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도 낙가산 보문사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낙가산에 있는 사찰. 강화도 서쪽의 석모도에 있다.
양양낙산사와 금산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도량이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이 곳에 와서 절을 창건
하였는데,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산의 이름을 낙가산이라고 하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고 하였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한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던졌는데, 사람 모양의 돌덩이 23개가
한꺼번에 그물에 걸렸다.
고기를 잡지 못해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를 바다에 버린다. 다시 그물을 쳤는데 또 다시 바로
그 돌덩이 들이 걸리게 되자, 어부는 또 다시 그 돌덩이를 바다에 버렸고, 돌이 두번이나 그물에
걸리게 되자 그만 집으로 돌아간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낮에 그물에 걸렸던 돌덩이는 천축국에서 보내온
귀중한 불상인데, 바다에 두번이나 버렸다고 질책하고, 내일 다시 그곳에서 불상을 건져서
명산에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 날, 23개의 불상을 건져올린 어부는 꿈 속에서 노승이 당부한 대로 낙가산으로 불상을
옮겼는데, 현재의 보문사 석굴 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불상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
옮길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석굴이 불상을 안치할 신령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하고, 굴 안에 단을
만들어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 깨어진 옥등잔 전설 ♡
옛날에,보문사의 어린 사미승이 부처님께 등공양을 하기 위해 법당에 들어갔다.
나한전에는 보문사에 전해내려오는 귀중한 보물인 옥등잔이 있었는데, 사미승은 옥등잔에
기름을 부으러 가는 것이다.
사미승은 옥등잔을 내리고, 등잔에 기름을 붓다가 실수로 등잔을 떨어뜨리게 된다.
떨어진 옥등잔은 두조각이 나게 되고, 사미승은 혼비백산하여 법당을 빠져나와 구석에 주저앉아
훌쩍이게 된다. 마침 지나던 노스님이 사미승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슨일인지 물어보자,
사미승은 옥등잔을 깨게 된 일을말하게 된다.
사미승과 노스님은 깨진 옥등잔이 있는 나한전으로 들어갔는데, 두동강난 옥등잔은 멀쩡히
불빛만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이상히 여긴 노스님은 옥등잔을 자세히 살펴 보았지만,깨진
흔적조차 없이 멀쩡하였다. 이에 노스님은 "이것은 분명 나한의 신통력 때문이로다" 하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 나한 석상과 석굴 법당 ♡
희정대사가 보문사를 창건한지 14년 만인 649년(신라 진덕왕 3)에 일어난 일이다.
보문사 산아래 지금의 매음리 동네 어부들이 배를 타고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갔다.
바다에 그물을 쳤다가 한참만에 걷어올렸는데 그물이 몹시 무거웠다. 고기가 걸렸으면 그물이
당겨지고 움직일텐데 그물은 무거웠지만 요동이 없었다.
이상하게 고기는 한 마리도 걸려있지 않고 이상스럽게 생긴 돌덩이만 잔뜩 그물에 걸려 있었다.
어부들은 어리둥절하며 그 돌덩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기이하게도 그 돌덩이들은 마치 사람
모습과 똑같았다. 어부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이한 석상을 보고 놀랍기도 하고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그 석상들을 얼른 바다에 다시 던져 버리고 배를 저어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가서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기로 했다.
한참만에 어부들은 그물을 다시 걷어 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처럼 그물이 무겁기만
하고 꿈틀거림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배에 올려놓고 다시보니 아까 멀리 떨어진 곳에
던져버린 그 석상들이 그대로 똑같이 그곳에 놓여있었다. 어부들은 매우 놀라 황급히 그물은
바다에 털어 버리고 그 날은 고기잡이를 포기한 채 서둘러 배를 저어 육지로 돌아와 버렸다.
그런데 그날 밤, 어부들은 전부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꿈을 꾸었다.
