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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장-이름을 창대케 한다고 약속
창12: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주석-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가문과 본토를 뒤에 두고 떠나는 것에 대한 아브람의 보상이 발표되었다. 아브람에게 자녀가 없었고 젊은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그는 이 약속이 어떻게 성취될지 의아해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종들, 그의 가축들을 지키는 목자들과 관리자들이 약속된 민족을 형성할 것임을 의도했을 리가 없다. 아브람은 “큰”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것은 숫자적인 힘, 영향력, 또는 영적인 일들에서의 위대함을 의미했을까? 하나님의 약속들에 고정된 믿음의 눈만이 미래를 꿰뚫고 육적인 눈이 볼 수 없었던 일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네게 복을 주어
이 약속에는 현세적 및 영적 축복이 다 포함되어 있으나, 특히 후자의 축복이 관계돼 있다.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부여된 축복들 가운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분명히 포함한다(갈 3:8).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참된 위대함은 하나님의 명령들에 대하여 순응하고 그분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협력함으로써 이르러 올 것이었다. 바벨의 건축자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그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생각했었으나 그들의 이름 중에 하나도 보존되지 못했다. 이와 반대로 아브람은 명망을 얻기 위해 하나님이 인도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단순히 따라갈 것이었다. 아브람이라는 이름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사람의 이름으로 흔하며, 수백만의 유대인들, 회교도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과거에 그를 환호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를 그들의 영적인 조상으로 회고하고 있다.
(예언의 신)
2,3 아브라함은 장차 오실 구주를 바라보았음(요 8:56; 갈 3:8)
그리스도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구주가 오실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장래 일에 대한 빛을 주셨다. 그는 구주가 이 세상에 오실 때 그의 신성이 인성으로 가리워질 것을 내다보았다. 믿음으로 그는 장차 오실 세상의 구주가 육체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심을 알았다(원고 33, 1911).
2,3 계명을 지킴(엡 2:8)
만약 아브라함과 맺어진 언약 하의 인류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불가능했다면 우리는 모두 다 잃어버린 바된 자들이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은혜의 언약이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1, 12). 불순종하는 자녀들도 그의 자녀가 되는가? 아니다. 그분의 계명을 모두 다 순종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자녀가 된다. 우리들이 계명을 지키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증거가 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겠는가?(편지 16, 1892).
<관련성경->창세기-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17:6-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창12:12-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창13장)-아브라함이 처음을 단을 쌓다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세기 13:4) **성경주석-단을 쌓은 곳이라-모세는 아브람이 이전에 공중 예배를 드렸던 곳으로 귀환한 것을 강조한다. 벧엘은 여호와와 즐겼던 친교에 대한 거룩한 추억 때문에 아브람의 마음에 소중한 장소였다. 또한 아마도 그는 거기서 자기가 이전에 체류했던 사실을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을 주변 사람들 가운데서, 들을 준비가 된 귀와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을 발견할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아브람이 장막을 친 매 장소마다 방랑하는 가나안 족속들은 참 하나님에 대하여 배웠고 그들은 아브람이 다른 곳으로 이주해 간 후에 그곳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로 돌이켰다(부조와 선지자, 128). 가정을 선택하는 데에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점 한 가지는 “단을 쌓은 곳”이다.
<예언의 신>
아브라함은 유력한 군주요, 현명하고 유능한 어른으로서 부근 민족들에게 존경을 받았다.그의 감화는 저절로 이웃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다.
그의 생활과 품성은 우상 숭배자들과 현저하게 달라 참된 신앙을 위하여 큰 감화를 끼쳤다.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심은 확고부동한 동시에 그의 친절과 자비심은 사람들의 신임과 우의를 두텁게 하였고 그의 꾸밈없는 위대함은 존경과 영예를 차지하였다.(부조와 선지자 133.3, )
관련성경-창세기 12:7~8
창세기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창세기 12:7)
창세기 12: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세기 12:8)
(창14장)-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창14:18)
<성경주석->멜기세덱
살렘의 제사장 겸 왕이 아브람을 맞는 일에 소돔의 왕과 합류했다. 아브람 당시 예루살렘은 살렘 혹은 샬렘, 즉 “평화” 또는 “안전”(참조 시 76:2)의 의미로 알려졌다. 예루살렘 도성은 BC 19세기의 애굽 기록에 의해 최초로 입증되는데, 그 당시에는 아모리 왕들이 통치하였다. 7:2에서 번역된 바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를 의미하며 멜기세덱은 “나의 왕은 의롭다” 혹은 “의의 왕”을 의미한다. 소돔의 왕은 놓여난 그의 백성들(14:21)을 손에 넣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아브람을 맞으러 온 반면 멜기세덱은 승리한 사령관을 축복하기 위하여 왔다.
