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가장 빛난 여자에 대한 기억/천상인
내가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여름이었다. 내 나이 23살에 만났던 21살짜리 여자, 이 세상에서 가장 빛나던 그 여자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중학교 3학년 나는 그토록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하던 아버지와 부자의 연을 끊었다. 세상엔 전화위복이란 말이 정말 있는 모양이었다. 이성계에게 위화도 회군이 있었다면, 나에겐 그날 아버지와 연을 끊을 수 있는 명분이 있었다. 아무리 타협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그 어떤 힘이 나로 하여금 한 평생 내 마음에 담고 있던 것을 실행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었던 그날 밤이었다. 아버진 또 술이 잔뜩 취해 들어오셨다.
“너 옷 벗어! 활딱 벗어 새끼야!”
나는 아버지에게 한 대라도 덜 맞으려고 얼른 옷을 벗었다.
“지금 당장 지게 지고 나무 해와! 안 해 오면 넌 죽는다!”
아버지는 성난 야수의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11시가 넘어 있었다. 팬티 한 장만 달랑 걸친 나는 지게를 지고 신작로로 나왔다. 생살을 씹어 삼키는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의 밤 한가운데 던져진 나는 도저히 산에 올라 나무를 할 수 없었다. 나는 담 귀퉁이 쪽으로 숨어 쪼그려 앉아 방안의 동태를 살폈다. 날 선 바람이 생쌀을 씹어 삼켰다. 나는 죽기를 각오했기에 그 바람과 타협하지 않고 참아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내 온몸은 마비된 것처럼 단단해졌다. 하지만 식어질 수 없는 나의 심장은 더욱 큰 소리를 내며 요동쳤다. 이대로 죽기는 억울했다. 나는 기필코 살아남아 내 삶을 보상받고 싶었다. 창호지 위에 비치던 방안의 움직임이 사라지자 내 살결 위에 돋아난 감각의 세포들이 날을 세웠다. 이때다 싶었던 나는 슬그머니 작은 방 앞으로 가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다. 낡은 옷장 문을 천천히 열었다. 할머니가 얻어 왔던 낡은 옷을 주워 입었다. 밖으로 나온 나는 그 길로 줄행랑을 쳐서 어치 고개를 밤새도록 걸어 넘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고모 집에 도착했다.
그날 이후 나는 여동생과도 만나지 못했다. 가끔 통화는 하고 지냈던 미선이를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미선아 오빠야 사상에 도착했다.”
“오빠야! 왔나! 차가 밀렸을 낀데, 빨리 왔네! 그럼 광안리해수욕장으로 온나.”
동생은 내가 부산에 살고 있는 사람인 줄 착각하고 있는듯 했다.
“가쓰나야! 그냥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찾아가노?”
“오빠야 문뎅이가? 척하면 알아서 와야제!”
“알았다. 가쓰나야!”
도리 없는 내가 말했다.
조약돌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눈이 따가웠다. 바닷가라 바람이 좀 불어올 줄 알았지만 나의 기대를 저버린 광안리 해수욕장은 강불 위에 달구어진 프라이팬 같았다.
“어떻게 잘 찾아왔노! 오빠야.”
동생과 나는 커다란 나무 아래 위치한 벤치에서 서로가 떨어져 지냈던 그 무수한 세월을 관통하여 재회했다. 동생은 많이 변해 있었다. 한마디로 여자가 다 되어있었다. 조약돌에 반사된 햇빛만큼이나 눈부셔서 나는 동생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길에서 힐끔 쳐다보던 생면부지의 아가씨들에게서 느꼈던 그 묘한 감정을 여동생에게서 느꼈다. 나 스스로에게 “미친놈 친동생이다 자식아” 하고 욕을 했다.
“미선아 와 이리 예뻐졌노? 어릴 땐 못난이였는데.”
그렇게 말을 하고 나자 전 보다 여동생 앞으로 조금 더 다가선 느낌이 들었다. 동생과 나는 조약돌이 드리운 해안가를 걷기 시작했다.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조약돌이 잘그락 소리를 냈다. 미선이 때문에 긴장한 탓이었을까? 내 등엔 땀이 질질 흘러 티셔츠가 달라붙었다. 진득한 느낌이 너무나 불쾌했다. 동생은 무릎까지 내려온 치마를 입고 있었다. 동생의 하얀 블라우스를 긴 머리가 더듬고 있었다.