꿈의 내용은, 맑은 얼굴에 훌륭한 풍모를 한 노스님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먼 서천국(인도)으로부터 왔느니라. 나와 더불어 스물 두 성인이 돌배를 타고 이곳까지
왔는데 우리가 타고 온 돌배를 돌려보내고 물 속에 있다가 그대들의 그물을 따라 올라왔더니
그대들은 두 번씩이나 우리들을 다시 물 속에 넣어 버리더구나. 그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한
것이니 그 일을 허물하지 않겠노라. 우리가 이곳 동방 세계의 서쪽 바닷가에 온 것은 이 나라에
아라한의 신통을 펴기 위한 것이며 더욱 큰 뜻은 영산회상에서 베풀어진 무진법문과 중생의
복락을 성취하는 길을 전하러 온 것이다.
마을 뒤 낙가산에 가보면 우리가 오래도록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해 주기 바라노라. 의심하지 말라. 내일 곧 시행하도록 하라. 이 인연과 공덕으로 그대들의
후손들까지도 길이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니라." 노스님은 다시 앞장서 낙가산으로 어부들을
인도하여 보문사 앞에 있는 석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노스님은 이곳에 쉬게 해달라고 다시
한번 당부하고는 어부들이 낮에 석상을 버린 바다로 사라졌다.
어부들은 새벽녘부터 일어나 간밤의 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모두가 감탄을 했다.
그들은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배를 띄워 어제 삭상을 던져 버린 그 바다에 그물을 쳤다.
조금 후 그들이 걷어올린 그물에는 어제의 그 석상 스물 두 체(體)가 그대로 따라 올라왔다.
어부들은 정성스럽게 석상을 모시고 뭍으로 올라와 물로 깨끗하게 씻고 꿈에 본 석굴로 석상
스물 두체(體)를 위로 모셔갔다.
굴 앞에 다가가니 굴 안에서 경읽는 소리가 나고 은은한 향 내음이 굴 밖으로 스며 나오고 있었다.
어부들은 형언할 수 없이 편안한 마음을 느끼면서 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굴 안은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다듬은 것처럼 천연적으로 된 좌대(座臺)가 만들어 져 있었다.
어부들은 스물 두 위의 석상을 그 좌대에 차례로 올려 모셨다.
그리고 어부들은 그 석상들이 돌부처님이라고 생각했다.
돌부처님을 좌대에 모시고 나니 굴 안은 엄숙하고 신비한 영기(靈氣)가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일제히 돌부처님 앞에 엎드려 거듭거듭 절을 하면서 돌 부처님에게 소원을 이루어
주시도록 염원했다. 어부들은 돌부처님을 모시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신심이 절로 우러나서 기쁜 마음으로 동네 에 돌아와 잔치를 벌이면서 하루를 경사스럽게
보냈다.
그날 밤 꿈에 그 노스님이 다시 어부들 앞에 나타나셨다.
"그대들의 수고로 장차 무수한 중생들이 복을 빌어가게 될 것이다.
그대들에게 먼저 복을 줄 것이니 받은 복을 함부로 쓰지 말며 교만하거나 자비심을 버리라.
악하고 삿된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곧 복을 걷어들일 것이니라. 그리고 그대들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복덕을 갖춘 아들을 점지할 것이니라."
노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어부들에게 옥동자를 안겨 주고는 계속 말씀을 이었다.
"사람들은 이 노승을 빈두로존자라고 부른다네.우리들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두 보살 님을 함께
모시고 왔으니 나와 더불어 나머지 열 여덟 분은 모두 부처님의 수제자 들이라네. 존자들의
이름은 스님들에게 잘 일러놓을 것이니
소원을 빌 때에는 반드시 명호를 불러야 하느니라."
어부들뿐만 아니라 보문사의 스님들도 같은 꿈을 꾸었다.
스님들과 어부들은 전부 이 신령스러움에 감탄만 할 뿐이었다.
어부들이 바다에서 옮겨 봉안한 열여덟 분의 존자들은 모두가 아라한과를 성취한 대아라
한들로 생사에 자재하여 삼천대천세계에 현몰이 자재한 대 신통을 갖추신 성인들 이시다.
굴법당 좌측에 모셔진 분은 [나반존자]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독성이시다.
