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지?

[엄희자 안젤라]

어떡하지?

  지하철 문이 열리면서 잘생긴 사내아이와 할머니가 들어선다.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고 할머니는 젊지만 웬지 우울하고 초조하다. 이어서 아이가 “어떻게, 어떻게...” 하며 좌불안석, 다른 칸으로 뛰어갔다 돌아와서 또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이 칸으로 갔다 저 칸으로 갔다 발을 동동 구르며 야단법석이다. 그런 손자를 보면서 상을 찌푸리는 할머니, 실례를 무릅쓰고 나는 그녀에게 눈길을 줬다. 눈치챈 그분이 입을 연다.

  “핸드폰이 안 돼서 저래요. 스물네 시간 핸드폰을 쥐고 살아요. 조금만 안돼도 울고불고 소리 지르고 난리예요.”

  ‘저런!’ 씁쓸하다. 뜻대로 안 된다고 저렇게 분노하여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행동으로 저항하는 녀석을 말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타협과 설득이 안 될 게 뻔하니 섣불리 간섭하다가는 일이 더 커질 수도 있다. 비겁하지만 참아야 한다. 또 한 번은 중학생 대여섯 명이 우르르 탔는데 몇 정거장이 지나도 조용하다. 조잘조잘, 까르르 웃고 밀치고 떠들어야 할 애들이 하도 기척이 없어 살펴보니 모두 손바닥만 한 물건을 들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친구들끼리 눈맞춤도 없고 대화도 없다. 모두들 자라목이 되어 화면에 꽂은 시선만 분주하다.

  핸드폰만 있으면 깜박 잊고 나온 불도 끄고, 냉난방 조절, 현관문과 가스불도 잠그고, 공과금도 내고, 반려견과 눈 맞추며 까꿍 놀이도 할 수 있으니 아이, 어른 모두 휴대폰이 소중품 1호다.

  내가 어릴 적에는 가족 다음으로 친구가 1호였다. 울어도 웃어도 같이 공감하고 머리를 끄덕였던 그 시절, 그러니까 중학교 때였나 보다. 친구 집 다락방에 올라가 김종래 선생님의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만화책을 같이 읽다가 부등켜 안고 엉엉 소리 내어 운 적이 있다.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난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공감대를 형성하며 살았다. 그것이 친구 간의 의리인 줄 알았다. 개똥철학이지만 심각하게 인생을 논할 줄도 알았고 밤새워 영화 스토리 바꾸기 놀이도 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도 어른들의 눈에 벗어날 짓을 하긴 했다. 스탠드를 이불 속에 감추고 소공녀, 소공자를 읽고 밥상머리에서 소설책을 놓지 않아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 시절이 있어 지금이 있긴 하다.

  지하철 안에서 난동을 부리던 소년은 구석진 곳에 서서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는 것을 보니 차 안이 마치 적막한 기도실 같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어느 빌딩에 기도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거기에서 자신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고귀한 몸짓인 것 같다. 출근하면서 들러 기도나 묵상으로 자신을 가다듬고 업무에 임하는 그 행위는 기계가 할 수 없는 우리의 희망이고 세상을 끌고 가는 인간의 특권이다.

  나도 거실 한편에 색이 다른 매트를 깔고 그 위에 아끼는 의자를 놓아 묵상의 자리를 만들었다. 화분을 놓아 구분하니 그곳이 내 우주이고 천국이다. 거기에서 기도도 하고 반성도 한다. 성찰은 자기를 지키는 기본행위다. 그래서 모든 종교의 성직자들도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고 묵상하는 수행이 필수라고 하나보다. 온 국민이 그런 기도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고개 숙일 거면 기도하는 마음가짐이 더 낫지 않을까.

  세상이 온통 인공지능(AI) 시대로 바뀌고 있다. 인간 부재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기업, 정치, 의학, 교육 담당이 로봇이고 일상생활도 로봇이 대신해 준다면 인간이 할 일이 무엇인지 묵상하고 답을 얻어야겠다.

  오늘도 난 핸드폰 음악이 나를 깨웠고 약 먹을 시간을 알려줘서 약을 먹었다. 편리하긴 해도 왠지 서글프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을 놓치고 싶지 않다.

(2024.1.29)

[여름숲 김하임]

지하철의 손자는 많이 염려되나, 핸드폰 음악, 약먹는 시간을 알려주는 핸드폰은 안젤라 선생님의 든든한 가족이군요.

[엄희자 안젤라]

빨리도 읽으셨네요. 고맙습니다.

[지송]

휴대전화와 문명의 이기에 대해서 섬세하게 잘 표현하셨네요.
고개를 숙일 바엔 기도하는 자세가 정말 좋겠군요. 미처 생각 못했는데, 저도 기도를 위해 자주 고개 숙여야겠어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엄희자 안젤라]

지송 선생님은 역시 멋쟁이. 부끄러운 글이지만 이해하고 읽어주니 땡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