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게는 ‘카르디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비유하고 있다.
2) 근본인 하나님을 창 1:1에는 ‘베레쉬트’, 요 1:1에는 ‘엔 아르케’로 나타내고 있다.
3)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 안까지 영향을 미치는 휘장은 반드시 찢어버려야 한다.
4)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그 말씀을 깨달으면서 일어나는 미가엘과의 전쟁이 일어난다.
5) 참 지혜가 임하면 마음(카르디아)과 마음 너머에 있는 누스를 구별하여 발견하게 된다.
6) 휘알레(대접, 컵)를 가지고 있는 천사(앙겔로스)를 자신 안에서 발견하는 선 조건이다.
나. 개요
1) 게는 ‘카르디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비유하고 있다.
‘게’는 ‘땅, 밭’으로 번역한 단어다. ‘땅’으로 번역한 ‘게’는 ‘카르디아(마음)’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다. 사람이 밟고 다니는 soil(흙), ground(지면이나 토양)가 아니다. ‘카르디아(마음)’ 너머에 하나님의 몸 된 성전이 있는 누스가 있다.
카르디아와 누스는 모두 정복하여야 할 휘장으로 등장한다. 하나님의 성전은 성전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나뉜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마지막 찢어야 할 휘장이 있다. 휘장 너머의 지성소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비유다.
2) 근본 하나님은 창 1:1에는 ‘베레쉬트’, 요 1:1에는 ‘엔 아르케’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지성소는 누스를 넘어서 있다. 지성소 안에 계시는 근본인 하나님을 창 1:1에는 ‘베레쉬트’로 설명하고 있으며, 요 1:1에는 ‘엔 아르케’로 나타내고 있다.
창 1:1부터 ‘카르디아’와 ‘누스’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의 그 마음의 하늘들과 그 마음의 땅의 그 실상을 알고 정복하는 내용을 말씀하고 있다. 이 마음 안에 큰 물고기 곧 뱀이 살고 있다.
3)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 안까지 영향을 미치는 휘장은 반드시 찢어버려야 한다.
뱀은 누스 안에서까지 영향을 미친다. 골방 문을 열어두면 성소 안에 있는 골방 안까지 침투하게 된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 안까지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휘장을 반드시 찢어버려야 한다. 이 뱀은 마음이 있는 곳은 끊임없이 들어오려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방 문을 닫고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계 12:1~2).”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욤으로 더불어 싸울 새 용과 그의 사자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쫒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게)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 12:7~9).”
4)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그 말씀을 깨달으면서 일어나는 미가엘과의 전쟁이 일어난다.
마음의 실체를 알게 되는 내용으로서 마음의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미가엘과 전쟁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그 말씀을 깨달으면서 일어나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마음 안에 살아왔던 옛 뱀 곧 사단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마음 땅(게)으로 내어 쫓기는 내용이다.
마음 땅(게)으로 떨어진 뱀의 머리를 아기를 않고 있는 여자가 발로 밟게 된다. 그러나 옛 뱀이 여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사건이 이어져 나온다. 아직도 옛 뱀이 온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 사건은 카르디아를 넘어 누스 안에서 일어나는 내용이다. 카르디아 마음을 정복하고 연이어 누스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누스 안으로 들어가야 알 수 있는 실제 내용으로서 이론이 아니다.
5) 참 지혜가 임하면 마음(카르디아)과 마음 너머에 있는 누스는 구별하여 발견하게 된다.
자신 안에서 마음(카르디아) 너머에 있는 누스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부분 자신 안에 있는 누스를 보기도 어려워한다. 계속해서 자세히 마음을 들여다보다가 참 지혜가 임하면 누스를 발견하게 되는데 마음(카르디아)과 마음 너머에 있는 누스는 완전히 구별되어 떨어져 있다.
누스를 발견한다고 누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시록에서는 천사가 일곱 대접을 가지고 와서 심판하는 내용이 나온다. 첫 번째 대접 심판이 일어나야 비로소 누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계 16:2). 그러므로 누스 안으로 들어가기가 그만큼 어렵다.
이 시대에 누스 안으로 들어가 있는 자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대접 심판의 내용은 어렵고도 어려운 내용이다. 체험하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내용이다. 문자로는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6) 휘알레(대접, 컵)를 가지고 있는 천사(앙겔로스)를 자신 안에서 발견하는 선 조건이다.
자신 안에서 이 대접(휘알레)을 가지고 있는 천사(앙겔로스)가 보이는가? 휘알레(대접, 컵)를 가지고 있는 천사(앙겔로스)를 자신 안에서 반드시 보아야 하는 선 조건이다.
거룩하게 행동한다고 누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래서 종교행위가 문제가 된다. 종교행위들은 거룩하게 보이지만, 내면에서 천사(앙겔로스)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만약 천사(앙겔로스)를 만나 누스 안에 이르게 되면 마음(카르디아)이 떨어져 보이게 되는 것이다. 몸과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나의 실체가 아닌 것이 드러난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