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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내골의 토굴 미련 / 교정 중
비내골 텃밭이 있다. 호작질 겸 이런저런 일을 하며 소일을 보내는 기운 보충할 곳간 같은 곳이다. 병풍산 능선 따라 내려준 한줄기의 계곡 산기슭에 접해 허접한 토굴을 만들었다. 몸 지지면 건강관리 도움이 될까 해서다. 불편할 정도로 습기가 많이 찼다. 지기地氣보다 수기水氣가 더 빨리 모였다. 땅속 저편의 얻고 싶은 기운 받아 보려고 만든 토굴이 산기슭에서 스며드는 수기를 이기지 못한다. 바닥에 펴 둔 대자리와 벽 모서리에 검은 띠처럼 곰팡이가 다 차지하고 있다. 안타깝다.며칠간 비가 내린 영향도 있지만, 평시에도 습기가 많이 찬다. 이런 방구석인데 토굴은 무덤덤하다
아궁이 안에 물이 고여 있다. 삽으로 바닥 흙과 같이 물을 걷어낸다. 그래도 바닥에는 물기가 있다. 토골 옆 공터에 땔감으로 모아둔 장작 들고 온다. 주변에 있는 낙엽모아서 쏘시개용으로 가져온다. 아궁이 안에 장작으로 먼저 불이 잘 붙게 시옷자 형태로 약간의 틈을 주면서 쌓는다. 낙엽을 그 밑에 넣는다. 일회용 라이터로 휴대용 토치램프에 불을 댕겨 낙엽에 불을 붙인다. 낙엽만 후루룩 타 버린다. 그리고 연기만 자욱하다. 아궁이 안의 습기가 더세 불이 붙지 않는다. 다른 때 같으면 바로 장작에 불이 붙곤 했는데 참 쉽게 생각한 것 같다. 눈물도 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일단 한숨 돌리고 눈물부터 닦는다.
이제는 가는 나뭇가지 주워 와 앞에 모으고 그 밑에 낙엽 한 주먹 다시 넣고 불을 붙인다. 가지에 불이 붙으니 장작도 이제는 됐다 싶었나 몸을 내어 준다. 불은 붙었다. 하지만 아궁이와 구들 안에 찬 습기로 인해 연기가 굴뚝이 아닌 앞으로 다 나온다. 사용하던 풍로를 이용하여 강제로 바람을 불어 넣는다. 그때야 항복하듯 구들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굴뚝을 잡은 하얀 연기는 저기압 영향으로 처마 밑으로 돌 토골 벽을 타고 땅으로 깔리면서 살살 긴다. 몽글몽글 다니며 혼자 잘 논다. 내 영토를 쉽게 차지하는 행위에 샘이 난다. 달려들어 풀어헤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지만 참는다. 연기는 토굴 주위를 완전히 휘감고 밭으로 산 위로 날아간다. 한 갈래는 바로 옆의 참나무를 덮친다. 나처럼 눈물 나서 어지러웠나? 몽둥이 맞은 듯 잎사귀 가늘게 떨더니 한순간 멍하게 보인다. 그렇게 혼을 빼놓고 나무 꼭지 꼭대기 밟고 하늘로 간다.
아궁이로 이제 연기는 나오지 않는다. 뜨거운 열기에 몸 쪼우기가 참 좋다. 그 앞에서 한동안 앉아서불을 지켜본다. 혹, 불이 요동하여 허술한 주변 토굴에 옮겨 붙을까 불 지기를 하는 중이다. 다시 아궁이에서 구들로 들어가는 불길을 본다. 용트림 버얼건 불이 시원하게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방바닥의 열기를 상상했다. 어느 정도 맞춰야 할까? 땀을 낼 정도로 계속 지필까? 불구덩이에 장작을 보충한 후 구들 안으로 더 밀어 넣는다. 아니면 습기 제거 정도만 할까? 하염없는 불은 구들 속으로 잘 던다. 쪼그려 앉아 보는 얼굴이 화끈 거린다. 이마에 땀도 난다. 방에서 낼 열기를 불 앞 열기로 먼저 체험을 하고 있다. 허허실실이다. 방은 곰팡이가 어떻게 되던 불과 눈치 싸움을 한다.
