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지만 매우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했다. 지식탐구에 대한 갈망, 신념과 현실의 갈등, 자아를 찾고자 하는 끊임없는 갈증이 그것이다. 다른 형태의 이 열정들은 마치 거센 바람처럼 나를 이리저리로, 고뇌의 깊은 바다로, 절망의 벼랑으로 휘몰았다.
내가 지식탐구에 몰두한 첫 번째 이유는 새로운 정보(지식)가 주는 달콤함 때문이다. 그 달콤함은 너무도 커서 그 환희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몇 날을 뜬 눈으로 지새워도 좋다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달콤함은 내 신념을 실현하는 그리고 상대방에게 나를 신뢰하게 하는 토대였다. 내가 새로운 지식 습득에 매달린 그다음 이유는 개발우선 사고를 지닌 사람들에게 생태보전을 설득하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내가 지식탐구에 진력을 다한 마지막 이유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유일한 트리거(trigger) 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열정으로 나는 현실과 갈등에 부딪혔다. 나는 인간을 위해 자연의 생태 단절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하며 그 이유를 알고자 했다. 한편 나는 생태(生態) 흐름이 우리 인간 삶의 질 유지를 위해 더 중요한 것임을 이해시키고자 머리에 쥐 날 만큼 노력했다. 생각과 실제의 부조화를 끊임없이 경험하며, 곱이곱이마다 때로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또 지식실현을 나는 성취했다.
지식과 현실과 괴리는 가능한 한 높이높이 나를 혼란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에 닿게 되는 지식에 의한 신념과 현실에서 제기되는 갈등은 내가 선택한 삶의 길을 초라하게 했다. 어쩌면 지식탐구에 몰두한 것은 인정받고 푼 수단일 뿐, 스스로 강요한 열정은 아니었을까. 이 같은 자문(自問)은 신념과 실제의 변곡점마다 자주 나를 흔들곤 했다. 신념 성취여부에 상관없이 허전함과 정신적 피로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갈증은 더욱더 커지게 되었다. 혼돈은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새로운 열정으로 표출되었으며, 그 열정에 몰두하면서 나는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나는 한번 쯤 살아 볼만한 삶의 길을 걸었고, 의미 있는 여정이었음에 내 스스로 자랑스럽다. 그럼에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싦의 질을 우선하는 새로운 여정의 기대감이 나를 설레게 한다. 내 미래 불확실이 커질수록 내가 선택한 삶의 순간순간 내 가슴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선택에서 나는 앞 세 가지 열정과 전혀 다른 "무엇"에서 터져 나오는 열정을 경험해 보고 싶다. 그 열정의 끝이 또다시 다른 선택의 길을 찾을지라도. *수정(24.7.14)
<버틀런드 러셀 자서전(2011) 부분을 차용한_ 5단락 글쓰기 연습 : 6월 과제>
* 후기 : 글의 한계
- 러셀 글은 자서전 서문 부분이어서 자서전 본문내용이 서문의 축약된 문장을 해석해 주겠지만, 내 글은 풀어줄 "다음"이 없기에 글은 한계가 전제되어 있다.
- 번역글이라 문장을 이해하는데 제약이 있었다. 레셀 글 "틀"에 내 삶을 투영해 글을 쓰는 작업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삶의 궤적이 다름에도 내 인생을 그의 언어에 맞추는 건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은 도전이었다. 워낙 다른 삶을 살아왔고, 내 것을 감히 그의 위대한 인생에 빗대어 글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고자 다소 억지스럽고 과장된 문장과 용어들을 적시해 보니 매우 생경스럽고, 만들어진 글은 내 것이 아닌듯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내 인생을 세 가지로 나누어 정리해 보니, 내가 살아온 길이 러셀의 위대함에 비할 바는 결코 못되지만 나름 괜찮았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글의 조각과 내 열정을 맞추는 내내 영광스러웠다, 마치 러셀이 된 듯한 착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