“아휴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더워도 너무 덥다.”
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노! 더우려면 아직 멀었데이.”
나는 동생이 낯선 여자 같아서 아직도 서먹한데 동생은 내가 멋있는 남자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미선아 저기 가서 아이스커피나 한 잔 하자.”
동생과 나는 매점에서 아이스커피를 사서 마셨다. 차가운 느낌이 목을 타고 내 안에 전해지자 순간은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미선아 덥고 걷기도 이제 힘들다.”
어제 잠을 설친 이유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럼 저리 시장으로 가자 오빠야.”
동생은 내 시야에 보이지 않는 바깥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거기서 맛있는 거나 사 먹자.”
동생과 나는 손잡고 시장 통을 걸어 나갔다. 내 손바닥에 동생의 촉촉한 땀방울이 느껴졌다.
“미선아 저기 오락실 갈까?”
“오빠야는 아직도 오락 좋아 하나?”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어릴 때 그렇게 오락에 미쳐가지고 죽을 뻔도 했으면서.”
“가쓰나! 별걸 다 기억하고 있네.”
“내는 싫다! 남자들이 모니터 앞에 앉아서 그게 뭐하는 짓인지 도통 모르겠더라.”
“그렇게 따지면 나는 여자들이 고무줄놀이하고 인형 놀이하는 것, 도통 이해가 안 되더라.”
내가 그렇게 말하자 동생이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오빠야 저기”
미선이가 갑자기 앞 쪽을 가리켰다. 거기엔 바닥을 기며 리어카를 끌고 있는 앉은뱅이 아저씨가 우리를 향하여 느리게 오고 있었다. 어린 날 거제도, 엄마가 장사하던 시장에서 자주 보았던 앉은뱅이 아저씨였다.
“아니 요즘에도 저런 아저씨가 있네.”
“불상하다 그치”
“나한테 잔돈 이거 있다.”
나는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그럼 그거 넣어라 저기.”
동생이 명령하듯 말했다.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지폐를 펴서 네모난 상자에 넣었다.
“그런데 미선아 좀 그렇다.”
동생 곁으로 돌아온 내가 말했다.
“뭐가?”
“너무 적게 넣은 것 같아. 오늘 우리 동생 만나서 오빠 이렇게 행복한데, 그 행복의 대가치곤 너무 저렴하잖아. 그래서 불안해.”
나는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미선이 네가 넣고 온나.”
시계를 보니 5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여름이라 해가 길었기에 아직 날은 환했다. 어둠이 내려앉기까지는 시간이 더 남아있었다.
“미선아 너 꽃 좋아 하나?”
몇 미터 앞에 장미꽃을 파는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다발 뭉치도 있었고 한 송이씩 포장된 것도 있었다.
“아주머니 그거 얼마예요?”
나는 열 송이 이상쯤 되는 장미 다발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만 원입니데이.”
“미선아 사 줄까?”
내가 묻자 동생이 싫다고 했다. 나는 다시 한 송이 짜리를 가리키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천 원 입니데이.”
아까보다 밝지 않는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럼 그걸로 주세요.”
월척이 걸린 줄 알았는데 낚아 올렸더니 송사리가 걸린 낚시 바늘을 보고 한 숨을 쉬는 낚시꾼의 표정을 한 할머니였다.
“미선아 우리 나이트 갈까? 이 오빠는 우리 동생이랑 나이트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럴까.”
“그런데 미선아, 너 나이트 가봤나?”
“그럼 가봤지.”
나는 첫 여자와의 관계를 마치고 나서 그 여자가 처녀가 아님을 확인했을 때의 그 비슷한 기분 같은 것을 느꼈다. 하긴 21살, 여자가 다 된 동생이 그런 곳을 안 가봤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심 걱정이 되어 다시 물었다.
“누구랑 갔는데?”
“친구랑.”
“친구 누구?”
“와 자꾸 그런 걸 물어 보노?”
“아니 그냥.”
“걱정마라 여자 친구하고 언니하고 한 번 가봤다.”
“그랬나?”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싱겁긴”
동생은 내 마음을 눈치챘다는 듯이 찡그리며 말했다.
택시는 우리를 번화가의 한 골목에 패대기치듯 내려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오늘 기분이 좋았다. 그러므로 다 용서할 수 있었다.
