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폭격’ 당하는 부처님?
이렇게 고꾸라진 마애불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 엎어진 마애불을 세우는 것은 불교계의 숙원사업인 듯 하다.
‘천년을 세우다’는 캐치플레이즈까지 내걸웠다.
조계종 총무원(원장 진우 스님)은 최근 ‘열암곡 마애불 바로모시기 불사’의 시작을 알리는 고불식을 열었다.
진우 총무원장은 “만약 서양에서 예수의 성상이나 십자가가 누워있었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었겠는가”라며 “이것은 불제자로서의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이며, 문화유산을 바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국격의 문제”라고 밝혔다.
경주시도 현재 용역을 통해 마애불상을 어떻게, 어디에 세울지 연구중이다. 불교계의 입장은 이해할만하다.
40도 경사면에, 그것도 지표면에서 코 끝까지 단 5㎝ 간격을 두고, 엎어져 있는 부처님이 아닌가. 어떤 연구자는 “시쳇말로 ‘원산폭격’ 자세로 힘겹게 엎드려 있는 부처님을 어떻게 두고 볼 수 있겠느냐는 게 불교계의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3D 스캔으로 재현한 열암곡 마애불상. 불상의 타원형 얼굴엔 오뚝한 코와 날카로운 눈매, 도톰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잘 표현돼 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경주 지진 때 2.2㎝ 미끌어졌다
불교계나 일부 학계의 지적대로 경사면에 비정상적인 자세로 엎어져있는 불상의 안정성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2012년부터 마애불의 상태를 체크해온 국립문화재연구원 안전방재연구실의 계측결과 점진적인 미끄러짐 현상이 나타났다.
즉 2012~2016년 사이 해마다 0.2~0.8㎜씩 지속적인 침하현상이 보였다.
특히 2016년 경주 지진 때 마애불은 불상의 윗부분(불상 하부)에서 최대 23㎜ 가량, 밑부분(머리)에서도 10㎜ 정도 미끄러진 것으로 측정됐다. 진도 6의 강진은 80t이 넘는 거대 불상을 순간이동 시킨 것이다.
2018년 설치한 상시 계측 시스템에 따라 측정한 4년간(2019 11월~2022년 7월20일)에도 미세하게나마 ‘미끄러짐’ 현상이 지속됐다. 즉 2018년을 기준(0)으로 할 때 불상의 배(복부) 부분은 5.5㎜, 오른쪽 이마 부분은 3.1㎜ 가량 미끄러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종합해보면 2012년 최초 계측 이후 불상의 ‘발’ 부분은 25.03㎜(2.503㎝ 가량), ‘이마’ 부분은 10.54㎜(1.054㎝), ‘배(복부)’ 부분은 9.046㎜(0.9046㎝) 정도 ‘미끄러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무엇보다 들쭉날쭉이 아니라 해마다 지속적으로 경사면을 따라 미끄러지고 있다는 것은 가벼이 볼 일은 아니다. 더욱이 경주 지진 같은 돌출변수가 생기면 또다시 ‘순간 이동’ 할 수 있다는 걱정도 생긴다.
마애불상은 40도에 이르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곳에서 발견되었다. 마애상 뒤에는 노두(露頭·암석이 지표면에 직접 노출된 곳)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돌덩이들이 너덜겅(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산비탈)처럼 쌓여있다. 그 뒤를 받치고 있는 암석은 마치 인절미 혹은 깍두기의 형상을이다. 이런 암석들이 맨 앞에서 우뚝 서있던 마애불상을 ‘모종의 힘’으로 확 밀어붙였거나 가격하는 바람에’ 엎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80t넘는 불상을 어떻게 세우나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지 않은가. 그냥 첨단 공법으로 일으켜 세우면 될 일이 아닐까. 그러나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해발 300m가 넘는 산 중턱, 그것도 급경사에 아슬아슬 엎어져있는 무게 80t이 넘는 불상을 어떻게 일으켜 세운단 말인가.
크레인이 필요하지만 현장은 사람 한 명도 지나기 힘든 산길이다. 길부터 닦아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경주 남산은 ‘천불천탑’이라는 명성이 있을 정도로 탑과 불상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헬기를 이용하자는 말도 나왔지만 이 방법도 불상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은 “일단 90도 방향으로 돌려 와불형태로 일반에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안전을 장담하지 못해 성사되지 않았다. 하기야 누가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인가.