떡과 포도주
이것은 가나안의 주된 산물이었다.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아브람을 만난 목적은 많은 사람의 숙고의 대상이 되어왔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아브람과 그의 군인들에게 가벼운 음식물로 제공되었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이들은 이것을 가나안 땅이 그 부조에게 양도된 것에 대한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그 땅의 평화와 자유와 번영을 회복한 데 대해 아브람에게 주어진 감사의 표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는…제사장이었더라
이곳에서 처음 쓰여진 “제사장”이라는 어휘의 출현은 정식으로 제정된 희생예배의 형태가 존재했음을 암시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히브리어로 엘-엘욘(’El-‘Elyon)인 하나님에 대한 이 명칭은 오직 여기와 22절에 나타난다. 엘로힘(’Elohim)과 동일한 어근에서 온, 이 단어의 첫 부분인 엘(’El)은 “강한 자”를 의미한다. 그것은 엘-샷다이(’El-saddai), “전능의 하나님” 혹은 엘로에-이스라엘(’Eloe-Yisra’el),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경우에서처럼 어떤 특성 없이 하나님에게 적용되는 일이 거의 없다. 구약 성경에 자주 나오는(민 24:16; 신 32:8; 삼하 22:14 등), 두 번째 어휘인 엘룐(‘Elyon)은 하나님을 “가장 높은 존재”, “고귀한 존재”, “지존자”로 묘사한다. 아브람 당시의 사악한 가나안 족속과 아모리 족속들 중에 참 신에게 충성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제사장 역량의 직무(참조 출 2:16)도 수행한 지방 통치자를 발견한다는 것은 진정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충성스러운 자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비록 소수의 무리였지만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지상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다. 아무리 시기가 어두웠을지라도, 아무리 백성들이 사악했을지라도 충성스러운 증인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성경 주석가들은 갑자기 성경의 기록에 나타났다가 다시 고대 역사의 꿰뚫어 볼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린,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겸한 멜기세덱에 대하여 많은 추측을 했다. 그러한 추측은 전혀 가치가 없다. “멜기세덱은 그리스도가 아니었”(EGW, RH, Feb. 18, 1890)으나, 그의 사업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예표하였다(시 110:4; 히 6:20~7:21; 시대의 소망, 578). 그의 예기치 않은 출현은 어떤 의미에서 그를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만들며 그의 제사장 직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의 표상으로 만든다.
(예언의 신)- 18-20 멜기세덱, 그리스도의 표상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증인을 남겨 놓지 않고는 결코 떠나지 않으신다. 한 때는 멜기세덱이 하늘 진리를 나타내 보이고 하나님의 율법을 영속시키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표상하였다(편지 90, 1905).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을 통하여 말씀하신 분은 그리스도이셨다. 멜기세덱이 그리스도는 아니었지만 그는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목소리였고 아버지 하나님의 대표자였다. 그리스도는 과거의 모든 세대 동안 말씀해 오셨고, 그의 백성을 인도해 오셨으며 세상의 빛이 되셨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진리의 대표자로 아브라함을 택하셨을 때, 그분은 그를 그의 나라와 친척들이 있는 곳에서 데리고 나와서 그를 따로 떼어 놓으셨다. 그분은 자신의 모형을 따라 그를 꼴짓고자 하셨고, 자신의 계획에 따라 그를 가르치시기를 원하셨다(리뷰 1890.2.18).
(관련성경)- 히브리서- 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시편- 57: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사도행전- 16: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시편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히브리서- 5: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히브리서- 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히브리서-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히브리서 -7: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창14장)- 소돔왕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창세기 14:22)
(성경주석)- 내가 손을 들어
아브람은 맹세의 표시로서, 맹세의 일반적인 형태인(참조 신 32:40; 겔 20:5, 6; 단 12:7; 계 10:5; 6) 손을 드는 행동을 취한 다음 진술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멜기세덱이 그 이름으로 자신을 축복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게 청원하며 하늘과 땅의 소유자인 멜기세덱의 하나님이 또한 그의 하나님임을 나타냈다(참조 19절).
