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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 신기루 / 교정 중
마지막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더 높은 암벽일 줄이야. 한 이불의 믿음이 모래성일 줄 몰랐다. 엄감 물살에 속서림 쓸려 가는 느낌 넘 아프다. 사는 낙이 사라졌다. 산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능력이 있었다면 유유 작작한 여유가 따라 올 텐데. 먹 거리에 붙들려 발 부동만 쳐대는 허덕임. 옆 돌아 보지 못하는 처지. 자괴감 벗어보려는 얄팍한 속수였나. 믿음의 보루가 허물어 졌다. 마지막 퍼즐의 횟집가게다. 열심히라는 해 보고 싶은 의욕이 무너졌다. 방향 잃어버린 일엽편주 꼴이다. 누구를 탓하랴. 다 내 탓이다. 허접한 욕심이었고 망종이다. 능력부족이다.
'이 가게가 마지막이다. 다른 일 할 수 있는 것도 가진 것도 더 이상 없다. 망조들면 빈 털털이 된다. 남들처럼 여행 다니고 아이들 집 장만해 주고 좋은 차 타고 외식하는 광경 우리도 해보자. 남들 모양새 구경하는 게 너무 싫다. 졸아 가는 한 남자를 봐주라. 제발 부탁 한다. 같이 열심히 해서 돈 좀 벌자.’ 헛 소리 였다. 장사는 죽을 쑨다. 묘수를 찾아보지 만 없다. 다른 메뉴인 한식까지 덤으로 국수도 해 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적자는 커져만 가고. 남의 식당일처럼 보는 이에게 남자 자존심 버리면서 부탁도 애걸도 했다. 해도 해도 무심이다. 해보려고 하는지 생각을 안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너무 태연하다는 것이다. 가게를 그만 두었으면 하는 모습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돈벌이는 남자만의 일인가? 같이 일하고 있는 자리가 힘들다. 진짜 마지막으로 부탁한다며 맹탕 같은 끈이지만 던져 보았다. 머리 맞대어 한 번이라도 의논해 잘 보자고.
심작心作. 내가 만들고 싶은 내가 만던 단어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내가 지어 낸 말이다. 아이들에게도 집사람에게도 이유를 설명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다라고. 허망하다. 뭘 위해선인가? 내 욕심 채우기 위해서 한 말이 되었다. 꼴 갑의 꼴뚜기다. 무슨 문자까지 쓰가면서. 다음의 계획이 맹탕이 되었다. 아무 준비도 못하고 있다. 똥줄은 허벌나게 타는데…. 혼자서 발광하는 이가 되어 있다. 혼자 먹고 살자고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닌데. 우리라는 집 울타리 그 존속 유지를 위해선데. 뒤 주머니 차고 있는 금냥이 있는가? 통장의 잔고는 뻔하고. 가게 매상은 갈수록 빈 손의 하루가 되고 있으니. 집에서 먹을 쌀은 무슨 돈으로 장만하느냐고. 나만의 몸부림도 한계치다. 하늘 원망도 한두 번이다. 하지만 모든 게 모두 내 탓이다. 능력없는 남자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다.
공방친구가 회를 만들어 오라 한다. 도시락 포장 두 개를 만들어 갔다. 신이 나 마실 가 듯 들렸다. 손님을 초대해 저녁식사 준비를 하다가 우리 부부가 합석하면 음식이 부족할 것 같아서 주문했다 한다. 늦은 저녁식사 시간 식탁에 다 식사가 차려져 있다. 가게 시작한 지 20개월 동안 3만 원 포장 딱 한번 주문한 친구다. 주변에 많은 분들을 알고 있어 너무 믿었고 기대를 했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기대를 포기했지만. 오늘은 혹시나 하면서 기분 좋은 마음으로 더 많은 회를 담았다. 식사를 파하고 회 값을 줄 생각을 않는다. 친구니까 같이 식사했으니 안 받는 걸로 취부 하였는지 가만히 있다. 당연하듯. 나는 당연하지 않았다. 가게 장사가 안 되어 한 푼이라도 운영비에 보태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도 장사꾼이니까.
