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면옥 사람들/김 필로
굳이 여름철이 아니어도 냉면이 먹고 싶고 뜨거운 육수를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오늘처럼 눈이라도 펑펑 내리는 날이면 조선 면옥을 예쁘게 기억해 주는
사장 점장 주방장 찬모 그리고 일반 직원들이
선물처럼 포장되어
면발처럼 길게 따라 올라온다.
사투리가 냉면처럼 몸에 익숙해도 표준말을 쓰려고 애쓰던 전라도 해남 청년 송 일수의 에피소드는 세월이 지나도 생생하다.
그 맛이 떨어지지 않아 주걱에 밥알처럼 즐겁게 떼어먹는다.
새 집을 마련하면서 받았던 대출금을 갚기 위해 뛰어들었던 첫 일터의 경험은 쾌 당돌하고 어른스러웠다.
공터에 건물을 다 짓기도 전에 면접을 보고 나는 창립 멤버가 되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사장이 장난삼아 오픈 전 날에 와보라고 했는데 진짜 와서 놀랐다고 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모범 직원이 되어 보너스도 받고 해가 바뀔 적마다 급여도 파격적으로 인상되었다.
어느 날 회장이 안양지점에 오셔서 물었다. "빈 그릇이 이렇게 쌓이면 겁나지 않아요?
무섭지 않아요?"
나는 부끄럼 없이 똘방하게 대답했다.
"겁나지 않아요, 무섭지 않아요,
산더미처럼 쌓일 때 오히려 희열을 느끼고 감당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생겨요."
그 일로 난 더 스타가 되었고 잠깐 할 줄 알았던 일을 더 오래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조선 면옥은 8점포를 운영하며 평양냉면이나 옥류관처럼 입지가 탄탄한 냉면 전문집이었다.
어마어마하게 찾아오던 그때 그 손님들이 보고 싶다.
손님들을 가족처럼 맞이하던 그때
그 직원들이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장미처럼 봉긋하게 피어나던
그때 나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