(예언의 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로 번영케 하시고 영예롭게 하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성실함은 그가 체류하던 모든 나라 백성들에게 하나의 빛이었다.
아브라함은 주위에 있는 백성들과 담을 쌓고 살지 않았다.
그는 주위 민족의 왕들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그 중 몇 왕들은 몹시 존경하는 태도로 그를 대했다.
그리고 그의 성실과 이기심 없는 정신, 그의 무용(武勇)과 자비심은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하였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에서, 애굽에서, 그리고 심지어 소돔의 주민들에게까지도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대표자를 통하여 알려지셨다.(부조와 선지자 368.2, PP 368.2)
(관련성경-)-
출애굽기 6:8 |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출애굽기 6:8) |
민수기 14:30 |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BC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민수기 14:30) |
신명기 32:40 | 이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BC 말하기를 내가 영원히 살리라 하였노라 (신명기 32:40) |
시편 144:8 |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의 오른손BC은 거짓의 오른손BC이니이다 (시편 144:8) |
잠언 8:22 | 여호와께서BC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BC (잠언 8:22) |
에스겔 20:5 |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BC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BC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내 손을 들어 맹세하고BC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BC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노라 (에스겔 20:5) |
다니엘 12:7 |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BC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BC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BC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다니엘 12:7) |
요한계시록 10:5 | 내가 본 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BC (요한계시록 10:5) |
(창15장)-아브라함에게 환상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세기 15:1)
(성경주석)- 여호와의 말씀이
이 새로운 하나님의 계시는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이전의 것들과 다르며, 아브람의 생애에 또 하나의 분명한 전환점을 가져다 준다. “여호와(야훼[Yahweh])의 말씀”이라는 표현방식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성경 가운데서 이후로 자주 나온다(출 9:20; 민 3:16; 신 34:5; 삼상 3:1; 레 1:4, 11 등). 선지자들의 직무와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이 구절은 아브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이번 계시에 가장 적합한 것이며(참조 15:4, 5, 13~16; 18~21), 하나님이 아브람을 가리켜 선지자라고 언급하기 때문에(20:7) 더욱 그러하다.
이상 중에
비록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이상(異像)은 아니지만, “이상”이란 단어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쓰였다. 하나님의 계시는 부조들과 선지자들과 전도자들 또는 사도들에게 상이한 방법으로 주어졌다.
(1) 인간 구원을 위해 후에 육신을 입으신 신성의 제2위께서 친히 나타남으로써. 그 예는 신 34:10에 나온다.
(2) 마 3:16, 17에 나오는 예수 침례 시의 경우처럼,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때로는 상징의 모습이 동반되기도 한다.
(3) 삿 13:3~7에 나오는 삼손 어머니의 경우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천사들과, 그들의 사명을 확신시키기 위해 기적을 행함으로.
(4) 행 20:23에 나오는 바울의 경우처럼 마음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의 강력한 작용으로 깨달을 진리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강한 설득력을 줌으로써.
(5) 28:11~15의 야곱의 경험에서처럼 꿈들로.
(6) 민 24:4, 16이나 다른 곳에 기록되어 논란이 되고 있는 발람의 경우처럼, 낮이나 밤에 주어지는 이상을 통해.
위 마지막 두 항목은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좀 더 자주 사용하는 형태이다. 이 내용은,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민 12:6)라는 하나님의 선언과 일치된다.
두려워 말라
이 보증의 말은 아브람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었다. 메소보다미아의 왕들은 패배를 설욕하기 위하여 돌아올지도 모르고, 이미 그의 자라나는 세력을 질투하던 이방의 가나안 족속들이 그를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시의 전쟁에서 보호의 상징이었던 “방패”가 되고(참조 시 3:3), 그의 “상급”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브람은 전에 있었던 군인들의 원정 시에 그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전쟁중에 그를 보호하시고, 승리의 상급을 그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이 과거에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계속해서 자기를 위해 행하실 것임을 믿었음이 분명하다
(예언의신)- 밤 이상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만왕의 왕의 말씀이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제는 전처럼 의심할 수 없는 확신으로 약속을 붙잡을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에 압도되었다.
그는 그것이 성취되리라는 어떤 구체적인 증거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아들의 선물이 보류되고서야 어떻게 언약의 약속이 실현될 리가 있겠는가?
