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역학은 열의 전달을 설명하는데 왜 질서라는 사회학 용어를 쓸까? 유체를 가리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체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것을 나타내기에 적당한 단어가 없다. 기압이나 수압을 지목하기는 어렵다. 분위기를 일본에서는 공기라고 한다. 이상하다. 분위기를 영어로 번역하기는 어렵다.
사회의 압력은 권력으로 나타난다. 권력을 부족민에게 이해시키기 어렵다. 인권이 왜 존재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천부인권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것과 같다. 자연의 동력과 사회의 권력은 같다. 내부의 질서가 권력이다.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이유는 질서를 붙잡고 있는 권력이 깨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모른다. 변화는 유체다. 강체는 변하지 않는다. 우주는 유체다. 유체가 나란하면 강체로 보인다. 유체를 가두는 닫힌계가 질, 압력이 걸려 나란해지면 입자, 대칭의 축이 발생하면 힘, 축의 이동이 운동, 그것을 인간이 보면 량이다. 내부구조가 깨져서 변화가 일어난다.
열역학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전개하는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보지 않고 드러난 양만 관찰하므로 어렵다. 엔진을 뜯어보지 않고 바퀴만으로 자동차를 설명하면 어렵다. 반대편 활은 보지 않고 과녁에 박힌 화살만으로 변화를 설명하므로 헷갈린다. 하부구조가 복잡할 뿐 상부구조는 단순하다.
우주의 모든 변화는 위치의 이동이다. 위치는 밸런스다. 위치에너지는 밸런스의 복원력이다. 모든 변화는 밸런스의 붕괴다. 존재는 곧 밸런스다. 밸런스가 붕괴하면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엔트로피를 이해하면 구조론이 쉽다. 에너지는 안en에서 일ergy하는 것이다. 안에서 간섭하는 방식이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