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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시적 담론과 독백의 차이
[한맥문학]
세월과 인생 그 성찰의 시법
유월인데도 한여름 날씨처럼 덥다. 이상 기온이라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거기에다 중국에서 밀려오는 황사 주의보가 연일 방송되고 있어서 바깥 출입에 마음을 많이 쓰이게 한다. 이러한 위협적인 요소에 대한 위기의식은 우리 문학에서도 다양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문학의 주제는 대체로 인본주의(humanism)에서 존재문제에 대하여 상상을 통한 문학적인 대상을 탐구하는 일에 몰두했으나 지금은 공해나 오염 등으로 자연이 파괴되는 현상을 중시하면서 그 현장에서 문학적 향기를 흡인(吸引)하는 경향을 많이 접할 수 있게 한다. 자연의 파괴는 곧 인간의 파괴를 의미하기 때문에 심각성은 가중된다. 몇 수년 후에는 지구가 멸망한다느니 인간의 존재기 소멸한다는 상상의 여념이 문학의 소재나 주제로 등장하는 현실은 바로 공상과학소설에서 이미 실증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호 <<맥문학>>에서는 이러한 시사성이 내재된 작품을 대할 수가 있는데 사회성이 적시하는 시인들의 심저(心底)에는 이미 우리 인간과 지구의 대칭적인 존재의 의미를 심도 있게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금세기 말 한반도 소나무들은 / 열파에 밀려 일부 백두대간 / 고산지대로 쫓겨나고 / 거의 숲은 아열대 활엽수림으로 / 신토불이가 아닌 / 이국 풍경이 된다니 / 생물과 더불어 살아온 우리는 / 변화무쌍 이상 기후에 취약한 / 특정 생물종을 보존할 수 있도록 / 환란에 대비할 수 있을까 / 지역별 생태계 보호는 / 빛 좋은 말보다 / 말없는 실행으로
--李 乙의 「이상기후 속에서」 전문
보라. 李 乙은 ‘노느매기-환경오염은 떼죽음의 지름길’이라는 제하(題下)에 환경에 관한 작품을 21회째 연재하고 있다. 이번에도 「화전 농법」「기계화된 농업」「비료의 악역」「내성이 생긴」등 5편의 환경시를 발표하여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는 ‘-환경부의 정책 중 하나가 ‘녹색생활실천운동’이다. 즉 ①이상화탄소가 줄이기 ②그린 스타트 운동 ③탄소포이즌 제도 ④탄소 성적 지표제도. 이 운동에 모든 국민이 도참하면 변화 속도를 다소 진정시킬 수가 있지 않을까-’라는 주(註)를 붙여서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요즘 날씨의 변덕과 흡사한 ‘이상 기후’에 따른 ‘생태계’에 대한 우려와 경고성으로 시법을 풀어나가고 있다.
시적 화자가 언급했듯이 온화한 온대기후에서 아열대로 바뀌는 이상 기후의 탓으로 ‘한반도 소나무들’이 ‘열파에 밀려 일부 백두대간 / 고산지대로 쫓겨나고 / 거의 숲은 아열대 활엽수림으로 / 신토불이가 아닌 / 이국 풍경’으로 변하고 있음을 ‘환란에 대비할 수 있을까’라는 어조로 위기의식에의 탈피를 걱정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월호에서도 「황사바람」「지구 종말의 메시지」등의 작품을 발표하여 우리 지구의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계속해서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적외선을 흡수하는 온실 가스 덕분에 / 지구는 생명체가 살기에 걸맞은 / 체온으로 가슴을 데운다’는 어조로 환경파괴의 경악(驚愕)을 연작으로 전해주고 있다.
금수강산이 병들어 신음하고 있다 / 신문명 잘못된 정보와 과학의 산물에서 / 쏟아져 넘치는 산업용 쓰레기와 / 각종 독성에 찌든 오염물질들 때문에 /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 만물 쓰레기 공화국으로 추락하고 있다 / 골목에 버려진 양심 쓰레기 / 맑은 샘물이 흐르는 정결한 산속에다가 / 정체불명의 쓰레기들을 몰래 갖다 버리고 / 청정한 바다에다가 / 각종 어업 쓰레기 어구들을 버리고 / 들판에는 폐비닐과 / 농약 용기들을 주저없이 버리고 있다
--장영준의 「쓰레기 공화국」중에서
여기 장영준도 동일한 사회성이 충일된 시사적인 문제를 발현하고 있다. 우리의 금수강산이 어쩌다가 ‘쏟아져 넘치는 산업용 쓰레기와 / 각종 독성에 찌든 오염물질들’로 ‘만물 쓰레기 공화국으로 추락하고’ 말았는지 위기는 고조돠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오염의 원천에는 일반적인 ‘쓰레기’뿐만 아니다. ‘어업 쓰레기’, ‘폐비닐’, ‘농약 용기’ 등 우리 생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독성의 오염물질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지구와 인간을 동시에 몸살을 앓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그뿐이랴 / 각종 범죄로 얼룩진 인간 쓰레기들과 / 올바른 인간이기를 져버린 / 악독한 각종 범죄형 인간 쓰레기들이 / 이 나라를 오염으로 얼룩지게 하고 있다 / 국토는 대 청결 순화운동으로 / 깨끗하게 복원하면 되겠지만 / 인간 쓰레기들은 / 어디다가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라는 결론으로 ‘인간 쓰레기들’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로 인간의 청결 순화나 복원에 대한 방법론을 의문으로 한탄하고 있다.
이처럼 시의 사회상은 어쩔 수 없이 고립 상태의 인간이 교감하면서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병폐적인 현상으로써 이는 물질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어리석은 인간들은 편리하고 안온한 생활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당면한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문학의 사회성은 우리 문학이 복잡하고 다양해진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휴머니즘에서 발현하는 정신세계가 현실성과 상충하면서 갈등이 발생하는데 이를 문학으로 완화하거나 해소하는 완충작용의 해법이 더욱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래층 / 파묻혀 / 얼굴 잃은 지난 세월 / 연륜의 무게에 짓눌려 / 화석(化石)되어 가는데 / 흑백 사진 속 골방 / 갈라진 창틈으로 / 낯익은 목소리 찾아드니 / 끊어진 필름 이어지고 / 먼지 쌓인 지난 날 / 기지개 켜네 / 타임머신 타고 / 돌아간 까까머리 시절 / 벌거숭이로 다가서니 / 마주보는 눈언저리 / 회상의 물결 넘실댄다.
--박선하의 「해후」 전문
그러나 환경오염과 자연 훼손의 현실적인 책임은 모두 우리 인간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 그래도 우리 시인들은 이를 함께 타개하기 위한 방안의 모색을 작품에서 투영하는 시정신은 가장 위대한 것이다. 프랑스의 시인 볼테르가 말했듯이 시는 보다 더욱 위대하고 다감한 영혼들의 음악이라고 했듯이 우리 시인들의 계도 정신은 위대한 영혼의 탐색에서 어조를 높이고 있다.
박선하는 ‘해후’를 통해서 인생의 성찰법을 교감하고 있다. 지구와 인간이 위기에 처할수록 인간 정서는 순화해야 하고 정화해야 하는 역할이 시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매슈 아놀드는 ‘시는 본질적으로 인생의 비평이다’라는 말과 같이 시의 위의(威儀)는 인생비평과 동시에 사회성을 내포하고 있게 된다. 박선하는 ‘회상의 물결’을 통해서 ‘연륜의 무게’를 교감하는 세월(시간)로 성찰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화석’과 ‘흑백사진’과 ‘까까머리 시절’ 등의 세월이 던지는 이미지는 바로 인생의 성찰이 현실과의 화해를 지향하는 순정적 어조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썰물 / 모래톱 움켜쥔들 잡을 바 없다 / 뒤돌아서자 귓전을 감도는 밀물소리 / 백사장에 남긴 네 발자국, / 어쩌자고 지워질 눈물방울들 / 처진 어깨를 펴고 / 푹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 저기 저 푸른 산 짊어지라 / 결코 엎어짐 없이 쏴아 밀려오는 / 고향 바다 파도소리.
--김학철의 「나와 함께 듣는 시간」 전문
김학철의 시간(세월)은 잔잔한 서정적인 ‘뒤돌아서자 귓전을 감도는 밀물소리’이며 ‘쏴아 밀려오는 고향 바다 파도소리.’이다. 이는 그가 회상하고 반추(反芻)하는 체험의 현장에는 아쉬움만 남아 있지만 ‘처진 어깨를 펴고 푹 파묻었던 고개를 들어 / 저기 저 푸른 산 짊어지라’는 당부의 어조로 절망과 실의(失意)를 해소하고 있다.
하도 그리워 / 너무 그리워 / 보고픈 이 마음 주체를 못하고 / 별꽃 바람 스쳐 이는 겨울밤 / 잔뜩 그리운 마음에 창문을 열고 허공을 본다 / 시리도록 아픔 가슴엔 /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 허기진 그리움되어 / 또다시 두 볼을 적시면 / 허공을 맴돌던 바람이 / 내 허리춤을 파고들어 간지러움을 피우다 / 삭풍의 연가에 맞춰 / 별꽃 사랑을 어둠 속에 뿌리고 /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김동설의 「별꽃 사랑」 전문
이러한 절망도 결국 그리움이라는 심리적인 동요로 변환하게 되는 데 김동설은 ‘별꽃 사랑’을 통해서 ‘보고픈 이 마음 주체를 못하’는 그리움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뜨거운 눈물’과 ‘허기진 그리움’이 서로 대칭을 이루면서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가는 사랑의 애환이 세월 속에 묻혀지고 있다. 이밖에도 세월과 연관된 작품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데 ‘바람아 미친 바람아 널빤지 깔고 앉아 / 술 한 잔에 주고받는 정, 세월이 간다고 어찌 잊을쏘나(한재관의 「바람아 미친 바람아」중에서)’라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흐르는 ‘인생’을 성찰하고 있다.
강봉중도 ‘구름은 하늘에서 흐르고 / 새는 좀 낮은 하늘에서 흐르며 / 강물은 강에서 흐르고 / 사람은 시간에서 흐른다 // 구름이 흐르기를 거부하면(「그저 흐르자」전문)’에서 적시하는 시간과 흐름의 대칭적 어조는 시간과 우리 인생의 존재에서 탐색하는 진실의 함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유월은 호국의 달이다. 한때는 호국에 대한 목적시들이 잡지마다 특집으로 게재되어 쓰라린 동족상쟁의 비극을 재생하는 시들이 많았는데 ‘철모 위에 빛바랜 햇살은 / 숲에 가려진 산장의 창살에 / 전우의 통일의 꿈을 밝히며(박종문의「전우의 녹슨 철모」중에서)’가 보일 뿐이다.(『ᄒᆞᆫ맥문학』 2017. 7.)
삶의 궤적에서 재생하는 ‘세월의 과제’
지난달 어느 날 조선일보 사회면에는 ‘브라자 . 맑스....지하철 詩가 덜컹거린다-공공장소 안 어울리는 작품 많아’라는 제하의 기사가 크게 보도되어 우리 시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경악을 금치못했다고 한다. 서울 시내의 지하철을 타려면 스크린 도어에 게시된 시를 자주 읽게 되는데 좋은 공감의 작품도 많다. 그러나 이 보도는 눈살을 찌푸리는 작품도 많이 있다고 한다.
현재 서울의 지하철 1~9호선과 분당선 299개 역 4,840개의 스크린 도어에 2,059편의 시가 게시되어 있다. 필자의 작품도 어느 역 어디에 게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는 전화를 받았으나 확인해 보지는 못했으나 필자가 아는 시인이나 제자들의 시도 간혹 볼 수 있어서 시를 알리고 정서의 순화에도 많은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한 바가 있다. 이렇게 게시된 작품은 75%가 문인단체 소속 시인들의 것이고 25%는 시민 공모작이다. 문인단체 시인들의 시는 각 단체가 작품을 제출하면 심사위원이 선정하게 되는데 심사위원 절반 이상이 그 단체 소속의 관계자들이어서 선정의 공정성 논란이 있었던 일도 있었다. 작품성이나 내용을 둘러싼 문제도 불거졌다고 한다. 폭력과 선정성이 너무 지나치거나 계층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표현 등이 많이 지적이 되어서 공공장소에 게시하기에는 부적절 하다는 보도였다.
그 보도에 제시한 작품을 보면 ‘앞집 남자의 사글세방에서 울리는 여자의 교성에 맥을 못쓰는 천정 / 밤길을 달리는 여자의 외마디 소리는 나몰라 어떡해(중략) / 남녀의 교합 소리는 알만도 한데(「삼류인생」중에서)’와 같이 선정적이고 또한 ‘‘맑’스는 맑음의 덩어리 / 혹은 당원을 친 이념의 빵(중략) / 반박이 불가능한 이 빵에 / 입을 대는 순간 / 포도주보다 붉은 혁명의 밤이 촛불처럼 타오른다(「‘맑’스」중에서)’와 같이 이념 편향적이며 ‘목련꽃 예쁘단대도 시방 우리 선혜 앞가슴에 벙그는 목련송이만 할까(「목련꽃 브라자」중에서)’와 같이 선정적이며 ‘부자는 가난한 자들의 노동을 파먹고 / 가난한 자는 부자의 동정을 파먹고(「공생」중에서)’라는 계층 갈등을 조장하는 것들이어서 이미 서울시에서 철거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내 몸속에서 은밀하게 자라 / 시간을 갉아 먹는 암세포를 / 고귀한 인연으라 생각해본 적 있는가(중략) / 이것 또한 귀하지 아니한가(「몹쓸 인연에 대하여」중에서)’라는 작품은 암 투병 중인 환자나 유가족이 읽기에 아주 부적절해서 앞으로 철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러한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 지하철 시 선정 기준을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는데 전체의 50%는 시민과 평론가와 독서지도사 등이 추천한 ‘내가 사랑한 시’로 채울 계획이라고 한다. 이 중 일부는 윤동주, 서정주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고 시인들의 작품으로 하며 나머지는 시민공모작으로 하고 문인단체 추천은 폐지한다는 소식이다. 솔직히 말하면 많은 시인들의 작품이 게시되면 시인도 시민도 모두 즐거운 일일 수도 있겠으나 심사위원들의 편향적이나 작품성의 미달로 돌아오는 원망과 실망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어눌한 소식에 비추어 지난 호 『맥문학』에서는 많은 작품이 수록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세월’과 상관한 작품들이 이목(耳目)을 흡인하고 있어서 몇 작품만 골라서 언급하기로 한다
바람에 날고 빗물에 씻겨간 희로애락처럼 / 퍼 담을 수 없는 말과 행동 때문에 / 나의 시간표는 지워져 갔다 / 오늘과 내일 사이 / 자투리에 남은 부스러기 희망을 꿈꾸고 / 용모단정하게 내 인생에 향수를 뿌리고 / 남 보기 좋게 하루를 사는 여유를 갖는다
--유청목의 「세월의 과제」전문
우선 유청목의 ‘세월의 과제’이다. 이 세월의 이미지는 대체로 삶의 궤적(軌跡)에서 재생하는 칠정(七情-희로애락 애오욕)에서 생성하는 인생의 지향점이 곰삭아 있는데서 탐색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도 ‘바람에 날고 빗물에 씻겨간 희로애락’이 시적 상황으로 도입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살아온 과정에서 이미 지워졌거나 지워지려는 궤적을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간표' 에는 과거와 미래가 공종하면서 ‘자투리에 남은 부스러기 희망’과 ‘인생에 향수를 뿌리’면서 살아가는 유유자적의 인생론을 구가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인 안정은 성찰과 인식에서 새로운 희망과 여유를 발견했기에 가능하다. 또한 그는 ‘희로애락’의 정감에서 이미 지워진(아니면 지워지려는) 이유를 ‘퍼 담을 수 없는 말과 행동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심리의 변환은 과거의 삶에서 미흡했거나 과오가 있었거나 등등의 궤적은 그의 자성(自省)을 통해서 인식된 지향점이 바로 ‘세월의 과제’로 남았으나 이제는 모두 수용하고 긍정하고 이해하면서 ‘남 보기 좋게 하루를 사는 여유를 갖’는 삶의 향방(向方)을 적시하고 있다.
티 없는 두 가슴에 / 순정을 걸어놓고 / 눈빛 방울 굴리며 / 사랑을 담은 세월 / 거산을 넘고 넘어 돌아서니 / 아련한 빛과 그림자만 남아 / 스쳐 지난 인연을 / 사모해도 잡히지 않고 / 식은 가슴속에 남은 정 / 빛바랜 눈물로 / 그리움에 돌아서 / 자고나서 다가서니 / 덮을 수 없는 사랑 / 미련을 잊지 못해 / 지난 정에 매달려 애원하며 / 멀어진 마음 가까이 / 인연의 끈을 잡고 사랑하리라.
--박종문의 「덮을 수 없는 사랑」전문
박종문의 세월은 어떠한가. ‘세월=사랑’이라는 그가 설정한 인생의 지표가 등식으로 현현되고 있다. 여기에서도 삶의 궤적에서 인생의 정감들이 다양한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그는 ‘사랑을 담은 세월 / 거산을 넘고 넘어 돌아서니 / 아련한 빛과 그림자만 남아 / 스쳐 지난 인연’들이 이제는 잊지 못하는 ‘덮을 수 없는 사랑’으로 그리움만 남아 있다. 이러한 세월과 인생의 연관은 언제나 ‘남은 정’과 ‘빛바랜 눈물’과 ‘인연의 끈’이 현재의 시간과 대칭을 이루면서 과거가 미래로 지향하는 최고의 정점을 탐색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식은 가슴속에’ 아직도 식지 않고 남아 있는 정이며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산소에 엎디어 / 이끼 낀 산소에 엎디어 / 양손으로 쓰다듬어 봅니다 / 한켠이 세월에 비껴 무너지고 / 제 나이만큼 부석부석한 속살에도 / 제비꽃 한 송이 쪽빛으로 피었습니다 / --중략-- / 솔 숲속은 적막이 흐르고 / 흙냄새 풀냄새 할머니 냄새 / 만장을 따라 올랐던 이 자리엔 / 흙냄새 풀냄새 할머니 냄새 / 할머니? / 거리가 가까워 오는지 냄새도 짙어요
--김승길의 「산소에 엎디어」중에서
김승길의 세월도 ‘세월에 비껴 무너’진 할머니 ‘산소’에서 회상을 통한 인생무상을 재생하는 그의 시법에서는 세월이 남겨준 현재의 과제는 무엇인가를 음미하고 있다. 그가 할머니의 ‘이끼 낀 산소’를 찾아 할머니 생전의 체취를 느끼는 순간에 ‘제비꽃 한 송이 쪽빛으로 피’었다는 자연의 순환과 인생의 감응이 대칭을 이루는 한 폭의 그림이다. 그는 다시 ‘솔 숲속은 적막’에서 ‘흙냄새 풀냄새 할머니 냄새’를 동시에 흡인하면서 ‘만장을 따라 올랐던 이 자리’에 남아있는 궤적의 냄새가 그를 시간적인 아쉬움으로 투영되고 있다.
그 무얼 / 바라만 봤기에 / 아니 늙고 젊은 척 / 흑색으로 덧칠을 하고 / 날카로운 연장으로 깎아내며 / 그 좋은 시절을 허송 세월했던고 / 이제는 / 진실대로 / 순리 그 대로 / 자연 보호 그대로 / 일어나는 모양대로 / 백수 백발 건달 그대로 /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니 / 주어진 자유 평화나 만끽하리라.