그가 말하기를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창 15:1~5 참고)고 하였다.
그는 그가 신임하는 종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 그의 소유를 상속시키자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의 아들이 그의 후사가 되리라는 보증을 받았다.
그 때 그는 장막 밖으로 인도되어 하늘에서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쳐다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가 이렇게 하였을 때에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말씀이 들렸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롬 4:3).
(부조와 선지자 136.3, PP 136.3)
(관련성경)-
창세기 26:24 |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6:24) |
창세기 46:2 | 그 밤에 하나님이BC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BC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BC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세기 46:2) |
사무엘하 22:3 | 내가 피할BC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BC시요 나의 구원의 뿔BC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BC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BC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사무엘하 22:3) |
역대하 15:7 |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BC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BC 하니라 (역대하 15:7) |
시편 3:3 | 여호와여 주는 나의BC 방패시요 나의BC 영광이시요 나의BC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시편 3:3) (시 3:3) |
시편 18:2 | 여호와는 나의 반석BC이시요 나의 요새BC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BC시요 나의 방패BC시요 나의 구원의 뿔BC이시요 나의 산성BC이시로다 (시편 18:2) (시 18:2) |
(창16장)- 사래가 아브라함에게 첩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창세기 16:3)
(성경주석)- 십년
10년 동안 유지되었던 아브람과 사래의 믿음이 이제 무너져버린 것이다. 이 언급은 그들이 상속자의 출생이 지체되는 것을 참지 못한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아브람은 그 지체됨이 자기의 믿음을 시험하고 품성을 계발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인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예언의신)- 아브라함과 사라가 만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여 아들을 낳으리라는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렸다면 많은 불행을 면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었으나 사라가 그처럼 많은 나이에 아들을 낳으리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법한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였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하갈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라고 간청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두 사람이 다 하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과 절대적인 신뢰가 부족하였다.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을 자기의 아내로 삼음으로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에 대한 그의 믿음을 시험하는 시험을 견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 사라에게 많은 불행을 초래하고 말았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 대하여 그가 얼마나 굳건한 믿음과 신뢰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시험하시고자 하셨던 것이다.살아남는 이들77p
(관련성경)- 창세기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창세기 12:5)
(창17장)-사라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약속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세기 17:16)
(성경주석)- 그로…아들을
기다림의 긴 세월 끝에 아브라함은 약속된 씨가 하갈의 아이가 아니라 사라의 아이가 될 것이라는 취지의 명확한 지시를 받았다(참조 갈 4:22~31).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이것은 일차적으로 유다의 보좌에 오를 다윗과 그의 계승자들을 가리키지만, 에돔의 왕권도 포함한다. 하나님은 성급하여 자주 자신을 방해하는 인간의 사악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보증했다(참조 사 46:10, 11; 55:10, 11).
(예언의신)- 다시 그 약속이 더욱 분명하게 아브라함에게 반복되었다.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 17:19).
천사들은 소돔을 멸망시키려 가는 도중에 아브라함에게 두번째 나타나 사라가 “한 아들을 낳으리라”(창 18:10)는 약속을 더욱 명백히 알려 주었다. (살아남는 이들 78.3, SR 78.3)
(관련성경)- 창세기 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창세기 18:10)
창세기 35: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창18장)-사라가 잉태-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세기 18:14)
(성경주석)-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정체불명이라는 덮개가 이제 완전히 벗겨지고, 화자(話者)는 자신의 신분을 여호와로 분명하게 밝혔다. 이 신성한 출현은 아마 이미 알고 믿었던 아브라함보다는 사라의 유익을 위해 의도된 것이었지만, 여호와는 사라가 자신에게 먼저 이야기를 건네기까지는 직접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은 것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사라에게 말하는 대신, 그는 여호와에게 능치 못한 일이 있는지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이것은 우선 사라의 불신을 바로잡고 하나님이 말씀한 것에 대한 그녀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의 지혜와 힘이 실패하고 연약한 천성으로 행할 능력이 부족한 그곳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완전한 주도권을 가지고 자신의 신성한 뜻의 계획에 따라 일이 진행되도록 한다. 실제로 그는 자주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도록 허락하여 인간의 무능과 그의 전능이 현격한 대조를 이루게 한다.
