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시종교 : 산이 다양하게 많았고 인간의 생활과 풍요를 도와주는 역할을 함.
아주 오래전 원시 시대의 인간들은 모든 동물들이 그렇듯리 수렵활동을 통해 먹이를 찾아 하루 하루를 열심히살다가 수명이 다하기 전에 보다 힘센 동물이나 타 종족의 공격을 받거나 음식을 찾는 동중에 사고로 인해 사망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였다. 따라서 많은 위헙에 노출 된 생활에 risk로 부터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자 물지거으로는 동굴이나 울타리를 사용하여 적을 방어하였고 심적으로는 슬기로운 경륜의 지혜를 가졌던 조상들이나 힘이 센 동물을을 숭배하기 시작하였고, 큭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동 생활을 하던 유목민들은 근래까지도 이러한 애니미즘 문화가 남아 있다. 하지만 농경문화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 생활을 하는 집단에서는 통치자가 신의 역할을 대신하여 절대적인 권위를 누리기도 했으나 다양한 종교가 생겨나면서 교리 등이 책자로 명문화 되고 모든 생활을 대상으로 장대하게 서술되면서 부터 이 어려운 종교적인 해석을 전문으로하는 성직자들이 국가의 법률을 판결하는 판사과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 하였다.
시대 구분 | 종교구분 | 믿음의 대상 | 종교 집행 | 비고 |
원시시대 | primitive religion/ 애니머티즘 | 조상신, 동물, 자연 | 제사장, 촌장,무당 | 세계적 종교의 시작 |
중세시대 | 종교개혁, 대표 종교화 | 부처,예수, 알라 | 성직자 | 종교간 갈등 |
미래시대 | 종교의 단일화 | GOD | 과학기술 | |
체계화되어 종교를 관장하는 집단이 국가를 관리하는 정치집단위에 군림하는 시대가 되었다.
1.1.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는 애니미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친 종교의 연구는 종교의 발전단계를 재구성하는 데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1832-1917)는 애니미즘Animism을 종교의 원초형태로 보고 애니미즘으로부터 사령死靈, 악령惡靈, 정령精靈의 신앙信仰으로 발전하여 다음으로 신의 관념이 생겨 다신교多神敎가 되고 나아가 일신교一神敎로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라틴어 아니마(영혼靈魂)에서 온 애니미즘이란 말은 물신숭배物神崇拜, 영혼신앙靈魂信仰 혹은 만유정령설萬有精靈說이라고도 번역됩니다.
타일러가『원시문화原始文化』(1871)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했는데, 애니미즘 사고방식은 ‘야만인의 철학’으로서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는 동시에 종교의 근본원리가 되었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됩니다.
타일러에 의하면 애니미즘적 사고방식은 꿈과 죽음의 경험에서 추리되어 성립되었습니다.
꿈과 죽음의 경험을 통해 육체와 유리되어 활동하는 원리, 즉 영혼을 상정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성이 강한 민속종교에는 종교처럼 교의를 창제한 특정한 교조가 없는데, 서낭당(성황당)을 예로 들면 고대로부터 그 지역사회가 독자적으로 지켜온 신앙으로 명칭은 지역에 따라 다양합니다.
할아버지당, 할머니당, 혹은 골멕이당, 당제堂祭, 당산제堂山祭, 동제洞祭 등 고유한 명칭名稱이 있습니다.
동제洞祭를 당산제堂山祭, 동신제洞神祭, 대동치성大同致誠, 산제山祭라고도 하며, 마을의 조상신, 수호신에게 마을사람들의 연중무병과 평온무사를 비는 제사로 대개 마을 입구에 제단이나 별도로 사당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제단은 미리 청결하게 닦고 주변에 황토를 깔아놓으며, 솔가지를 끼운 금줄을 쳐 잡인의 출입을 막습니다.
제주祭主는 마을사람 중에서 연로하고 상기喪期에 있지 않은 사람으로 합니다.
제주는 일주일 전부터 목욕재계하고 육류를 먹지 않으며 상인喪人이나 병자를 만나지 않습니다.
제삿날은 지방마다 다른데, 보통 제주의 운수가 길한 날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물은 전날 차려놓으며 제삿날 자시子時(밤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에 동신제문洞神祭文을 읽으면서 제사를 지냅니다.