“저 아저씨 대게 급하네. 그런다고 떼돈을 벌기라고 참나.”
동생이 투덜거렸다.
“그러게 말이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동생은 내가 시장에서 사준 장미를 꼭 들고 있었다.
동생과 내가 나이트에 들어서자, 갑자기 짙어진 어둠이 동공을 눌러 나는 잠시 휘청거렸다. 나는 어둠을 밀쳐내며 시야를 확보했다. 멀리 어둠을 평정하여 그 어둠 위에 군림한 웨이터 한 명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어둠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잘도 달려왔다.
“네 손님 이쪽으로.”
웨이터는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 같은 표정이었다.
“아뇨. 여긴 너무 시끄러워요. 거기다 천박하기까지 해요.”
“네?”
“앗 그냥 그렇단 거예요. 룸 하나 주세요.”
나는 그에게 천박해 보이지 않기 위해 무게를 잡고 말했다.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는 우리가 한 배에서 나온 두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룸에 들어서서 문을 닫자 그제야 천박한 기운이 조금 멀게 느껴졌다. 웨이터가 메뉴판을 들이밀었다. 펼쳐보니 양주 뿐이었다.
“맥주는 없나요?”
내가 메뉴판을 넘기며 말했다.
“아 손님,”
그는 뜸을 들였다.
“룸은 맥주가 아니고 양주가 기본 세팅입니다. 맥주는 서비스로 드실 수 있고요.”
나는 충분히 그의 말을 이해했다. 밖의 천박한 물과 룸은 레벨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까짓것 오늘 룸의 레벨에 맞게 부르주아 행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여기 이것으로 주세요.”
나는 발렌타인 17년 산으로 시켰다.
“여기 룸은 어떻게 합니까?”
내가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네 룸비는 별도로 오만 원입니다.”
그는 어둠을 평정한 영웅이라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아니 오늘 왜 저리 음악이 거슬리지, 아니 저것도 음악이라고 저런 허접한 곡을 틀어 놓고 춤을 추라니,”
내 목소리 톤이 비집고 들어온 음악을 이기기 위해 더 커졌다.
“손님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어이 웨이터 양반, 이 정도 가격의 양주를 시킨 놈이 어디 돈 아까워서 이러겠습니까?”
나는 점잖은 투로 말했다.
“저 손님, 원래 룸이 그런 건데요.”
“아니 그런 거 까진 이해합니다. 암 하고말고요.”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
그는 다시 왕년에 어둠을 평정했던 시절을 떠올렸는지 목소리가 당당해지고 있었다.
“이 양주 원가가 얼마죠? 슈퍼에 파는 거 말고요. 소매상에서 들여오는 가격 말입니다.”
“저 손님 갑자기 그런 걸 왜?”
그는 방금 전과 반대로 이젠 한때 잘 나갔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씁쓸해하는 투로 말했다.
“혹시 과일 안주는 재사용하지는 않는 거 맞죠?”
내가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손님, 대신 맥주가 무한 서비스입니다.”
만약 내가 맥주 고래여서 맥주를 양주 가격보다 더 많이 먹으면 어쩌려고 그는 장담할 수 없는 말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알았어요. 여기 예쁜 아가씨가 술이 고프다네요. 얼른 술이나 세팅하세요.”
“네 금방 세팅하겠습니다.”
그는 뭐 씹은 얼굴을 애써 숨기는 것 같았다.
“오빠야 미쳤나 20만 원이 누구 이름 이가?”
“원래 그런 거다 가쓰나야. 잔말 마라.”
“그래도 이건 좀 그렇다. 차라리 호프집 가서 통닭에 맥주나 마시지 삼만 원이면 떡을 칠 텐데.”
노크 소리 후 웨이터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테이블 위에 천천히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팁을 바라는 눈치가 역력했다. 하지만 나는 주지 않았다. 팁을 받지 못하고 나간 그가 밖에서 개새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미선아. 오빠야가 한 잔 따라 줄게.”
미선이는 내가 따라 주는 술을 받고 다시 내 술잔에 술을 따랐다. 동생에게 술을 받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동시에 잔을 비웠다. 싸한 느낌이 식도를 따라 위장에 퍼졌다.
“미선이 노래 한 곡 해 봐라. 맞다! 미선이 너 중학교 때 한 창 김건모의 그 무엇이더라.”
“잘못된 만남.”