(예언의신)- 아브라함과 마리아의 아들의 출생과 같이 사가랴에게 아들의 출생은 큰 영적 진리, 곧 우리가 느리게 배우고 쉽게 잊어버리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런 선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도 순복하고 믿는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약속의 아들을 얻은 것은 믿음을 통하여 된 것이었다.
영적 생명을 낳게 하고 우리로 의로운 행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시대의 소망 98.3, DA 98.3)
(관련성경)- 욥기 -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예레미야- 32: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스가랴- 8: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야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마태복음 -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누가복음- 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창세기 -18: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창19장)-소돔멸망-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창세기 19:26)
(성경주석)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천사들은 네 명을 모두 운명지어진 성읍에서 끌고 나와, 그들이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명백한 지침을 주었다. 그러나 단지 성읍에서 빠져 나온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지침에 대한 계속적인 순종이 요구됐다. 롯의 부인은 자신의 집과 소유와 일부 자녀들이 있는 성읍을 뒤돌아보았다. 그녀는 그것들을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그녀의 완고한 심령을 기억함으로써, 구원받기는 원하나 절반 정도로 만족하는 자, 세상을 저버린 듯 보이나 그 심령은 여전히 세상에 속한 자들에게 끊임없는 경고가 발해져왔다. 마지막까지 견디지 못하고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게 된다(참조 마 24:13; 빌 1:6). “롯의 처를 생각하라”(눅 17:32)는 우리 주의 엄중한 훈계를 잊지 않는 것이 좋다. 천사의 명령을 주의함에 있어서 롯이 매우 확고했다면 이것은 그녀에게 구원을 의미했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160 161). 천사들이 그녀에게 성읍을 떠나라고 강권했지만, 그들은 그녀의 의지를 거스르며까지 그녀의 구원에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비신앙적인 사람이었으며, 아마도 가나안 본토인이었을지도 모른다(부조와 선지자, 174). 그녀는 소돔을 떠나기보다는 죽기를 선택했다. 우리는 그녀의 운명을 애도하지만, 그녀의 예증을 통해 유익을 얻어야 한다.
소금 기둥
그녀의 몸이 포함된 소금 기둥이 얼마나 오랫동안 가시적으로 남아 있었는지는 말할 수 없다. 사해 남서부 해변 일부 지역에는 소금 바위 형상들이 줄지어 있는데, 이 중 일부는 대충 사람 모양을 닮았다. 여행자들은 이들 중 하나를 “롯의 처”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들 중 어떤 것의 정체를 밝히려는 이런 시도는 어리석은 것이다.
(예언의신)- 22-28 소돔성의 멸망은 후세의 교훈
평원의 도시들을 삼킨 화염은 우리의 시대에까지 경고의 빛을 비추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긍휼하셔서 범죄자를 오래 참으시나 그 반면에 사람들이 넘지 말아야 될 죄의 한계선이 있다는 무섭고도 엄숙한 교훈을 듣는다. 그 한계에 이를 때에 긍휼을 베푸는 일은 끝나고 심판하시는 일이 시작된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것 더 큰 죄가 있다고 선언하신다. 죄인들을 회개하도록 부르는 복음의 초청을 듣고도 이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자들은 싯딤 골짜기의 주민보다 하나님 앞에 죄가 더 크다. 또한 더 큰 죄는 하나님을 알고 그 계명을 지키노라 공언하면서도 저들의 품성과 일상 생애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의 죄이다. 구세주의 경고에 비추어 보면 소돔의 운명은 공공연하게 죄를 범하는 자들뿐 아니라 하늘이 보내신 빛과 특권을 무시하는 모든 자들에 대한 엄숙한 훈계이다. …
부도덕한 사람들에게서 결정적으로 분리하여 생명을 위한 한 탈출구가 있었다. 노아의 날에도 그러하였으며 롯의 때에도 그러하였고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도 그러하였으며, 역시 말세에도 그러할 것이다. 경고의 기별에서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널리 퍼진 부정에서 떠나라고 명하신다.
