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알약이란 게 있을까. 내 또래 친구들의 부부 생활을 예로 들어본다. 10년 넘게 파킨슨병 치료 중인 전 직장 동기. 심장 스텐트 수술을 두 번 한 친구의 아내도 파킨슨병이다. 난소암 치료 중인 아내를 5년째 돌보는 친구, 간 이식 수술로 면역 억제제 알약을 한 움큼씩 먹는 친구, 전립선암으로 먼저 간 고교 동기의 부인은 우울증 치료 중이다. 고관절 수술을 한 아내를 병상에서 돌보는 친구, 술을 많이 마셔 알코올성 치매 진단을 받고 치료 후 퇴원한 친구 등등. 건강한 부부는 거의 없다. 5년째 투석 중인 친구한테 갔는데 넘어져서 또 뇌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분홍 알약으로 된 고혈압 치료제를 먹은 지 10개월째 되는 나와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다고 저기압인 아내.
퇴직한 남편들이여! 그동안 뒷바라지해 온 아내에게 힘내라고 제일 먼저 무슨 묘약을 만들어 주시겠나요. 하나쯤은 생각해 둔 게 있지 않을까요. 돌팔이 약사라고 비웃음을 당하더라도 정성껏 제조해 주는 그 약의 성분에 뭐가 좋을까요. 현재는 선물, 미래는 기적이라고 했으니 분수에 맞는 부부관계를 위한 약이 되어야지 독(毒)이 되지는 말아야겠지요.
되돌아 보면 우리 부부간에도 먹어오던 알약이 있다. 결혼하고 나서는 매일 먹었다. 힘이 났고 깨소금처럼 고소한 맛이었다. 그러다가 15여 년쯤 흐르니 쓴맛과 짠맛이 느껴지기도 했다. ‘왜 이러지’ 하며 그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디. 아내도 나도 마찬가지일 테다. 같은 알약이라도 권태기에 계속 복용하면 부작용이 있어, 부부싸움도 일으킨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는 늘어가면서 그 약은 점점 몸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결혼 몇 주년! 이런 숫자만 늘었지, 백약이 무효였다. 하지만 세월이 약이었던가. 몇 년이 더 흘렀다. 서로 ‘척’하면 알았고 가끔 사랑을 나누고 등을 두드려주는 때로 접어들었다. 전업주부인 아내에겐 집안 살림이 나는 직장생활을 통해 함께 늙어간다는 깨달음의 철이 든 것 같다.
‘
그러다가 퇴직을 하던 해였다. ’축하한다‘‘고 하더니 꺼내는 첫 마디가 내가 짜증을 자주 내는데 한국 웃음연구소의 3박 4일 프로그램을 다녀오라는 것이다. 감옥 같은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 해소제로 그게 최고라는 추천을 ’선배 언니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이어서 아내는 아들과 딸을 자연분만할 때 내가 '해외 출장 중이어서 섭섭하다'고 꺼냈다. 처음엔 내가 ’그게 무슨 죄야?‘ 짜증 섞인 소리를 했다. 아내는 ’그게 위로의 말이야‘라고 쏘아 붙인 적이 있다. 내 혀의 치명적 실수였다. '입에는 쓴 약이 병에는 좋다’고 하지만 부부관계는 정반대다. 좋은 부부관계는 입에 발린 칭찬이라도 좋다. 내가 뱉은 헛소리는 독이 되는 수가 많았다.
올해는 결혼 40 주년이다. 우리는 결혼해서 보이지 않는 그 알약의 성분을 바꿔야 함을 알게 되었다. 결혼 초기엔 그 알약이 평생 지속될 줄 알았다. 앞으로 아내는 내 것에 맞는 것을 만들어 주고 나는 아내를 위한 성분을 제조해 주어야 한다. 나마지 반을 위해서다.
설거지, 쓰레기 분리수거, 아내와 성가대 봉사하기, 삼식이 안되기. 이런 거는 묘약의 성분에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개발한 것으로 거기에 포함되는 성분이 딱 하나 있다. 발 마사지다. 10분 이상 해주면 행복한 꿈나라로 간다. 아내가 잠자리에 들면 발에다 무색, 무취의 '연고식 환각제'를 발라준다. 발 마사지를 해준다는 말이다. 2년이 넘게 실천 중이다. 일주일에 3~4번 이상이다. 아내는 스르르 잠이 들면 나는 조용히 자리를 뜬다. 내 침대로! 알도스 헉슬리의 에세이 『지각의 문』에 나오는 알약을 복용했을 때와 같은 환상적 기분에, 아내가 빠져들기를 바라면서. 눈 딱! 감고 플라시보 효과를 한층 더 기대하는 건 아닐까.
수십 년을 더 살아가는 데 더 신나게 사는 방법이 무얼까. 결혼 초심으로 돌아가기, 머슴으로 살기, 자존심 비우기, 설렘을 가지려고 노력하기, 매사에 감탄과 경이로움을 표현하기, 아침에 일어나면 포옹하기 같은 작은 일에 감사하기. 이를 일상에서 먹는 알약성분으로 만들어 가는 거다. 그런 알약은 세상에 없다고 누가 말하겠나. 또 친구 만나 수다 나누고 공감해 주기. 문화, 예술, 종교 봉사활동 하기, 다양한 강의 듣기, 손주들 기쁨으로 돌보기. 이런 일상에 들어갈 성분은 본인이 만들어 가야 한다. 위에 열거한 '레시피'를 골라 가며 좁쌀같은 여러 개의 알약이 들어가는 타원형 캡슐을 제조하겠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더 강하게 리모델링 해 줄 그것을, 죽을 때까지 먹겠다.
첫댓글 무엇보다 자기 전에 발 맛사지 받은 아내 분이 무척 행복하시겠네요. 행복 알약에 취해 곯아떨어졌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를 너무 많이 늘여 놓아 좀 산만하지 않은가요.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본인 이름 속에 올려야 할 것 같은데요.
행주산님께~^^진심과 관심으로 글을 충고해주심에 마음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더 줄이고 집중해서 퇴고를 다시 하렵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