--오남식의 「백수건달」중에서
오남식의 세월은 ‘허송 세월’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세월의 대비에서 성찰하는 시법은 누구에게나 회상을 통해서 정감을 교차시키지만, 그는 과거에서 감응한 삶의 허세를 지금이라도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니 / 주어진 자유 평화나 만끽하리라.’는 성찰의 어조로 결론짓고 있다. 결국 그가 살아온 세월에서 지나치게 허세로 점철된 삶의 단면을 자성하고 여생을 진실과 순리와 자연 섭리와 ‘백수 백발 건달 그대로’ 살아가겠다는 아주 평범한 사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꽃이 시듭니다 / 달이, 별이 기웁니다 / 시간은 우주 안에 / 갇힌 삶을 쫓고 있습니다 / 저 언덕에서 / 손을 흔들며 가는 / 그를 보려다가 / 내 심장으로 돌아오는 것은 / 눈물이었습니다.
--오희창의 「눈물 . Ⅱ」전문
오희창의 시간(세월)도 ‘갇힌 삶’과 우주와 연계하면서 깊이 인식하거나 그 인식의 향방이 바로 시적 진실로 이어지는 것은 ‘눈물’이라는 형상화가 공감을 흡인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간은 자연 섭리와 동행하면서 흐르거나 지워지는 순리에서 그 이미지를 탐색하는 경우가 많지만 무형의 시간을 ‘저 언덕에서 / 손을 흔들며 가는 / 그를 보려’ 하지만 결국은 ‘내 심장으로 돌아’온 것은 ‘눈물이었’다는 시간과 현실과의 교감이다.
이 밖에도 세월과 관계되는 작품은 은봉재의「일흔셋 순정」, 윤홍상의「가을 숲길」 그리고 김홍래의 「강 언덕에 서면-어머니」 등에서 세월과 상관하는 어조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ᄒᆞᆫ맥문학』 2017. 6.)
사랑학의 정수(精髓) 그 시법의 진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노천명은 읊었다. 또한 ‘5월! 오월은 푸른 하늘만 우러러 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희망의 계절이다. 오월은 피어나는 장미꽃만 바라보아도 이성이 왈칵 그리워지는 사랑의 계절이다.’라는 정비석의 「청춘산맥」은 지금도 5월이면 아른거린다. 5월은 생동감이 넘친다. 춘삼월 4월까지 피어올린 새싹들이 지금 막 물기를 뿜으며 푸름 속으로 자신을 흡인한다. 꽃들이 머금은 사랑의 열매가 이제 제 모습을 드러내면서 알차게 결실로 나아가는 계절이다.
한국시인협회에서는 임기 2년의 문정희 회장이 물러나고 최동호 회장이 취임하였다. 그는 ‘시가 끝난 시대라고들 하지만 이제야말로 시가 부활하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시는 알파고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이럴수록 인간의 존재 영역을 지키는 것이 시’라는 소신을 밝히면서 ‘문화 융성을 위한 풍요로운 시와 생명 사랑 운동을 펼치겠다’는 선언을 했다.
한국시인협회는 1957년에 창립하여 현존하는 문학단체 중에서는 가장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김춘수 조병화 김남조 홍윤숙 정진규 허영자 이건청 오세영 신달자 김종해 이근배 문정희시인등이 회장을 지냈다. 신임 최동호 회장은 ‘사랑의 시쓰기 운동’,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와 자녀가 서로 시쓰기 운동’, ‘11월 한 달을 시의 달로 운영’, ‘내년 시인 협회 창립 60년을 맞아 세계시인대회와 남북시인대회 개최’, ‘시인협회 회원들의 재능기부를 통한 모교 백일장, 시창작 지도, 시낭송회 개최’ 등을 추진한다는 사업을 내놓아 우리 시단의 기대가 자못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 달 <<맥문학>>에서는 계절답게 사랑에 관한 작품들을 많이 접할 수 있어서 계절적인 이미지들이 많은 시인들에게서 다양하게 창출되고 있었다. 일찍이 하이네가 그의 시 「아름다운 시절 오월에」에서 ‘온갖 싹이 돋아나는 / 아름다운 시절 오월에 / 내 가슴 속에서도 / 사랑은 눈을 떴소 / 온갖 새들이 노래하는 / 사랑하는 시절 오월에 / 사랑을 참다못해 / 임과 함께 하소연했소’라고 사랑을 노래한 것과 같이 생동감의 계절, 청춘의 계절, 사랑의 5월을 읊조리고 있다.
불태운 사랑 때문이리라 / 활활 태워서 재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 쓰일 곳 없는 동강이 가슴에 남아 / 발갛게 이글거리는 슬픔 때문이리라 / 몸이 죽어서도 / 저 하늘에 남아 애태울 / 미련 때문이리라.
--정순영의 「붉은 그리움」전문
우선 정순영은 사랑학에 관한 시적 담론을 적시함으로써 그가 보편적으로 탐구하는 ‘그리움’의 일단이 바로 ‘불태운 사랑’과 ‘발갛게 이글거리는 슬픔’ 이 두 가지의 사유(思惟) 때문이라는 진솔한 시적 원류를 명징하게 밝히고 있다. 이러한 심리적인 분출의 시적 근원은 그가 간직한 내적인 그리움이 승화하는 중요한 기폭제가 되고 있다. 그는 ‘붉은’이라는 형용사를 내세운 ‘그리움’인데 이러한 그리움을 간단하게 흡인하려면 이 ‘붉음’이 대체로 어떤 이미지와 어떤 메시지를 포괄하는지 더 확대된 사유와 탐색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는 뒤이어서 ‘활활 태워서 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염원이 표출되고 ‘저 하늘에 남아 애태울 / 미련 때문이리라.’는 결론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그리움은 사랑을 위한 하나의 단초에 불과한 심적 회상에서 창출된 발상임에 다름아닐 것이다. 한편 함께 발표한「우수 지나서」에서도 ‘세월에 다리를 절며 산책하는 / 백발의 노인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시간적인 이미지가 그리움의 한 단면으로 적시됨으로써 그의 사유에서 불망(不忘)의 궤적(軌跡)들이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 양철 지붕 위를 두드리는 소리 / 마지막 꽃잎 지는 소리 / 별 하나 사선을 그으며 / 하늘 멀리 가는 소리 / 향기는 모두 가슴속 스쳐 / 모두 환생하여 / 아름답게 들려오는 / 사랑하는 그대의 목소리 / 천년까지 여운 남겨 / 영원히 들려줄.
--이효녕의 「그대 목소리」전문
이효녕은 어떠한가. ‘아름답게 들려오는 / 사랑하는 그대의 목소리’라는 청각적인 이미지가 ‘그대’라는 화자를 통해서 사랑학의 원천(源泉)을 적시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소리’라는 청각에 매료(魅了)하고 다양한 정경을 이미지화하여 결론적으로 ‘사랑하는 그대’에게로 집중하는 시법은 그가 여망하거나 기원하는 사랑의 결실이 바로 ‘그대의 목소리’라는 영원한 그리움의 시원으로 표출되고 있다.
바람이 후려치며 지나간다 / 아무도 보이지 않는 저 / 은사시나무 숲에 / 바람은 나에게 / 살얼음마저 내려놓고 / 들어오라 최면을 건다 / 쥐죽은 듯 바람의 꼬리 끝에 / 차가운 눈살 찌뿌리며 / 휘이, 은사시나무 이파리를 건드리고 / 숲속을 빠져나간 / 울음 하나 터트리고 간다.
--정다운의 「은사시나무 숲에」전문
정다운은 먼저 ‘바람은 나에게 / 살얼음마저 내려놓고 / 들어오라 최면을 건다’는 상황이 ‘은사시나무 숲’과의 교감에서 외적인 사물적 시각의 조도(照度)는 내적으로 흡인하는 지적인 관념으로 변형하려는 시법이 ‘울음 하나 터트리고 간다.’는 아쉬움이 결국 그리움으로 형상화하고 사랑이라는 대명제의 탐색을 위한 정황(situation)으로 현현되고 있다.
무너지고 부러진 날들이 / 굽이굽이 나이테를 만들고 / 아름다움 것들 속에는 / 피로 얼룩진 상처가 있다 / 거친 물살에 굴하지 않고 / 이제는 아픔이라 말하지 말자 / 견디고 이겨낸 먼 훗날에 / 나만의 사랑이 될 터이니.
--김오수의 「길고 먼 길」중에서
김오수도 ‘무너지고 부러진 날들’과 ‘피로 얼룩진 상처’ 그리고 ‘거친 물살’ 등의 ‘아픔’들이 ‘견디고 이겨낸 먼 훗날에 / 나만의 사랑이’라는 성취해야 할 명제가 적시되어 있다. ‘나만의 사랑’은 바로 ‘길고 먼 길’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의 인생론과 직결하는 염원이다. 그는 ‘아득히 먼 여행길에서 / 아름다운 시절 돌아본다’거나 ‘’힘겨웠던 날 있어 / 오늘 내 모습을 만‘드는 시적 전개로 그의 삶의 궤적에서 추출한 관념 이미지가 ’사랑‘을 위한 깊은 성찰과 새로운 각오를 천명하는 시법이다.
찢어질 듯 아픈 가슴 / 깊숙이 자리한 사랑 / 얼마나 더 많은 상처가 나야 / 머물 수 있을까 / 그대를 향해 / 열어버린 가슴 / 한 뼘도 안 되는 얼굴 / 볼 수도 없는데 / 푸른 하늘 허공 멀리서 / 맴돌다 / 사라지네
--박일소의 「얼굴」중에서
박일소의 사랑학은 ‘찢어질 듯 아픈 가슴 / 깊숙이 자리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그는 이러한 사랑의 메시지는 ‘그대’라는 화자의 ‘얼굴’에서 탐색하고 있는데 그대와 동행할 수 있는 깊은 사랑은 아마도 ‘얼마나 더 많은 상처가 나야 / 머물 수 있을까’라는 의문형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는 그대와 ‘볼 수도 없는’ 사랑을 위한 교감을 위해서 허공에만 맴돌 뿐 달리 다른 방도를 찾지 못하고 ‘서산이 저녁 놀빛으로 / 붉게 물’드는 시각과 ‘떨어지는 꽃잎’의 시각을 통해서 사유하고 탐구하는 시법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어두움의 정적이 흐르는 / 골목길 입구에선 / 연탄불 연기가 타오르고 /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포장마차에는 / 취한 이들 웅성거리는데 / 날개짓하는 그들의 영혼 속에서 / 희열의 마디마디 아름다움이 배어 있다 /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 와서 / 저들의 순진무구를 / 나는 사랑하고 있다.
--조기옥의 「정적의 시간에」전문
조기옥의 사랑학은 외적인 요인보다는 내적으로 심저(心底)에 녹아있는 지적인 의식을 탐구하는 영혼의 갈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저들의 순진무구를 / 나는 사랑하고 있다.’는 시적 결론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조용한 정적에서 명상으로 대좌하는 지성적인 사유의 행보가 정(靜)과 동(動)의 현실적인 생활상에서 몰입하는 순진성이 포괄하고 있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는 함께 발표한 「바람」에서도 ‘나는 너에게 배시시한 미소로 / 사랑의 나래를 펴야 하는데 / 나는 네 앞에서 미소마저 피울 힘이 없었다.’는 어조로 ‘바람’과의 상관성을 ‘사랑을 속삭이는 아픔’으로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산바람이 오라 하고 / 하늘 구름이 오라 한다 /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 와서 다 내려놓고 잊고 쉬라한다 / 산이 속삭인다 /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고 운의 「산이 오라 한다」중에서
고 운도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 상황에서 사랑을 말하고 있다. 자신을 ‘산이 오라’하고 ‘노래’하면서 우리 인간들의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모두를 내려놓고 편히 쉬라는 어조로 인간들의 사랑을 의문으로 시화(詩化)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시성 타고르가 사랑이란 영혼의 궁극적인 진리라는 명언이 다시 떠오르는 사랑 시편들을 지난 4월호에서는 많이 대할 수가 있었다.(『ᄒᆞᆫ맥문학』 2017. 5.)
세월과 인생 그 성찰의 시법
4월! 이제 완연한 봄의 향훈이 천지를 진동한다. 산과 들에 개나리, 진달래, 아카시아 꽃들이 만발하고 골목에는 목련꽃이 허드러지게 자태를 뽐내고 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이 오는 소리는 / 봄기운에 새싹 돋고 푸른 잎 곱게 키운 / 새 생명의 맥박 따라 들린다 // 봄을 부르는 소리는 / 봄바람에 새움 트고 예쁜 꽃 피운 / 새 생명의 숨결 따라 흐른다.(최규영의 「봄이 오는 소리」중에서)’거나 ‘앙상한 푸른 산천 봄비 맞으며 / 들녘 양지쪽 연두빛 아씨가 / 노랑 저고리 갈아입고 / 한겨울 잠에서 깨어나 / 호숫가 버들개지 기지개 켜니 / 앞산 靑山 소나무에는 / 어느덧 세월의 품에 안겨 / 봄을 재촉하는 대지의 하품 소리에 / 청산은 지난 忍苦의 날 잊은 채 / 촉촉이 내리는 봄비 맞으며 / 오늘도 푸른 초원에 꿈을 키우고 있네.(심상순의 「청산은 가자 봄을 안고」전문)라는 어조와 같이 봄을 맞은 시심詩心들이 이제는 그 형태가 지난 3월보다 더욱 무르익었다.
지난달에는 올해로 타계 71주기를 맞는 윤동주(1917~1945) 시인에 대한 영화와 출판이 열풍을 이루었다는 소식은 반갑다. 영화 [동주]는 관객 20만을 돌파할 것 같고 서울 교보문고에서는 『윤동주 상처입은 혼』『윤동주평전』『윤동주 프로잭트』등등 윤동주에 관한 책들이 시부분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다는 흐뭇한 소식이신문 보도를 통해서 전해지고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의 「서시」는 언제 읽어도 감동이 넘치는 만인의 애송시이다. 양심과 자연과 인도주의적 서정시로서 1945년 2월 16일 29세의 나이로 적지 일본에서 순절한 민족시인의 행적과 문학이 영화로 다시 태어나서 많은 관객의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흔히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로 4월을 경계하고 있다. 이는 영국의 대시인 엘리엇의 작품 『황무지』‘1. 죽은 자의 埋葬’에서 첫 행에 나오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라이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 추억과 욕망을 뒤집고 / 봄비로 활기없는 뿌리를 일깨운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우리들은 정치, 사회, 문화 등에 인용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붙여서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만 각설하고 지난호 『맥문학』에 수록된 작품들을 일별해보면 봄의 계절을 보내면서 이 시간성의 문제에 깊이 몰입하는 경향의 작품들을 간과看過할 수가 없었다. 우선 박종문의 작품「이정표 없는 뒤안길」전문을 읽어보자.
백세시대데 8자를 그려 점치네 / 팔자 좋게 사는 것도 복인데 / 해와 달이 손잡고 만나 / 여덟 팔 자를 만들 때면 / 꽃띠 같은 인생 눈물과 땀으로 / 보람찬 내일의 꿈에 웃고 울었지 / 천하를 호령하며 인고의 긴 세월 / 꽃 한 송이 들고 교차로에서 / 사랑하다 신호등이 꺼져 / 천둥벌거숭이모냥 날뛰다 / 노을진 서산마루에 홀로 / 사방을 둘러봐도 허공의 빈자리 / 이정표 없는 뒤안길에서 / 고칠 수 없는 팔자를 바꾸지 못해 / 가야만 하는 대로의 길섶에서 / 남은 여정에 인생길을 따라 / 초원의 노을 진 석양 언덕을 / 황소를 몰고 고향길 찾아가네.
박종문은 지금 우리가 당면한 100세 인생시대에 살아가면서 ‘이정표 없는 뒤안길에서 / 고칠 수 없는 팔자를 바꾸지 못해 / 가야만 하는 대로의 길섶에서 / 남은 여정에 인생길을’ 약간 염려스러운 어조로 ‘고향길 찾아가’고 있다. 여기에는 ‘인고의 긴 세월’을 통한 삶의 궤적軌跡에서 인생을 성찰하고 있다. 이 성찰까지는 ‘꽃 한 송이 들고 교차로에서 / 사랑하다 신호등이 꺼져’버린 인생의 절정이 위기의식으로 전환되어 이제는 ‘꽃띠 같은 인생 눈물과 땀으로 / 보람찬 내일의 꿈에 웃고 울었지’라는 상상력의 재생으로 그가 결론으로 적시한 주제는 바로 ‘노을진 서산마루에 홀로 / 사방을 둘러봐도 허공의 빈자리’라는 ‘허공’의 의식으로 인생론을 정리하고 있다.
박종문은 함께 연재한 작품 「내 가슴에 하얀 별」에서도 그의 진한 인생론이 현현되고 있는데 ‘너와 내가 쌓아온 정 / 하얀 가슴속에 담아놓고 / 세월의 샛별을 찾아 / 그리움에 여울지며 / 두리둥실 복을 빌고 / 이고지고 사랑하며 살아가리’라는 아주 소박하고 순정적인 삶을 지향하는 염원의 시법을 전개하고 있어서 공감을 흡인吸引하고 있다.
말라 빠져 지친 몸 일어설 수 없어 질질 끌려 / 몸도 못 가누는 불쌍한 사람들 / 살면 살았지 몇 날 며칠인고 / 깡마른 삭신 깨져 부서져도 / 얼어붙은 골짝 돌 구석 걸터앉아 / 바위 꽃 벗 삼아 살리라 / 늙은 낙엽아 지친 세월도 하루인 것을 / 빈 지갑 훌훌 털어 굽이 골짝 / 물소리 바람소리 듣고 살리라 / 갯벌 파 조개 잡고 구멍 파 낙지 잡고 / 서로 나눠 먹는 푸짐한 인심 / 아까워 뒤집을 수 없어 / 눈뜬 새벽 꼴망태 옆에 차고 / 늙은 노인 무얼 찾아 어디로 가노.
--한재관의 「건널목」전문
여기 한재관도 동일한 상념想念의 시법인데 그는 ‘건널목’이라는 사물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인생론을 토로吐露하고 있다. 이 ‘건널목’의 이미지는 다양하게 창출되는데 여기에서는 우리 인간들이 살아온 길목, 그 건널목에서 반드시 건너가야 하는 인생의 통과제의通過祭儀의 행로를 적나라하게 적시하고 있다. 그는 ‘살면 살았지 몇 날 며칠인고 / 깡마른 삭신 깨져 부서져도’라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는 ‘몸도 못 가누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상황이 어쩌면 인생의 지향점이 무엇인가 또는 어디인가를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눈뜬 새벽 꼴망태 옆에 차고 / 늙은 노인 무얼 찾아 어디로 가노.’라는 의문이 상존常存하는 노년의 넋두리가 현현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상황은 그에게서 중대한 결론으로 주제를 착목着目시키고 있는데 그는 ‘얼어붙은 골짝 돌 구석 걸터앉아 / 바위 꽃 벗 삼아 살리라’거나 ‘늙은 낙엽아 지침 세월도 하루인 것을 / 빈 지갑 훌훌 털어 굽이 골짝 / 물소리 바람소리 듣고 살리라’는 의미심장한 어조는 그의 인생관에서 가장 중요한 성찰로 결론된 자연으로 회귀回歸하는 지향점을 세월과 인생을 동시에 탐색하고 있다.
