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旅行記』
1995년 8월 11일, 내가 근무했던 현대자동차써비스주식회사 대전지부 산악회원 16명은 3박 4일 일정으로 대만에서 가장 높은 옥산등반을 겸한 여행을 떠났다.
CS925편 항공기가 오후 2시 김포공항을 이륙, 2시간을 비행하며 대만의 C.K.S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였다. 한국과는 정확하게 1시간의 시차를 보였다.
일명 C.K.S 공항은 자유중국 전 총통인 장개석의 알파벳 이니셜을 따서 C.K.S 공항 또는 그의 호를 따서 중정공항이라 하며 내국인은 그 지역의 지명인 도원을 빌어 도원공항이라고도 했다.
공항에서 간단한 수속을 밟고 로비를 나서자 우리나라 부산 태생의 화교 출신인 장동성씨와 대만의 특색 있는 2층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는 우리나라 극동건설이 지난 70년 닦았다는 전장 374Km의 남부고속도로를 따라 4시간 가량 달렸는데 상․하행선의 차량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본 자동차의 전시장을 방불케 할만큼 중․소․대형차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도요다, 미쓰미시, 닛산 등의 엠블렘을 달고 있었다. 더욱 놀란 것은 대만을 떠날 때까지 대한민국 코리아의 차는 90년식 현대 쏘나타 1대밖에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70년대 초반 한국 자동차 특히 현대의 포니2가 대만에 상륙한 후, 스텔라, 쏘나타가 인기를 모았는데 지난 90년대 초반 국교단절 이후에는 한국 차의 수입이 중단되어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다고 했다.
버스는 계속해서 아리산 지역과 옥산을 연결하는 가의시를 거쳐 아리산의 아름다운 경관과 일출경관을 보기 쉬운 아리산 도로를 따라 다시 3시간을 더 달렸다.
차는 오후 11시쯤 옥산 등반을 위해 입산 수속과 첫 캠프 역할을 담당하는 자충산장에 도착했다. 일행은 산장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마친 후에 다음 날의 산행을 위해 그 곳에서 일박했다. 도착 첫 날부터 중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본국에서 가지고 간 밑반찬을 반찬으로 대신했다.
이튿날 아침, 산악회원 일행은 일찍 잠이 깨어 죽으로 요기하고 중식으로 먹을 도시락을 챙겨 다시 버스에 올라 옥산 입구의 상동포까지 이동했다.
그 곳에서부터 도보로 타타가안부를 거쳐 다음 숙소인 배운산장으로 떠났는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옥산 주봉이 해발 3,528m 지점의 제2캠프인 배운산장까지는 약 8.5km의 거리이며 5시간 정도 소요됐다.
이동하는 도중,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머리가 아프고 졸립게하는 고산병(高山病)이 우리들의 산행을 방해했다.
산장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갑자기 안개와 구름이 산 전체를 덮더니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행은 해발 3,957m의 정상을 정복했고 미리 준비해 간 태극기를 정상에 꽂았다.
다시 산장으로 되돌아와 그 곳에서 일박한 뒤, 하산하여 관광을 위해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로 향했다.
시내에 다다르자 차창 밖에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차도를 따라 달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광경이 매우 이국적인 모습으로 보여졌다. 대만의 인구는 대략 2천 1백 만명으로 2명당 1대 꼴로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제일 먼저 차가 멈춘 곳은 중정기념관. 기념관은 장총통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약 8만여평 부지의 일반 공원에다 탑을 세웠고 탑속에는 생전의 유물과 기록사진, 각국에서 받은 훈장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기린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마치고 야시장을 관람했다. 야시장은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과 같은 곳으로 서민들과 외국인이 즐겨 찾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한 장소였다.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일행은 타이페이 근교에 위치한 고궁박물관 관람을 위해 호텔을 떠났다.
박물관은 웅장했다. 그 곳에 소장된 보물들은 송(宋)나라, 원(元)나라, 명(明)나라, 청(淸)나라에 이르는 천여 년의 궁궐 유물이며 70만점으로, 이를 모두 보려면 12년의 세월이 걸린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는데 종류의 다양성과 품질의 정교함을 보고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 모든 유물들은 중국을 통치했던 장개석(蔣介石) 총통이 모택동의 공산당에 패전하고 대만으로 탈출할 때 중국 본토에서 군함에 싣고 옮겨온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코스로 충렬사를 방문했다. 충렬사를 호위하는 호위병들의 절도 있는 근무와 교대식은 관광객 모두에게 인상깊게 느껴졌다.
버스는 어느덧 일정대로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우리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벌써 고국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안녕, 타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