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폴레옹'을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는 본래 4시간을 넘는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2시간 20분 정도로 줄여서 개봉되었다고 합니다.
영화관람 후기를 보면 영화가 너무 축소가 되어서 내용 전개가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라는 평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도 연대기적 나열 형식의 전개는 지루한 감을 줘서 영화를 보는 중에 눈꺼풀이 여러 차례 무거워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의 한 장면에 교과서에서는 '아베 시에예스'로 소개되는 "제 3 신분이란 무엇인가"의 저작자인 '엠마뉴엘 조셉 씨에예스(Emmanuel Joseph Sieyès)' 원수가 짧게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제 3 신분이란 무엇인가"가 우리 나라에서는 '책'으로 소개되어서 이 저작물이 마치 '책'인 것처럼 알려지는 오류가 상당기간 있었는데, 이 저작물은 책이 아니고 몇 장의 '팸플릿'으로 말하자면 '유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이 몇 장의 팸플릿이 프랑스혁명의 방아쇠가 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이 대목에서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 때로는 한 마디의 경구가 몇 권의 책보다 낫다 '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었던 시에예스와 나폴레옹은 나중에 뜻이 맞지 않아서 결별을 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세 사람의 통령이 거명되는데 '나폴레옹' '시에예스' ' 로저 뒤코 ' 입니다. 로저 뒤코는 저도 자료를 검색하면서 알게된 인물로 생소합니다.
깊어 가는 겨울에 한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 제 3 신분이란 무엇인가 "
입니다.
시에예스와 프랑스 통령정부 소개글을 옮깁니다.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 - 나무위키 (namu.wiki)
프랑스 통령정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 이하 나폴레옹 소개글 옮김 -
나폴레옹( 1769.8.15. ~ 1821.5.5.)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18세기 말(1789년 ~ 1794년) 프랑스 혁명은 명예혁명, 미국 독립 혁명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체제 성립에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시민혁명이다.
72년 동안 재위한 루이 14세와 네 살 때 왕위에 오른 무능력한 루이 15세와 연이어 왕위에 오른 루이 16세의 사치와 권력 유지에 급급한 구체제의 모순이 열악한 경제 환경과 맞물리면서 프랑스혁명을 야기했고 나폴레옹의 등장을 가져왔다.
루이 14세는 정치적으로 안정을 이뤄 “짐이 곧 국가다”는 말을 남기며 3차례의 큰 전쟁을 치르면서도 프랑스 식민지를 아메리카(미국 루이지애나)와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확장했다. 파리 근교의 베르사유 궁전, 앵발리드도 세웠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등장
프랑스 혁명의 결정적인 요인은 첫째는 국가가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면서 세제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 일반인들은 빵조차 먹을 수 없었다. 사치스럽고 낭비를 좋아하는 루이 16세 왕비 앙투아네트는 평민이 빵조차 먹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대응했다고 한다.
“그들은 왜 케이크를 먹지 않는 거죠?” 둘째는 계급불평등의 문제다 프랑스는 몇 백년 동안 군주제 아래서 교회와 귀족과 평민이라는 세 신분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 중요의제를 토론했다.
그러나 삼부회(대의제)는 조직 구성면에서 불평등했다. 대표하는 숫자가 엄청나게 많지만 대표들은 동일하여 교회와 귀족이 연합하면 압도적으로 평민의 의견을 누를 수 있었다. 게다가 1614년부터 열리지도 않았다.
1789년 평민들이 국민 모두가 균형에 맞는 국민의회를 제안했고 수많은 투쟁 끝에 루이 16세는 국민의회를 입법화하고 귀족과 교회의 특권을 포기하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프랑스 전국에 들끓은 자유의 열기와 폭등으로 루이 16세와 왕비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1794년 중산층의 지도자들이 급진파(공포정치의 광신자 대표 로비에스피에로)를 몰아내고 1797년 나폴레옹이 정부의 통령으로 천거함으로써 프랑스대혁명은 막을 내렸다.
프랑스 구국의 영웅 탄생
나폴레옹은 프랑스령의 외딴 섬 코르시카 출신으로 가난과 설움 속에서 16세 때 왕립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포병 소위가 되었다.
작은 키와 빈약한 몸매 때문에 수학자라는 별명을 얻는 이 소년장교는 1793년인 툴롱에서 천재적인 전략으로 영국군들을 몰아냄으로서 무기력했던 프랑스 혁명군의 영웅이 되었다.
뛰어난 지도력과 풍부한 군사지식이 인정받는 순간이다.
총재 정부의 수장이었던 바라스가 나폴레옹을 중용하여 30세에 집정 정부 제1집정관이 되어 1804년 스스로 프랑스 황제로 등극해 유럽의 절반을 제패하고, 교육, 종교, 문화, 법률 등 오늘날 프랑스의 초석을 남겼다.
프랑스가 부르주아 공화국에서 부르주아 제국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 때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독일 등 유렵 강대국이 프랑스에 대항하는 군사동맹을 결성하고 일곱 차례 전쟁을 벌렸다.