감미롭거나 짜릿하게 / 향기 내는 꽃은 아닐지라도 / 백년이 가도 / 오백이나 천년을 흘러가도 지지 않는 꽃이 있다 / 그 꽃은 / 침묵의 세월을 과묵하게 받아 내며 이겨낸 / 천년 바위 꽃이다 / 바위 꽃은 /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 쑥대머리 빛으로 / 천양泉壤 세상처럼 은은하고 은은하게 / 점점이 찐하게 피워내며 / 인고와 인내로 피안의 /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넘나드는 / 영원한 생명의 꽃이다.
--고 운의「바위 꽃」전문
고 운의 ‘바위 꽃’은 그가 상상의 세계에서 유추하는 사물은 바로 세월과 동행하게 된다. 이러한 시간성의 관류灌流는 우리 인생과 결별할 수 없는 동시성을 갖는데 이는 그의 표현대로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 쑥대머리 빛으로 / 천양泉壤 세상’이라는 상관성을 이해하게 된다. 이 ‘천양泉壤’ 은 그가 작품에 주註를 붙여서 설명했듯이 죽은 사람의 혼령이 머물러 산다는 세상 곧 영혼의 세계를 갈망하는 꽃이 ‘바위 꽃’이다. 그는 이 ‘바위 꽃’은 ‘오백이나 천년을 흘러가도 지지 않’고 ‘침묵의 세월을 과묵하게 받아 내며 이겨낸’ 그런 꽃이다. 그 꽃은 향기가 감미롭지는 않지만 ‘은은하’다는 어조는 우리 인간들의 기원에서 더욱 싱그럽고 청아한 향내를 제공하면서 ‘점점이 찐하게 피워내’는 생명의 꽃이다. 그가 결론으로 제시한 ‘인고와 인내로 피안의 /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넘나드는 / 영원한 생명의 꽃이다.’는 주제가 이승과 저승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특유의 이미지를 현현하면서 시적인 진실을 공감으로 유로하고 있다.
고 운은 ‘이달의 시’로 함께 발표한 작품 「비밀」에서 ‘아픔이나 시련을 겪은 생명일수록 / 사랑을 위하여 / 그 어떤 희생도 감당하며 / 목숨까지도 초개草芥처럼 던질 수 있는 것은 / 오직 사랑뿐이라는 것을 / 아득하게 잊고 살다가 / 새삼 새삼스레 깨닫게 하지’라는 성찰의 어조는 더욱 공감을 확산하는 시법을 읽게 한다. 또한 작품「승리자」에서도 ‘흘러간 세월을 바라본다 / 잘해 보려고 애쓴 발자국과 기억들 / 격동의 모진 세파를 헤치고 / 상처를 숨기며 / 오로지 전진만을 해 온 영광스런 승자 / 알뜰하고 치열하게 자신을 채찍질했던 자존심 / 고난의 행로이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겠다고 / 힘들고 어려울 때마가 / 더 노련해지려고 더 세련되려고 견디어 내려고 몸부림쳤다’는 진솔한 삶의 여정旅情을 분사噴射하고 있어서 그는 세월과 인생의 궤적에서 재생하는 성찰의 시법을 확인하게 한다.
어디서 왔을까 / 어디로 가는 걸까 / 시작도 모르고 끝도 알 수 없는 / 외로운 길 / 찰나의 시간 속에서 /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 속에서 / 희로애락의 수레바퀴를 굴리다 / 홀연히 / 연기처럼 사라지겠지
--황성운의 「삶」중에서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은 ‘찰나의 시간’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결정체이다. 이러한 삶에서 창출하는 이미지들은 ‘희로애락’이라는 정의情誼에서 비롯된다. 그는 ‘홀연히 / 연기처럼 사라지겠지’라는 체념의 어조로 인생을 정리하지만, 이처럼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이정표는 이렇게 시간과 운명의 굴레를 초탈超脫할 수가 없다. 이것이 삶이며 인생이다. 이것을 우리 시인들은 재생하여 탐색하고 성찰하면서 한 편의 작품으로 창조하는 것이다.(『ᄒᆞᆫ맥문학』 2016. 4.)
새 생명의 환희와 ‘나’와의 담론
일찍이 이어령 교수가 그의 저서 『차(茶) 한 잔의 사상(思想)』에서 ‘삼월에는 빛깔이 있다. 프리즘처럼 가지각색 아름다운 광채를 발산하는 빛깔이 있다. 우울한 회색에의 혁명이다. 푸른 색이 있고 붉은 색이 있고 노란 색이 있고.... 산과 들에 크레용으로 낙서해 놓은 것 같은 색채의 향연이다. 오랫동안 감금되어 있던 금제(禁制)의 빛깔들이 크낙한 해일(海溢)처럼 넘쳐 흐른다’라고 3월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다시 3월에는 소리가 있으며 분노까지도 있다고 했다. 얼음 풀리는 소리,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생명의 소리가 있으며 겨우내 참고 견딘 굴종과 인내의 끈을 풀고 생명을 절규하는 분노와 겨울의 폭군을 향해 도전하는 생명의 분노가 온 대지를 적시는 희망찬 계절이다.
영국의 대시인 워즈워스는 그의 시 「3월의 노래」에서 ‘후퇴하는 군대와 같이 / 눈은 물러가 / 산마루에 병들고 / 이랴! 이랴! 밭가는 목동들의 / 말몰이 소리 한가롭다 // 산에는 기쁨이 / 샘에는 생명이 / 비 갠 좋은 날은 / 돛 달고 푸른 하늘을 달리는 / 작은 구름 조각이 씩씩하도다’라고 3월을 예찬하고 있다. 이처럼 3월은 생명이 약동하는 양춘가절(陽春佳節)로 생기 감도는 계절이다. 우리 시인들은 봄을 많이 노래한다. 아마도 봄에 관한 시를 창작해보지 않은 시인은 없으리라.
이월 그믐께 / 태양이 지열과 만나고 있다 / 창문 짙은 어둠 걷히듯 / 겨울을 이겨낸 미물들이 눈뜨고 / 먼 발치에서 / 아직도 녹지 못한 초췌한 너의 모습 / 움츠린 내 마음 자락에 안긴다 / 간간이 귀띔하는 봄내음 / 섭리의 가교를 막 지나가는데 / 내 엷은 기다림 한 올 / 저 대지 위에 차차 번지면 / 어느 공간 문득 흔들리는 훈풍을 따라 / 서툴기만 한 기지개 아아, / 새 생명의 환희, 그 예비된 순수 / 먼 발치, 하얀 네 옷자락에 묻은 사랑 / 지워지는 이월 그믐께 / 그것은 내 가슴 적신 뜨거운 눈물이었다 / 살아 있으므로 더욱 황홀한 / 신비의 울움이었다
이 작품은 졸시 「봄 詩―잔설을 보며」전문이다. ‘봄=생명’이라는 그 예비된 순수의 섭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겨우내 치열했던 인내의 결과물이며 기다림의 성취가 초췌한 몰골과 움추렸던 마음을 훈풍으로 기지개를 켜는 새봄의 희망이 넘치고 있다. 각설하고 지난 2월호 『맥문학』에 수록된 시편들을 일별해 보자.
1.
어제 내린눈에 / 뒷산이 얼었다 / 오늘 푹한 날씨에 맥 하나 없이 허물어져 / 산길에 누워 있는 나뭇잎들 / 한창 나이에는 / 그렇게도 빳빳하고 청청하더니
2.
해는 붉은 빛으로 와서 바람을 도와 / 잎들에게 흙을 닮아라 구슬리다가 / 낮달을 보더니 / 바람에게 맡기고 / 할 일을 찾아가 버렸다 / 바람은 밤새도록 무섭게 닦달질하고 / 끝내 흙빛으로 눕히고 말았다.
--전형진의 「흙으로 가는 길」전문
우선 전형진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겨울을 맞이하면서 흙으로 돌아가려는 나뭇잎들의 행장(行裝)이 진지하게 흐르고 있다. 결국 자신의 할 일을 끝낸 사물이 이제 떠나야 할 곳을 찾아간 상황이 겨울과 봄의 길목에서 적시(摘示)하는 어떤 체념이거나 지향점인 흙을 향하는 정경이 공감을 흡인하고 있다. 그는 ‘낮달’과 ‘바람’이라는 객체를 대입함으로써 ‘한창 나이’라는 시간성을 동시에 투영하는 시법으로 우리 인간들의 연륜(혹은 생애)과 상관하는 생몰(生沒)의 중대한 대사물관을 이해하게 된다.
먼동 틈새에 떨고 있는 넌 / 초연한 빛을 보듬어 주는데 / 떠나가는가 / 스물스믈 사라져 가는가 / 아직은 / 난 / 지워야 할 낙서들이 남았는데 / 노을이 빗물 되어 가랑잎을 적시는데 / 난 젖어드는 것들을 보고만 있는가 / 비어 있는 가슴에 하늘을 물빛으로 칠하리 / 그리고 / 그림자 흔적도 없는 / 여명 틈새에 끼어 신음하는 잔별로 / 흐려져 사라지리.
--조인식의 「잔별」전문
여기 조인식은 ‘난’과 ‘넌’이라는 인칭명사의 화자가 특이하게 ‘잔별’을 통해서 교감하는 담론의 시적 전개는 더욱 친근감을 유발하면서 그 주제를 승화하려는 의도를 짐작하게 한다. 그는 ‘먼동 틈새에 떨고 있는 넌’이라고 ‘잔별=너’라는 의인화로 객관화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잔별’과 ‘나’의 상관 개념은 별은 ‘스물스물 사라져 가’고 (혹은 ‘떠나가고’) 남아 있는 ‘난’(나는)은 아직 할 일이 많이 산재해 있어서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생명의 원류를 이해하게 한다. 이러한 시법은 객관주의적인 입장인데 이는 주관주의에 대치된다. 실재, 가치, 진리, 이법(理法) 등 주관적인 인식 또는 인간적인 실천에 의하지 않아도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나타나는 심리적인 입장이다.
일찍이 독일의 심리학파의 미학자인 립스와 포르케르트 등에 의해서 제창된 미학상의 원리인 감정이입(fintuhlung)과도 상통한다. 인간이 대상에게 자기의 감정을 이입(移入)하고 공감함으로써 미(美)가 성립되고 예술로 승한다는 무의식 중에서 작품이 성립하는 심리적인 요소가 시에 작용하는 것으로써 많은 시인이들이 응용하고 있다.
이렇게 시적 주인공인 화자 ‘나’는 낙서를 지우고 ‘비어 있는 가슴에 하늘을 물빛으로 칠하’고 끝내에는 ‘그림자 흔적도 없는 / 여명 틈새에 끼어 신음하는 잔별로 / 흐려져 사라지리’라는 순수서정의 기원이 결론으로 적시되고 있어서 인간의 비애가 사라지는 별과 같은 운명을 노래하고 있다.
하루를 끝내고 돌아오던 밤이면 / 그 작은 골목 어귀엔 / 나를 기다리며 외롭게 서 있는 / 낡은 가로등이 하나 있었다 / 골목길을 돌아서 오르다보면 / 흐릿한 작은 창문들에선 / 사람 사는 소리도 / 도란도란 들려왔다 / 모두들 살기가 힘들었던 그 시절 / 내 희미한 기억 속에 그 좁은 골목길은 /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길이었다 / 혼자서 콧노래로 돌아서 오르다보면 / 작은 집들 틈 사이에 / 나의 집 대문과 작은 창문 / 그리고 어머니와 가족이 /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그 작은 대문을 밀고 들어갈 때 /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 아무도 모르리라 / 수십 년이 지나간 지금에도 / 달동네 그 골목길이 그리워지게 될지 /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주창렬의 「달동네 그 골목길」전문
주창렬 역시 ‘나’라는 화자를 중심으로 해서 상황을 전개하고 있다. 보라. ‘나를 기다리며’, ‘내 희미한 기억 속에’, ‘나의 집 대문과’ 그리고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등등의 어조는 바로 그가 적시하고자하는 주제를 긍정적으로 표출하기 위한 하나의 표현 수단으로 응용하고 있다. 이처럼 ‘달동네 그 골목길’이 던져주는 이미지나 뉘앙스는 우리들의 애환이 농도 짙게 투영된 체험의 과거형 분출로 그리움을 상기하고 있다. 그것이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길이었다’는 단정적인 그의 심저(心底)에는 아직도 ‘희미한 기억’으로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이 / 어찌 그리도 똑같았을까 / 내 마음 사로잡은 저 자태 / 순백의 달항아리 / 너를 만난 그 순간 / 마흔 아홉 해 전 그날 그녀의 / 티 없고 맑디맑은 그 모습 / 오늘도 변함 없어 / 지금껏 의지하며 살아왔듯이 / 남은 세월 함께 가야 할 / 질항아리처럼 허물없는 / 아내 같은 난이여.
--옥인호의 「蘭」전문
옥인호도 ‘난’을 의인화해서 담론을 교감하는 시법인데 그는 ‘난=너’였다가 ‘순백의 항아리’로 또 ‘마흔 아홉 해 전 그날 그녀’이면서 이제는 ‘아내 같은 난’으로 변형되고 있어서 그가 메시지로 전하려는 아내 사랑과 ‘난’이 대비가 되는 담론이 특이하게 전개되고 있다. 실제로 하나의 사물을 인간으로 전환해서 주제를 창출하는 것은 우리 시법에서 자주 용용하는 일이라서 새로울 것은 없지만 이렇게 사물을 감응(感應)하는 작품들을 독자들이 선호하는 까닭도 외적인 시각에서 내적으로 감춰진 진실을 구현하는 것이 더욱 시의 멋과 맛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ᄒᆞᆫ맥문학』 2016. 3.)
겨울 정취와 시간성 이미지의 탐색
2016년 2월-올해는 대 원로 시인 황금찬 선생님이 백수(白壽)를 맞게 된다. 1918년에 속초에서 태어났으니까 우리 통상적인 연세로 99세가 된다. 선생님은 아직도 건강하시다. 보행에 약간 흔들려서 그렇지 강연도 잘 하시고 시도 잘 낭독 하신다. 지금 시 읽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 ‘시가 흐르는 서울’의 김기진 대표가 지난 1월 정기 낭독회에는 황금찬 선생님을 모시고 특별한 이벤트성 행사를 진행했다. 이 땅의 시인 99명이 ‘황금찬 시인 송가’를 노래하여 찬양하면서 대성황을 이루고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나는 ‘내가 월간 『心象』에 신인상을 응모했을 때 심사위원으로서 작품을 선(選)해 주신 사제(師弟)의 인연으로 살아오면서 이 지구상에 하나 밖에 없는 심상해변시인학교 교장 재임시에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기에 나도 이만큼 나의 시를 성숙시키고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시뿐만 아니라, 삶에도 사랑이라는 신념의 구축에 많은 교훈을 주셨다. 세상이 시끄럽고 인성이 퇴보하여 나라가 어지럽다고 해도 선생님은 ‘그래도 아직은 이 세상을 살만해요. 시가 있고 시인들이 많이 있으니 우리는 희망이 있어요.’ 한생을 시와 함께한 노시인다운 말씀이 아직도 아른거리고 있다.’는 화두로 선생님과의 사랑을 받쳤다.
이제 우리는 인생 백세 시대를 살고 있다. 인생과 동행하는 시간성은 비단 생사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세월과 함께 살아온 애환(哀歡)은 바로 우리 문학의 근원이 되고 주제로 승화하는 것이다. 특히 이 시간성에서는 일 년 사계절로 비유하는 인생의 서글픔이 보이는데 봄은 유소년으로, 여름은 청년으로, 가을은 성숙한 장년으로 그리고 겨울은 모든 결실을 마무리하는 노년으로 비유를 하고 이미지를 투영하는 시적인 상상력을 흔히 대하게 된다. 황금찬 선생님의 시간은 결실의 완성을 우리는 감응해야 할 것이다.
지난 1월호 『맥문학』에서는 이러한 시간성과 상관하는 작품들을 많이 읽을 수가 있었는데 특히 겨울에 관한 이미지가 더욱 돋보였다. 황금찬 선생님도 작품 「눈오는 날」중에서 ‘한 백년쯤 전에 / 여기에 나무를 심던 사람이 / 백년쯤 후의 생각을 / 오늘 나처럼 했을까 // 한 백년쯤 전에도 / 또 그 후에도 하지 못할 생각을 / 지금 나는 하고 있다’라고 오늘의 백수를 예상한 예언(豫言)의 어조에서 감응한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에서 / 마지막 잎새가 애처롭다 / 하지만 / 찬란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 홍단풍, 청단풍이 더 안쓰럽다 / 가을의 마지막 몸부림 / 존재의 슬픈 아우성 / 스쳐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인 걸 / 세상 잠시 쉬었다 가는 나그네인 걸....
--이성재의 「입동」전문
우선 이성재는 ‘입동’에서 자연의 섭리로 떠나는 가을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애처롭다’거나 ‘안쓰럽다’는 등의 어조로 ‘가을의 마지막 몸부림 / 존재의 슬픈 아우성’이라는 결론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과 직관으로 연상작용을 유발하는 주제로 형상화하는 시법을 구사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에서’ 목도(目睹)한 ‘마지막 잎새’나 ‘홍단풍, 청단풍’ 등은 ‘몸부림’으로 형상화해서 바로 ‘스쳐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인 걸 // 세상 잠시 쉬었다 가는 나그네인 걸....’이라는 결론으로 유로해서 겨울을 예비하면서 성숙한 가을 이미지를 겨울과 상관시키고 있다.
시청 구내식당 옆 / 마로니에 숲속 가을 사랑 /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함께 / 너마저 가는구나! / 비록 기약없이 가더라도 / 곱게 물들었던 추억만은 남기리라 / 앙상해져 가는 가로수 위로 / 내리는 가을비 아쉬움을 더한다 / 하지만 겨울 사랑 꿈꾸는 마지막 잎새는 / 하얀 겨울을 기다린다 / 포근히 감싸는 말간 사랑을....
--이성재의 「겨울 사랑」전문
또한 이성재는 ‘입동’ 이후의 겨울에 대한 시간성에서 ‘사랑’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다. 이것도 아쉽게 떠나가는 가을의 계절적인 양상에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시인의 가슴에 더욱 ‘아쉬움을 더’하지만 이 ‘마지막 잎새는’ 결국 사랑을 꿈꾸고 있으며 ‘하얀 겨울을 기다’리는 시간의 순리(順理)를 수용하고 긍정한다.
새벽 어두움을 가로 질러 밝음을 쫓아 / 남으로 질주하는 헤드라이트가 잦아드는 / 고속도로 한쪽 끝 / 스쳐 지나는 그리움이 목마름으로 / 검게 말라버린 가지 끝 오동잎 / 잎새에도 사연은 남아 울음 우는 거리 / 떠났어도 여기 있는 / 인연의 끝에 얽힌 겨울나무 / 모진 시련의 나무야 / 기어이 가려느냐 / 비 내리는 강변에 서서 / 감격으로 맞는 반가운 재회 / 입은 옷 다 벗어 잎새를 떨구고 / 찟겨 날리는 편지 쪽처럼 / 나는 또 / 다시 돌아와 그 자리에 설 / 세월의 다리를 건넌다.