땀도 식힐 겸 한숨돌릴 겸 한 팔거리 정도 물러나 생강차 한 잔 마신다. 입안 들자 속까지 따뜻하며 시원하다. 생강 특이의 맛이 입 안 가득 채워진다. 볼 살이 불기와 더불어 지니 오늘 무슨 날? 뻥 뚫리는 기분이다. 들뜬 기분 호들 값 몸서리를 쳐 본다. 후룩후룩 입안을 돌려 보다가 목 안으로 내려 보낸다. 아마 생강 열기 덕이리라. 채움이 되었는지 기운이 훅 오른다. 입술로 입김 풍로 만들어 긴 숨 들이켠다. 칼칼해진 입안 심장은 쿵덕 거리고. 생강차 한 잔으로 내 몸에 지핀 군불. 풍성해진다. 그냥 배 퐁냥 해진다. 작은 행복이 성큼 하루의 시간이 다 깔려진다. 산 그림자가 들다 말고 해는 구름 사이로 숨는다. 먼 날의 때가 산 능선의 한 조각 너울로 계곡곡따라 달려 오는 것처럼 한 추억도 아련 거린다.
초가집 부엌 안에 청솔이 쌓여 있다. 아궁이에 가득 넣고, 그 밑에 불쏘시개로 마른 솔가지 넣는다. 성냥으로 불을 붙인다. 청솔은 생나무라 마른 솔가지만 타고 만다. 바닥에서 마른 솔가지를 긁어모아 보충해 주면서 입으로 계속 후후 분다. 한참 동안 씨름을 한다. 눈물 콧물 십전짜리 문자 나온다. 안달은 나고, 부지깽이 질은 잦아지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청솔도 지쳤는지 불이 붙었다. 무쇠 솥 안에는 대수구리에 담긴 식은 밥을 올려놓았다. 불을 지피면서 저녁 식사 준비도 같이한다. 품앗이 나가신 엄니는 해가 지는 데도 오시지 않았다. 밥을 데워 놓고 방을 따뜻하게 해 두면 엄니께서 좋아하지 않으실까 하며 불을 지핀 것이다. 코 흘리게 시절 어린 마음으로 한 군불 넣기다. 엄니 기다리면서 방이 따뜻해졌나 잠시 누웠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아릿한 감정이 여기 아궁이에서 그려진다. 지난 시간 한 번씩 생각이 나는 미련 조각.
토굴에서 밤을 지내본 적은 없다. 낮일만하고 집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음주한 후에 잠시 쉴 겸 땀도 낼 겸 두어 번 찜질방용으로 이용한 적은 있다. 방 사용은 하지 않은 편이다. 군불 넣는 의미가 모호하다. 약초 물을 만들고 고사리 대치고 가끔은 백숙도 만들어 먹기는 했다. 용도가 그렇게 바뀌었다. 당연히 토굴 찜질 맛과 산골 운치 맛보기 별로 하지 않았다. 산속 생활보다는 텃밭 일 소일로 대부분 변한 것이다. 이 토굴을 지을 때의 그 마음가짐이 밀려났다. 다른 호작질의 활용 시간이 늘어 난것도 하나의 다른 이유도 있다. 밤에 잠자는 시간이 여기서 하지 않으니 자꾸 정감이 낮아 질 수 밖에는. 지금 방 모습이 바로 대변해 주고 있다. 어릴적 회억인 엄니의 그리움도 밀려 났다. 또한 건강관리로 노폐물 토해 낼 땀 내기는 해 보지도 못했다.