오늘 고깃값은 했구나 안심. 자존심이 무너졌다. 가까운 친구라 기대를 가진 나의 잘못이 더 크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데 자질하는 건 분명 내 잘못이다. 몇 푼의 돈을 가지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진 게 싫다. 가슴을 쥐어 짤만큼 서럽다. 옹졸하면서 치사해서 너무 밉다. 하늘에다 몸을 던져 버리고 싶을 만큼 쭈굴이 되었다. 회 포장 2개 값 6만 냥. 지금 이 돈은 오늘 나에게는 거금이다. 내일 당장 고기 들려야 할 돈이다.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간의 도움 받음이 얼마인데. 이푼돈으로 어찌 비견 하랴. 돈으론 헤아릴 수가 없는 정도 많았으니. 그만큼 믿음으로 기대는 친구다. 친구도 당연히 믿고 있기에 이 정도 돈은 무심히 생각을, 생각을 아예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님 같이 동참한 다른 친구 누구라도 부담해주면 엉뚱한 생각도 한다. 그냥 뒤안길로 훌 던진다. 하지만 오늘 만큼은 서럽다. 오늘 첫 회로 첫 장사였으니.
친구가 운영하는 공방 수석 전시장이 있다. 예쁘고 귀한 돌이 많다. 노래방 기기까지 설치되어 있다. 노래로 스트레스 술 한 잔 먹고 발광을 해봤다. 나는 스스로 무당춤이라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으니 어렵고 힘든 마음을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꽉 막힌 기분풀이로 이용을 해보고 싶었다. 언제라도 이용해도 된다고 하여 그 말을 믿었다. 정말 친구가 좋구나 하면서다.. 어느 날에 내가 땡캉 부리는 것처럼 던지는 말을 한다. 이제 그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딱 두 번 이용을 했다. 아! 부담을 주었구나. 바로 이해를 하고 그다음부터 이용하는 걸 포기했다. 부담 주는게 싫다. 내좋다고 다른 이 부담 주는 일은 막장 같아서다. 나의 자존심 흠집뿐이니까. 한 번씩 스트레스 가득일 때 일 잔주하고 노래질 발광이 최고였다. 가요방에는 밑천 생각에 가지도 못한다. 가요방 기기가 내게는 없다. 잘 됐다며 좋아했던 기운 모래알 모양이 되고 말았다.
그 노래 방 노래를 불렀다. 더 큰 발광을 해보고 싶었다. 발바닥을 더 힘차게 울리고 싶었다. 마음 한축으로 기대를 하다가 상실된 친구라는 마음 헤어 놓고 싶었다. 신나게 발광을 했다. 술주정보다 더 크게 소리 질렀다. 술맛도 잊고 기분도 잊고. 모처럼 무당 짓을 해 보았다. 남들 의식하지 않았다. 아마 이런 모습 때문인가. 부담 가지는 것이 주변 분들에게 눈치 보였을 거고 말들 들었을 거고. 대구에서 초대한 손님 부부는 가고 옥산 건강원 부부도 가려한다. 집 사람보고 우린 좀 더 놀다 가자고 했다. 눈 부라리고 아래위로 돌아가면서 실죽 거린다. 약이 오른다. 하다고 회 값을 받는 것도 아니다. 더 힘차게 뛰며 놀고 귀신 놀이 더 하고 싶었는데 가자한다. 욱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공방에서 나왔다.
가게로 걸어오면서 왜 더 놀도록 두지 꼬장 부렸냐 하면서 짜증을 냈다. 내 기분을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가 맞다. 죽을 것만 같은 스트레스. 그게 더 미치도록 화가 났다. 가장 많이 알아야 되고 마음을 주고받고 이해를 해 주어 야 할 사람이다. 안중에 두지 않는다. 오만상 성질 머리끝까지 올랐다. 가게에 와서는 집에 간다고 봇 다리 바로 챙긴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얘기도 좀 하고 좀 있다 가자고 해도 혼자서 그냥 가 버린다. 뒤에다 악담을 했다. 마침 집에는 딸아이가 외손녀를 데리고 와 있었다. 아이들 때문에 갔다. 그래도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지금 가면 애들 올라가고 나서 난 집 나온다. 그래 알아라.”라고.” 고래 소리 질렀다. 술김에 전화를 몇 번이나 했다. 받지 않는다. 울화가 불화통으로 이성까지 잃었다. 눈알이 사방으로 빙빙 돌아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선풍기, 물 항아리, 밥솥, 손에 걸리는 대로 다 때려 부수었다. 식탁하나 들어 집어던졌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전화기마저 때려 부셔 버렸다. 숨이 떡떡 막혔다. 집기 부수는 화풀이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칼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가슴 엉어리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 참 후에 가게 2층에서 냉방기 작동하고 술김에 혼자 잤다. 하루의 폭풍이 그렇게 지나갔다. 컴퓨터가 2층에다 옮겨 설치되어 있다. 문인화 기구들도 다 옮겼다. 2층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다. 가게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 먹었다. 오늘이 3일째 다. 일곱 끼 시간을 혼자 보냈다. 밥 한 숟갈 먹지 않았다. 가게 냉장고 술만 찾아서 먹었다. 바싹 마른 무미건조한 상태. 해프닝으로 본다. 나는 죽을 만큼 힘드는데 그냥 술 주사로 본다. 왜 가게를 시작했을까? 앞으로 생활은 어떻게 할까? 능력이 미천한 나는 방법을 못 찾고 있다. 그런 나를 한 갓 술주정으로 돌려 버린다. 지금까지 먹거리 불안으로 쌓인 스트레스 3일간 곡기 먹지도 않고 발악하는데. 마음이 태평인가? 앞으로 계획이 있다는 것인가? 그냥 도망치고 싶다. 다 버리고 싶다.