--박관호의 「겨울나무」전문
박관호의 겨울은 어떠한가. 이 ‘겨울나무’에는 아련한 그리움이 깊게 배어 있다. ‘검게 말라버린 가지 끝 오동잎 / 잎새에도 사연은 남아 울음우는’ 시적상황에서 그가 탐색하는 것은 마지막 연에서 결론으로 적시한 ‘나는 또 / 다시 돌아와 그 자리에 설 / 세월의 다리를 건넌다.’는 가고 또 오는 계절적(혹은 자연적)인 순환으로 그리움을 표징하고 있다. 일찍이 누군가가 ‘겨울은 회상과 우울과 고독의 계절이다. 지나간 화려했던 계절을 돌이켜보고 해(年)가 지나는 허털감 속에서 차가운 밤바람 소리에 가슴을 죄는 계절이며 집 떠난 방랑자가 방랑의 고독을 다시 한번 사무치게 느껴보는 계절이다.’라는 정의처럼 겨울의 이미지는 다양하게 형상화하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벚나무 / 한 점 부끄럼 없기에 / 속옷 벗어던졌어도 / 얼굴 붉히지 않네 / 돌볼 가족 없는 / 혈혈단신 / 동장군 기세 두렵지 않고 / 송곳 같은 삭풍 / 철갑 껍질 뚫지 못하네 / 흰 눈 머리에 이고 / 선방禪房 홀로 앉아 / 화두(話頭) 끈 놓지 않으니 / 바람결 타고 온 낙엽 쌓여 / 곁불 되어주네.
--박선하의 「나목 벚나무」전문
박선하 역시 겨울을 고독과 회한(悔恨)으로 감응하면서 나목을 도입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가 주제로 투영한 대목은 바로 ‘흰 눈 머리에 이고 / 선방禪房 홀로 앉아 / 화두(話頭) 끈 놓지 않’는 명상에서 시적 진실을 구현하고 있다. 이 겨울 ‘벚나무’는 ‘속옷 벗어던졌어도 / 얼굴 붉히지 않’고 ‘한 점 부끄럼이 없’으며 ‘혈혈단신’이지만 ‘동장군’과 ‘삭풍’에도 굳게 견디면서 인생 화두에 몰두하는 전개는 우리들의 인생이 치러지 않으면 안되는 과정과 흡사한 진실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함께 발표한 작품「첫눈」전문에서도 ‘우렁각시 까치발로 걸어와 / 백옥 가루 뿌려 놓은 / 첫눈 내린 아침 / 순수의 언덕 너머 / 낡은 앨범 속 환영 / 흰 눈 머리 이고 손짓하다 / 눈바람에 흩어지네 // 첫눈 이내 함박눈 되어 / 은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낙엽 / 솜이불 되어주고 / 눈 내려 신바람 난 아이들 웃음소리 / 뜰안 가득 울려 퍼지네 // 첫눈 설레도 / 만나자는 첫사랑 없어 / 홀로 바라바는 눈 덮힌 여우산 / 임 본 듯 다정스럽네’라는 상황 설정과 전개 그리고 이미지의 투영이 회한의 추억으로 클로즈업하는 잔잔한 울림이 다가 온다.
끈기로 버티어 온 삶의 언저리 / 단풍나무 모처럼 행운 만나 정결 옷 입었는데 / 불현듯 찾아온 거센 바람 / 화살처럼 중심에 내리꽂힌다 / 단풍나무 눈꽃 핀 정원 모서리 / 거세게 몸 뒤척이는 붉은 이파리들 / 마치 허공에 뜬 별무리 같다
--송동균의 「눈쌓인 단풍」중에서
송동균의 ‘단풍’에는 이미 겨울로 진입하는 눈이 쌓여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숨가삐 눈 뒤집어 쓴 단풍 이파리 / 말간 햇살 내려 받으며 / 이제야 평화의 숨결 되찾아 / 사푼하게 삶 고별 인사 나누고 있다’는 결론으로 늦가을과 초겨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떠나보내고 새로 맞아들이는 인생의 교차점 같은 이미지를 발현하고 있어서 그의 시간적인 감수성에는 인생관이 잠재되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용성이 ‘가을은 유혹하는 계절인가 / 마력에 끌린 채, 용신(容身)조차 / 힘들어지는 나(「가을의 유혹」중에서)’라는 어조로 떠나가는 가을을 아쉬워하거나 김보태가 ‘사람들은 오색 단풍의 현현한 자연미에 / 매료되지만 // 겨울철 북풍한설에 대비하는 저들의 몸부림을 보며 / 작은 욕심 하나 내려놓는다(「단풍의 정취」중에서)’와 같이 시간성의 변화에 따라서 계절적인 주제의 변화가 다양하게 현현되는 특성에서 인생의 지향점에 관한 사색의 장으로 흡인(吸引)하고 있다.(『ᄒᆞᆫ맥문학』 2016. 2.)
시간성에서 탐색하는 이미지의 투영
근하신년(謹賀新年)! 해마다 새해가 되면 연하장을 쓴다. 병신년(丙申年), 2016년(단기 4349년)을 새로운 희망과 각오로 출발한다. 전국의 맥인들 모두 건강하시어 좋은 글 많이 쓰시고 가정에도 평안과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이제 『맥문학』도 통권 304호를 발간한다. 1989년(8월30일, 등록번호 라-5017)부터 한 호도 결호 없이 이 땅의 문학을 위해서 노력한 그 열정과 신뢰가 결합하여 서을특별시에서 비영리단체로 인가를 받고 공인된 문학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는 그 동안 『맥문학』을 통해서 등단한 문인들과 이를 선도하는 주위의 많은 선배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맥문학』도 초심의 발간 목적을 잘 지켜서 한국문학의 발전에 초석(礎石)이 되기를 새해에 다시 기원해 본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 문단에서 크게 부각되었던 일은 미당 서정주 선생과 박목월 선생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열렸는데 이는 그의 제자들이 주축이 되었거나 문학단체들이 벌인 행사들이어서 문인들뿐만 아니라 세간에서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우리들이 잘 아는 바와 같이 미당 서정주 선생은 1915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하여 중앙불교전문에 수학하고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김광균, 김달진, 김동리 등과 동인지 <시인 부락>을 주재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했으며 1938년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을 발간한 이후 『귀촉도』『신라초』『동천』『서(西)으로 가는 달처럼』등의 시집이 있다. 그의 서라벌 제자 류재상은 이러한 연유로『맥문학』12월호 초대시로 다음과 같은 작품으로 미당 시인을 추모하고 있다. 그는 연작시로 5편을 수록하였으나 지면 관계로 한 편만 소개한다.
학창 시절, 우리 옛 서러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 학생들은, ‘시창작詩創作’ / 시간이면 / 은사님을 / 모시고 학교 교실보다 / 근처 / 다방(茶房)에서 / 더 많은 / 수업을 했습니다. 수업 분위기가 / 한창 고조되어 비로소 절정(絶頂)에 이르면 / 은사님은 그리운 당신의 초등학교 / 여선생님의 / 그 예쁜 눈썹을 / 타고 / 삼국유사(三國遺事) 그 / 머나먼 / 신라(新羅)의 / 하늘까지 훨-훨- 하얀 / 학(鶴)으로 날아갔다가, 가장 황홀(恍惚)하게 / 다시 돌아오곤 했습니다 // 우리는 이렇게 은사님께 시(詩)를 배웠습니다.(류재상의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 5」전문)
다음으로 박목월 선생의 본명은 박영종이다. 경북 경주에서 출생하여 1939년 『문장』에 「길처럼」「그것은 연륜이다」「가을 으스름」 등이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는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우리 시단에서 유명한 『청록집』을 발간하여 동심의 소박함과 민요풍, 향토성 등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 친화와 교감의 짧은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산도화』『난, 기타』『청담』『경상도 가량잎』등의 시집이 있다.
지난 해에에는 그의 출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가 안장된 용인공원묘원에서 묘비공원이 개설되었는가 하면 경향 각지에서 많은 추모 행사가 있었는데 심상시인회에서는 그의 추모 특집으로 사화집을 묶었다. 여기 수록한 필자의 작품을 게재한다.
넓게 깊게 / 그리고 푸르게 / 상상의 물결은 은빛으로 / 우주 공간을 유영한다 / 술익는 향기가 은하계에 스며들고 / 청노루의 냉냉한 울음소리 / 인간들의 향수를 잡매지만 / 어느 새 울컥울컥 눈물이 맺힌다 / 원효로 첫 골목길 시의 바다에서 / 유익순 사모님을 찾는 행인이 / 윤사월 ‘눈먼 처녀’로 노래하면 / 불현듯 성큼성큼 지나가는 그림자 하나 / -박목월 시인.(심상시인회 사화집 28호 『내 편안한 불명』, 김송배의「木月의 바다」전문 )
이제 『맥문학』송년호에 게재된 작품을 읽어보자. 이 달의 작품에서는 대체로 시간성과 상관하는 이미지들이 다양하게 형상화하는 시법을 읽게 되는데 이는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먼저 해보게 된다.
]다시 만상이 꽁꽁 얼어붙는 추운 겨울 / 봄날의 따뜻한 냄새 / 철없는 꽃들의 웃음 / 풍성한 여름 숲을 꿈꾸며 / 이 잔인한 가을을 견뎌야지 / 묻지도 않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 대자연의 순환은 무한정하겠지만 / 인간은 찰나의 순환 속에 /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 어쩔 수 없이 동거해야 한다
--박철언의 「순환」중에서
박철언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불변으로 ‘순환’하는 계절의 감응(感應)에서 투영한 ‘묻지도 않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시간성에서 ‘몸이 외로워진다 / 가슴이 쓸쓸해진다 / 슬픈 생각이 든다’라는 조용한 어조로 고독과 허무를 동시에 되새기고 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 어쩔 수 없이 동거해야’ 하는 자연의 섭리이다. 여기에서 ‘봄날의 따뜻함’과 ‘풍성한 여름’, ‘잔인한 가을’ 스리고 ‘꽁꽁 얼어붙은 추운 겨울’의 ‘대자연의 순환’으로 인내와 기다림의 미덕을 적시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갑자기 맘이 허전해’지는 것을 지울 수가 없는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넓고 푸른 강 언덕 어릴 적 꿈은 그 자리에 머물고 지금은 시간의 강물 속 어디로 쓸려감직한 기억들, 작은 풀꽃들은 옥빛으로 피어올라 가득한 향기, 물비늘 같은 추억은 금빛 물살이 음률을 타고 가을 노래 같은 어머님이 가시던 날 모시꽃으로 피어 바람에 휘날린 그곳에 내 유년을 채우던 생명의 탯줄 지금도 머무는 그곳에 꿈이 일렁이고 있다.
--국승윤의 「새우뜰 강가에서」전문
국승윤도 ‘지금은 시간의 강물 속 어디로 쓸려감직한 기억들’ 속에서 과거의 시간에서 반추하는 ‘유년’이 생생하게 유로되고 있다. 시적 체험의 투영이다. 그의 체험에는 ‘어릴 적 꿈’이 지금도 ‘그 자리에 머물고’ 있어서 시간성이 짙게 흐르고 있는 그의 내면을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저만치 달려오는 너를 / 반갑지만은 않은 얼굴로 맞이한다 / 가을을 보내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 되찾기라도 하고픈 마음으로 / 어쩌면 / 곁을 스치는 너를 / 붙잡지 못한 나의 불찰이라 해도 / 너를 조바심 속에 가두어 두지를 못해 / 나의 공허함은 더욱 비례한다
--이경옥의 「겨울의 문턱에서」중에서
이경옥은 ‘가을을 보내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회상하고 있다. 그는 ‘겨울의 문턱’이라는 시적 상황에서 시간을 ‘붙잡지 못한 나의 불찰’로 자신을 투영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그는 시간성과 아쉬움이 동시에 현현하면서 조바심과 공허함 등이 그의 내면에서 의식의 흐름으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다.
험한 날들 지켜낸 시간 앞에 / 이리 고운 빛깔인데 / 참 부끄럽다 / 살아온 세월 / 묻기도 전에 / 고요히 사라지는 바람같이 /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 지금 물든 그대로의 자연에 / 머물고 싶은 가을이 / 그리움으로 가득한데, 우리네 삶 / 무채색인가 / 바람이 분다. 비까지 내리면 / 낙엽으로 흐트러지는 단풍은.
--임길성의 「단풍은」전문
임길성은 ‘단풍’을 통해서 ‘살아온 세월’을 회상하고 있다. 그 회상은 ‘험한 날들 지켜낸 시간’이며 ‘고요히 사라지는 바람’이다. 그러나 ‘지금 물든 그대로의 자연에 / 머물고 싶은 가을’이라는 아쉬움인데 그것은 ‘그리움’이라는 어조로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그는 다시 ‘단풍이 낙엽으로 흐트러’질 때의 상황은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는 자연의 변화가 더욱 심저(心底)에서 시간성과의 상관적인 시법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시간성과 자연의 섭리를 통한 이미지의 융합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우리네 삶 / 무채색인가’라는 어조에서는 무형이며 무색인 시간에 대해서는 의문형으로 작품을 전개 하고 있다.
일찍이 독일에서 ‘시간의 생태학’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만들어 간 학자 칼하인즈 가이슬러는 ‘시간이란 우리가 소유한 가장 소중한 자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은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모두가 공유하지만 개개의 시간은 각자가 유익하게 사용하거나 그냥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단풍’에서 연결된 시간(혹은 세월)은 우리 인간의 관리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자연 현상의 변화(혹은 섭리)에 의해서 무형체의 시간이 우리의 삶에서는 무채색으로 발현되고 있어서 시인들이 다양한 이미지를 투영하지만 임길성은 한 마디로 ‘참 부끄럽다’라고 결론짓고 있는 것이다.
난 꺼지지 않는 불꽃 / 집념의 혼, 불을 가진 자 / 숙명과 운명을 밀어낸 불굴의 여인 / 난 딸들의 원대한 꿈을 위하여 / 판단하고 결단하는 시간에 대하여 / 단 일 초의 촌음도 주저하지 않았다 / 난 내 정신이 종교였고 / 나 자신의 신뢰와 믿음이 / 나의 신앙이었기에 두려움이 없었다.
--고 운의 「촌음」전문
고 운의 ‘촌음’은 어떠한가. 그는 그의 당찬 주장을 결론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난 딸들의 원대한 꿈을 위하여 / 판단하고 결단하는 시간에 대하여 / 단 일 초의 촌음도 주저하지 않았다’는 어조는 그에게 내재되어 있는 종교와 신뢰와 믿음 그리고 신앙에서 ‘두려움이 없었다’는 확신을 적시하고 있다. 그는 함께 발표한 「열정」에서도 ‘인생의 미로를 찾아내는 요술사인가 / 지극한 사랑과 모성애의 주술사인가 / 내 삶의 길이는 얼마나 되는가 / 아아, 인고 의 세월’이라고 세월과 삶의 길이를 측정하고 있다.
또한 박종문도 작품「남기고 간 그림자」에서 ‘억세게 살아온 / 억새꽃 피어 파도치면 / 단풍잎 물들이니 / 가는 세월 아쉽다고 뒹굴고’라는 어조로 세월의 아쉬움과 계절(억새꽃, 단풍잎)의 변화를 접맥해서 시간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처럼 계절과 시간의 상관성에는 지나간 시간의 가을 이미지가 많이 그 작품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데 권규학의 「겨울초」 임숙현의「가을 그리움」 전혜령의「가을빛 연서」 왕영분의「가을 사랑」 그리고 권용익의 「만추 서정」등에서 세월의 오묘한 정경을 대하게 되며 그들의 시적 함성을 들을 수 있게 한다.(『ᄒᆞᆫ맥문학』 201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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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미지의 시적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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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일은 ‘시의 날’이다. 한국시인협회(회장 문정희)에서는 11월 2일(11월 1일이 일요일인 관계로) 서울 문학의 집에서 기념식을 간소하게 가졌다. 그러나 경기시인협회(회장 임병호)는 시화전과 시낭송경연대회 그리고 경기시인상(수상자 김석규) 시상식을 수원 문학의 집에서 성대하게 가져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편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원장 박명규)에서는 ‘남녘북녘 시인들의 별 헤는 밤’낭송회를 서울대 규장각 강당에서 개최하였다. 신경림, 오세영, 최동호, 김기택, 함민복, 장석남, 김선향 시인과 탈북해서 국내에 정착한 도명학, 김유진, 송시연, 주아현, 이가연, 이은철, 오은정 시인이 출연해서 성황리에 마쳤다.
그리고 심상시인회(회장 이동희)는 경기도 포천시 산정호수에서 전국 회원들이 모여 가을총회(11. 7~8)를 개최하고 <<심상시인회 사화집>> 제28호 출판기념회가 열려서 한 해를 결산했으며 청송시인회(회장 임선영)에서도 11월 월례 시작발표회를 개최하고 강명숙 시집 <<은유의 집 짓다>> 출판기념회와 임길성 시인의 문학강연, 전회원의 신작 발표가 있었다.