말세에 종교계에 있을 부패와 배도의 상태가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계 17:18) 바벨론의 계시를 통하여 예언자 요한에게 보여졌다. 바벨론이 멸망하기 전 하늘로부터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는 초청이 하늘로부터 주어질 것이다. 노아와 롯의 시대처럼 죄와 죄인들로부터 뚜렷한 분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세상은 타협할 수 없으며, 세상의 재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돌아설 수는 없다(부조 165-167)
(관련성경) 누가복음- 17: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창20장)-아비멜랙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기에 네가 나와 내 나라가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하지 아니한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창세기 20:9)
(성경주석)-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일찍이 바로가 했던 꾸짖음(12:18, 19)이 이번에 더욱 정당화되었다. 아비멜렉이 했던 책망의 말은 가장 굴욕적인 것임에 틀림없었다. 교훈과 모범을 통해 가나안 백성에게 참 하나님을 대표하라는 위임을 받았던 그가 한 이방 통치자에게 견책받기에 마땅한 사람이 된 것이었다. 그의 잘못된 행동은 가정의 행복을 가로막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환대를 베푼 백성에게 고통의 원인이 되어버렸다.
(예언의신)- 아비멜렉이 죽은 후 여호와를 경외한 사사들의 통치는 한동안 우상숭배를 저지시켰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위에 있는 이교 사회의 행습으로 되돌아갔다.
북방 지파들 중에는 아람과 시돈의 신들을 섬기는 자들이 많았다.
서남부는 블레셋인의 우상에게로, 동부는 모압과 암몬인의 우상에게로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을 떠났다. 그러나 배도는 신속한 형벌을 받았다.
암몬 족속들이 동쪽 지파들을 정복하고 요단강을 건너 유다와 에브라임 영토에 침입하였다.
서부에서는 해변 평야에 사는 블레셋인들이 올라와 원근에서 방화와 약탈을 일삼았다.
다시 이스라엘은 무정한 원수의 권세 하에 버림받은 것처럼 보였다.(부조와 선지자 557.1, PP 557.1)
(관련성경)-
창세기 12:12 |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BC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창세기 12:12) |
창세기 26:10 |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창세기 26:10) |
(창21장)- 하갈을 내어 내 쫓으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창세기 21:10)
(성경주석)- 이 여종을 내어 쫓으라
질투심과 경멸감을 반영하는 사라의 이 말은 아브라함과 하갈의 결혼을 맨 처음 제안했던 당사자인 그녀(16:2, 3)에게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인다. 사라는 하갈을 종으로, 이스마엘을 종의 아들로 언급했다. 물론 사라에게는 아브라함의 죽음 후에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도록 그녀의 아들의 지위를 법적으로 명백히 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었다. 그래서 사라는 하갈을 내보내고 이스마엘과 의절(義絶)하라고 요구했다.
(예언의신)- 하나님께서 충성된 자들의 조상이 되도록 아브라함을 부르셨으므로 그의 생애는 후대 사람들에게 신앙의 모본이 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완전하지 못하였다.
그는 사라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감춤으로, 또 하갈과 결혼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나타내었다.그로 가장 높은 표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사람이 견디도록 부름을 받은 시험 가운데 가장 견디기 힘든 다른 시험을 당하게 하셨다.
아브라함은 밤의 이상 중에, 모리아 땅으로 가서 그에게 보여 주게 될 산에서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지시를 받았다.(부조와 선지자 147.2, PP 147.2
(관련성경)-
갈라디아서 4:30 |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BC과 그 아들BC을 내쫓으라 여종BC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BC 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4:30) |
(창22장)- 이삭을 제단에 바치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세기 22:12)
(성경주석)- 네 손을 대지 말라
그 부조는 충분히 그의 믿음과 순종을 증명하였고, 그의 하나님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켰다. 여호와는 이삭의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사실 그와 같은 희생제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분의 종들의 자발적인 순종을 늘 원해왔다(삼상 15:22; 호 6:6). 아버지와 아들의 의지와 목적에 관한 한, 그 희생은 완성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심령의 헌신을 훨씬 더 마음에 드는 선물로서 받았고, 행위 대신에 의지를 받으셨다(히 11:17). 하늘의 음성 역시 인신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반대를 증언한다(참조 신 12:31; 왕하 17:17; 대하 28:3; 렘 19:5; 겔 16:20, 21). 히브리인들이 가나안과 다른 고대 민족들 사이에 흔했던 인신 제사 의식을 그들의 정규 예배순서로 행했다는 취지를 띤 성경 비평가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배도의 시기에 유대인들이 이러한 의식을 행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직접적인 위반이었다(참조 시 106:37, 38; 사 57:5 등
(예언의신)- 1-19 아브라함의 시험은 우주의 교과서
아브라함에게 요구된 희생은 다만 그의 유익만을 위해서가 아니요 또한 후대의 이익만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과 다른 세계들의 무죄한 지적 존재들도 교훈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와 사단의 대쟁투의 전장(戰場) 곧 구속의 경륜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우주의 교과서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앙이 부족함을 보였기 때문에 사단은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가 언약의 조건을 따르지 못하였다고 비난하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그를 고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온 하늘 앞에서 당신의 종의 충성을 시험하여 완전한 순종만이 받으시는 바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구속의 경륜을 더 완전하게 저들 앞에 밝히고자 하셨다.