“그래 그거. 너 잘 불렀잖아 그 빠른 렙을 말이다.”
“호호 이제 그거 나도 안 된다. 나이가 먹어서리.”
동생과 나는 크게 웃었다. 지나가던 30대가 밖에서 들었다면 큰일 날 소리였다. 그래도 동생은 21살 나는 23살, 어엿한 성인이었다. 엄마 없이, 차라리 없으면 더 좋았을 아버지 밑에서 당당히 성인이 된 그것도 너무나 올바르게 자란 김미선과, 나 김준한이었다.
“미선아 그럼 오빠야가 한 곡 때릴까?”
“응 오빠야.”
동생은 수박 하나를 깨물며 말했다. 나는 선구자를 선곡했다. 선구자도 동생이 초등학교 시절 즐겨 부르던 거였다. 나는 눈물이 나오는 걸 애써 참았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의 마음도 변하는 것이거늘, 내 마음 저 깊은 곳에 자리한 그리움은 왜 변하지 않는지, 그리움의 대상이 처음엔 엄마였다가, 이젠 내 여동생을 그 어떤 놈에게도 주기 싫다는 그런 마음이 들었다.
“미선아 넌 엄마 안 보고 싶나?”
“오빠야는 엄마 보고 싶나?”
나는 보고 싶다는 말을, 아니 보고 싶어서 찾아갔었다는 말을 뱉어 낼 수 없었다. 나는 내 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겨우 두 잔일뿐인데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속도 울렁거렸다.
“나는 싫다! 우릴 버리고 간 엄마가 뭐가 보고 싶노? 나는 하나도 안 보고 싶다. 이제 엄마가 뭔 필요 있노? 이렇게 다 컸는데.”
“그렇나? 미선아.”
“그래 그렇다.”
“다시는 이 엄마를 찾아오지 마라.” 돌아서던 내 등에 그 날카로운 비수를 내리꽂은 엄마가 나는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한 때 내가 그 여자의 가슴을 빨았을 거라 생각하니 내 입술이 경멸스러웠다. 내 몸에 그 여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 피가 역겨워졌다. 하지만 나는 죽지 못해 나를 용서해야만 했다. 또한 나를 용서한 것처럼 그 여자를 용서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여자를 미워하고선 어떻게 내가 동생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미선아 이제 집에 가자. 오빠 어지럽다.”
“미쳤나? 이 아까운 술은 어쩌고?”
“어쩌긴 개나 먹으라고 조야지.”
“오빠야 지금 제정신이가? 이게 돈이 얼마 짜린데.”
미선이는 토끼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안 된다. 이거 아까워서 다 마시고 가야 된다.”
술을 버리고 가자는 나를 보고 미쳤다고 말한 동생이 나는 더 미친 것 같았다.
“미선아 그냥 가자. 그거 다 마시면 취하기 뿐 더하겠냐.”
“오빠야는 안 마실 거면 가만있어라. 내가 다 마실 거다.”
미선이는 기어이 그 많이 남은 술을 훌쩍훌쩍 다 마셔버렸다. 그런데도 얼굴색 하나도 변하지 않는 동생이었다. 혀도 멀쩡한지 발음도 투스텝을 밟지 않았다. 내가 사준 장미꽃을 꼭 쥐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리자 좁은 골목길이 펼쳐졌다. 원래 내 주량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어지러워졌다.
“오빠야 저기서 우리 해장국 먹고 갈까?”
골목 깊숙이 들어서자 먹자골목이 이어졌다. 나는 그러자고 했다.
“뭐가 그리 좋아서 피씩 거리노?”
“미선이 너 생각나나?”
“또 뭐?”
“너 그때 겁도 없이 아빠가 드시려고 만들어 놓았던 양념 개 무침을 홀라당 했던 거 말이다.”
“호호 맛있어서 순간 내가 간이 밖으로 나왔던 갑다.”
그래도 다행히 그날 동생은 아버지에게 얻어맞지 않았다. 미선이는 어쩔 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동생의 그런 성격 때문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가끔 형들과 노래방 같은 곳에 가서 내 동생 또래의 아가씨들하고 놀 때마다 나는 내 동생이 생각나곤 했다. 동생이 그런 곳에 빠지지 않은 것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해장국 집으로 들어가자 꽤 넓은 홀이 우리를 반겼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오빠야 뜨거운 거 이제 잘 먹네.”