각설하고 지난호 <<맥문학>>에 발표된 작품들을 살펴보면 가을에 대한 연민의 이미지가 한 해를 마감하면서 어쩐지 고독한 정감을 많이 대할 수 있어서 계절의 시간적인 자연 변화에 민감한 시인들의 정서를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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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철새 / 산을 넘어가고 / 빈 하늘에 스미는 어스름 노을빛 / 가을은 / 벙어리 울음으로 / 끅-끅- 앓고 있다 // 후미진 곳에 / 쪼그리고 앉아 낙엽 태우는 / 볼이 발그레 익은 어린 행자 / 초상집 애기 상주처럼 / 애처롭다 / 서럽다 / 그냥 서럽다
--이창년의「가을은 그냥 서럽다」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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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원로 이창년 시인이 감응感應한 가을의 이미지는 ‘서러움’에 대한 시인의 절규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가을에 관한 이미지나 상징은 풍요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오고백과가 풍성하게 무르익은 가을의 일상적인 현상에서 발현한 것이고 위와 같은 시적 정황situation은 시월 늦가을의 풍경인 ‘빈 하늘에 스미는 어스름 노을빛’에서 발상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는 가을을 명민明敏한 정감으로 흡인吸引하는 계절병적인 요소로 그의 뇌리에 충만되어 있는 것이다. 그의 ‘시작 노트’ 전문에서 이미 밝혔듯이 ‘가을은 그냥 서럽습니다. / 가을 앞에서 그냥 서러워집니다. / 꽃이 피었는가 하면 여지없이 지고 맙니다. / 열매가 익으면 떨어져야 합니다. / 반가운 만남도 끝내는 헤어짐의 슬픔을 안겨 줍니다. / 자연의 섭리인걸요. / 그래도 서러운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 / 곱게 단장하던 나무들도 옷을 벗어 버립니다. / 내 곁을 떠나는 예쁜 사람들 / 나를 서럽게 합니다. / 그러나 / 이 모든 것이 가슴 뜨겁게 하는 / 아름다움입니다. / 그래도 서럽습니다. / 그냥 서럽습니다.’라고 서러운 가을에 ‘벙어리 울음으로 / 끅-끅- 앓고 있’는 애처로운 연민이 더욱 가을과 친숙하게 하고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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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연주 가락에 / 달빛 타고 / 방울방울 풀잎에 구슬로 내려와 / 아침 햇살 품어 찬란하고 / 들녘의 황금물결은 / 농부의 손길을 재촉하는데 / 오색 병풍 둘러친 산천은 / 손 흔들며 유혹하니 / 옷 갈아입고 걸음을 재촉한다 / 기러기처럼 줄지어 / 달려가는 차량 행렬에 / 가로수 넘실넘실 춤을 추네
--이석병의「가을」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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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석병의 가을은 어떠한가. 이 가을은 말 그대로 풍성하다. ‘들녘의 황금물결’과 ‘농부의 손길’이 동일한 이미지로 부각되고 있다. 한편 ‘오색 병풍 둘러친 산천’이 우리를 유혹하는 정경은 가을의 풍요와 넉넉한 마음의 여유를 적시하고 있다. 그가 함께 발표한 「가을이 오면」중에서도 ‘가을이 오면 / 세상에 찌든 잎 알록달록 물들여서 / 동양화 전시회 열고’로 상황을 설정한 후에 ‘들녘의 황금색 옷’과 가을바람에서 ‘풍요를 자랑하’는 그의 여유에서 풍족한 가을의 이미지를 감지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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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중에 배달 온 /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사진 / 늘 보며 자란 가을 하늘 / 지나간 자리 여운如雲 / 시인의 마음을 아시는 듯 // 아침에 창문 밖 칠보산을 둘러보니 / 푸른 산 이 가을 옷 갈아입다 / 내 눈에 들켰다 옅은 황색 가운 / 살갗에 지나가는 찬바람 // 칠팔월에 강렬한 태양 / 구애의 소리 벅벅 질러도 / 정겨운 소리로 듣던 매미 소리 / 귀 열고 더 많이 들어야겠네 // 매미 소리 여치 소리 / 귀뚜라미 소리 풀벌레 소리 / 사계절 꽃은 피고지고 / 자연의 시간에 정령精靈들 / 들어도들어도 싫지 않은 소리
--이기덕의「가을 하늘 배달」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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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기덕의 가을은 시각에서 뿐만아니라, 청각에서도 상당한 이미지를 투영하고 있는데 ‘매미 소리’와 ‘여치 소리’, ‘귀뚜라미 소리’ 그리고 ‘풀벌레 소리’ 등 ‘시간에 정령精靈들’이 들려주는 ‘구애의 소리’와 ‘정겨운 소리’가 가을 정취를 더높이고 있어서 ‘들어도 싫지 않은 소리’로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그는 ‘가을 하늘’과 ‘창문 밖 칠보산’, ‘옅은 황색 가운’ 그리고 ‘강렬한 태양’ 등에서는 시각적인 사물의 이미지가 친자연적인 안온한 정경으로 펼쳐지고 있어서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가을이 향훈이 정감을 흡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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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내내 울던 / 풀벌레가 / 지친 몸을 이끌고 / 가을바람을 / 자지러지게 불러보지만 // 가을바람은 / 들은 척도 않고 / 제 갈 길을 가버린다 // 갈 곳 없는 풀벌레는 / 태어난 고향 찾아 / 땅속으로 기어드니 / 포근한 고향집은 / 아직도 그를 반겨주는구나 // 사람이나 곤충이나 / 마지막 찾는 곳은 고향집이구나.
--박영길의「가을 단상」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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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길은 가을에서 어떤 상념에 젖었을까? ‘여름 내내 울던 / 풀벌레’와 ‘가을바람’의 대칭에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되고 귀소본능으로 ‘포근한 고향집’으로 찾아가는 인간과 곤충의 상관성을 간결하게 ‘단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현대시를 한 마디로 집약하면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날 시가 리듬韻律을 중시하고 그 음악성을 높이 평가했다면 현대시는 이미지를 중요시하여 그 회화성繪畫性이나 고도의 표현 기교를 내세고 있다. 그만큼 현대시를 표현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미지는 흔히 심상心象이라고 하는데 어떤 인상이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뜻으로 사물로 그린 그림이니, 말로 만들어진 그림이니 혹은 언어의 회화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정의로 이미지의 개념을 확실하게 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국의 시인이며 비평가로서 이미지즘 운동을 전개한 T. E 흄의 말대로 시는 표지의 언어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구성된다고 했다. 따라서 ‘배가 항해했다’라는 표지에 대해서 ‘배가 바다 위로 질주하였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인에게 있어서 이미지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직관적直觀的인 언어의 정수精髓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미지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는데 먼저 육체적인 지각작용知覺作用에서 이룩된 감각적 현상이 마음속에 재생된 것(광의廣義의 개념)과 이미지를 세분화해서 정신적, 비유적, 상징적 이미지로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협의狹義의 개념)으로 구분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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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하천변 길에 / 하늘이 통째로 꺼져 내려와 / 소복이 쏟아 놓은 별나라 마을 / --중략--// 가을이 깊어질수록 / 점점 멀어져가는 파란 하늘나라 / 수억 광년 왔을 것이데 / 사다리 몇 개 놓아도 부족할 정도로 / 갈 나라 멀고 멀다네.
--서원생의「코스모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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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서원생은 ‘코스모스’라는 사물을 통해서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는데 이 이미지는 체험의 산물로써 체험을 성립시키는 대상 존재나 대상 사물에 의해 떠올리는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직접 외계의 자극에 의하지 않고 기억과 연상에 의하여 마음속에 떠오르는 상像이다. 시는 언어에 의하여 마음을 거슬러 올라가서 구체적인 것이 아니면서도 직접적으로 상상된 어떤 형상을 비춰는 중요한 역할이 바로 이미지이다. 이것을 실재적實在的인 것보다도 순간적으로 다양한 것이 요약된 인상 깊은 연상이며 심리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억이나 상상은 모두 과거에 체험된 그 어떤 것이 동기가 되고 시는 그것들의 기능을 살리고 언어의 감촉으로 심상적인 세계, 바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서원생의 ‘초가을’과 ‘별나라 마을’의 상상력은 ‘코스모스’가 내포한 심축心軸에는 그가 자신이거나 주변에서 체득한 체험들의 연상작용이 창조적인 활동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시에서 이미지를 중시하는 연유이기도 하다.(『ᄒᆞᆫ맥문학』 2015. 12.)
생명체 탐구와 서정적 자아
벌써 11월이다. 음력으로 치면 동짓달이다. 동짓달하면 ‘동짓날 기나긴 밤 한 허리 베어내어 / 춘풍 이불 밑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 어론님 오시는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라고 절창絶唱한 황진이가 생각난다. 우리 한글로 쓴 시인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명시인이다.
올해로 탄신 100주년을 맞는 시인들의 조명照明이 한창 진행중이다. 지난 6월에는 청록판 박목월 시인의 탄신 100주년을 맞이해서 용인 공원묘지에 있는 그의 유택幽宅에서는 ‘목월시정원’이 개원되어 그의 제자들과 후학들이 대거 참여하여 행사를 성황리에 마치는 문학사의 한 장을 다시 정리하였다.
그리고 지난 7월에는 미당 서정주 시인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행사가 다양하게 열렸는데 『미당(未堂) 서정주 전집』(전 20권) 중에서 1차분으로 시 전집 5권이 출판되어 미당기념사업회에서 동국대 강당에서 시전집 출판 기념회 열고 가수 송창식 씨가 출연해서 노래 ‘푸르른 날’을 부르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정현종 시인 등 문화인들이 시낭독을 하면서 미당을 흠모欽慕하는 큰 행사가 열렸다.
지난달에는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에서 ‘2015 미당문학제’가 전북 고창군 일원에서 열렸고 한국현대시인협회에서도 ‘미당 서정주의 시혼 청산에 깨다’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 여기서는 신규호 시인이 좌장으로 김용태(미당시의 발전과정, 그 불교적 의미), 유성호(서정주, 한국 서정시의 정점) 그리고 이남호(미당시를 만나는 방식과 ‘노래’의 아름다움) 교수가 발표하여 미당의 정신을 되새겨 보았다.
각설하고 지난 10월호 『맥문학』에 발표된 작품들은 우리 인간의 생명체를 탐구하는 작품들이 그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선 정의웅은 ‘특집 / 소시집’으로 무려 12편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한결같이 우리 생명체에 대한 깊은 사유思惟를 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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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푸른 허공을 날고 있는 / 세상을 꿰뚫어지게 바라보는 / 신비의 초점 / 참매의 눈빛처럼 / 방황하는 길고 긴 시간 / 외길만이 삶을 그려줄 뿐 / 높은 지상에서 //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 / 많은 바람이 스쳐지나 가지만 / 초점이 꽂히는 찰나 또다른 삶을 그려 / 스스로 늘려가는 시간은 / 무섭게 집중하는 그 야성 그 집념.
--정의웅의 「그 야성(野性) 그 집념(執念)」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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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 생명성에 관해서 ‘생(生)과 사(死)의’ 문제를 심도深度 있게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삶의 형태나 방식에서 추출한 사색의 결론으로써 ‘참매’의 예리한 눈빛을 통해서 삶을 조망眺望하고 있는데 ‘허공’과 ‘신비의 초점’ 그리고 ‘방황’과 ‘삶’의 복합적인 구도에서 그의 주제는 바로 ‘또 다른 삶을 그려 / 스스로 늘려가는 시간’에서 생명체를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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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느끼고 느끼며 / 희망의 불빛이라고 / 망망대해 등대에 빛이 있는/ 끝까지 더 높게 더 많은 바람을 / 우리 허무함으로 상상할 뿐 / 조금 낮게 바라보라 / 그대의 마음에 부족하지만 / 조그마하고 아담한 / 아름답게 최후의 만족을 / 그대 눈으로 바라보라 / 바라보는 것 잠시 잠깐.
--「바라보는 것 잠시 잠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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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웅의 시선은 다시 ‘조그마하고 아담한 / 아름답게 최후의 만족’을 위해서 사색의 심연深淵으로 유로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우리 허무함으로 상상할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조금 낮게 바라보라’거나 ‘그대 눈으로 바라보라’는 메시지로 공감을 흡인시키고 있다. 그는 이 작품 상황 설정에서 ‘그대에게 / 다 멀리 바라보는 것은 / 대망을 꿈꾸며 / 그 누가 원하든 원치 않든 / 큰 꿈을 가슴에 담고’라는 어조語調로 멀리 ‘희망’을 갈구渴求하고 있다. 이러한 ‘희망의 불빛’은 ‘망망대해등대에 빛’과 같은 삶을 여망하고 있으나 허무의 상상이 내재된 인생관이 바로 우리의 생명성에 발현하는 시적 진실의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빛’을 통한 희망의 메시지는 ‘넓고 넓은 세상을 / 밝게 맑게 투명한 정화수가 되고 / 내 그대 숲속에 요정이 된다면 / 온누리에 비춰주는 빛이 되리라(「내가 요정이 된다면」 중에서)’거나 ‘아무런 흔적이 없고 / 보이지 않는 혈의 흐름이 / 여기 나와 흐르지 않고 / 신의 아름다움이여 / 꿈속에 나를 인도하심에 / 무의식의 세계에서 빛을 바라보았네(「무의식의 세계」 중에서)’라는 등의 ‘빛’으로 그의 탐구는 계속되고 있다. 또한 일찍이 이어령 교수는 ‘광명과 어둠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자이다. 그림자가 없고 광명만 있다면, 광명은 없고 그림자만 있다면 거기에는 다 같이 생명의 드라마가 없다’고 그의 글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중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이 광명(빛)과 생명체의 밀접한 상관성은 바로 우리들이 바라보는 삶의 진실성과도 일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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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깊이깊이 가깝고도 멀고 먼 날을 / 항상 상상하고 꿈을 꾸지만 / 진정 지혜로운 마음으로 / 세상을 두루 살펴 / 기쁨과 슬픔 / 즐거움과 슬픔 / 맑음과 흐림을 / 모두 두루 살피고 / 마음에 와 닿는 / 순수한 미래를 / 가늠하듯 / 물을 한 오쿰 손아귀에 쥐어서 / 흘러내리듯 내리기 전에 / 베풀 수 있는 조그마한 마음을 / 모든 걸 이루고 / 아낌없이 모든 생명체에게 / 늦기 전에 진정으로 베풀 수 있는 / 가이없는 사랑을.
--「모든 생명체에게 늦기 전에 진정으로 베풀 수 있는 가이없는 사 랑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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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정의웅은 작품의 소재와 같이 ‘아낌없이 모든 생명체에게 / 늦기 전에 진정으로 베풀 수 있는 / 가이없는 사랑을.’이라는 결론으로 ‘생명체=사랑’의 등식을 확충시키고 있다. 이러한 그의 생명학은 ‘진정 지혜로운 마음’과 통섭通涉하면서 우리 인간들의 공통점인 애환哀歡과 고락苦樂과 명암明暗을 근원으로 한 ‘순수한 미래’를 지향하는 생명체의 절규라고 할 수 있다. 정의웅은 이러한 ‘가이없는 사랑’이 ‘베풀 수 있는 조그마한 마음’으로 승화하기를 진정으로 여망하는 순수 서정적 자아의 실현을 예비하고 있어서 그의 생명체 탐구는 시적인 자아가 곧 생명체의 진실로 명징明澄하게 적시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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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는 또 다른 선과 악을 / 살아간다는 야성적인 본능도 / 한 쪽을 괴롭히지 않고는 / 그늘과 같은 악은 / 언젠가는 필요한 악이라고 하지만 // 기쁨과 슬픔은 / 먼 곳을 가늠하는 넓은 가슴으로 / 기쁨도 스스로 느끼고 / 한없는 슬픔의 눈물로 // 그대 꿈속에 저녁노을이 저물면 / 부엉새가 되어 어둠을 딛고 / 부엉이 부엉부엉 울어 별이 빛나는 밤에 / 멀리멀리 날아가리라.
--「생명체는 두 눈을」 중에서
정의웅은 다시 ‘생명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생명체=살아간다는 야성적인 본능’이지만 선과 악이 순환적으로 우리 인간들과 동행한다. 이러한 인생행로에는 언제나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게 되고 우리는 이 ‘필요한 악’을 포용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는 ‘어둠을 딛고’ 멀리 날아가는 꿈을 꾸고 있다. 생명체가 ‘한쪽은 맑음과 흐림을 한없이 / 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곳’과 ‘어두움을 / / 지치지 않게 가리워주는 / 멀고먼 구름 속’을 동시에 현현하는 시법에서 그의 시적 진실을 엿보게 하고 있다.
정의웅은 ‘깊고 깊은 마음을 / 주위는 깨달을 수 없는 / 군중 속에 고독을 / 참고 참아 머물러 지나가고 / 삶은 숱한 크고도 조그마한 / 더 나은 내일을 위한 / 외로운 동행일 수밖에.(「더 나은 내일을 위한 외로운 동행」 중에서)’라거나 ‘수많은 사람 중에 / 무엇을 필요한 만큼 / 서로가 건네고 / 기다리는 마음으로 / 약속을 했어도 / 비 내리는 아스팔트 위에 / 뒤범벅된 흐름이 될 소도 / 근심으로 점철되어 가지만 / 이도 이 또한 약속이고 /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아름다운 약속이네.(「더 나은 내일을 위한 아름다운 약속이란」 중에서)’라는 어조에서도 그가 분사噴射하고자 하는 생명체에 대한 내밀한 주제를 궁극적으로 적시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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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요. 메마른 땅에서 뿌리 없는 생명이 힘들어요 / 죽기보다도 살아남기 훨씬 힘들어요 / 차라리 / 남은 생명을 순교처럼 바치고 싶어요 / 칭찬받는 고통보다도, 욕먹는 죽음을 / 선택하고 싶어요 / 그러나 고통 속에 이대로 / 말라죽을 수는 / 도저히 없어요, 살라고 땅속 깊이 / 꽂아준 그분을 배반할 수는 / 없어요
--류재상의 「꺾어 심은 나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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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류재상도 생명성을 ‘나무’라는 사물을 통해서 의인화한 시법으로 강조하고 있다. ‘죽기보다도 살아남기 훨씬 힘’든 현실을 적절한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을 확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이 을의 「분화와 선택」에서, 김오수의 「나를 가꾸는 뜰」에서 그리고 박종문의 「꿈길에서」와 같은 작품에서 우리의 소중한 생명체를 탐구하면서 서정성 깊은 작품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ᄒᆞᆫ맥문학』 201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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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 사친가(思親歌)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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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다. 백로, 추분 지나가니 조석(朝夕)으로 제법 한기(寒氣)가 도는 기온이다. 하늘은 청명하고 산야에는 적황(赤黃)의 물감을 뿌려놓은 듯 자연 서정이 물결치고 있다. 이 계절의 조화는 참으로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시간적인 의미가 넓게 작용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국제펜한국본부 주최로 ‘세계한글작가대회’가 경주에서 개최되어 국내외 문인들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거기에는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 프랑스 작가와 김주연 숙명여대 석좌교수 그리고 노마 히데키 일본 메이지가쿠인대학 객원교수 등이 특별강연을 하여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한편 서울에서는 ‘시가 흐르는 서울(대표 김기진 시인)’이 주최하는 월례시낭송회가 남산한옥마을에서 제64회 행사를 성황리에 마쳤다. 여기에서 이생진 시인이 ‘독서와 일기’에 대한 특강이 있었고 필자도 시론 ‘시적 체험과 언어’을 강의해서 갈채를 받은 바 있다. 이처럼 시 인구의 저변확대와 시 운동의 확산을 위해서 많은 단체에서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전개해야 할 것이고 지자체나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서 이런 운둥이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지난호 『맥문학』에서도 많은 작품들이 게재 되었는데 가을 향기가 나면서도 고향이나 사친에 대한 정서가 많이 반영되어 있어서 추석절과 함께 서정적인 내면의 시심(詩心)이 다수 발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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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얀 종위 위에 가을 편지를 씁니다 / 수줍어 말 못한 이야기들 / 사랑 가득 담아 곱디곱게 써내려 갑니다 / 노오란 봉투엔 가을꽃 한 송이 / 예쁜 단풍잎 하나 / 분홍빛 추억까지 / 정성껏 담겠습니다 / 가슴 저리도록 보고픈 마음에 / 가을꽃 우표를 골라 붙이고 / 빠알간 우체통에 넣어 / 당신께 보내려 합니다 / 반갑게 받아 주세요 / 오늘처럼 가을비 오시는 날 / ‘편지요’하는 소리에 / 설레는 마음으로 / 가을 편지 받아들고 / 해맑게 웃음 짓는 / 당신 모습 보고 싶습니다 / 그 땐 내 마음에도 / 가을꽃이 만발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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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장석영의 「가을 편지」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을이 되면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 한 장을 쓰고 싶다. 그러나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수기(手記)로 쓰는 편지는 자취를 감추고 이메일로 주고 받는 시대로 변했다. 일찍이 릴케도 ‘지금 혼자만인 사람은 / 언제까지나 혼자 있을 것입니다 / 밤중에 눈을 뜨고 책을 읽으며 /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 나뭇잎이 떨어질 때 불안스러이 가로수가 나란히 서 있는 길을 / 왔다갔다 걸어다닐 것입니다’라는 가을날을 노래하면서 편지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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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아른거리는 / 옛날 내 고향 모습 / 아버지는 보구래로 밭을 갈았고 / 어머니는 따라가며 씨를 뿌렸다 / 누나들은 목화 따고 고추를 따고 / 나는 동생들을 업고 다녔다 // 해가 져서 달이 뜨면 / 모두 돌아와 / 저녁 식사 향연이 벌어졌었다 // 내일도 오늘 같이 이루어져서 / 달이 가고 해가 가며 / 살아갔었다.