천사들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이삭의 순종이 시험당하던 광경을 목격하였다. 이 시험은 아담이 당한 것보다 휠씬 더 냉혹한 것이었다. 우리의 첫 조상에게 주어진 금령을 따르는 데는 고통이 포함되지 않았으나 아브라함에게 하신 명령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희생이 요구되었다. 온 하늘은 아브라함의 확고부동한 순종을 경이와 감탄으로 지켜 보았다. 온 하늘은 그의 충성을 칭찬하였다. 사단의 고소가 거짓됨이 드러났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사단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선언하셨다. 다른 세계의 지성들 앞에서 아브라함에게 맹세로 굳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이 순종은 보상을 받으리라고 증거하였다(부조 154, 155).
12 모든 재능은 주의 것
아브라함이 받은 시험은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모든 시험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것이었다. 만약 아브라함이 실패했더라면 그는 신실한 사람들의 조상으로 결코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만일 하나님의 명하신 길에서 이탈하였더라면 세상은 그 의심없는 믿음과 순종의 모본을 잃었을 것이다. 그 교훈은 각 시대를 통해서 빛을 비추어 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바쳐질 수 없을만큼 귀한 것은 없다는 교훈을 배우게 한다. 우리가 하늘의 복을 안전하게 받으려면 모든 타고난 재능을 주의 것으로, 주를 섬기는 일에 쓰여져야할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우리에게 위탁된 소유물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그리하면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위탁하실 것이다. 우리의 소유물을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꼭 간직하고 있는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요, 내세의 생명도 잃고 말 것이다(청년 지도자 1901. 6. 6).
12 이삭, 그리스도의 상징
하나님께서는 희생 제물이 될 자기 아들을 예표하기 위하여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그 일을 계획하셨다. 이삭은 세상 죄를 위하여 희생 제물로 바쳐질 하나님의 아들의 상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깊이 깨닫게 하기를 원하셨다. 그 진리를 생생한 현실로 보여주기 위하여, 또 그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이삭을 죽여서 바치라고 요구하셨다. 그 어둡고 두려운 시련의 시간에 아브라함이 견딘 모든 고뇌는 그로 하여금 타락한 인간을 위한 구속의 경륜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다(청년 지도자 1900. 3. 1).
(관련성경)-
야고보서 2:21 | 우리 조상 아브라함BC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BC에 바칠BC 때에BC 행함으로BC 의롭다 하심을BC 받은 것이BC 아니냐 (야고보서 2:21) |
(창23장)- 아브라함의 아내 죽음=사라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창세기 23:6)
(성경주석)-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헷 족속은 아브라함의 정중함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요청에 우호적으로 응했다. 그들 가운데서 자신의 지위를 “나그네”라고 평가한 것을 받아들이기를 그들은 사절하고, 오히려 그를 “하나님의 방백”(「제임스왕역」에는 “mighty prince”로 되어 있음-역자 주)으로 인정했다. 문자적인 번역인 “하나님의 방백”은 잘 알려진 히브리 관용어법에 따라 「제임스왕역」처럼 “전능한 방백”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 36:6의 “큰 산들”(great mountains)은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산들”이며, 시 80:10의 “아름다운 백향목”(goodly cedars)은 “하나님의 백향목”이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으로 칭함으로써, 헷 족속은 그를 하나님이 총애하는 사람으로 인식했음을 표현했다.
우리 중에서…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아브라함의 요청을 수락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은 참으로 예모 있는 태도로 그들 자신의 매장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그에게 제공하였다.
