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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영 시 모음 *
저 강물 되어 살으리 강물이 길을 열었다 수양버들 하늘하늘 춤추는 강둑길 걸으며 연두 빛 수채화 한 폭 품안에 들인다 강물이 열어주는 길목 바람도 만나고 별빛도 만나며 들꽃 향 한 무더기 안고 저 강물 되어 살으리 실개천 가녀린 노래 오선지 높은음자리로 흥얼거리며 시퍼런 멍울 따뜻이 보듬어 낮은 곳 향해 낮추어 가는 걸음 모난 돌 어루만져 몽돌 다듬고 날다 지친 잠자리 물 적셔 주며 물고기 품어 안아 생명 키우는 저 강물 되어 살으리 앞 강물 등 받쳐 밀어주고 뒤 강물 손잡아 끌어주며 강을 줄기줄기 하나로 엮는 너른 품과 속 깊은 마음 마른 땅 달려가 젖 물리고 들꽃 함초롱히 피워내는 저 강물 되어 살으리 나루터에 조각배 풀어놓고 머문 자리 흔적 없이 지우고 가는 어머니 강, 탯줄의 강 파랑새 나는 날 신 새벽 나뭇잎에서 또르르 구르는 옥구슬 표주박에 받아 녹슨 문고리 닦아낸다 새하얀 모시로 걸러 바다에서 막 건져 올린 결 고운 햇살이 실 비단 고이 수놓는 새날 팔작지붕 고샅길 나서며 힘살 불거진 전율로 샛바람을 맞는다 장독대 항아리 오랜 세월 우려낸 장맛 같은 옛 숨결 출렁이는 뒤란 돌 틈에서 자란 억새가 뜨거운 가슴으로 온 산을 품는다 비운 만큼 쏟아지는 파름한 하늘로 포로롱 파랑새 한 마리 날아오른다. 북소리 -시나위․5 태초에 북소리 울렸다 햇빛도 들지 않는 껌껌한 밀림에서 가시덤불 헤치고 세상을 열었다 사냥에서 돌아와 벌이는 환희의 군무(群舞) 부족민은 자신의 심장에서 북소리 꺼내 하늘을 우러러 함성으로 두들겼다 승리의 소리였고 승리를 위한 소리였다 살아가는 소리였고 살아가기 위한 소리였다 태초에 북소리 울렸다 둥 - 둥 둥 둥 심장에서 격동 쳤다.
*시나위 : 남도 무속음악의 한 형태로 일정한 악보 없이 장단의 길이를 맞추어 자유로이 연주하는 음악 살풀이춤 -시나위․8 보슬비 낙수에도 피멍드는 가녀린 여인이 춤을 춘다 전생의 업으로 타고난 흉살(凶殺) 하얀 소매로 접어 별빛 같은 춤사위로 정화한다 고요의 심연에서 일렁이는 뼈 시린 고독과 번뇌 가슴 속 응어리진 한 새하얀 명주 천에 걷어 청잣빛 하늘에다 훨훨 날린다 세월로도 지우지 못한 이름 새록새록 돋아나는 향내 그립고 그리워 수심 깊은 허공에다 눈물 젖은 명주천만 날린다 젓대 흐느끼는 속울음에 보슬비 낙수에도 피멍드는 가녀린 여인이 춤을 춘다 섧게 섧게 하얀 명주천만 날린다 새하얀 달빛만 훨훨 날린다. 소고춤 -시나위․13 얼래, 뭐한다냐? 얼릉 소고 들고 나서랑께 소고가 잘 놀아야 북장구도 신나는 겨 풍물놀음은 소고가 젤로 꽃 아니드냐
소고가 신열 앓으면 쇠도 가죽도 덩달아 열병 앓는 겨 열이 나서 막 뛰어야제 양사도 치고 나비사도 치고 그려서, 그러코롬 쳐서 우리 집에 들붙어 사사건건 훼방 놓는 악귀도 물리치고 수복도 빌어야제 부엌귀신, 장꽝귀신 헛간귀신, 굴뚝귀신 모두모두 달래서 쫓아내부리고 인저 맨날 좋은 일만 있게 해야제 할머니도 무병장수 오래 살게 혀고 느그 아부지 건강혀서 직장 잘 다니게 빌어야제 그렁께로 얼릉 소고 들고 일어나 연풍대도 돌고 자반뒤집기도 돌아야제 우리 집 잘 되라고, 느그들 잘 되라고 소고춤 추면시롱 뱅글뱅글 돌아야제 암먼, 돌아도 당차고 야무지게 돌아야제 안 그러냐?