--김상회의「농촌의 내 고향」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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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시’로 발표된 김상회는 농촌 고향에 대한 향수(鄕愁)가 서정적으로 잘 현현되고 있다. 지난 달 추석을 지나면서 더욱 흡인(吸引)하는 작품이다. 대체로 시적 상황의 도입은 자신의 체험에서 발현하는 습성이 있다. 그는 ‘옛날 내 고향 모습 / 아버지는 보구래로 밭을 갈았고 / 어머니는 따라가며 씨를 뿌렸다’는 회상에서 상황을 전개하고 있어서 사향(思鄕)의 이미지는 더욱 아련하게 떠오르고 있다. 다시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와 나 그리고 동생들까지 상기하면서 사친곡(思親曲)을 쓰고 있어서 옛고향의 정취가 물씬 넘치고 있다. 한편 ‘세월은 무상 / 너무 서두르지 말고 / 풍월처럼 담담할 것을’이라는 어조로 「살아가노라면」을 함께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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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던 시절 / 싱그럽고 당찼던 미지의 숨소리 / 가보처럼 애지중지 금쪽같은 맘 나누고 / 연분홍빛에서 여린 시선 감추던 / 아버지의 분신이었을, / 그 옛날 청춘 시계가 / 거친 세파 고단함 주름까지 보태더니 / 세월 이길 장사 없듯 / 이제는 아득한 날들을 꿈인 양 고이 접고 / 추억과 그리움 삭히며 / 분침 시침은 아련하게 침묵한다.
--고 운의「아버지의 시계」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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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운도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 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아버지의 시계’는 ‘아버지의 분신’이라고 단정하면서 시간성(세월)과 상관으로 사친가를 부르고 있다. 그는 ‘그 옛날 청춘 시계가 / 거친 세파 고단함 주름까지 보태더니 / 세월 이길 장사 없’다는 일반적인 서술로 아버지를 회상하고 있다. 그는 함께 발표한 「딸들에게」도 ‘참으로 아름다고 소중한 / 속세의 인연’을 노래하고 다시 이러한 인연을 통해서 ‘자식이 깨달을 때까지 /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입니다 / 사랑도 사랑하는 사람이 / 그리워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라고 「기다림」에서도 가족간의 인연이 적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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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마당 구석진 곳에 / 호박씨 하나를 심으셨다 // 어느 날 내가 너무 적다고 투덜거렸다 / 호박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서다 / 아버지는 그 욕심까지 아셨을까 / 대답 대신 침묵을 하셨다 / --중략--/ 아버지 냉장고를 열자 / 파란 침묵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 호박씨 하나가 애국하였단다.
--서원생의「호박과 침묵」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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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생의 ‘아버지’는 어떠한가. ‘마당 구석진 곳에 / 호박씨 하나를 심으’면서 아버지의 이미지는 창출된다. 결론적으로 아버지의 ‘침묵’은 온 가족들의 내심(內心)을 이해해주는 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 회상되고 있다. 이는 아버지와 호박과 침묵이 시적 흐름을 유지시키는 그의 사친가이다. 그는 다시 ‘어느 봄날 / 허물어진 고향집 폐가의 담 너머 / 어머니가 유산으로 남긴 옻나무에 / 독이 차 오른 파란 옻순이 /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고 있다(「옻순을 따며」중에서)’는 어조로 어머니에 대한 회상도 함께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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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따라 / 산자락 오르니 / 갈바람 어깨를 흔들며 / 저만큼 앞장서 가고 / 노을 지는 서편 하늘은 / 사르지 못한 일념인 듯 / 사정없이 토하려 한다 / 양지녘 묘비 앞 지는 햇살이 / 소리 없이 흐느끼며 나를 맞이한다 / 아, 나는 / 그토록 긴 세월인데 / 아직도 잊지 못해 / 이 가을도 찾아왔네요 / 어머니 / 어느새 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 / 되돌아갈 수 없는 그날들이 그립습니다 / 내겐 늘 젊으신 어머니 / 보고싶습니다
--주창렬의「어머님 성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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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창렬은 지난 추석날에 어머니를 성묘하고 거기에서 전개된 외적 상황들이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그는 그리움을 시적 주제로 하고 있지만, ‘양지녘 묘비 앞 지는 햇살이 / 소리 없이 흐느끼며 나를 맞이한다’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더욱 시적 감응을 높이는 효과를 이해하게 한다. 또한 그는 ‘어느새 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 / 되돌아갈 수 없는 그날들이 그립습니다 / 내겐 늘 젊으신 어머니 / 보고싶습니다’는 어조로 사친의 정감이 물씬 풍기는 서정성은 공감을 유로하고 있다.
그는 다시 ‘소슬바람 부는 아침 길 / 작은 길모퉁이 돌아서며 / 문득 떠오르는 유년시절 / 어머니 따라 길모퉁이 돌아갈 때 / 뒤쳐져 가던 나를 기다려 / 길을 멈추어 계시던 어머니’라거나 ‘나는 그렇게 / 어머니를 따라나서기를 좋아했고 / 어머니는 그런 나를 늘 데리고 다니셨다 / 지금도 그 길 모퉁이를 돌아서면 / 어머니가 기다리고 서 계실 것만 같다(이상「유년 시절 어머니」중에서)’는 애절한 어조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모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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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위가 시장에서 잔다 / 먼길 오느라 졸린가 보다 / 햇빛 보기가 싫은지 / 축 늘어져 잔다 // 할머니는 살며시 깨우려 / 손 흔들며 살살 물 뿌려주고 / 어머니는 그늘 따라 이리저리 옮기고
--李起德의「머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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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덕도 할머니와 어머니가 시적 화자로 등장해서 사친의 정을 현현하고 있다. ‘머위’를 시장에서 조는 정경(情景)에서 가족의 애절한 정감이 유로되고 있어서 시적인 효과를 더욱 상승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사친가는 그 중심에 아버지와 어머니 등 가족들이 시적 대상이지만, 회상하거나 조망하는 대상에 대한 외적인 묘사에만 그치면 시적인 감응은 감소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ᄒᆞᆫ맥문학』 2015. 10.) .
서정적 관조에서 탐색하는 삶의 모습
입추, 말복, 처서 지나고 나니 조석(朝夕)으로 서늘한 공기로 바뀌는 가을의 예감이 더운 기운을 몰아내고 있다. 헤르만 헤세가 ‘뜰이 슬퍼하고 있다 / 비가 꽃 속으로 시원스러히 빠져들어 간다 / 여름이 그 마지막을 향해 / 잠잠히 몸부림친다 // -중략- // 여름은 지금 잠시 동안 / 장미꽃과 더불어 잠들고 싶어 한다 / 이윽고 여름은 서서히 / 피로한 그 큰 눈을 감는다’는 시 「구월」에서 살필 수 있듯이 아쉬움(여름)과 새로움(가을)이 계절에서 교차하는 여운(餘韻)을 느낄 수가 있다.
지난 8월에는 (사)한민족평화통일촉진문인협회와 (사)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이 공동으로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평화통일, 애국시 낭송예술제’가 성대하게 열렸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통일. 애국’이라는 주제로 전국의 문인들이 앞장서서 통일. 애국에 관한 좋은 시를 많이 창작하고, 시낭송가들은 그 시들을 많이 낭송하여 통일. 애국 시가 널리 보급되기를 희망하면서 시낭송예술의 애호가를 늘림으로써, 맑고 아름다운 사회를 거쳐 통일의 문턱에 성큼 다가설 수 있으리라 확신의 취지가 8월 14일, 광복절의 엄숙한 분위기를 살렸다.
여기에서 현 국제펜한국본부 부이사장인 정순영 시인이 ‘그립고 / 그리워서 아파하는 / 봄날 / 통일의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 한반도에서는 / 꽃들이 울먹이며 / 북으로 간다. / 새들도 훌쩍이며 / 남으로 온다. / 파릇파릇 생기 오르는 땅 / 꽃들이 화사하게 웃으며 반기는 / 봄날 / 겨레의 간절한 소망 / 통일이여, 오라. / 통일이여, 어서 오라. / 이념의 밧줄이나 / 탐욕의 망태기는 팽개치고 / 사뿐한 봄 처녀 버선발로 오라.‘는 그의 작품 「버선발로 오라」를 낭송하여 많은 호응으로 갈채를 받았다.
각설하고 지난호 ᄒᆞᆫ맥문학에서는 서정성을 내포하는 잔잔한 시심들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더구나 떠나가는 여름을 생각하면서 추회(追悔)의 이미지들이 시간성과 동시에 부각(浮刻)되고 있다.
비 잠시 그치니 / 산 주름 주름마다 / 자욱이 물안개 피어오르고 / 계곡물 소리 / 졸졸 흘라간다 / 산허리에 / 그림으로 떠 있는 작은 암자에서 / 바람타고 들려오는 청아한 풍경소리 / 산새 되어 날아가고 / 아주까리는 잎사귀마다에 / 고인 빗물 / 시원하게 쏟는구나
--이창년의 「산중여적山中餘滴」전문
이 땅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답게 그의 시법은 아주 서정성을 탈피하지 못한다. 성하(盛夏)에 어디 계곡물에 발 담그고 며칠 지내다가 왔나보다. 산중에서 동화(同化)한 그의 시적 상황이나 전개는 이 세상의 번뇌를 말끔하게 지워버린 무아(無我)의 경지에 도달한 듯하다. 이러한 자연 서정은 우리 시인들이 즐겁게 응용하고 있지만, 이창년 시인은 관조(觀照)의 유유자적한 그의 내면의 온화함을 엿보게 한다. 만유(萬有)의 자연은 우리들에게 오관(五官)을 통한 이미지를 제공하는데 위의 작품에서는 주로 시각과 청각을 통한 신선한 감응(感應)을 전해 주고 있다.
그는 ‘자욱이 물안개 피어오르고’와 ‘산허리에 / 그림으로 떠 있는 작은 암자’ 그리고 ‘아주까리는 잎사귀마다에 / 고인 빗물’에서 그가 예리하게 주시한 시각적 현상은 시적 상황의 설정이나 작품 전개의 골격을 이루면서 ‘계곡물 소리 / 졸졸 흘라간다’와 ‘바람타고 들려오는 청아한 풍경소리’ 등에서와 같이 청각작인 음율들이 복합적으로 작품을 형성하고 있다. 이창년 제3시집 『나의 빈 술잔에』 실려있는 작품「산사여적山寺餘滴」에서도 ‘투명한 숲 그늘에는 / 산벌이 날고 / 땀을 식히는 바위 밑으로 / 물소리 맑구나 / 까칠한 스님의 손등에 / 나비 한 마리 / 사풋이 앉는다 / 한가한 아침 나절의 암자는 / 멀찌감치서 졸고 / 떠날 채비를 다한 나는 / 아쉬움이 손을 꼭 쥐다 / 흰눈 나리면 / 감자떡 해 놓을께요’라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서정적인 ‘여적’은 지금도 유효하게 적용되는 서정시법을 흡인(吸引)할 수 있게 한다.
바람 불지 않아도 / 때 되면 떨어질 것을 / 바람 기다리지 않고 / 꽃잎 떨어지길 기다리지 / 흔들림 많은 봄날 / 자지러지는 꽃가루 / 봄 가득하다 / 뿌연 눈 / 꽃을 따라 길어진 길 / 압축할 수 없는 / 지난 꽃길들의 재현 / 그래서 / 봄날은 또 간다.
--전용숙의 「꽃잎」전문
여기 전용숙의 서정은 ‘꽃잎’이라는 외형적인 사물에서 관조하는 시간성과의 별리(別離)가 자연의 섭리와 인간과의 상관이 그의 내면에 잔잔하게 의식으로 흐르고 있다. 그는 ‘바람 불지 않아도 / 때 되면 떨어질 것을’ 또는 ‘흔들림 많은 봄날’이 조화를 이루는 바람과의 해후(邂逅)가 ‘지난 꽃길들의 재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가슴으로 묻는다 / 지금의 삶을 사랑하느냐고 / 비록 몸 늙어 행동이 벅차지만 / 꿈에서 이상까지 / 시인의 살가운 영혼으로 / 세상과 말한다 / 봄이 꽃으로 시작하듯이 / 꿈같은 세상이지만 / 사랑하는 마음 없다면 / 한순간도 견딜 수 없는 것이 / 바로 나라는 것을 / 소꿉장난 같은 삶이 / 우리의 세상살이라는 것도 함께.
--고 운의 「고백」전문
고 운은 시인의 ‘고백’을 통해서 삶과 영혼 등이 ‘우리의 세상살이라는’ 삶의 원류를 회복하려는 탐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거기에는 언제나 ‘꿈에서 이상까지 / 시인의 살가운 영혼으로 / 세상과 말’하는 삶이 의식되고 있다.
일찍이 박목월 시인은 그의 글 「행복의 얼굴」에서 ‘삶도 시와 같다. 왜 사느냐? 즐겁기 때문이다. 그것 외에 삶의 본질을 설명한다면 그것은 삶의 속성을 어느 일면에서 풀이한 것이다.’라는 시와 삶의 연관을 통해서 행복을 논한 바가 있다. 그러나 고 운은 이러한 ‘바로 나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직접 화자로 내세움으로써 ‘고백’이라는 소재가 상황으로 감응하게 되어 독자들의 공감을 유로하고 있다. 이것이 고백문학의 이해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화자(나)를 시인 스스로의 어조로 너무 가깝게 접근라면 혹시 넋두리의 범주(範疇)를 벗어나기 쉽지 않게 됭 우려도 있다.
산골짜기의
이리저리 얽힌 바위틈을
비집고 힘들게 빠져나와
넓은 세상 만나려고
종종걸음으로 내려가네
울퉁불퉁 자갈길 지나
고통스러운지 졸졸졸 신음소리
굽은 길 좁은 길 막힌 길 험한 길 마다않고
온몸으로 부딪히며 내달음친디
이것이 우리에겐 흐름의 순리라고 종알거리네
밤이면 달빛 머금어
서릿발같이 하dis 몸이 되어
호수처럼 평온한 세상 꿈꾸며
한없이 흘러가는구나
--이석병의 「물의 여행」전문
이석병은 ‘넓은 세상’을 지향하는 인간의 희망과 ‘흐름의 순리’가 ‘평온한 세상’으로 전향하는 인간의 정도(正道)를 이 물을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세상은 ‘산골짜기의 / 이리저리 얽힌 바위틈’이며 ‘울퉁불퉁 자갈길’이며 ‘굽은 길 좁은 길 막힌 길 험한 길’이다. 이러한 고통의 세상을 그는 ‘비집고 힘들게 빠져나와’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내달음’치면서도 ‘이것이 우리에겐 흐름의 순리’라는 교훈을 적시하고 있다. 그는 또한 ‘밤이면 달빛 머금어’라는 어조에서 그가 여망하는 순응의 미학이나 순리의 정도를 탐색하는 시법이 ‘물의 여행’을 형상화하고 있다.
하루를 나서는데
날씨가 꾸물거린다
널뛰듯 비가 내리면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미친다
하늘에서 번갯불 치지 않아도
알아서들 번개를 친다
끼리끼리 폰으로 톡톡톡
환승해서 달려온 2번 출구 골목길
더덕향 꼬리치는 막걸리 큰사발에
더덕더덕 술비가 나린다
빈 갈비뼈가 흠뻑 젖는다
--정다운의 「번개 치다」전문
장맛비가 내리면서 방구들에 갇혀 있다가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면 정다운은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번개’를 친다. ‘환승해서 달려온 2번 출구 골목길’에 번개팅으로 모여 ‘주님’과의 교감이 시작된다. 우정이 넘친다. 지나가는 빗줄기와 함께 맥문학 사무실에 모여서 ‘더덕향 꼬리치는 막걸리 큰사발에 / 더덕더덕 술비가’ 온종일 내리고 모두는 ‘빈 갈비뼈가 흠뻑 젖’도록 마신다. 이러한 시법은 일상적인 소재에서도 정감이 넘치는 작품을 구상할 수 있다는 평범성이 그의 인식에는 언제나 시와 일상생활과 주변의 체험들이 보편성을 능가하는 정다운(그의 이름처럼) 작품으로 창조되는 좋은 현상을 일별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시법은 박일소도 작품「왕십리 이야기」중에서 ‘비오는 날 / 소월 시비가 있는 왕십리에서 / 고향 오빠와 순대국밥에 /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며 / 오는 비에 젖어 / 어린 날 추억을 이야기한다’는 상황은 정다운의 ‘비’에서 투사된 이미지가 ‘주님(酒)’이나 ‘막걸리 한 사발’로 동일한 체험의 투영으로 현현되고 있어서 우리 주변의 상황들을 모두 시적으로 변환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ᄒᆞᆫ맥문학』 2015. 9.)
시적 담론과 독백의 차이
복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이 지나고 말복이 다가오자 창밖에는 매미의 합창이 천지를 진동하고 있다. 계절의 순환은 자연의 섭리와 함께 생명성의 원형에 대한 향유享有를 실감하게 한다. 일찍이 박재삼 시인은 그의 작품「매미 울음소리」에서 ‘우리 마음을 비추는 / 한낮은 뒤숲에서 매미가 우네 / 그 소리도 가지가지 매미울음, / 머언 어린날은 구름을 보아 마음대로 꽃이 되기도 하고 잎이 되기도 하고 친한 이웃 아이의 얼굴이 되기도 하던 것을 // 오늘은 귀를 뜨고 마음을 뜨고, 아아 임의 말소리, 미더운 발소리, 또는 대님 푸는 소리로까지 어여삐 기뻐 그려낼 수 있는 / 명명한 매미가 우네’라고 매미소리의 절창絶唱으로 8월을 노래하고 있다.
지난 달에는 미당 서정주 시인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기리는 행사가 다양하게 열렸는데『미당(未堂) 서정주 전집』(전 20권) 중에서 1차분으로 시 전집 5권이 출판되었다. 68년 동안 시를 쓰면서 시집으로 묶은 작품 950편을 모은 것이다.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지금까지 간행된 시집과 시작 노트를 비교하면서 기존 시집의 오자誤字를 바로 잡은 사실과 미당이 발표는 해놓고 시집에 싣지 않은 작품 180편과 미발표 120편은 제외한 것이다. 이는 따로 미발표, 미수록 시집으로 묶을 예정이라는 것이다. 미당기념사업회에서는 동국대하교 강당에서 시전집 출판 기념회 열고 가수 송창식 씨가 출연해서 노래 ‘푸르른 날’을 부르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정현종 시인 등 문화인들이 시낭독을 하면서 미당을 흠모欽慕하는 큰 행사가 열렸다.
어느 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 나는 어느 親戚의 부인을 모시고 城 안 冬柏꽃나무 그늘에 와 있었읍니다. /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部分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 듯이 앉어 계시고, 나는 풀밭 위에 흥건한 落花가 안쓰러워 주워 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 놓았읍니다. / 쉬임없이 그 짓을 되풀이하였읍니다. // 그 뒤 나는 年年이 抒情詩를 썼읍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들을 주워다가 드리던-- 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읍니다. // 그러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아줄 이가 땅 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 내가 주워 모은 꽃들을 저절로 내 손에서 땅 위에 떨어져 구을르고, 또 그런 마음으로밖에는 나는 내 詩를 쓸 수가 없습니다.(본문대로 옮겼음) 미당은 작품「나의 詩」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들이 즐겨 외우던 「국화 옆에서」나「자화상」, 「화사집」,「동천」등과는 약간 다른 심정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시에 대한 소희를 내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어떤 하나의 담론으로 시적 정황을 설정해 놓고 자신의 정감을 가미하는 시법은 현재에도 많은 시인들이 응용하는 중요한 시적 전개임을 주목하게 한다. 이는 대체로 시인들이 자신의 체험적 상상력을 통해서 재생한 이미지지가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에 집요하게 그 원류를 천착穿鑿하는 피치 못할 한 방법이기도 하다.