처음 토굴 지을 때는 집으로 사용해보자는 웅심으로 시작했었다. 먹고살기 위해 아파트로 가려는 심보가 초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산심 받아 보자는 마음이 무뎌 간다. 아쉬움이 진하다. 비내골 생활은 언제부터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나이에 아직도 때 거리 걱정이 먼저이니 마음 다잡기가 쉽지 않다. 아궁이에 불 넣는 일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 내 삶에서 따뜻한 군불을 지피면서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옛날의 초가집 연기 내음을 그려 보면서. 오늘도 군불은 그냥 곰팡이가 너무 심하게 군림하고 있어 단순히 건조시키기 위한 일뿐이다. 다음 한 번 활용해 봐야지 생각해 보는 것이 전부다. 자꾸 미련만 길어지고 있다.
17. 9. 24.
다툼이 싫고 경쟁하는 것이 싫다.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전투 심리가 싫다. 너나 나나 부담 없는 인생살이였음 해본다. 작은 가짐으로 적게라도 서로 편하게 할 수 있는 생활을 그려 본다. 나의 태성이다. 직업군인 때다. 진급을 위해서 친구건 동기건 선 후배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생존 경쟁을 십여 년간 체험했다. 권력에 아부와 줄 서기, 상대를 밟으면서 하는 선택은 선의의 경쟁보다는 악만 남는 이기심만 있었다. 싫었다. 아귀다툼하는 넝쿨을 자르고 싶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삶의 부유를 위해서, 권위를 위해서 전쟁터 같은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런 경쟁이 싫다. 맡은 업무만 고집스럽게 수행했다. 부딪치는 험난 직장을 때려치운다고 수없이 말했다. 먹고살기 위한 거라지만 생존이라는 수단에서 인간성 매몰이 싫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큰 금이 있다. 가장의 책임이라는 짐 무겁게 달려 있다. 두 가지 길의 상존이 항상 강제되어 암담과 생기 사이를 왕래해왔다. 여기 터 잡을 때 이런 저련 사념 묻혀 보려 했다.
비내골의 토굴 미련 / 합평
1) 산기슭에 접해 만든 허접한 토굴에 불편할 정도로 습기가 많이 찼다. 땅속에서 얻고 싶은 지기地氣보다 수기水氣가 더 빨리 모였다. 땅기운 받아 보려고 만든 토굴이 산기슭에서 스며드는 수기를 이기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바닥에 펴 둔 대자리와 벽 모서리에 검은 띠처럼 곰팡이가 다 차지하고 있다. 며칠간 비가 내린 영향도 있지만, 평시에도 습기가 많이 찬다.
2) 아궁이 안에 물이 고여 있다. 삽으로 바닥 흙과 같이 물을 걷어낸다. 그래도 바닥에는 물기가 있다. 토골 옆 공터에 땔감으로 모아둔 장작을 가지고 오고 주변에 있는 낙엽 모아서 쏘시개용으로 가져온다. 아궁이 안에 장작으로 먼저 불이 잘 붙게 시옷자 형태로 약간의 틈을 주면서 쌓았다. 낙엽을 그 밑에 넣는다. 일회용 라이터로 휴대용 토치램프에 불을 댕겨 낙엽에 불을 붙인다. 낙엽만 후루룩 타 버린다. 연기만 자욱하다. 아궁이 안의 습기가 더 세다. 다른 때 같으면 바로 장작에 불이 붙곤 했는데 쉽게 생각한 것 같다. 눈물도 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눈물 닦는다.
3) 가는 나뭇가지를 주워 와서 앞에 모으고 그 밑에 낙엽 한 주먹 다시 넣고 불을 붙인다. 가지에 불이 붙으니 장작도 몸을 내어 준다. 하지만 아궁이와 구들 안에 찬 습기로 인해 연기가 굴뚝이 아닌 앞으로 다 나온다. 사용하던 풍로를 이용하여 강제로 바람을 불어넣는다. 그때야 항복하듯 구들 안으로 들어간다. 굴뚝을 붙잡은 하얀 연기는 저기압 영향으로 처마 밑을 돌아 벽을 타고 땅으로 깔리면서 살살 긴다. 몽글몽글 다니며 잘 논다. 내 영토를 쉽게 차지하는 행위에 샘이 난다. 달려들어 풀어헤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지만 참았다. 연기는 토굴 주위를 완전히 휘감고 밭으로 산 위로 간다. 한 갈래는 바로 옆의 참나무를 덮친다. 나처럼 눈물 나서 어지러웠나? 몽둥이 맞은 듯 잎사귀 가늘게 떨더니 한순간 멍하게 보인다. 그렇게 혼을 빼놓고 나무 꼭지 밟고 하늘로 간다.