(예언의신)- 헤브론은 여러 해 동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집이 있었으며 그 곳 막벨라 동굴은 그들이 장사된 곳이었다.헤브론은 무서운 아낙인들의 본거지였고 그들의 무서운 외모는 정탐꾼들을 몹시 무서워 떨게 하였으며 그로 인해 온 이스라엘의 용기는 꺾이고 말았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 갈렙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바로 그 곳을 그의 기업으로 선택하였다(부조와 선지자 511.4, PP 511.4)
(관련성경-)
창세기 30:8 |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BC라 하였더라 (창세기 30:8) ( |
(창24장)-리브가-이삭의 아내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창세기 24:14)
(성경주석)- 기도가 끝나자마자 응답이 주어졌다.
우물곁에 모였던 여인들 중에 한 여인의 예의 있는 태도가 그의 주의를 끌었다.
그 여자가 우물에서 나올 때에 그 나그네는 그 여자에게 나아가 어깨에 멘 항아리의 물을 좀 달라고 청하였다.그 요청은 친절하게 응답되었으며 약대들을 위해서도 물을 길어주겠다고 제의하였다.
물을 긷는 일은 군주의 딸들이라도 그들의 조상의 양떼와 가축 떼를 위하여 해야 하는 관습적인 일이었다.그리하여 바라던 표증이 분명히 주어졌다.
그 처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창 24:16), 그 여자가 갖춘 예의는 친절한 마음과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증거였다.하나님의 손길은 거기까지 그와 함께 하였다.
값진 선물을 주고 친절에 대하여 감사한 후에 종은 그 여자의 부모가 누구인지를 물어, 그 여자가 아브라함의 조카 브두엘의 딸임을 알고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창 24:26)였다.(부조와 선지자 172.2, PP 172.2)
(관련성경)-
창세기 24:44 | 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도 길으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내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가 되리이다 하며 (창세기 24:44) |
창세기 24:51 |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창세기 24:51) |
(창25장)- 밭죽 한그릇-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세기 25:34)
(성경주석 )-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에서에게 오직 가치 있는 것은 식욕에 대한 순간적인 만족이었다. 미래의 영적 축복은 멀고도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였다. 이 점에서 그는 “망령된[불신앙적인] 자”(히 12:16), 영적 사물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임을 나타냈다. 그는 감각적 욕망의 만족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무지한 짐승처럼 그는 오직 순간적인 감각에 판단력을 맡겼다. 미래의 선을 위하여 현재의 욕망을 기꺼이 희생할 의사가 어느 정도 되는가에 따라 정서적 및 영적 성숙도가 측정된다. 이와 같은 기초 위에 있는 그리스도인만이 언제나 온전히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장차 올 세상에 적합한 자로 여김을 받기 위해서 이생이 제공하는 모든 것을 기꺼이 잃어버리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참조 고후 4:17, 18; 빌 3:7~15; 행 20:24; 눅 20:34, 35; 히 11:10).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자기의 장자권을 팔아먹을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행한 처신은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들의 후사가 되기에 부적절한 인물임을 드러낸 것이다. 야곱의 행동을 묵과할 수 없는 반면, 에서의 행동도 극심한 정죄를 받아 마땅하다. 야곱은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다. 에서는 용서를 받지 못했는데, 그의 회개는 행위 자체가 아닌 자신의 성급한 행동의 결과에 대한 후회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히 12:16, 17; 부조와 선지자, 181).
(예언의신)- 오늘날 사단은 세상에서 큰 세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사단은 넓은 길을 매력적인 길로, 좁은 길을 고통스럽고 굴욕적이고 장애물 많은 길로 만들고자 애씁니다.
그는 남녀들로 하여금 식욕에 빠지도록 유혹하기 위하여 교묘한 책략을 사용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서가 했던 것처럼 식욕의 방종에 못 이겨 별반 생각 없이 그들의 상속권을 팔 것입니다....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위대한 상담자요 전능한 하나님이요 영원한 아버지요 평화의 왕으로서 세상에 설 수 있으셨습니다.(하늘을 향하여 39.4, UL 39.4)
(관련성경 )-고후4:17,18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린도후서 4:17)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린도후서 4:18)
관찰-아브람-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아브라함에게 축복.이삭에 축복,아브라함의 말년
통찰-불안전한 믿음의 노독들을 부르시고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능력에 하나님
적응-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시대마다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서 축복하셨다
비록 그들이 실패를 거듭하는 가운데 살았지만 여전히 약속하신 것을 축복으로 주신 하나님은
오늘날 나에게도 같은 축복으로 약속을 지키신다
그분은 위대한 상담자요 전능한 하나님이요 영원한 아버지요 평화의 왕으로서 세상에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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