엿장수 -시나위․17 난장에다 좌판 벌이고 덩실덩실 신바람 색색으로 덧대 기운 옷 불그죽죽한 분칠 슬픈 어릿광대
축제마당 모퉁이에서 벙거지 눌러 쓰고 철지난 유행가에 익살스런 쌍 가위놀음 찰그락 찰그락 설운 날들을 토막 친다 갑갑한 세상 메마른 가슴 씻어줄 소나기라도 한 둠벙 내리라고 호박엿 탁탁 자르며 서러이 서러이 가위장단 치며 논다 덩실덩실 서러이 논다.
대금소리 -시나위․18 임 여읜 여인네 애절한 울음인가 어미 잃은 남정네 한스런 통곡인가 노을 한 자락 걸친 갈대밭 하얗게 부서져 흐느끼는 산조(散調)의 낭창한 농염 별무리 지는 밤 눈썹달 품어 안고 긴 대공에서 분출하는 뜨거운 정념의 산화(酸化) 천년을 다스려온 소쩍새 피울음 승천하는 불꽃덩이여 고드름 가난이 무서리처럼 지붕 휘감은 초가집 설피 눈 밟는 소리 돌팍재 고갯길 넘으면 낡은 용마름 섶 쓸어내려 추녀마다 은빛 고동 안으로 다독이고 보듬어 삭여온 세월 초가집 토방 마루 칼바람 할퀴고 지나면 표백된 응축의 계절 동토(凍土)의 삶은 송곳 같은 고드름 엮어 열병을 앓는다 안마당에서 자치기하는 아이들 고드름으로 허기진 속 채우고 텅 빈 헛간 처마 밑 먹일 것 없어 하루가 버거운 애비의 한숨이 거꾸로 매달린다 앞 산 보름달 먼 하늘 은하수 곰방대 채우는 할배의 옛날 옛적 이야기 고드름마다 맺히는 그리운 시절 아련히 꿈꾸는 사람들. 호밀밭 어스름 그믐밤 보릿고개 넘는 달 가냘피 야위어 호밀밭에 지면 문둥이 쩝쩝 달 먹는 소리 간 떨어진 애기 피울음소리
정문 문우(文友)의 우정나무 해거름에 단풍잎 되어 지친 하루 다독이는 뒷골목 맛과 정이 보글보글한 공덕시장 대폿집에선 정문 문우의 우정이 붉게 익는다 삶과 문학의 향기 찰랑찰랑 채워 정감 음미하고 열정 마시며 우정으로 크는 나무 실하게 키워낸다 질감 좋은 시 타래 푸는 김태구 시인, 유 정 시인, 포공영 시인, 윤제철 시인, 김욱남 시인, 박수진 시인 순백의 상징과 함축과 비유로 단단히 뿌리 내릴 밑거름 주고 뽀송한 줄글 행간 푸는 김용필 소설가, 정선교 소설가, 최병영 수필가 따스한 인물과 사건과 실화로 탄탄히 열매 맺을 자양분 준다 오늘도 공덕시장 뒷골목에선 푸른 눈을 뜬 속살 뜨거운 언어가 반딧불 같은 생명으로 일어서고 감동과 전율로 성장하는 정문 문우의 뿌리 깊은 나무가 붉은 숨결로 설화를 쓴다.
○ 필자 약력 ○ ▪ 전북 익산 출생 ▪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국어교육), 천안대학교 교육대학원(평생교육) 졸업 ▪ 월간「문예사조」, 계간「시세계」,「한국문학예술」로 등단 ▪ 한국 신문학인협회 회장, 한국 공무원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 한국수필가협회 공영이사. 서울 교원문학회 이사 ▪ 우도농악 무형문화재 전수자, 강서 국악인협회 이사, 서울 교사풍물패「흥시렁」고문 ▪ 세계 문학상, 문학세계문학상, 강서문학상, 한국 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 풍물교육연구소 소장, (전)서울 선유중학교 교장, ▪ 수필집 :「사라지는 소리들은 아름답다」「바람결에 머무는 소리」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