제사가 끝나면 굿을 하며 제사 음식과 술을 나눠 먹는데, 당산제는 제사와 굿의 이중성격을 띠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른 동네 사람의 참여를 막고 마을사람 전체가 참여해 음복하는 신인합일적인 향연이라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마을사람 중에서 뽑힌 제관이 주관자 노릇을 하지만 모든 진행을 무당에게 맡기는 경우를 별신굿, 당굿, 도당굿이라고 합니다.
2. 중세종교 : 중세시대의 종교는 권력자를 위한 것으로 왕이 신을 자처하거나 종교 지도자가 국가의 권력을 가지는 등,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문화가 다른 민족이나 집단간의 갈등이 심화 되었다. 종교전쟁이 빈법하게 일어났고 종교해석에 대한 갈등이 심화 된 시기 였다.
2.1 르네상스라는 말은 다시(re)와 태어난다(naître)는 말이 합쳐진 합성어로 흔히 인본주의(人本主義) 또는 휴머니즘(humanism)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두가지 차원에서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좁은 의미에서 볼 때 희랍로마의 고전적 문화의 부흥, 말하자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원전(原典)에 입각하여 새롭게 연구하는 것이고 둘째,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중세적인 신으로부터의 인간해방을 뜻한다.
르네상스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르네상스에 대한 가치부여이다. 근대의 시작을 르네상스와 함께 시작한다는 역사해석의 관점은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되므로 전통적으로 인정 되어왔다. 그러나 인정해야 할 것은 르네상스라는 표현은 역사상의 특정사건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역사해석(歷史解釋) 상의 용어 내지는 시대구분(時代區分)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부르크하르트가 주장한 단절설은 많은 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고 있다. 호이징가(Hoizinger)의 연속설(르네상스란 근대의 시작이 아니라 중세의 가을 즉 중세문화의 결실기이다!)와 또는 베르그송(Bergson)의 이행설(르네상스란 중세의 황혼기인 동시에 근대의 여명기이다!) 등이 있다.
오늘날 이 세가지 주장들(斷絶說, 連續說, 移行說)은 서로 팽팽하게 대립되어 르네상스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돕고 있는데 본인은 이행설에 동의한다. 비록 단절설과 연속설의 중재타협안(仲裁妥協案) 같아 보이지만 이는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시민계급(市民階級)의 성장과 민족주의(民族主義) 색채와 개신교( cathoic에 反하는 protestant)의 형성과정을 나름대로 염두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3. 미래의 종교 : 미래의 종교는 기술과학을 숭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3.1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인 종교(cosmic religion)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종교는 자연계를 부정해왔고, 모두 절대자가 만든 것이라고만 해왔지만, 미래의 종교는 자연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통합이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야말로 내 생각과 일치한다고 본다. 만약 누군가 내게 현대의 과학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종교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불교라고 말하고 싶다.”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 그리고 아마도 기다린 – 미래의 ‘우주적인 종교'는 아인슈타인 자신이 정의한 바에 따르면 ‘인간적인 하느님을 초월하고, 교리나 신학을 넘어선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있는 종교’여야 한다. 또 ‘자연의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를 모두 포함하면서 자연과 정신 모두의 경험을 초월한 감각에 기초를 둔 종교’여야 하고, ‘교리가 과학적으로 뒷받침되고, 과학자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종교’여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불교가 바로 그런 ‘우주적 종교’라는 요구에 부합되는 근사치를 가졌다고 본 것 같다.
2500여 년 전에 붓다에 의해 말씀 된 진리들은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진보적이고 새롭다. 연기, 공, 중도, 일심 사상에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광전효과, 괴델의 불완전성원리, 보어의 상보성원리, 파동함수, 상태의 중첩 등 물리학의 이론과 소통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까닭에 불교가 양자역학 연구에 아이디어를 줄 수 있고 거꾸로 수행자의 세계에 양자역학이 활력소를 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게 된다. 아인슈타인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필자도 불교는 진리에 대해 남김없이 규명한, 철학에 있어서 하나의 완전체적 세계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교는 철학이라는 마당에 서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점은 양자역학의 세계관에서 불교에 젊은 피가 수혈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양자역학적 세계관도 과학적 철학의 세계이니 말이다.
