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3회의 마지막 줄거리
황희는 아내 최씨를 잃은 슬픔을 달래고자 공부에 매진하려는 마음으로 조용한 암자로 향하던중 아내의 무덤을 찾아 미리 준비한 술과 간단한 안주를 차려놓고 재문을 지어 아내의 영혼을 위로하면서 명복을 빌었다. 그동안 속으로 참아왔던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나와 울고 또 울기를 반복하다가 지친 나머지 목이 쉬고 기진맥진하였다. 울다가 지쳐 무덤에 쓰러져 잠시 깜박 잠이 들었다. 눈을 들어 보니 눈앞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삿갓을 쓴 비승비속의 차림으로 황희를 내려다 보는 이상한 사람이 있었다. 이 이인(異人)을 10여 년 전에(당시 12세) 잠깐 만난 적이 있었던 이인으로, 당시 황희는 최만생 등이 갈갈이 짖겨져 죽어가는 처참한 현장을 목격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고 집으로 힘없이 가고 있던 상태였다. 이 이인은 당시에는 신상을 밝히지 않았으나, 오늘은 자신이 지우도사(知牛道士)의 제자되는 백운거사(白雲居士)라며 신상을 밝힌 것이다. 스승인 지우도사는 황희가 상처하여 오늘에 이를 것을 미리 알고 자신을 이리로 보냈다는 것이다. 백운거사는 속명(俗名)은 이유생(李洧生)인데, 선도계에 입문하기까지의 사연은 참으로 절실하고 가슴아픈 것이었기에 스승인 지우도사의 명을 받고 자신의 경험했던 예를 들어 위로의 말을 해주려고 온 것이다.
백운거사는 자신의 지난날의 신상에 관한 꿈과 같은 일화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2. 백운거사는 자신의 일화를 황희에게 들려주다.
이유생은 개경의 선지리(選地理)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선지교(選地橋)가 있는 곳으로 훗날 정몽주가 필살된 후 그 자리에 혈죽(血竹)이 솟아났다고 하여 선죽(善竹)으로 개명되어 불리게 되었다. 이유생 그는 비록 미천한 집안의 출신이었지만 워낙 인물이 준수하고 두뇌가 빼어나게 명민하였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하면서도 학문에 열심히 정진한 결과, 당시로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국학(國學)에 선발되는 영예를 안았다. 국학은 김춘추(金春秋)가 서기 648년(진덕여왕 2년) 당나라에 가서 배우고 온 후 서기 682년(신문왕 2년) 최초로 신라에 국학을 세웠다. 국학에서는 주로 경의(經義), 경서(經書), 주역, 상서(尙書), 모시(毛詩), 예기(藝記), 춘추(春秋), 좌씨전(左氏傳),문선(文選), 논어, 효경 등을 가르쳤다. 이곳은 가장 우수하고 젊은 학생들만을 뽑았다. 수재들만 모여서 공부하던 국학에서 이유생은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장래가 촉망되는 수재로서 주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국학에서 돌아오는 어느날 길에서 우연히 16-7세 정도 보이는 낭자와 눈길이 마주쳤다. 두 사람이 처음 보는 순간 첫 눈에 반하였다. 낭자가 먼저 유혹하는 눈짓을 보내자 이유생은 정신이 아뜩하였다. 낭자가 뒤돌아보면서 집 쪽으로 발검을 옮기자 그 뒤를 잠자코 따라갔다. 외딴집 길 모퉁리를 돌아 대문 안으로 들어간 낭자를 문틈으로 들여다보다가 역시 내다보는 그녀와 다시 눈길이 마주쳤다.
이유생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문에 기대고 서서 <시경>에 나오는 시 한 수를 읊었다.
아름다운 요조 숙녀는 군자의 배필이로다...........
이 소리를 듣고 난 낭자는 깜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수틀(수를 놓는 틀)을 갖고 나와서 대문이 마주보이는 꽃밭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이유생에게 화답을 하듯이 이런 시를 읊었다.
홀로 기댄 사창가에 수놓기도 더디어라
온갖 꽃이 피어나고 울어대는 저 꾀꼬리-----------중략
길 가던 저 도련님 어느 집 자제신가
푸른 소매 그림자 수양버들 비꼈어라
이 몸 행여 제비라면 날을 수도 있으련만
주렴 자락 걷어내고 담이라도 넘으련만 -------------중략
낭자의 시 읊는 소리는 은방울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 이유생의 가슴을 달콤하게 적시고도 남았다. 시의 내용도 애간장을 녹여낼 듯이 짙고 호소력을 지녔다. 천하의 수재로 이름난 이유생 역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넘쳐나는 시흥을 담아서 즉석에서 단숨에 글씨를 써내려 갔다.
----중 략-------
우리도 운우되어 양대 위에 내리고 지고
우리들의 만남이 연분인가, 악연인가
내 뜻을 님이 알고 님의 뜻 내 아는데
우리들은 언제 만나 기나긴 정 풀어보리
이유생은 위와 같이 쓴 시를 돌멩이에 매달아 안쪽으로 던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주워서 읽어본 낭자는 가슴이 뛰었다.‘아아, 공자께서 이토록 나에게 애정이 담긴 시를 보내 주시다니.........! 낭자는 회답하는 내용의 시를 써서 다시 대문 밖으로 던졌다.