4) 다툼이 싫고 경쟁하는 것이 싫다.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군림이 싫다. 너나 나나 부담 없는 인생살이였음 해본다. 작은 가짐으로 적게라도 서로 편하게 할 수 있는 생활을 그려 본다. 나의 태성이다. 직업군인 때다. 진급을 위해서 친구건 동기건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생존 경쟁을 십 수 연간 직접 했다. 권력에 아부와 줄 서기, 상대를 밟으면서 하는 선택은 선의의 경쟁보다는 악만 남는 이기심만 있었다. 싫었다. 아귀다툼하는 넝쿨을 자르고 싶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삶의 부유를 위해서, 권위를 위해서 전쟁터 같은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런 경쟁이 싫다. 맡은 업무만 고집스럽게 수행했다. 그러면서 직장을 때려치운다고 수없이 말했다. 먹고살기 위한 거라지만 생존이라는 수단에서 인간성 매몰이 싫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금이 있다. 가장의 무게로 책임이라는 짐이 무겁게 달려 있다. 지금은 내 가게로 큰 욕심 없이 해보려 한다.
5) 아궁이에 연기는 나지 않는다. 뜨거운 열기만 나온다. 그 앞에서 한동안 앉아서 지켜본다. 혹, 불이 요동하여 허술한 주변과 토굴에 옮겨 붙어 불이 날까 불 지기를 했다. 실은 그것보다는 아궁이에서 구들로 들어가는 불길을 보고 있었다. 시원하게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방바닥의 열기를 상상했다. 방의 열기를 어느 정도 만들까? 땀을 낼 정도로 계속 지필까? 불구덩이에 장작을 보충한 후 구들 안으로 더 밀어 넣는다.
6) 생강차 한 잔 마신다. 입안으로 들어가니 따뜻하고 시원하다. 생강 맛이 입 안 가득 채워진다. 볼 살 아우성이다. 후룩후룩 입안을 돌려 보다가 목 안으로 내려 보낸다. 아마 생강 열기 덕이리라. 채움이 되었는지 기운이 오른다. 입김이 풍로인가 보다. 긴 숨 들이켠다. 입안이 칼칼해지고 심장은 쿵덕 거린다. 생강차 한 잔으로 내 몸에 지핀 군불이다. 마음도 따뜻해진다.
7) 초가집 부엌 안에 청솔이 쌓여 있다. 아궁이에 가득 넣고, 그 밑에 불쏘시개로 마른 솔가지 넣는다. 성냥으로 불을 붙인다. 청솔은 생나무라 마른 솔가지만 타고 만다. 바닥에서 마른 솔가지를 긁어모아 보충해 주면서 입으로 계속 후후 분다. 한참 동안 씨름을 한다. 눈물 콧물 십전짜리 문자가 튀어나온다. 안달은 나고, 부지깽이 질은 잦아지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청솔도 지쳤는지 불이 붙었다. 무쇠 솥 안에는 대수구리에 담긴 식은 밥을 올려놓았다. 불을 지피면서 저녁 식사 준비도 같이했다. 품앗이 나가신 엄니는 해가 지는 데도 오시지 않았다. 밥을 데워 놓고 방을 따뜻하게 해 두면 엄니께서 좋아하지 않으실까 하며 불을 지핀 것이다. 코 흘리게 시절 어린 마음으로 한 군불 넣기다. 엄니 기다리면서 방이 따뜻해졌나 잠시 누웠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8) 토굴에서 밤을 지내본 적은 없다. 낮일만하고 집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음주한 후에 잠시 쉴 겸 땀도 낼 겸 두어 번 찜질방으로 이용한 적은 있었다. 방 활용은 하지 않은 편이다. 군불 넣는 의미가 모호하다. 약초 물을 만들고 고사리 대치고 가끔은 백숙도 만들어 먹는다. 용도가 그렇게 바뀌었다. 구들 습기 제거 목적이 아니다. 군불 지피기가 아니다. 당연히 토굴 찜질 맛과 산골 운치 맛보기가 없다. 산속 생활보다는 텃밭 소일 부분으로 변한 것이다.