나반존자는 지금 천태산에서 선정에 들어 계시는데 장차 용화세계의 대좌주로 출현하시게 된다.
얼굴이 희고 눈썹이 길고 희게 표현되는 나반존자는 차와 과일을 즐기신다.
이러한 특징으로 보아 이 나반존자가 바로 빈두로존자라고 보고 있다.
신통 자재한 아라한들의 하는 일이므로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 석굴 옆에는 신령스런 샘물이 솟아오르고 있다.
그 물맛이 감미로워 불자들이 많이 마시게 되는데 아무리 많이 마셔도 탈나는일이 없다.
그때 모셔진 스물두 분의 석상은 조금도 변함없이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마치 최근에
모신 것처럼 항상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이 느껴진다.
근래 사람들이 돌의 석질을 조사해보니 석상의 돌은 화강암같이 보이지만 우리나라 화강암이
아니라 인도에서 산출되는 돌임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보문사 전경
석굴 내부에는 삼존불과 관음보살 그리고 19분의 나한을 모시고 있다.
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로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했으며 열반에 들지 말고 중생을 제도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성자이다.
법왕궁(法王宮 석실 나한전)
눈썹바위 전망
낙가산 명물 눈썹바위는 지표로 노출된 대형 화강암 슬랩이며 끄트머리가 오버행으로 생겼다.
알파인 클라이머에겐 비박지로 최적이며 스님들에겐 불사의 명당이며 우리 같은 속인들에겐
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하다.
마애석불좌상
일주문 지나 仙界인 절마당에 도착하면 어디서부터 구경할 지 마음속으로 동선을 그린다.
종무소, 스님들의 거처와 수양 공간은 가급적 피하고 일반에게 개방된 장소에 한한다.
원래 보타 낙가산은 관음보살이 계시는 곳으로 바다 와 관련된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으로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금산 보리암은
바다와 마주하고 있다. 千명이나 앉아 법회를 열 수 있는 마당바위(천인대)에 와불전과
33 관세음보살 사리 탑과 오백나한상을 세웠다.
천인대 오백나한상과 33 관세음보살 사리탑(삼층석탑)
33 관세음보살 사리탑(삼층석탑)
신라 635년(선덕여왕 4) 회정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이렇게 창건사를 기술하고 있지만 스스로도 기록 없음을 자탄하고 있다.
석굴을 제외한 전각들은 100년 이내에 불사한 것들이다.
법음루(法音樓)
범고는 법을 전하는 북으로 네 발 달린 짐승을 비롯한 땅 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
윤장대(輪藏臺)
글을 모르는 불자를 위해 경전을 보관하는 통을 한 바퀴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기린다.
범종각(梵鐘閣)
법종은 천상과 지옥 중생을 위한 것이다. 운판(雲版)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중생이나
허공을 떠다니는 중생을 위한 것이고 목어(木魚) 물속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극락보전(極樂寶殿)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기 위한 연등 달기 행사가 한창이다.
같은 크기의 연등이라도 장소에 따라 공양 금액이 천차만별이다.
오대산 하산길에 상원사 적멸보궁에 들렸다가 마침 연등 공양에 참여하여 이름표만
적어 주고 어디에 달 것인지는 머리 굴리기 싫어 위임했다.
극락보전 아미타여래(中) 관세음보살(左) 대세지보살(右)
보문사가 자랑하는 600년 수령의 향나무와 맷돌, 절구
와불전
내부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당시 모습을 모셨다.
삼성각
칠성, 산신, 독성 3분의 탱화를 모시고 있다.
눈썹바위 처마 밑 마애관음보살상을 참배하는 419 계단로
용왕단
마애불 올라가는 도중 서해 전망이 좋은 곳.
여기는 눈썹바위 황금등
마애석불좌상(관세음보살 높이 9.2m 폭 3.3m)
1928년 당시 보문사 배선주 주지스님과 금강산 표훈사 이화응 주지스님이 함께 조각했다.
일제 강점기에 새긴 불상으로 예술적 가치보다는 성지로서의 역할이 더 중시되었다고 한다.
연등 행렬
290년 수령 느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