3차 4차 5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은 모두 프랑스의 승리로 돌아갔다. 1812년 프랑스군을 이끌고 러시아 영토 깊숙이 들어갔지만 무수한 사망자를 내고 퇴각했고 1814년 파리로 진격한 제6차 전쟁에서 나폴레옹은 퇴위하고 이탈리아 근처 지중해에 있는 엘바섬에 유배되었다.
그 뒤를 이어 루이 18세가 즉위했지만 무능하고 오만한 통치는 프랑스국민의 원성을 불러 일으켰고, 1815년 2월 몰래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빠른 시간에 군대의 지지를 얻어 1개월 만에 14만 대군을 이끌고 파리에 입성해 다시 제위에 올랐다. 100일 천하의 황제가 되었지만 제 7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중 워털루 전투에서 대패했다. 이후 그는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6년 뒤 사망했다.
황제대관식
1804년12월 파리 노트르담 사원에서의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나폴레옹은 절대 권력을 통해서 프랑스 사회의 대변혁과 종교도 정치에 이용했다. “그는 종교에 대해 냉소적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이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보다는 하느님이 그를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물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후 공포정치가 몰락 한 후, 도덕, 군사 정치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진 프랑스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프랑스는 활기차고 교회의 종소리가 다시 울리게 한 것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하나 나폴레옹을 영국의 역사학자 앨리스테어 혼의 이렇게 평가했다.
“위대한 군 지도자 히틀러와 나폴레옹이 자주 비교되긴 하지만, 그러한 비교는 허상에 불과하다. 히틀러는 12년간 권력을 행사한 뒤 군대를 제외한 분야에서는 독일에 해골과 쓰레기만 산더미처럼 남겼다. 반면 나폴레옹은 단 한 번도 전투에 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프랑스에 남긴 행정체제와 시민개혁만으로도 여전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의 하나로 평가될 것이다.”
정복자로서, 정치인으로서, 군인으로서, 그리고 황제로서 각 방면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임종 전에 남긴 세 마디 프랑스, 군대, 조세핀
1815년 6월 프랑스는 나폴레옹을 버렸다. 민중들의 지지와 권력을 되찾자는 측근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워털루 전투 이후 마지막 망명길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했다. “내 안에는 다른 두 인간이 있다. 머리를 가진 인간과 가슴을 가진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의 가슴을 가장 강력하게 차지하고 휘저어 놓은 여인은 조제핀이었다.
"나는 식물처럼 되어 버렸소. 이제 사는 것이 아니오."
유언. 역사를 공부하라
가장 믿었던 자들에게 배신당해 화려한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나의 목표는 단 하나다. 모두 다시 합치고 모두 화해시키고 모든 증오를 잊고 모두를 하나로 모으고 여러 이질적인 요인들을 통합하여 새로이 하나의 프랑스와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라는 위대한 프랑스를 만들기 위해 매진한 영웅이었다.
퇴락한 나폴레옹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외로운 영웅에게 하나, 둘 등을 돌렸다.
1820년 7월 나폴레옹의 병세는 완연해져 작은 영웅은 환자가 되어 이렇게 말했다.
“침대가 내게 아주 달콤한 공간이 되었소. 이 세상의 어떤 보물과도 바꾸지 않을 것이요. 얼마나 엄청난 변화인지. 내가 얼마나 쇠락했는지 …,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면 힘겹게 노력해야만 한다오 … 내 근력과 사지가 나를 버렸고 … 나는 식물처럼 되어 버렸소. 이제 사는 것이 아니오.”
그는 아들인 나폴레옹 2세에게 유언으로 남긴 말은 이렇다.
“역사를 깊게 성찰하고 공부해라. 나처럼 살지 말고 평화롭게 유럽을 만들라”
그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승리하여 귀국하는 그 순간에 나는 내가 어떤 인물이 될지 예측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가기라도 하듯이 이 땅덩이가 벌써 발밑에서 달아나는 것 같았다.”
"공화국이 위험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권력에서 물러나겠다."
“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사람은 그가 입은 제복대로의 인간이 된다.”
“사람은 덕보다도 악으로 더 쉽게 지배된다.”
“사람의 처세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에 쏠리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이치에도 쏠리지 않고, 두 가지를 다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유일한 승리는 탈출이다.”
“사치한 생활 속에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마치 그림 속의 태양이 빛을 발하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산다는 것은 곧 고통을 치른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이기려고 애를 쓰는 법이다.”
“살아 있는 졸병이 죽은 황제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성격의 씨앗을 뿌리면, 운명의 열매가 열린다.”
“숙고할 시간을 가져라. 그러나 일단 행동할 시간이 되면 생각을 멈추고 돌진하라.”
“굳은 결심은 가장 유용한 지식이다.”
“승리는 가장 끈기 있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나의 영광은 마흔 번의 전쟁 승리가 아니라 내가 만든 법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