낙 상실 되었다. 못나고 비참하다. 이게 사는 건가? 이렇게 살면 뭐 해. 나는 뭐고? 누구를 위해서? 결국은 나만의 발부 동이다. 기댈 언덕을 한 번도 내 밀어주지 않는다. 마지막 끈을 잡고 싶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안면 갈아 뭉갠다. 지겹다. 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일어 나는 일이다. 주변 사람 더 이상 부담 주지 말자. 나만 없으면. 비내골로 가자. 그리고 이런 생활 그만하자. 산의 품으로 누웠을 때 이불 덮어 주니 얼마나 좋나.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신기루 모래성은 없다.
24. 03. 20.
모래성 / 초안
마지막 기댈 수 있는 언덕이 힘없는 모래성일 줄 몰랐다. 물살에 쓸려 내려가는 느낌이 너무 아프다. 낙이 사라졌다. 산 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능력이 있었다면 유유 작작한 여유가 따라올 텐데. 아직도 먹 거리에 붙들려서 발 부동만 쳐대는 허덕임의 자괴다. 믿음의 보루가 허물어졌다.. 마지막 퍼즐로 챙겨서 하고 있는 횟집가게지만 해 보고 싶은 의욕이 무너졌다. 왜 해야 하는지 방향을 잃어버린 일엽편주 꼴이다. 누구를 탓하랴.. 다 내 탓일걸. 허접한 욕심의 망종이다.
자존심이 무너졌다. 가까운 친구라 기대를 가진 나의 잘못이 더 크다. 살아가는 방식이 따로 있는데 생각만으로 판단하는 건 분 명 내 잘못이다. 몇 푼의 돈을 가지고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진 게 너무 싫다. 가슴을 쥐어 짤만큼 서럽다. 옹졸하면서 치사해서 너무 밉다. 하늘에다 몸을 던져 버리고 싶을 만큼 서럽다. 멀어지고 싶다.
‘이 가게가 마지막이다. 할 수 있는 가진 것도 더 이상 없다. 넌, 무슨 속내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남들처럼 여행 다니고 아이들 집 장만해 주고 좋은 차 타고 외식하는 광경을 우리도 해보자. 모양새 구경 꼴 갑으로 구경하는 게 너무 싫다. 졸아 들어가는 한 남자를 봐주라. 제발 부탁한다.. 열심히 해서 돈 좀 벌자.’
자존심 버리면서 부탁이라 해도 무심하다. 해보려고 하는지 안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너무 무심하다. 같이 일하고 있는 게 힘들다. 진짜 마지막으로 부탁한다며 맹탕 같은 끈이지만 던졌었다.
짐작心作.내가 만들고 싶은 단어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한 말이다. 아이들에게도 집사람에게도 했다. 허망하다. 뭘 위해선인가? 내 욕심을 위해서 한 말이 되었다. 꼴 갑인 것이다. 다음의 계획은 맹탕이다. 아무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 나는 그것이 보여서 똥줄이 타는데….