일으켜 세우다가 혹시 삐끗해서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게다가 제 자리를 벗어나 미끌어진 마애불의 원위치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아직 특정짓지 못했다.
해마다 1~3㎜ 씩 미끄러진 열암곡 마애불상은 2016년 9월12일 일어난 경주 지진으로 최고 23.725㎜(2.3725㎝㎝) 가량 훅 미끄러졌다.|국립문화재연구원 안전방재실 제공
■더 미끄러지지만 않는다면…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문화유산의 측면에서도 ‘지금 위치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현재 마애불에는 2020~21년 사이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보호각과 함께 구조 장치를 더 보강해놓았다. 데크용 나무로 감싼 콘크리트 옹벽과 함께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유압잭까지 이 마애불을 떠받치고 있다.
지난해(2021년) 설치를 완료한 이후 0.212㎜(오른쪽 이마)의 침하와, 0.835㎜(배)의 미끄러짐 현상을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국립문화재연구원 안전방재연구실은 “보강 공사 후 구조물이 안정화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면서 “앞으로 2~3년 정도의 계측값을 검토한 후에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2~3년 간의 추이를 검토해본 결과 ‘미끄러짐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렇게되면 오히려 이 상태로 그냥 두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왜냐면 이 마애불을 조성한 뒤 언제인지 모르지만 지진 등에 의해 붕괴되었고, 천년, 혹은 수백년 동안 엎어져 있다가 지표면에서 5㎝ 정도 떨어진채 아슬아슬 온전한 몸으로 발견된 그 스토리 자체도 역사가 아닐까.
마애불에는 2020~21년 사이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보호각과 함께 구조 보강 장치를 설치해놓았다. 데크용 나무로 감싼 콘크리트 옹벽과 함께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유압잭까지 이 마애불을 떠받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원 안전방재실 제공
■태국 보리수 나뭇뿌리 속 불상 머리의 교훈
또 중생의 업보를 온몸으로 안고 있는, ‘거꾸로 선 부처님’이 오히려 더 극적인 신앙의 대상이 아닐까.
어떤 연구자는 태국 아유타야 왕조(1350∼1767)의 유적인 왓 마하탓 사원의 불상머리를 예로 든다. 이 불상 머리는 보리수 나무 뿌리에 휘감겨 있다. 여기에는 인구에 회자되는 스토리가 있다. 즉 1767년 미얀마의 아유타야 침공 때 불상의 머리를 모두 잘랐다. 그런데 그 중 보리수 나무에 놓여있던 불상 머리가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처럼 나무뿌리에 휘감긴 모습이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불상의 사진을 찍으려면 반드시 불상보다 낮은 자세로 엎드려야 한다. 그렇다면 열암곡 마애불은 어떨까.
오체투지의 자세로 몸을 잔뜩 낮춰 마애불을 친견하는 불교 신자들의 모습 또한 그럴듯하지 않은가.
태국 아유타야 왕조(1350∼1767)의 유적인 왓 마하탓 사원의 불상 머리. 이 불상 머리는 보리수 나무 뿌리에 휘감겨 있다. 1767년 미얀마의 아유타야 침공 때 자른 불상의 머리에 나무뿌리가 휘감은 모습이다. 불상 사진을 찍으려면 반드시 이 불상보다 낮은 자세로 엎드려야 한다. |jtbc ‘특파원 25시’ 캡처
무엇보다 원위치를 특정하기 어려운 마애불을 어디에 세운다는 것인가. 또 이 마애불이 온전히 선 채로 발견되었다면 어떻게 르 몽드와 같은 세계적인 언론에 실렸겠으며, 어떻게 그렇게 유럽인들에게 소개되었겠는가.
열암곡 마애불상은 불교계만의 문화유산도 아니다. 바로 세우든, 혹은 그대로 두든 불교계 뿐이 아니라 각계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까지 수렴한 뒤 결정해야 할 대한민국, 아니 세계적인 문화유산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 기사를 위해 권택장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 강현 국립문화재연구원 안전방재연구실 학예연구관, 김형준 학예연구사, 조미순 문화재청 고도보존육성과 학예연구관, 최선주 전 국립경주박물관장, 김유식 전 국립제주박물관장, 최태선 중앙승가대 교수, 임세권 전 안동대 교수, 조창현 경주시청 문화재과 문화재연구팀장 등이 도움말과 자료를 제공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