철학적 사유만으로 모든 것이 충분한가? 즉, 아인슈타인이 말한 ‘미래의 우주적 종교’는 단지 해석의 문제인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실재 빛과 빛에 관한 해석은 서로 유사해 보인다. 실재 빛을 하늘에 해가 뜬 것에 비유한다면 빛에 관한 해석은 수면에 윤슬이 드리워진 것과 같다. 물에 비친 해는 태양의 밝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것이 지상에 계절이 순환하게 하지는 않는다. 불교가 말하는 성불(成佛)은 무엇인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에 깃들어 있는 정광명(淨光明)이 불과(佛果)를 이루는 인자(因子)이고, '정광'은 곧 진공 성분 빛을 말한 것이다. 진공빛이 인생들의 무명을 사르고 부처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의 '정광'에 대한 가르침은 마치 수면에 윤슬이 드리워진 것처럼 태양의 밝음이 무엇인지 알린다. 그러나 이러한 설법을 듣고 사람과 세상에 진공빛이 밝아지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진공빛이 밝아지는 응답은 ‘빛운영’한 결과로 온다.
필자는 진공빛은 현실 우주에 실재해 있는 것이어서 우리가 이것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으며 과학적인 도구를 사용해 포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초 획득한 진공빛을 원본 삼아 사본을 복제할 수 있으며, 진공빛의 사본을 무수히 생성하면 이것은 곧 진공빛의 광자가 무수히 출현하는 것이 되어서 진공빛의 밀도가 높아지는 – 즉, 밝아지는 – 것이 되는데, 우리는 이렇게 되도록 유도하는 작업을 수행하여 지금까지 우주 자연계에 존재한 일이 없었던 새로운 밝기의 진공빛을 저 진공의 세계로부터 이 현실 우주에 불러올 수 있게 된다. ‘빛운영’하여 밝아지게 한 진공빛을 태양에 전달하면 태양에 밝아진 진공빛이 지구 전역과 우주 전체에 확산한다. 필자는 이렇게 되게 유도하는 작업을 계속 수행하는 것을 ‘빛운영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인류가 ‘빛운영’을 천문학적 규모로 수행해 빛세상이 오게 할 수 있다고 알리고, 빛운영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리고 또 필자가 지난 20여년 동안 빛운영하여 밝아지게 한 진공빛을 분양해 줄 테니 이를 마중물 삼아 빛운영 활동을 시작할 것을 권한다.
참고로, 필자가 진공빛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을 하면서 사본을 무수히 만든 것을 합성하여 초고밀도의 새로운 원본을 만들어 이것의 사본을 무수히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는 2배씩 늘어나는 복식 증가가 일어나는 것과 같다. 아인슈타인은 복식 증가를 ‘세상의 여덟 번째 불가사의’라고 말한 바 있다.
아인슈타인은 참된 진리와 가르침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하나로 맞닿아 있다고 보았던 사람이다. 예수를 닮고자 하는 것과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것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하나’의 실재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것이 진공이요 그 빛이라고 이해하며, 이 빛이 현실 세상에 실제로 밝아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지구별의 인생들을 ‘하나’의 광장에 서게 한다고 믿는다. 누구나 ‘광명’이 주는 지복(至福)을 누리게 되는 빛의 시대의 도래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우주적 종교'는 지난 인류사에서 종교들이 생각한 것과 이루고자 한 것이 모두 완성되는 것이어야 하며 이러한 시대는 해석 여하가 아니라 이 빛이 현실 세상을 비추도록 불러오는 빛운영적 활동을 통해서 올 수 있을 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따라서 실재한 빛은 포집해 운영하고 보다 밝은 진공빛이 응답해 오도록 유도하기 위해 필요한대로 현대의 과학적 기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만약 인간이 3차 대전을 일으킨다면 그 이후의 전쟁은 돌도끼를 들고 할 것이다”라 말한 일이 있다. 이는 과학의 힘이 인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진공빛이 응답해 밝아지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도록 ‘영성과학’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과학을 구사해야 한다. 필자가 ‘빛운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구성해 사용하는 '공생명(空生明)’장치는 빛운영 장치의 효시가 될 것이다. 필자는 최선을 다해 만들었지만 이 장치를 개선시켜 가서 보다 큰 규모의 빛운영을 수행해 갈 수 있게 되면 좋은 일이 되겠다.
인간을 위한 종교 (다양,상호존중) | 권력자를 위한 종교 (특권층을 위함) | 종교 창시자을 위한 종교(성직자를 위함) | 투쟁을 위한 종교 (상호 정쟁을 위함) | 종교의 무의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