공방친구가 회를 만들어 오라 한다.. 도시락 포장으로 두 개를 만들어 갔다. 손님 초대하여 저녁식사 준비를 했는데 우리 식구가 합석하니 음식이 부족해서라고 했다. 마실 가 듯 들려던 나였다. 때 마침 식사 시간이었고, 빨리 가게 문 닫고 포장 두 개 만들어 오라고 한다. 가게 시작한 지20개월 동안 33만 원 포장 딱 한번 주문한 친구다. 주변에 많은 분들을 알고 있어 너무 믿었고 기대를 했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 기대를 포기했지만. 오늘은 혹시나 하면서 기분 좋은 마음으로 더 많이 회를 담았다. 식사를 파하고 회 값을 줄 생각을 않는다. 친구니까 안 받는 걸로 취부 하였는지 당연하게 가만히 있다. 나는 당연하지 않았다. 요사이 너무 가게가 안 되어 한 푼이라도 운영비에 보태야 하기 때문이다.
공방이 수석 전시장이다. 예쁘고 귀한 돌이 많다. 노래방 기기까지 설치되어 있다. 스트레스로 술 한 잔 먹고 발광을 해봤다. 나는 무당춤이라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으니 어렵고 힘든 마음을 알고 있는 줄 알았다. 꽉 막힌 기분풀이로 이용을 해보고 싶었었다. 언제라도 이용해도 된다고 하여 그 말을 믿었다. 정말 친구가 좋구나 하면서다.. 딱 두 번 이용을 했다. 부담을 주었구나, 이해를 하면서 다음 이용하는 걸 포기를 했다.
노래를 불렀다. 더 큰 발광을 해보고 싶었다. 바닥을 더 힘차게 울리고 싶었다. 마음 한축으로 기대를 하다가 상실 한 친구라는 마음을 헤어 놓고 싶었다. 대구에서 초대한 손님 부부는 가고 옥산 건강원 부부도 가려한다.. 집 사람보고 우린 좀 더 놀고 가자고 했다. 눈 부라리고 아래위로 돌아가면서 실죽 거린다. 약이 오른다. 하다고 회 값을 받는 것도 아니다. 더 힘차게 뛰면서 발고 주고 싶었는데 가자한다. 화가 치밀었지만 공방에서 나왔다.
가게로 걸어오면서 왜 더 놀도록 두지 꼬장 부렸냐 하면서 짜증을 냈다. 내 기분을 모른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는다가 맞다. 그게 더 미치도록 화가 났다. 가장 많이 알아야 되고 서로 마음을 주고받고 이해를 해 주어 야 할 사람이다. 안중에 두지 않는다. 오만상 성질이 머리끝까지 올랐다. 가게에 와서는 집에 간다고 봇 다리를 바로 챙긴다. 얘기도 좀 하고 가게 좀 있다 가자고 해도 혼자서 그냥 가 버린다. 뒤에다 악담을 했다. 마침 집에는 딸아이가 외손녀를 데리고 와 있었다. “지금 집에 가면 애들 올라가고 나서 난 집 나온다. 그래 알아라.”라고.” 했다. 전화를 몇 번이나 했다. 받지 않는다. 눈알이 사방으로 돌아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선풍기, 물 항아리, 밥솥, 손에 걸리는 대로 다 때려 부수었다.. 식탁하나 들어 집어던졌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전화기를 때려 부셨 버렸다. 숨이 떡떡 막혔다. 집기 부수는 화풀이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칼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가게 2층에서 냉방기를 작동하고 잤다. 하루의 폭풍이 그렇게 지나갔다. 컴퓨터를 2층에다 옮겨서 설치를 했다. 문인화 기구들도 다 옮겼다. 2층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다. 수박을 먹었다. 오늘이 3일째다. 일곱 끼를 보냈다. 밥 한 숟갈 먹지 않았다. 술을 더 찾아 먹고 싶다. 나를 알아주고 풀어 주어야 할 이가 바닷가 모래로 보였다. 바싹 마른 무미건조한 상태의 뭉치였다.
낙을 상실해 버렸다. 못나고 비참하다. 살면 뭐 해.. 나는 뭐고? 누구를 위해서? 나만의 발부 동이였나?? 기댈 언덕을 한 번도 해 보지도 않고 치워 버린 다. 마지막 끈을 잡고 싶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안면 돌린다. 지겹다. 다 내가 부족해서 만들어진 일이다. 주변 사람에게 더 이상 부담 주지 말자. 비내골로 들어가자. 그리고 떠나자. 산의 품으로. 누웠을 때 이불 덮어 주니 얼마나 좋나.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신기루 모래성은 없다.
2019.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