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
2) 호라오(속사람의 눈)와 에이도(자기 믿음의 눈)의 눈
3)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운데 서서가 아니라, ‘내면 안으로 들어오셔서’다.
나. 본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마키리오스, 복들이 있다) 하시니라(요 20:27~29). 원문과 비교하여 번역이 안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들이 있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마키리오스, 복들이 있다) 하시니라(요 20:29).
‘레게이 아우토 호 예수스 호티 헤오라키스 메, 도마, 패피스튜카스 마카리오 이 호이 메-이돈테스 카이 피스튜산테스’
바른 번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되 도마야 나를 ‘호라오(보다)’하고 믿는구나, 나를 ‘에이돈(보다)’ 아니하고 믿는 자들은 복들(마카티오스)이 있다, 다.
2) 호라오(속사람의 눈)와 에이도(자기 믿음의 눈)의 눈
요 20:29에 ‘보다’라는 단어가 ‘호라오’와 ‘에이도’라는 각기 다른 두 단어가 나오는데
- 호라오 : 보다 - 깨달음의 눈으로(속사람의 눈) 보는 것을 말한다.
- 에이도 : 보다 - 육신(세상)의 눈(자기 믿음)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단어의 뜻이 다른데도 같은 의미로 번역하여 잘못 번역하였다. 이 문장은 의문사가 아니라 감탄문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도마를 칭찬하는 내용이다.
세상의 눈(육체의 눈, 지식의 눈, 경험의 눈, 도덕의 눈, 자기 믿음의 눈)으로, 보지(에이도) 아니한 자는 복들(마카리오스)이 있다 하신다. 이미 도마는 육체의 눈으로 보는 마음을 놓아 버리고 깨달음의 눈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자신 안에서 보고(호라오) 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도 강조하고 있듯이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반드시 육체로 보는(에이도) 눈을 제거하고 깨달음의 눈으로 보고(호라오) 듣고 만져야 하는 체험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두개의 각기 다른 단어를 같은 단어로 잘못 번역함으로써 뜻이 왜곡되었다.
도마는 자신의 깨달음의 손(육체의 손이 아니다)으로 자신의 옆구리(몸 된 성전의 옆구리 : 신체의 옆구리가 아니다)를 만지는(호라오) 것이다. 도마는 자신 안에 나타나신 그리스도 예수(도마)를 속사람의 손과 눈으로 보고 만지고 있는 것이다. 새롭게 태어난(부활, 깨어남) 자기 자신을 만지고 있는 것이다. 비유(파라볼레)로 되어 있다(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예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쏟아졌다. 피와 물은 비유다).
닫혀 있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에고의 벽(마음의 벽, 이 세상의 가치관의 벽)을 허무시고 들어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보고 만지는(호라오) 체험을 하는 장면이다.
3)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운데 서서가 아니라, ‘내면 안으로 들어오셔서’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시고(요 20:26)’
이 문장도 번역이 잘못되었다.
문들로 번역하고 있는 ‘뒤라’는 ‘에고’의 문이다. 가운데로 번역한 문장이 ‘에이스 토 메손’이다. 가운데가 아니라 ‘~속으로 들어오다’다.
도마의 마음 문이 사방으로 닫혔는데 그리스도 예수께서 에고(카르디아 : 마음)를 찢고 마음 안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본(호라오) 것이다. 그동안 도마는 자신의 에고(마음) 안에 갇혀 있었다.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자신 안에서 높은 차원의 세계(누스)를 보게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다 이러한 세계를 누릴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반드시 깨어난 자를 만나야 한다. 파라볼레(비유)로 되어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도마는 주님, 나의 하나님을 외쳤으며, 비로소 나의 몸 된 성전이 내 안에서 세워진 것을 보았다(호라오)고 고백하고 있다. ‘호라오’는 현재상만 드러나 있어서 실제의 예수 차원의 ‘나’이며 ‘호 로고스’가 된 것이다.
도마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살과 뼈로 이루어진 자신을 보고 만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도마에게 세상적인 눈으로, 육체의 눈으로 보지 않고(에이도) ‘호라오(깨달음을 통해서 보는 것임)’로 보는 것을 칭찬하고 계신다.
위의 문장은 마가의 다락방의 사건으로 알려진 내용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가운데(장소) 실제적으로 나타나신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다.
역사적으로 마가의 다락방 사건은 있었지만, 성경 기록은 표면적인 내용이 아니라 영적인 비유로 기록하고 있다. 이래서 속사람의 눈이 열리지(호라오) 않으면 종교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에서 이탈하게 된다.
이는 종교인들로부터 잘못 배워왔기 때문이며, 헬라어나 히브리어를 잘하는 것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직위나 학위와도 아무 관련이 없다. 비교 종교학을 공부했고 철학을 공부했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