뼈다귀가 푸짐하게 든 뚝배기가 우리 앞에 당도하자 나는 후루룩 몇 숟가락을 떠먹었다.
“이게 뭐가 뜨겁다고 그러노?”
“오빠 옛날엔 뜨거운 거 못 먹었잖아. 그래서 맨날 아빠한테 얻어맞아 놓고는.”
“가쓰나야 내가 언제 그랬노?”
“그랬다.” 동생이 그렇게 말하면서 뼈다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가쓰나야! 장미가 어디 도망가나 옆으로 치우고 먹어라.”
“싫다.”
“가쓰나 고집은.”
“오빠야가 처음으로 사준 선물이다.”
해장국 한 그릇을 뚝딱하고 밖으로 나오자, 어둠이 더 짙어져 있었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어 있었다. 동생이 사는 동네는 아직 재개발이 안 되어 내 어린 날 거제도에서 즐겨 보았던 7 80년대식 양옥집들이 골목을 지키고 서 있었다. 순간 다시 10살 이전의 거제도 양옥집으로 온 것 같았다. 싸한 느낌과 함께 내 몸에 닭살 같은 것이 돋아 난 것은 비단 방금 나를 훑고 지나간 바람 탓만은 아니었으리라. 어둠 속이었지만 나는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담벼락 위로 짝짝 갈라져 있던 금들을 볼 수 있었다. 세월의 풍화에 못 이겨 이곳저곳 침식의 흔적을 각인한 오래된 벽돌담들, 내가 엄마를 찾아갔던 그날, 엄마도 벽돌처럼 많은 금을 각인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탈출하였건만 세월은 이기지 못하였나 보았다.
아버지에게서 떠난 엄마는 그 어떤 풍화의 힘을 견디며 사셨을까? 결국 그 힘도 견디지 못했으면서 왜 우리를 버렸을까?
가난한 동생에게 이 도시의 낡은 집들은 대단한 선심을 쓴다는 듯 오만한 자태로 저렴한 방세를 받고 이 도시의 울타리 속에 내 동생을 끼워 주었으리라.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걷기엔 조금 좁은 골목이었으므로, 미선이가 앞서 걸었고 내가 동생의 여성미가 완성된 뒤태를 보며 따라 걸었다. 긴 머리카락이 동생의 엉덩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몇 블록을 걸어가자 미선이는 청색 대문 앞에 섰다.
“오빠, 내 여기 산다.”
동생이 쑥스러움을 감추려는 듯 웃어 보였다. 마치 오빠에게 오래된 치부를 드러내 놓는 것이 부끄러운 듯, 하지만 마지못해 드러내야 하는 것이 힘겨운 듯, 그렇게 수줍게 웃고 있었다.
“와 우리 동생 어릴 때부터 오빠보다 단단하고 생활력도 강할 것 같더니만 역시나 오빠보다 잘 사네.”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주인집이 먼저 나타났다. 왼쪽으로 난 좁은 골목을 들어가다가 계단을 오르자 미선이가 살고 있는 자취방이 나타났다. 이층높이에서 내려다본 골목길은 거미줄처럼 엉켜있었다. 어떻게 저 엉킨 길을 잘도 걸어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들은 13년 전 그날 밤, 엄마가 버려놓고 간 짙은 어둠으로 물든 광활한 허공을 헤치고 이곳까지 잘 걸어왔다. 그 허공 속에 떠 있던 별의 옆구리를 깎던 바람처럼 아버지의 폭력이 유년의 여린 우리들의 살을 깎았지만, 우리는 견뎌내며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 눅눅한 슬픔을 먹고 자란 곰팡이 냄새가 났다. 어릴 적 엄마에게서 맡아본 낯설지 않은 냄새였다. 눅눅한 벽지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를 지우려고 동생이 방안에 방향제를 가득 뿌린 것 같았다. 그 방향제 향속에 감추어진 동생의 쓸쓸했던 시간들을 내가 눈치 채지 못 할리 없었다. 아직 청춘이라 드러나지 않은 동생의 가슴속 눅눅한 습기, 동생은 그 습기를 가리기 위해 온갖 화려한 옷과 향으로 감추었지만 나는 동생에게서 선명하게 나는 그 축축이 젖은 곰팡이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오빠야 잠깐만.”