9) 처음 토굴 지을 때는 집으로 사용해보자는 웅심으로 시작했다. 먹고살기 위해 아파트로 가려는 심보가 초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산심 받아 보자는 마음이 무뎌 간다. 아쉬움이 진하다. 비 내 골에서 생활은 언제부터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나이에 아직도 때 거리 걱정이 먼저이니 마음 다잡기가 쉽지 않다. 아궁이에 불 넣는 일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 내 삶에서 따뜻한 군불을 지피면서 자연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17. 9. 24.
비 내 골의 토굴 미련 / 초고
산기슭에 접해 만든 허접한 토굴에 불편할 정도로 습기가 많이 찼다. 땅속에서 얻고 싶은 지기地氣보다 수기水氣가 더 빨리 모였다. 땅기운 받아 보려고 만든 토굴이 산기슭에서 스며드는 수기를 이기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바닥에 펴 둔 대자리와 벽 모서리에 검은 띠처럼 곰팡이 차지다. 며칠간 비가 내린 영향도 있지만, 평시에도 습기가 많이 찬다.
아궁이 안에 물이 고여 있다. 삽으로 바닥 흙과 같이 물을 걷어냈다. 물기는 남아 있다. 토골 옆 공터에 땔감으로 장작을 한 아름 안고 왔다. 군불을 넣기 위해서다. 불쏘시개용으로 주변에 있는 낙엽 모았다. 아궁이 안에다 장작으로 시옷자 형태로 약간의 틈을 주면서 쌓았다. 낙엽을 그 밑에 넣는다. 일회용 라이터로 휴대용 토치램프에 불을 붙여 낙엽에 불을 붙인다. 후루룩 타 버린다. 연기만 자욱하다. 아궁이 안의 습기가 힘이 더 세다. 다른 때 같으면 바로 불이 붙곤 했는데 앙탈을 부린다. 눈물도 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눈물부터 닦았다.
가는 나뭇가지를 주워 왔다. 장작 밑에다 모으고 낙엽 한 주먹을 다시 넣고 불을 붙였다. 잔가지에 불이 붙으니 장작도 몸을 내어 준다. 아궁이와 구들 안에 찬 습기로 인해 연기가 굴뚝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 나온다. 평소에도 사용하던 풍로를 이용하여 강제로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때야 항복하듯 구들 안으로 딸려간다. 굴뚝을 붙잡은 하얀 연기는 저기압 영향으로 처마 밑을 돌아 벽을 타고 땅으로 깔리면서 살살 긴다. 몽글몽글 요리조리 잘 다닌다. 내 영토에서 자유롭게 영역을 차지하는 행위에 샘 통이 난다. 달려들어 풀어헤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지만 참았다. 연기는 토굴 주위를 완전히 휘감고 밭으로 산 위로 간다. 한 갈래는 바로 옆 참나무를 덮친다. 나처럼 눈물 나서 어지러웠나? 몽둥이 어지러운 듯 잎사귀 가늘게 떨더니 한순간 멍하게 보인다. 그렇게 혼을 빼놓고 나무 꼭지 밟고 하늘로 간다.