당신은 밤이 무섭지 않나요
40평도 넘는 아파트에
외홀로 지새는 긴 밤이 외로워
몸부림치는 당신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마음속에 그리운 임은 있어도
차마 그립다는 말도 못하고
홀로 애태우는 쓸쓸한 가슴
당신의 마음 알 것 같군요
검은 장막 같은 어둠이 깔려오면
그리움은 파도처럼 밀려오고
눈을 감아도
내 얼굴이 더욱 영롱하게 떠오르지 않나요
내가 보고 싶으시죠
나도 당신이 몹시 보고 싶어요
이 밤
임의 품속에 안겨 잠들고 싶어요
긴긴 이 밤이 외로울 때면
못견디게 당신이 그리워져요
이학주의 「당신은 밤이 무섭지 않나요?」전문이다. 그는 상황 설정에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담론할 수 있는 스토리를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시적 화자가 ‘나’로 시작해서 ‘당신’과 소통에서 관념적으로 끝나는 시법이기에 담론에서 추출하려는 ‘그리움’의 주제가 너무 일반적이며 보편성으로 흘러서 독백과 구분이 애매해지는 경향을 읽을 수가 있게 된다. 대체로 우리가 시창작에서 인칭대명사를 화자로 설정하는 경우에는 소재나 제재가 외적인 요소인 사물일 때에는 그 사물이 ‘나’로 의인화하거나 상당한 다른 은유로 변환하기 때문에 ‘사물=나’라는 등식으로 이해하게 되어 작품의 이해도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이 작품과 같이 내적인 관념 이미지가 제목으로 했을 때에는 화자인 ‘나’가 자칫하면 그 시인 자신이 될 우려가 있어서 그 담론은 독백으로 전환되어 어떤 고백적인 작품으로 형태가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으니 유념해야 한다.
뭇 생명 본체는
빛과 물과
그리고 공기
육상 생태계는 강우량 기온에
토양 유형에
바람에 기대고
수중 생태계는 물에 스며드는
태양 광선 투과력과 기층 특성이나
수온 용존 물질에 기댄다
여기 이 을의 「생태계 영향」전문은 그가 주제 설정한 「노느매기-환경 오염은 떼죽음의 지름길」에서 이미 이해할 수 있듯이 그의 담론은 하나의 교시적敎示的인 메시지를 분사噴射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가 적시한 환경이나 생태계라는 자연 현상을 목도目睹하면서 생성한 지적知的인 이미지가 발현된 하나의 경고성 시법을 적용하고 있어서 보편적인 담론 같은 인상을 던지면서도 또 다른 이미지를 상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가 함께 연재하고 있는 환경시「수중에 녹아 있는 염」이나 「해양에 광합성 생물들」,「진흙에 뿌리내린 식물은」그리고 「산호초는 따뜻한 수온에서」에서 현현된 시적 전개의 담론은 바로 우리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친환경이라는 목적의식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의 시적 담론은 독백이 될 수가 없다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잠시 머물던 순천, 어린 날
올케 따라 간 순천 어시장
옹기종기 늘어선
아낙들의 조개맛살, 옹기 자배기
꿈틀거리는 낙지, 꼴뚜기 치켜들고
“살았어라우......”,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꼬막, 홍합, 전복
그 맑은 물, 양푼마다 헤엄치는 잔물고기들
그렇게
정갈한 아침 어시장
순천만 짭짤한 바다 내음
그 푸른빛이
신선한 풍광으로 남아 있다.
이 작품 이명희의 「순천 어시장」전문에서는 ‘순천 어시장’이라는 시적 상황에서 외적인 상황을 돌아보면서 추출된 상황의 전개가 바로 시적으로 연결되고 있는데 여기에서의 담론은 시각적으로 포착된 상황이 바로 현장성으로 유지되고 이미지는 크게 형상화한 부분이 없이 평상적인 묘사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단정은 ‘그렇게 / 정갈한 아침 어시장 // 순천만 짭짤한 바다 내음 / 그 푸른빛이 / 신선한 풍광으로 남아 있다.’는 어조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그가 전개한 담론은 어시장에서 바라본 ‘풍광’ 뿐이어서 시적 형상화를 통한 주제의 투영이나 창출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계절의 들뜬 하늘을 가로 지르며
지나가던 바람에 실려 온 철쭉
여기저기서 얼굴을 붉히고
사방을 엿보고 있다
누가 숨겨둔 정표인가
살며시
드러난 달아오른 얼굴
꽃 풋내에 취해
쓰러져 간다
아지랑이도 너울너울
타오른다
드러난 여백 사이로
바람,
아찔한 꽃수를 놓고 있다
이미화의「붉은 철쭉」전문에서는 위에 예시한 작품들과는 약간 다른 상황의 담론을 엿볼 수 있다. 우선 그가 설정한 시적 상황이 ‘지나가던 바람에 실려 온 철쭉’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철쭉’이라는 한 사물에서 추출한 이미지는 그가 체험한 상상력에서 재생한 심저心底가 잔잔한 서정성으로 분사되고 있다. 이러한 시법에는 특수한 상황 설정의 담론이나 독백의 여지가 없다. 문장도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조를 잘 지키면서 자신의 고백적인 표현이 아니라, 시적인 표정으로 잘 나탄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인 묘사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지나친 화자의 활용도 없고 사물의 응시凝視를 통해서 자신만의 시적 진실을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함께 발표한「고추장」에서는 다소 보편적인 담론으로 시를 구성하고 있어서 사적私的인(혹은 독백獨白적인) 담론으로 흐를 우려도 있다. 그런데 마지막 연에서 ‘쓰라린 눈동자를 훑으며 / 바람이 지나간다 / 아려오는 가슴 위로 / 동백꽃 / 글썽이며 바람에 떨어진다’는 어조에서 시적 형상화의 결론이 이를 희석하고 있는 효과를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김상회가 작품「큰 山」에서 ‘나는 큰 산을 좋아한다’거나 류기환이 작품「사랑의 자취」에서 ‘그대여! / 내 곁을 다녀갔나요’, 장석영의 작품 「보리밥 추억」에서 ‘보리밥에 찬물 부어 / 말아먹는 시원한 맛 상상하니 /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 그 때 그 시절 잊지 못해 / 침 삼키며 입맛 다시네’, 강봉중의 작품「수염 깍기」에서 ‘무디어진 호밋날을 벼르지 않으면 / 헐거워진 삶이 농삿일 그르치리’ 그리고 김오수의 작품 「행복은 부피가 없다」에서도 ‘나와 내 이웃에 대한 / 관심과 사랑이 쌓여 / 텅빈 가슴을 채워 주는 / 나의 기쁨과 행복이 된다’라는 어조에서 감지感知할 수 있는 담론은 자칫하면 독백의 우려를 상기해야 할 것이다.(『ᄒᆞᆫ맥문학』 2015. 8.)
생명 탐색에서 동반하는 시적 정황
7월이다. 일찍이 이어령 교수는 그의 글 「차 한 잔의 사상」에서 ‘칠월은 태양의 달이다. 밝고 뜨겁고 건강한 계절 -- 크레파스를 이겨 붙인 것 같다. 태양은 절망을 모른다. 일렁이는 바다 위에서 혹은 그렇게 푸르디 푸른 수해樹海 위에서 혹은 가난한 사람이나 외로운 사람이나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그 도시 위에서 칠월의 태양은 아름답기만 하다’라고 칠월을 예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간 유월에는 문학행사들이 메르스라는 이상한 병 때문에 연기가 되거나 취소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직도 그 후유증들이 여러 곳에서 남아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잔인했던 유월을 다시 상기해 본다. 이러한 와중渦中에서도 우리의 청록파 시인 박목월 선생의 탄신 100주년을 맞이해서 용인 공원묘지에 있는 그의 유택幽宅에서는 ‘목월시정원’이 개원해서 그의 제자들과 후학들이 대거 참여하여 행사를 성황리에 마치는 문학사의 한 장을 다시 정리하였다.
박목월 시인은 생전에 이곳 용인에 사후에 들어갈 묘지를 미리 사두었는데 이곳은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去龍仁이란 옛말을 실감하게 하는 곳이다. 지금 몇 만평의 묘지 공원으로 탈바꿈해서 단순히 장지로서의 묘지가 아니라 공원으로 변해 있었다. 박목월 시인은 당시 이곳에 땅을 매입하고 「용인행」(시집 『無順』에 등재)이라는 작품을 썼다. 그 전문을 소개한다.
목사님으 소개로 / 용인엘 갔었다. 내외가 / 고속버스를 타고 / 坪當 3,000원이면 싼값이지요 / 산기슭에서 소개업자가 말했다. / 나는 양지바른 터전을 / 눈으로 더듬고, / 서녘하늘 같은 눈으로 / 아내는 나를 쳐다 보았다. / 뫼뿌리가 어두워 들자, / 먼 마을에 등불 하나 둘 켜지고 / 그럴수록 황량해 보이는 山河. / 여보, 그만 가요, /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리가 / 가슴에 젖어들었다. / 돌아오는 길에도 / 고속버스를 탔다. / 무덤 속으로 달리는 차창에 / 비치는 내 모습, / 바람과 모래의 손이 /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다. / 우리에게 이미 토지는 / 이승의 것이 아니었다 / 가즈런한 한 쌍의 묘와 / 한 덩이의 돌이 떠오르는 / 흘러가는 차창의 스크린에 / 울부짖는 것은 / 바람소리도 짐승소리도 아니었다.
시인의 예감은 무섭기도 하다. 목월 시인은 이미 죽음을 감지했을까. 당시 교통도 험한 여기까지 와서 묘지를 장만하다니... 아무튼 유익순 사모님과 동행해서 ‘가즈런한 한 쌍의 묘’를 상상한 것이 이제는 합장으로 양지바른 유택에서 잠들어 있다. 그후에 필자도 졸시 「餘白詩 . 56」 전문(2006년 8월호 『심상』에 계재)에서 ‘그는 달이 되었다 / 남도 삼백 리 구름 속을 거닐다 / 문득문득 돌아온 그는 / 이제 책갈피에서 안식을 취한다 / 가끔 책상머리에서 그를 만나면 / 그는 다시 저녁놀이 되었다 / 청노루 맑은 눈에 어리다 / 인화된 강물은 / 지금사 내 혼불 지피고 / 이승 수만 리 저편 끝에서 / 나그네의 술익는 그 향기 / 바람소리로 如如하다 // 달빛, 놀빛 放光 / 그 광채 ..... / 朴木月 詩人’이라는 작품을 쓴 바가 있다.
지난호 『한맥문학』에 수록된 작품을 읽으면서 생명을 탐색하는 시편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시의 주제나 상황의 전개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체득한 존재의 인식문제에서 창출하는 생명성의 재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숙연한 시간이 왔다
하룻밤 지날 때마다
앞 다투어 피어나 가득했던 가지에
듬성듬성 빈자리,
죽음과 삶 뒤엉킨 불안한 공존에
남은 송이들 떨고 있다
한 밤 더 지나서
마지막 눈물 떨구면
대문 밖 기나긴 행렬
푸른 숲으로 점점이 멀어질 테지요
그땐 훌훌 육신 벗고
바람에 시들지 않는 환영幻影으로 오세요.
--강명숙의「꽃이여, 꽃잎이여」전문
강명숙은 시간성에서 ‘죽음과 삶 뒤엉킨 불안한 공존에’서 탐색하는 생명성의 절대적인 여망을 희구希求하고 있다. 그는 ‘꽃’이라는 사물에서 재생하는 상상의 범주範疇는 우리 인간과의 밀착密着된 ‘바람에 시들지 않는 환영幻影으로’ 상관하고 있다. 이러한 시법은 우리들이 자주 활용하는 이미지와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사물과 인간을 접맥接脈시키면서 주제를 흡인하는 시법의 정수精髓를 잘 응용하면서 삶과 생명의 체험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톨스토이가 그의 『참회록』에서 ‘삶의 의문에 대한 나의 탐구는 마치 내가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경험하는 것과 똑같은 경험이다.’라는 명언을 빌릴 필요도 없이 강명숙은 ‘죽음과 삶’에 뒤엉킨 꽃과 꽃잎의 존재 방식을 우리 인간에게 원용援用하는 이미지의 창출은 그의 순수한 시간성에서 창조하는 존재의 명멸明滅이 확인되는 작품이다.
강명숙은 함께 발표한 작품 「오월의 신부에게」전문에서도 ‘억압된 땅에서 싹을 틔우고 / 생명 없는 곳에서 / 꽃 피워낸 것에 대한 축포는 이미 끝났다 / 세상은 온통 푸르르다 / 크고 작음과 각진 곳이 없다 / 울쑥불쑥 솟구치던 욕망은 / 스스로 쇠락하여 일체의 규율에 순응한다 / 닥쳐온 인내의 시간 / 전 구역을 달려야하기에 / 미리 땀을 빼서도 안 되고 / 물놀이에 너무 취해 있어도 안된다 / 멀고 지루하지만 / 이미 반 토막 난 세월, / 피할 수 없는 상벌 앞에 서게 될 것이다 /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황금빛 들판.’이라는 어조는 바로 그가 지향하려는 삶의 의식이 시간과 생명의 동행으로 발현하면서 순응과 경계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성 탐구는 ‘오월’의 미미지에 부합하는 푸르름에서 반응하지만 ‘인내의 시간’이나 ‘반 토막 난 세월’에서 인식할 수 있듯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황금빛 들판’에의 기대와 여망은 오월의 청순한 청청靑靑으로 넘치고 있다.
비스듬히 황량한 들판이 보인다
거진항 할복장에서 늙은 여인네의 칼 사위에
뱃속 강탈당하고
애 [腸]를 태우는 그을음이
항구의 곳곳으로 검게 스며들 때
인제 용대리 덕장으로 끌려왔다, 마구 구겨진 채로
생은 내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수초사이를 헤엄치며
지느러미로 꼬리칠 때 진즉 알아야했다
삶의 형태는 내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칼바람 견디며 온 날들이 얼마인가
통통하던 사지 팅팅 불어 얼어터지고
속속들이 황달 좀먹어
몸은 푸석해져만 간다
명태였을 때의 아름다웠던 꼬리, 눈빛에
저녁노을이 걷어 채간 어둠이 내리고
죽고 살기를 반복하던 나는
이미 어제의 내가 아니다.
--강경애의 「황태덕장에서」 전문
여기 강경애도 ‘생’과 ‘삶의 형태’ 등에서 ‘죽고 살기를 반복하던 나’라는 황태의 일생을 반추反芻하고 있다. 그는 ‘이미 어제의 내가 아니다.’라는 결론의 어조에서 한 사물의 생명이 마감되는 현상에서 감득感得할 수 있는 이미지는 생명성이 시간과 융합하는 시적 정황(situation)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생은 내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라거나 ‘삶의 형태는 내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어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생명에 대한 예감적인 형상화는 시법의 절대적인 수용을 인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강경애는 특히 시적 화자인 ‘나’와 ‘너’ 등을 적절하게 투영하는 시법을 잘 활용하고 있는데 ‘내 의지대로’ 혹은 ‘내가 만들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황태=나’라는 의인화가 작품의 질적 향상과 그 이해를 상승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그녀, 그날따라(「겹동백」중에서)’와 ‘너의 아픔이(「섬」중에서)’ 등으로 의인법으로 처리한 화자의 시적 효과는 상당한 공감의 영역을 확보하는 장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두운 밤
세상을 밝혀주는 달같이
드러내지 않는
아름다움이 좋다
체면과 허울을 말끔히
벗어던져
진솔한 영혼의 눈으로
삶을 관조하고
머물고 간 자리가
풀꽃 위에 내려앉은 이슬같이
갓 피어난 난초같이
흔적 없이 그윽한 향기만 풍기는
있을 때는 모르지만
떠나고 나면 그리워지는
그림자가 멋진 사람이 좋다.
--황성운의「그림자가 멋진 사람」전문
이 작품에서 황성운의 삶은 현재와 미래가 상관하는 삶의 관조가 형상화하고 있다. 그가 ‘아름다움이 좋다’는 현재의 시제時制에서는 현실적인 삶의 형태를 가감없이 노출하지만 ‘진솔한 영혼의 눈으로 / 삶을 관조하’는 지적인 혜안이 나타남으로써 삶 저너머의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영혼의 세계까지도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머물고 간 자리’나 ‘있을 때는 모르지만 / 떠나고 나면 그리워지는’이라는 어조에서는 예감적인 미래의 예언이 승화하고 있다. 이러한 어조는 그가 ‘그림자’라는 가공의 시적 대상물을 설정하고 실재實在하는 우리 인간들의 형상을 현현하는 시법이 시선을 흡인하고 있다.
이밖에도 서정적인 작품들을 많이 대할 수가 있는데 최법매의 작품「봄나들이」에서의 서정은 심오深奧한 불성佛性이 깃든 서정이다. ‘4월 영산홍 / 꽃숲에 드러누워 // 맑은 하늘을 / 바라보고 있노라니 // 여기가 화엄 만다라 / 풀피리 릴리-리리리 꺾어 불던 꽃자리.’ 이렇게 ‘꽃숲’과 ‘맑은 하늘’에서 심취하는 그의 내면에는 바로 ‘화엄’을 느낄 수 있으며 ‘풀피리’의 은은한 선율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창년의 「봄바다」중에서도 ‘넘실넘실 / 너스레를 떠는 선머슴 / 사연이야 내 몰라도 / 갈매기는 끼륵끼륵 어쩌자고 보채는지 / 봄바다는 / 철썩거리며 마냥 철썩러리며 / 갯바위에 물보라 일으켜 / 무지개 꽃을 날리고 있구나’라는 봄의 서정이 바다에 넘실거리고 있다. 우리 문단 항간에서 이 시대에 마지막 남은 낭만주의 시인 이창년의 서정성은 이미 오래전에 채득한 삶과 생명 그리고 존재의 인식이 그의 가치관이나 인생관으로 정착한 것이 이제 서정의 향기로 정상 괘도에서 인생을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ᄒᆞᆫ맥문학』 2015. 7.)
