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새끼돼지 거세
노응근 논설위원입력 2013. 9. 1. 21:33수정 2013. 9. 1. 21:33
인간이 동물에게 주는 고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동물복지 운동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공장식 축산은 가축의 본능을 살리지 않는다. 아주 좁은 공간에 가둬놓고 밤낮으로 사료를 먹고 살만 찌기를 강요한다. 가축이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나쁜 환경에서 쉽게 발생하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항생제는 상시 투약된다. 인간은 이렇게 생산된 고기를 맛있다며 먹는다.
어제부터 '동물복지 양돈농장 인증제'가 시행됐다. 동물복지 축산농가 인증제는 국가가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인도적'으로 가축을 사육하는 농장임을 인증하는 제도다. 영국 등에서는 1994년부터 시행했다. 한국은 지난해 산란계를 대상으로 처음 실시한 뒤 올해 돼지, 내년 육계, 내후년 소 등으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41개 산란계 농장이 인증을 받아 52만 마리를 '닭답게' 키우고 있다.
동물복지 양돈농장 인증 기준을 보면 현재 돼지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으며 사육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인증을 받으려면 좁은 공간에 혼자 가두지 않고 무리지어 길러야 하고, 사료 등에 항생제를 함부로 넣으면 안된다. 또 특별한 이유 없이 새끼의 꼬리를 자르거나 송곳니를 뽑지 말아야 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7일령 이후 외과적 거세는 수의사만 실시한다'는 기준이다.
새끼돼지를 거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퇘지에서 나는 독특하고도 고약한 '웅취(雄臭)'를 없애기 위해서다.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거세를 해왔고 한국에서도 거세율은 90%를 넘는다. 더욱이 거세는 거의 마취 없이 '잔인하게' 이뤄지고 있다. 동물복지 운동이 활발한 유럽에서는 지난해부터 꼭 마취 후 거세를 하도록 한 데 이어 2018년에는 외과적 거세 자체를 금지할 예정이라고 한다. 웅취 예방 백신 접종 등 대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남편과 농사를 짓고 사는 신은립 시인이 돼지 거세의 불편함을 잘 표현한 '새끼돼지 거세하고'란 시가 있다. '새끼돼지 거세하네/ …/ 뒷다리를 꼭 잡고/ 배 위에 걸터앉아/ 꼼짝 못하게 누르면/ 남편은 수술칼로/ 실하게 자란/ 불알 두 쪽 잘라내네/ 피묻은 손으로 시를 쓰네/ 질펀한 속울음 감추고 시를 쓰니/ 나는 사기꾼이네'
<노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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