다툼이 싫고 경쟁하는 것이 싫다.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군림이 싫다. 너나 나나 부담 없는 인생살이였음 해본다. 작은 가짐으로 적게라도 서로 편하게 할 수 있는 생활을 그려 본다. 나의 태성이다. 직업군인 때다. 진급을 위해서 친구건 동기건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생존 경쟁을 십 수 연간 직접 했다. 권력에의 아부와 줄 서기, 상대를 이겨야 하는 선택은 선의의 경쟁보다는 악만 남는 이기심만 있다. 싫었다. 아귀다툼하는 넝쿨을 자르고 싶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삶의 부유를 위해서, 권위를 위해서 전쟁터 같은 생활은 계속되었다. 경쟁이 싫다. 맡은 업무만 고집스럽게 수행했다. 직장을 때려치운다고 수없이 말한다. 먹고살기 위한 거라지만 인간성 매몰이 싫다. 가족이라는 금이 있다. 가장의 무게로 책임이라는 짐이 무겁게 달려 있다. 가게를 큰 욕심 없이 해보려 한다. 경쟁 없이 만들어지는 게 없다. 안타까움이다.
아궁이에 연기는 나지 않는다. 뜨거운 열기만 나온다. 한동안 앉아서 지켜보았다. 불이 허술한 토굴 주변에 옮겨 붙을까 지킴이를 한다. 그것보다는 아궁이에서 구들로 들어가는 불길을 보고 있었다. 시원하게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방바닥의 열기를 상상한다. 방의 열기를 어느 정도 만들까? 땀을 낼 정도로 계속 지필까? 불구덩이에 장작을 더 보충한 후 구들 안으로 더 밀어 넣었다.
생강차 한 잔 마신다. 입안으로 들어가니 따뜻하고 시원하다. 생강 맛이 입 안 가득 채워진다. 볼 살 아우성이다. 후룩후룩 입안을 돌려 보다가 목 안으로 내려 보냈다. 생강 열기 덕이리라. 채움이 되었는지 기운이 오른다. 입김이 풍로인가 보다. 긴 숨 들이켠다. 입안이 칼칼해지고 심장은 쿵덕 거린다. 생강차 한 잔으로 내 몸에 지핀 군불이다. 마음도 따뜻해진다.
초가집 부엌 안에 청솔이 쌓여 있다. 아궁이에 가득 넣고, 그 밑에 불쏘시개로 마른 솔가지 넣는다. 성냥으로 불을 붙인다. 청솔은 생나무라 마른 솔가지만 타고 만다. 바닥에서 마른 솔가지를 긁어모아 보충해 주면서 입으로 계속 후후 분다. 한참 동안 씨름을 한다. 눈물 콧물 십전짜리 문자가 튀어나온다. 안달은 나고, 부지깽이 질은 잦아지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청솔도 지쳤는지 불이 붙었다. 무쇠 솥 안에는 대수구리에 담긴 식은 밥을 올려놓았다. 불을 지피면서 저녁 식사 준비도 같이했다. 품앗이 나가신 엄니는 해가 지는 데도 오시지 않았다. 밥을 데워 놓고 방을 따뜻하게 해 두면 엄니께서 좋아하지 않으실까 하며 불을 지핀 것이다. 코 흘리게 시절 어린 마음으로 한 군불 넣기다. 엄니 기다리면서 방이 따뜻해졌나 잠시 누웠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토굴에서 밤을 지내본 적은 없다. 낮일만하고 집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음주한 후에 잠시 쉴 겸 땀도 낼 겸 두어 번 찜질방으로 이용한 적은 있었다. 방 활용은 하지 않은 편이다. 군불 넣는 의미가 모호하다. 약초 물을 만들고 고사리 대치고 가끔은 백숙도 만들어 먹는다. 용도가 그렇게 바뀌었다. 구들 습기 제거 목적이 아니다. 군불 지피기가 아니다. 당연히 토굴 찜질 맛과 산골 운치 맛보기가 없다. 산속 생활보다는 텃밭 소일 부분으로 변한 것이다.
처음 토굴 지을 때는 집으로 사용해보자는 웅심으로 시작했다. 먹고살기 위해 아파트로 가려는 심보가 초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산심 받아 보자는 마음이 무뎌 간다. 아쉬움이 진하다. 비 내 골에서 생활은 언제부터 할 수 있을까? 지금도 이 나이에 때 거리 걱정이 먼저이니 마음 다잡기가 쉽지 않다. 아궁이에 불 넣는 일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 내 삶에서 따뜻한 군불을 지피면서 자연인이 되고 싶다.
2017.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