한 성격의 변모를 느끼면서 짧은 시간이나마 혼자만의 골방 기도 실에서 조용히 눈물로 하나님께 원망을 고하는 횟수가 잦아지고 감사보다는 불평을, 은혜보다는 고난을, 돕기보다는 받고 싶음을 고백하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의 포로가 되어 점점 더 일그러진 변모된 생을 체험하면서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 할수록 세상과 가족에 대한 원망과 불만들이 짓궂게 혀를 내밀고, 왜 나만이 이러한 고생을 감내 해야만 하는지 장성한 자식이랑 다 큰 손자들마저 늙은 이 몸이 부양해야 하는지 자식이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임에도 제 식구들 호구지책 하지 못하는 그놈을 자식이라고 마음속에 담아둔 말 한마디 상처 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꾸짖지도 못하고 어쩌다 좋은 말로 충고라도 하면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한다는 대답을 들을 때마다 말문이 막혀 버리곤 했단다.
아들이 사업한다고 뒷돈으로 퇴직금도 야금야금 갉아 먹히고 정년 퇴임 후 지금까지 별별 일을 가리지 않고 생활하면서 임시직으로 노동하는 동안 아들에게 너무 많은 서운함을 경험하면서도 몰라서 그렇겠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억지로라도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엔 심신이 녹초가 되어 아들한테 대신 일 나갈 것을 요청했으나 자기 일이 있다는 그 말 한마디에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일을 나가 그 일을 끝마치고 집에 왔을 때 아들은 온종일 집에서 놀고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아들에 대한 배신감, 그러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온종일 집에 있다가 내가 올 시간이면 나가 버리는 일상의 일들이 오로지 저는 놀아도 우리 식구는 아버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아들의 생각이 맞는 것일까!
제 식구 먹여 살리지 못해서 늙은 아비가 허덕이며 손자들 밥 굶기지 않으려고 허둥대는 모습이 아들놈 눈엔 아비 혼자만의 삶으로 보이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은 아버지 일이지 내 일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으로 어쩌다 대신 일을 나가면 크게 인심 쓰는 듯한 그 얼굴에서 무진한 비애를 느끼곤 했단다.
자기의 뜻에 맞지 않더라도 아비의 생각과 뜻을 조금이라도 따라주었으면 좋으련만 자기가 알아서 한다는 모든 일이 항상 골치 아픈 사고로만 이어지고 집안 살림 보태기는커녕 축이나 내면서도, 그러면서도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한다니 이렇게 살아가는 나의 길이 과연 정도로 가고 있는지 양심의 서러움이 화산처럼 폭발하면 조용히 흐르던 눈물은 벼랑 끝에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요란한 울음으로 변하곤 했단다.
늙은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했던가! 여유로운 노인들에게는 맞는 말이겠지! 무료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오늘 하다가 못하면 내일 또 해도 되는, 일이 힘들면 쉬었다가 해도 되는, 이러한 노동은 노인들에게 소일거리임에 맞는 말 이겠지! 그러나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절박한 환경 속에서의 노동은 행복을 생각하기에 앞서 좌절과 독백의 힘든 일임을 스스로 체험하면서 행복은 저만치 멀어만 감을 느끼고 절망 속에서 헤매곤 했단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고 되짚어 보는 마음 한구석엔 아직도 쓰린 마음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음은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아픔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독백하며 자학해 봐야 결코 나에게 돌아오는 유익은 하나도 없음을 알면서도 떨쳐 버릴 수 없는 모진 생각들을 집요하게 붙들고 있는 내가 너무 밉고 불쌍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단다.
70킬로 그램의 몸이 54킬로 그램으로 왜소 되는 나의 모습 속에서 이것은 지금 나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살고 있음을 느끼면서 죄 없는 신세 한탄만 넋두리하고, 처량하고 구차한 작은 몸뚱이만 뒤척이면서 한숨만 내쉬곤 했단다. 누구한테 말할 수 없는 창피한 일들을 작은 가슴속에 묻어두고 지내는 시간 속에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아픔이 밀려올 때면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단 그의 푸념에, 막막하고 답답한 나는 애꿎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구차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모진 생명 당장이라도 데려가 달라고 하나님께 울면서 애원도 해 봤지만, 그분의 뜻은 어디에 계시기에 절규도 모른 척 외면하고 계시는지, 그분의 뜻은 나의 한 몸 보다 식구들의 안위가 급하기 때문일까 아직 그때가 아님에 싫든 좋든 식구들 호구지책을 책임져야만 하고, 식구마다 스스로 자립할 때, 섬세하신 손으로 나를 부르시지 않겠나 생각해 보지만 그때가 언제일까 기다림의 조급함을 억제할 수 없다는, 연 잎 위에서 굴러떨어지는 이슬방울처럼 또록또록 그 큰 눈에서 눈물이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세월은 자꾸 흐르고 종착역은 눈앞에 보이는데 이제는 나만을 위한 삶도 설계해 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 보면 마누라도 없는 이 홀몸, 주어진 생명 버릴 수도 없어, 이렇게 살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친구의 얼굴엔 온통 고민이 물들어 있었고 들이키는 소주의 쓴맛이 목줄을 타고 가슴속을 적시며 고민도 말끔히 씻겨 내리기를 소망하며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그의 굽은 등만 쓰다듬으면서 잔이 넘치도록 술만 따라줄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이 8년이 넘도록 연락이 두절되었으나, 잘 있겠지. 형편도 많이 나아졌을 거야! 막연한 생각으로 마음속에 담겨있던 그 친구가 저세상으로 갔다는 비보를 접했을 때의 허전함, 인생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보면서 허무의 소용돌이는 한숨만 토해내고 쓸쓸한 마음은 삭풍처럼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파산이 난 가족들은 각각 헤어져 소식 두절되어 과로사로 죽은 그의 시신은 지켜보는 가족 없이 한 줌의 재가되어 두 친구가 마지막 가는 슬픈 길을 배웅했다는 후일담에, 밝은 태양도 어둡게 느껴지고 산야엔 슬픔의 녹색 물결이 일렁대고 있었다. 이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한 영혼으로 천국에 있을 친구를 생각하며 그의 영전에 힘이 되어주지 못한 미안함과 죄스러운 마음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