봄의 잔영과 서정적 향연
‘유월은 모든 가능성을 배태하는 계절’이라는 스타인벡이라는 사람의 말처럼 유월은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시절을 마감하고 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청청(靑靑)의 계절이다. 일찍이 우리의 공중인 시인은「낭만적인 6월의 장」에서 ‘청청(靑靑), 수련(睡蓮)은 모란을 더불어 비취빛을 감는다 고궁(古宮) / 유월은 천년 그 고요의 무늬를 우려 / 젖빛 구름 너의 수의(壽衣) 삼아 연연히 흐르는 밀어(密語)의 화하(花河)’라는 어조로 푸르름을 낭만으로 승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호 『맥문학』에서는 지나간 봄의 향연이 많은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아쉽게 떠나간 시간성의 그리움이라는 또 다른 명제를 투영하기 위한 시인들의 꾸준한 탐색이 아닌가 생각된다. 6월에 이처럼 봄의 체험을 새롭게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동백 목련꽃들만 봄이련가
우리 님 풀어 내린 깜노란 머리채처럼
휘어져 내려 한들한들 물 위에 닿을 듯
가녀린 그 가지 눈마다
어느새 노릇노릇 잎이 돋았다
수양버들 그대가 있었기에
꽃보다 먼저 잎들이
새봄 알림을 알았네
--송재운의 「수양버들의 봄」중에서
우선 송재윤은 ‘수양버들’에서 봄의 동적인 형태를 시각적으로 교감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원해서 ‘새봄 알림’을 생명의 탄생으로 적시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응시한 사물 ‘수양버들’에서 획득한 봄의 탐색은 아늑한 서정적인 향연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는 다시 ‘경칩을 지나 / 땅속의 생명들 꿈틀거리면 / 푸른 호수 남녘 물가에도 / 수양버들 늘어진 온 가지마다 / 봄물 흐르듯 소리 들리는 듯/ 때따라 그를 찾아 호숫가 걸으면 / 쉼 없는 자연의 찬란한 변화 / 온몸에 스미는도다’라는 생명의 환희를 염원하고 있다.
이달에 발표된 황애덕의 수필 「봄의 향연」중에서도 ‘능수버들, 수양버들 들어진 가지마다 새순이 돋고 수백 년 자란 아름드리 거목들이 온갖 풍상을 이겨낸 표피를 자랑하며 버들가지 가지마다 짙게 내뿜는 내음과 함께 푸른 생명력은 보기만 해도 장하다’라는 봄의 소식을 생명성의 향연으로 현현하고 있다.
늙은 나뭇가지에 물기가 오르더니
면사포 쓴 신부가 노란 꿈의 꽃술을 받쳐들고
하얀 드레스를 터뜨리네요
오 오
꽃샘추위 속 산야에 퍼뜨리는
매화의 향기여
하나님이 땅에 내리신 신비로운 봄기운에
봄 쑥이 귀를 쫑긋
목련은 순결의 입술을 쫑긋
조잘거리는 개울물과 지저귀는 산새의 찬양의 노래가
산야에 여울지니
아지랑이 들길을 봄 신부가 춤추며 걸어오네
--정순영의 「봄 新婦」전문
초대시 정순영도 봄의 시간성에서 전개되는 동적인 이미지들이 시적인 정황(situation)으로 현현되면서 잔잔한 서정을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이 ‘봄 新婦’는 봄 소식과 상관하는 사물들이 집대성 하고 있는데 ‘늙은 나뭇가지’, ‘매화’, ‘봄 쑥’, ‘목련’, ‘개울물’, ‘산새’, ‘아지랑이’ 등이 함께 ‘봄 新婦’로 장식하는 시법은 자연 서정의 원류인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더욱 명징(明澄)하게 현현되고 있다. 이러한 교감은 결론적으로 인간의 생명성 창조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어서 계절적인 시간성이, 특히 봄이라는 시간성은 만물이 소생하고 꽃피우면서 열매를 맺게 하는 창조성이 ‘봄 新婦’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이달에 발표된 권순악의 평설「한시 몇 수」중에서 ‘봄이 오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가. 한겨울의 그 추운 눈보라를 이겨 내고 언 땅에서 뿌리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가 봄이 오면 싹이 트는 생명의 힘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자연의 경이로운 섭리에 감복할 따름이다. 잎이 피고 꽃이 피기까지 그 인고의 고통에도 신음이나 몸부림도 없다. 한 마디 말도 없으면서 어느 조용한 적막 속에서 피어나는 꽃은 위대하기만 하다.’라는 자연의 경이와 인간의 인고를 접맥하는 봄의 향연을 엿보게 한다.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봄날 벚꽃 난분분히 날리는 오후
어느 겨울날 희끗희끗 진눈깨비처럼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이제는 지상에 포근히 안길 일이다
괜히 길 잃은 사슴처럼 서성이지 말고
이제는 가슴으로 뜨겁게 안을 일이다
사랑 찾아 그렇게 안길 일이다.
--김학철의 「벚꽃 아래서」전문
김학철의 봄은 그가 체험한 ‘벚꽃’은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는 이 짧은 작품에서도 사물과 관념의 이미지를 잘 결합시킨 시법이 돋보인다. ‘봄날 벚꽃 난분분히 날리는 오후’와 ‘어느 겨울날 희끗희끗 진눈깨비처럼’이라는 사물적인 시행(詩行) 외에는 모두 관념 이미지로 시를 구성한 점은 우리 시법에서 사물과 관념의 적절한 혼용이 좋은 작품임을 엿보게 한다. 그의 주제는 ‘사랑’이다. ‘지상에 포근히 안길 일’과 ‘가슴으로 뜨겁게 안을 일’들이 바로 ‘사랑 찾아 그렇게 안길 일이’임을 적시함으로써 자연과 인간 모두의 사랑이 필요한 현실적인 감응(感應)을 발현하고 있다.
또한 함께 발표한 이연숙의 수필「꽃들의 반란」중에서 ‘벌이 사라지는 날 4년 후에 지구도 멸망한다’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나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아무튼 이 화사한 봄의 향연 속에서 나의 일정도 발빠르게 대처해야겠다. 저 만큼 뒤늦게나마 겨울 숲 나뭇가지에서도 지푸라기 속의 샛노란 잔디에서도 파르라니 몰오른 그들의 봄소식이 곧 전해 올 것이다.’라는 자연과 인간의 심도(深度) 있는 위기의식이 사랑으로 변해야 하는 당위를 말하고 있다. 김학철은 작품「초춘(初春)」에서도 ‘겨우내 움추렸던 내 마음 널어 / 말랑말랑 말리면 / 창문 너머 / 나풀나풀 /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 그리운 그대 품속에도 / 포근히 안기것다’라는 어조와 같이 사랑의 갈구(渴求)를 여망하고 있다. 특히 그는 시적 어휘에서 ‘보들보들’, ‘말랑말랑’, ‘나풀나풀’ 등과 같은 첩어를 많이 구사함으로써 시적인 효과를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산들바람이 목어의 귓불을 어루작거리고
녹슨 거울은 이별이 서러워서 웁니다
때 이른 풀벌레 소리
내 허파의 산소가 되어
옛 추억 바다를 건너갑니다
어느 시골마을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365일 외로운 돛대 되어
길손의 선각자先覺者 뭇 사람의 목련으로 피어나고
하이얀 꽃망울은
하늘을 우러르고
초부草夫에게 악수를 청합니다.
--최법매의 「봄바람」전문
최법매의 서정적 봄은 어떠한가. 그는 잔잔하게 속삭이듯이 일상적인 언어로 메시지를 들려주고 있다. 이처럼 특수하고 새로운 창조적인 언어보다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누구나 읽고 마음으로 깊이 새길 수 있을 때 서로의 작품적 신뢰는 형성되는 것이다. 그는 ‘녹슨 거울은 이별이 서러워서’ 운다는 어조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산들바람’과 ‘풀벌레 소리’, ‘시골마을’, ‘길손’, ‘꽃망울’, ‘초부’ 등은 누구에게나 쉽게 접목할 수 있는 이미지들이지만 ‘옛 추억 바다’에서 용해하는 사랑의 의미가 포괄하는 서정성이 엿보인다. 그가 함께 발표한 「그리움」도 시적 사유의 원천은 ‘봄비가 오는 날은 / 어머니의 화사한 둥근달이 높이 솟아오른다 // 봄비가 오는 날은 / 어머니의 살내음이 온몸을 휘감고’라는 등의 어조에서처럼 ‘봄비’와 ‘어머니’의 상관성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근본적인 의미를 추적할 수 있게 한다.
김상회는 「봄」전문에서 ‘여기저기 지각을 뚫고 나오는 / 새싹들의 함성 // 이곳저곳에서 앞다퉈 꽃망울 터지는 / 소리 요란하다 // 짐 속에 박혀 있는 사람도 / 다 쏟아져 나와 // 두꺼운 옷 다 벗어던지고 / 햇볕 받으며 / 상쾌하게 걸어간다 // 봄은 잠자는 대지가 잠 깨는 날 / 모든 것이 약동하고 활기차다.’는 어조로 만물의 소생에서 창조되는 생명의 과정에서 그의 이미지는 차분한 봄의 향연으로 흡인(吸引)하고 있다. 그는 ‘새싹들의 함성’을 통해서 ‘상쾌’와 ‘약동’등의 언어로 봄의 화두를 풀어나가고 있다.
라일락 나무 아래 향기 고요하다
바람이 불면 떨어지는 향기
이 세상 모두가 향기로 고요하다
잠에서 깨어난 개미가 줄지어 거리를 건너고
바람 몇 점이 고요를 깨우며 걸어간다
창 앞의 라이락이 고요로 묻힐 시간
더 높은 곳으로 향기가 바쳐진다
--정원옥의 「라이락꽃이 피면」전문
정원옥 역시 ‘라이락꽃’에서 유추하는 이미지는 그 향기의 고요로움에서 탐색하는 생명성의 이해가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는 적요(寂寥)에서 암묵적으로 분사(噴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하듯이 봄의 향연은 이제 유월에 와서야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시의 발상은 지나온 자신의 체험을 가장 중시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추억이거나 깊이 간직해야 할 정감일지라도 우리 시인들에게는 소중한 모티프가 되고 주제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는 ‘시는 힘찬 감정의 발로이며 고요로움 속에서 회상되는 정서에 그 기원을 둔다’는 언지로써 우리의 시 창작을 위무(慰撫)하고 있지만 개인의 정서가 우리의 칠정(七情-희노애락 애오욕) 중에서 차지하는 깊이와 무게는 각자의 사유와 관계가 지대할 것이다. 우리의 피천득 시인(수필가)도 일찍이「오월」중에서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라는 원숙한 오월과 순결한 유월 사이에서 시간과 자연은 그 순리에 따라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ᄒᆞᆫ맥문학』 2015. 6.)
생명의 존귀함 혹은 ‘나’의 지향점
5월이다. 녹음방초 호시절, 계절의 여왕이 찾아왔다. 5월의 이미지는 소설가 정비석이 그의 유명한 글 「청춘산맥」에서 말했듯이 ‘오월은 푸른 하늘만이 우러러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희망의 계절이다. 오월은 피어나는 장미꽃만 바라보아도 이성이 왈칵 그리워지는 사랑의 계절이기도 하다. 바다같이 넓고 푸른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구성진 흥어리타령이 들려올 것만 같고 신록으로 성장한 대지에도 귀기울이고 있으면 아득한 숲속에서 아름다운 희망의 노래가 들려올 듯도 싶다. 하늘에 환희가 넘치고 땅에는 푸른 정기가 새로운 오월! 오월에 부르는 노래는 그것이 아무리 슬픈 노래라도 사랑의 노래와 희망의 노래가 아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월에 꾸는 꿈은 그것이 아무리 고달픈 꿈이라도 사랑의 꿈이 아니어서는 안 될 것이다.’는 사랑의 메시지가 가득하다.
김영랑도 시 「5월 아침」에서 ‘비 개인 오월 아침 / 혼란스런 꾀꼬리 소리 / 찬엄(燦嚴)한 햇살 퍼져 오릅네다 // 이슬비 새벽을 적시울 지음 / 두견의 가슴 찢는 소리 피어린 흐느낌 / ..... // 이 아침 새 빛에 하늘대는 어린 속잎들 / 저리 부드러웁고 / 그 보금자리에 찌찌찌 소리내는 잘새의 발목은 포실거리어’라는 어조(語調)와 같이 사랑이거나 새 생명의 향훈이 지천으로 요동치는 계절의 절정이다.
지난 4월호 『한맥문학』에 수록된 시편들을 일별하면서 공감으로 유로한 화자(話者)들의 언술과 주제들은 5월의 이미지와 같이 생명성 탐구에 많은 관점을 집중시키고 있다. 우선 오희창의 「해탈 Ⅱ」가 ‘나’와 접맥(接脈)하면서 우리들을 흡인(吸引)하고 있다.
안방/깊숙이 들어와 /정갈하게 빗질하고 나간/ 햇살/ 정수리에 쏟아지면
그리자/ 가랑이 속으로 파고든다
- 벌거숭이 된다.
숨었던 그림자/ 사타구니 사이로 나와
또다시
발목 잡아/새벽안개 피워도/해는 가슴속에 뜬다
- 나를 잊는다.
오희창의 시적 어조는 명쾌한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간명하면서도 시적 전개는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시적 주제가 명징(明澄)해지는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는 ‘해탈’이라는 관념적인 소재에서 그가 불교적으로 체득한 속세의 속박과 번뇌를 벗어나서 걱정과 근심이 없는 안온한 심경의 경지에 이르는 심적인 진실을 탐색하는 시법을 이해하게 한다. 이 작품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나를 잊는다’라는 어조의 핵심이 ‘나’를 통한 시적 진실의 지향점인데 이는 그가 보편적인 심경에서 창출하는 일상적 사유보다는 더욱 성찰되고 자애롭게 삶을 영위하는 생명성의 원류에 시적 발상의 기저를 둔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발길을 옮긴다/ 생각으로 가득찬 머릿속/미래는 확신 없는 일들로 빨간불/욕심으로부터 내려놓는 연습 중이지만/말처럼 쉽지 않다// 매사 /말 따로 몸 따로/엇박자 장단에 주름진 미소
여전히, 비우고 버리는 것에/쥐똥만큼의 진척을 보이지 않는다//나는 알고 있다/인생은/처음부터 작심삼일로 시작한/불확실성의 활화산//고체덩어리였다는 것을.
--박경자의 「無題」전문
그렇다. 박경자 역시 ‘미래는 확신 없는 일들로 빨간불 / 욕심으로부터 내려놓는 연습 중이지만 / 말처럼 쉽지 않다’는 인식이 그가 살아오면서 체득한 인색적인 사유나 정서가 ‘욕심’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뇌가 시적 인식으로 그 원류를 이루고 있다. 그의 이러한 고뇌는 ‘여전히, 비우고 버리는 것에 / 쥐똥만큼의 진척을 보이지 않는다’는 어조에서 이해할 있듯이 그가 ‘인생’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는 어조가 바로 인생과 삶이 조화를 이루려는 화해가 바로 그의 생명성의 근본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함께 발표한 작품「소래포구」에서도 ‘지금 여기에 / 내가 숨쉬고 있음에 / 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 의미로 재는 것이라고 / 누군가 속삭이는데.’라는 결론을 적시하고 있어서 인생문제를 심도(深度) 있게 탐구하고 있다.
아! 너무 춥다
이대로 선 채 조금만 지나면 바위가 되겠구나
낡은 초가에 문도 없고 한쪽 벽은 또 어디로
그때는 못 보았는데 지금 보이는 건 왜일까
내가 감내해야 할 인고의 시간이라며
백년토록 검은 연기에 그을린 천장이 조롱한다
나도 따라 그저 헛웃음 울 수밖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새벽 여물죽 먹던 소와 함께
촌부의 시간도 사라졌으니
나 또한 곧 시간 여행을 마칠 순간이 오리라
물을 뿌려 정갈하게 비질한 부엌이니
무너진 벽 사이로 밤이면
찬바람과 달빛이 들어와 쉬어 가리
군불도 때고 예불도 마치고 공양도 했으니
휘영청 마실이나 가볼거나.
--禪門의「산중세담-백일기도의 백야성」중에서
이 작품에서도 ‘나 또한 곧 시간 여행을 마칠 순간이 오리라’라는 예감의 어조가 흡인되고 있어서 ‘나’의 지향점은 바로 인생이나 생명과의 상관성이 시적 주제로 투여되고 있다. ‘내가 감내해야 할 인고의 시간’이나 ‘나도 따라 그저 헛웃음 울 수밖에’ 없는 삶의 현장과 그 여건은 그가 지향하는 진실의 향방이 모두 생명과 연관하는 시법에서 공감의 영역이 확보되고 있다.
하늘도 울었고
땅도 울었습니다
행복을 전해주던 풀벌레도
고이 잠들었습니다
생명의 존귀함은
멀리멀리 맹풍(猛風)으로 사라지고
검텡이 버섯구름이
온 누리를 잿빛으로 물들이고
새벽을 알려주던 닭들이 쓰러지고
주인 잃은 개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갑니다
어미 잃은 송아지는 음메 소리 한번 못하고
피를 토하고 쓰러집니다.
--최법매의「후쿠시마 변주곡 . 2」중에서
이 작품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생명의 존귀함’을 주제로 작품을 전개하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작년에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사고 3주기 추모 시낭송과 법회에서 발표했다. 필자가 이 추모시에 대해서 감상평을 다음과 같이한 바가 있었다.
‘오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3주기를 맞이하여 사상자법회 및 추모시낭송회가 성스러운 조계사 대웅전 큰 법당에서 열림에 따라서 김천 직지사 명적암 주지이시며 시인이신 법매 스님이 낭송한 [후쿠시마 변주곡] 3편과 다른 스님들의 작품을 잘 감상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을 강타한 규모 9.0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서 후쿠시마현에 위치해 있던 원자력발전소가 붕괴되면서 방사능이 누출된 사고, 우리 인류의 대재앙을 당한지가 벌써 3주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어떤 보도에 따르면 발전소 작업원이 4,300명이나 사망하고 지금도 그 악몽에서 시달리는 사람이 얼마인지조차도 확실하게 발표를 하지 않고 있어서 도쿄전력이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법매 스님께서는 [후쿠시마 변주곡]을 통해서 그날의 비극을 재조명하면서 ‘인류의 암덩어리 / 생명’성에 대한 존엄을 다시 강조하였으며 유명을 달리하신 ‘어머니의 가슴’으로 울려퍼지는 울음의 메아리가 지금도 진동하고 있음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법매스님은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뜯어먹는 / 후쿠시마 그래도 원전이더냐 / 알량한 문화문명 미명 아래 / 지구는 병들고 / 우리의 생명은 피를 토하고 쓰러진다’는 담담한 어조로 현대문명과 함께 우리 인간들의 생명성을 주제로 강렬하게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최법매 스님의 작품을 언급하였다. 원로 스님 시인인 진관스님과 청화 스님 등이 동참해서 낭독했고 신도와 시애호가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그는 다시 ‘구부리면 코 닿을 곳 / 도호쿠(東北) 후쿠시마 원전 / 인류의 암 덩어리 / 생명을 좀먹는 벌레들이 / 무시무시하게 다가옵니다(「후쿠시마 변주곡 . 1」중에서)’라거나 ‘희망의 농부가를 부르는 / 생명이 흐느적거리며 / 길 위에 맥없이 쓰러집니다「후쿠시마 변주곡 . 3」중에서’라는 애절한 어조와 같이 그는 존귀한 생명에 대한 경악과 동시에 경외(敬畏)를 분사하고 있다.
이밖에도 삶과 생명이 상관하면서 ‘나’를 지향하는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으나 이영성의 ‘숲속의 아늑한 속에 산새들 /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이 / 삶의 변주곡으로 / 울려 퍼진다(「봄 숲길」중에서)’거나 ‘생(生)의 끈기 질긴 / 생명력을 말하려면 어찌 / 여기서 너를 제(除)하랴(「잡초-그 묘한 지혜봄」중에서)’ 등과 같이 생명 지향의 시적 진실을 사물과 관념의 복합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ᄒᆞᆫ맥문학 201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