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옆에서 / 출품작
고사 않고 긴 꼬챙이처럼 버티고 있다. 봄날에 잎은 내어도 찔레와 딸기나무 사이에 부대끼고 가려서 없는 듯했다. 겨울에는 진녹색으로 가시만 달린 줄기로 목책에 걸쳐 있다. 바람 불면 우두커니 비 오면 비 맞고 뭘 기다리는지 항상 쓸쓸한 모습이다. 4년 전에 텃밭 길 가설 다리 건너기 전 입구에다 심어 둔 장미 한그루다. 여기 오기 전에는 몇 아름이나 되는 덤불로 많은 꽃을 피웠다. 그른 꽃 보여 주지 않은 체 지금은 두 줄기만 살아남아 애처롭게 있다.
토막이 찔레 올 봄날에도 어김없이 꽃이 핀다. 꽃잎 다섯 올 동그랗게 잡고 바람 맞이다. 순백에다 노란 때깔로 곧 부름이라도 할 듯 날린다. 향기 피워 목책 주변 온통 물결로 달구어 놓는다. 딸기나무 젖히는 힘자랑도 한다. 여기에 장미 가지 하나가 걸치기를 한다. 항상 주변 잡목에 치어 혼자 외로움을 견디어야 하는 환경. 사계절 덩그렇게 있는 모습에서 가끔은 동질감을 느끼곤 한. 세수에 맡겨진 억지의 생으로 있더니. 올해는 달랐다. 줄기 수가 늘어나면서 옆으로 높이로 치솟고 잘 자란다. 힘차게 뻗어난다. 도움받지 못함도 탓함도 없다. 그중 한 줄기가 찔레 덤불에 걸쳐 그 가지에서 꽃 한 송이만 피우고 있다.
한 송이지만 당당하다. 찔레꽃보다 더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하얀 꽃 무리 덕인지 유독 돋보인다. 찔레꽃 모양이 작으니 더 빛나나 보다. 한 나무는 하얗고 많은 꽃을 머리에 이고 하나는 딱 한 송이 검붉은 꽃을 들고 있다. 많은 무리의 유세장에서 한 송이뿐 인 장미가 눈에 확 들어온다. 여왕 꽃 느낌이다. 찔레꽃이 사방을 호위하듯 둘러쌓고 부복함이 완연하다. 기득권 터줏대감 자리 마음대로 나부끼며 자랑하다가 졸지에 여왕을 맞이한다. 자리 양도한 기분은 별로 이리라. 실은 서로는 비교하지 않는다. 본연의 의미를 스스로 가지고 있다. 찔레는 찔레꽃으로 장미는 장미꽃으로. 한 폭의 풍경으로.
찔레나 장미가 서로 가지치기하여 덤불처럼 많이 불린다. 씨름인지 어깨동무인지 껴안아 가면서. 선의의 경쟁 자연의 약육강식인지는 모르겠다. 엉켜 있는 줄기와 잎으로는 구분이 어렵다. 딱히 구별할 이유도 없다. 다정하게 자리 잡고 각자 자체 발광하고 있으니. 장미는 다른 줄기에서도 꽃 몽우리들이 오른다. 많은 줄기가 목책에 기대어 서로 자랑하듯 폼 새 날린다. 자신의 영역 덤불 안으로 들어와도 내쫓지 않고 흉보지도 않는다. 계곡 둑이 꽃 뜰이 되어간다.
저장된 전화번호 정리한다. 어제 한 인지분의 경사 소식 연락받고 축의금을 보낸다. 물론 평소 왕래는 없다. 그 번호는 지워진다. 경조사로 베풂을 준 분들 번호는 차마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은혜하고 나면 번호 지워지리라. 호기와 열정이 지나버린 나이라 영역을 줄여 가는 중이다. 혼자서 우울 내치는 인연 정리라 한다. 걸어가던 시간이 달려가는 느낌. 오만가지 생각이 들쑤셔도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당면 땟거리. 생계를 위해 일을 한다. 이유같이 않는 이유를 들어가며 인연 거리 두기를 한다.
장미꽃 옆에 서 본다. 바로 하늘을 보았다. 못남과 부끄러움을 떨쳐 내기 위함이다. 짐인 금전, 특히 먹거리 무게 검은 속마음 숨기기다. 비내골에서의 일탈인 쇠스랑으로 흙덩이에 도리질한다. 잡풀들이 더 빠르게 자라는 텃밭 일을 일이라고 하고 있다. 딴에는 마음 다스림이라면서다. 회초리 든 것처럼 무심을 찾는다며 헤맨다. 뭇 꽃이라도 보면 외로움이란 감정을 느끼면서, 비빔밥과 한잔 술로 합리화시킨다. 홀로라는 울타리 쳐 두고 채를 더 쌓고 있다. 이런 주변머리 없는 이랑 비교라? 사고방식 안 바뀌는데 비교가 될 수 없다.
기개가 당당한 장미꽃이다. 물 한번 주지 않은 무심에도 삐침도 없다. 자라면서도 주변 무리와 어울려 자연 풍경을 이룬다. 터울을 스스로 풀어나간다. 수필을 쓴다. 시 배운다. 그림을 그린다. 나름 해 보려 한다. 비내골에서 자연과 부딪침도 방법의 하나다. 이룬 게 없다. 아직도 먹거리에 매달린다. 때론 하늘과 자신에 자학 같은 원망도 한다. 누가 보든 말든 자신을 위한 끈기로 꽃을 활짝 피운 장미가 부럽다. 닮고 배우고 싶다. 장미꽃 옆에 선 이유다.
기다림은 시간이다. 장미를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시간. 살짝 당겨 보고 입맞춤도 해 보고 퇴비도 넣어야겠다. 여름에는 가뭄이 심하다. 계곡 건너 산기슭에 친구의 지하수 심정이 있다.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도 구해 두었다. 수중 펌프 설치를 추진해야겠다. 인연 거리 두기도 지워야 하는데 성격상 당장은 어렵다. 노력하자. 이제는 가지마다 꽃봉들이 마구 열린다. 다발로 펼쳐질 꽃 무리를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고 다짐해본다.
2020. 05. 28.
2021 경산문학 37집 출품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