방향제보다 더 나를 슬프게 하는 건 방안 가득 점령한 어둠의 무게였다. 몹쓸 어둠은 매일 저녁 내 동생을 기다렸을 것이다. 때를 기다려 동생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이때다 싶었던 어둠이 내 동생의 가슴을 치렁치렁 옭아맸을 것이다. 동생은 숨이 잠깐 가쁘고 답답했을 것이다. 털어 내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했을 것이다. 동생은 내 앞에서 웃고 있었지만 나는 다 알 수 있었다. 내가 미선이에게 “엄마 안 보고 싶냐?” 물었을 때 동생은 안 보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란 것을,
“오빠야 먼저 자라. 난 빨래 좀 하고 잘 끼다.”
술이 달아오른 터라 나는 어지럽고 졸렸지만, 좁은 부엌에서 동생이 손빨래를 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동생이 빨래에 힘을 주고 문지를 때마다 알맞게 자란 동생의 가슴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어릴 적 함께 발가벗고 목욕도 하던 내 여동생이 이제 여자가 다 되었다는 것이 감사하고 기쁘기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왜 이다지도 참을 수 없는 섭섭함이 밀려오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같은 중학교에 내가 3학년 진학했을 때 동생은 나 보다 두 살 아래였으므로 1학년 신입이었다. 그러고 보니 함께 중학교를 다닌 것도 1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 짧은 학교생활 동안도 나는 동생을 한 번도 챙겨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억울하거나 아픈 일이 있으면 뻔히 학교에 내가 있는데 내게 단 한 번도 징징거리거나 누구를 고자질하거나 하소연한 적이 없던 동생이었다. 저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을 동생의 가슴, 내가 홀로서기를 한 것처럼, 동생도 그렇게 홀로서기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미선아.”
“응,”
“미선이는 꼭 좋은 남자 만나야 한데이. 알았제.”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만났던 내 주위의 속물적 남자들이 떠올랐다. 세상엔 분명 착하고 성실한 남자들도 있지만 나는 불안했다.
“미선아 이리 온나.”
동생은 부끄러운 지 잠시 뜸을 들였다.
“와 어떻노? 내가 니 오빤데. 가쓰나도 참.”
동생은 내 옆에 누웠다. 나는 내 옆에 누운 동생을 꼭 보듬었다. 따뜻한 동생의 가슴이 느껴졌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모난 구석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동생의 가슴이 모나지 않고 둥글게, 그리고 따뜻하게 자라주어서 너무나 감사했다. 따뜻한 가슴만 있다면 동생은 앞으로의 험난한 세상, 절대 쓰러지지 않고 잘 헤쳐 나갈 것이다.
동생을 보듬고 잠든 나는 모처럼 좋은 꿈을 꾸었다.
가까운 곳에 섬이 몇 게 불쑥 솟아 있었고, 파도가 잔잔하게 일렁이는 해안가에 발가벗은 미선이와 발가벗은 내가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크지 않은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고 있었다. 바닷물은 내가 자궁 속에 있을 때 그 느낌처럼 알맞게 미지근했다. 멀리 섬이 몇 개 떠 있었으므로, 수평선은 아득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가가면 곧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동생과 내가 놀고 있는데 저만치 엄마가 보였다. 동생과 나는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엄마는 우릴 보듬고 한참을 우셨다.
“엄마 왜 우노?”
동생이 말했다.
“아니 엄마가 언제 울었다고 그러노.”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조그만 나와 동생을 꼭 안아 주었다. 엄마의 물컹한 가슴이 내 볼에 느껴졌다. 엄마는 갑자기 우리 보고 들어오라고 하셨다. 내가 “엄마 어딜?” 하니깐 엄마가 자궁을 벌리셨다. 동생과 나는 잠깐 망설였다. 곧이어 동생과 나는 손을 잡고 엄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바다가 있고, 갈매기가 있고, 섬이 있고, 닿을 수 있는 수평선이 있었다.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잔잔한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미선아 오빤 잠이 온다.”
“오빠야 나도 잠이 온다.”
파도가 일렁이며 내 살결에 닿았다. 내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나는 그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그것은 태초에 내가 느꼈던 것이다. 동생이 내 손을 꼭 잡았다. 곧이어 캄캄한 어둠이 영원처럼 계속되었다. 나는 기도를 했다. 이 잠에서 영원히 깨이지 말았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