의심하지 마시어요(將子無疑) 황혼녘에 만납시다(昏後爲期)
위의 글을 받아 읽어본 이유생은 너무나 기뼜다. 일단 그곳에 나와 날이 저물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노을이 붉게 타오르다가 기울어질 즈음에 이유생은 낭자가 거쳐하는 후원의 뒷담을 뛰어넘었다. 설레임으로 정원에서 잠시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맞은 편 꽃밭 사이로 난 눈부신 화려한 길을 마치 선녀가 사뿐히 걸어오듯 긴 치맛자락을 끌면서 달빛에 아른 거리며 낭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낭자가 가까이 다가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방긋이 웃으면서 아름답고 청아한 목소리로 인사를 올린다. “소녀 공자를 기다린지 이미 오래이옵니다. 이렇게 뵈오니 꿈만 같습니다. 저를 따르시지요.”이유생은 마치 구름을 탄 듯이 낭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그가 살며시 손을 잡자 낭자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인다. 그들은 갖가지 꽃들이 늘어지게 피어 향기를 뿜어내는 꽃길을 마치 구름위를 걷듯이 향기에 취해 걸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느끼는 황홀한 행복감이었다.
드디어 방으로 들어온 그들은 몸종인 향순이가 차려온 주안상을 앞에 놓고 시를 지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화답하면서 밤이 깊도록 정담을 나누었다.
낭자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의 집안은 장사꾼 집안입니다. 저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지요. 새로 들어온 계모와 저는 뜻이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몸종 향순이를 딸려서 이곳에 별당을 지어 기거하도록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근본은 양반이 못 되옵니다. 그러나 저는 틈틈이 여자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과 학식을 갖추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정담을 나누다가 문틈으로 꽃향기가 짙게 흘러들어오자 그 향기에 이끌려 정원으로 나왔다. 다정히 손잡고 거닐던 그들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조용한 곳에 이르자 힘차게 포옹하였다. 이유생은 낭자를 달빛이 밝은 꽃그늘 아래에 조용히 눕혔다. 꽃밭에 쓰러져 한데 얽힌 두 사람에 의해 활짝 꽃을 피워낸 꽃나무들이 꺽여지고 짓뭉개졌다. 이렇게 서로를 알고난 이후 두 사람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날 이유생이 발길이 갑자기 끊어졌다. 최수인(崔秀仁), 즉 최낭자는 몸종 향순이를 통하여 이유생에 관한 소식을 알아오도록 시켰다. 향순이가 알아온 소식은 이러하였다.
“서방님의 홀어머니가 아씨와의 관계를 끊게하려고 어디론가 멀리 보냈답니다.”최낭자: 이를 어쩌나! 그 말을 들고난 최낭자는 픽하고 쓰러져 버렸다. 향순이: “아씨! 정신 차리세요. 정신을......”향순이가 울고 불며 한참을 주무른 후에 최낭자는 겨우 깨어났다. 그날 이후로 최낭자는 식음을 전폐하고 헛소리를 하면서 점점 여위어 갔다. 마침내 최낭자의 아버지가 그 까닭을 알게되었다. 그때 이유생은 과거에 급제를 하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성화에 못 이겨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자나깨나 최낭자 생각 뿐이었다. 한편 최낭자의 아버지는 사랑 때문에 기력이 쇠약해져가는 딸을 보다 못해 매파를 통하여 꾸준히 이유생의 어머니를 설득하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길일을 잡아 두 사람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자꾸만 문제가 생겼다. 갓 결혼한 두 사람이 조금이라도 다정한 모습을 보이면 시어머니는 공연히 트집을 잡아 쌍심지를 켜고 달달 볶았다. 이유생의 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오로지 신동(神童)이라고 소문난 아들 하나를 보고 의지하며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결혼시킨 후 아들이 어딘가 모르게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섭섭한 느낌이 들자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어 외롭고 허전하여 견딜 수 없었다.
부부가 같이 있으면 심통이 나서 문을 펄쩍펄쩍 열거나 공연히 심부름을 시키고 트집을 잡고자 했다. 일부러 할 일을 찾아내서 ‘이것 해라, 저것 해라’하면서 둘 사이를 떼어 놓고자 하는 것이 너무나 역력하였다. 곱게 자란 며느리에게 늦도록 일을 시키고 늦게마나 잠자리에 들려고 하면 어깨가 쑤신다. 무릎이 아프다. 심통을 부리면서 아들을 불러내기가 일쑤였다. 아들 내외가 함께 있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보아 넘기지를 못했다. 시어머니 자신도 ‘내가 왜 이럴까?’ 스스로 반성하면서도 여전히 고쳐지지가 않았다. 아들 내외가 웃거나 다정한 말을 하면 공연히 끙끙 앓는 신음 소리를 냈다. “어머님, 어디가 편찮으신지요? 소자가 주물러 드리겠습니다.” “그만둬라, 그 따위 입에 내발린 소릴랑 아예 하지를 말어, 이젠 나 같은 늙은 것은 짐스럽기만 하고 귀찮을 테지, 아이고 내가 어서 죽어야 할 텐데.....아이구 허리야.....아이구 무릎이야........”신경질을 내다가 아들이 팔다리를 주무르면 그제서야 겨우 못이기는 척 입을 다물곤 했다. 또 아들과 며느리가 겹상을 차려 먹기라도 하면 공연히 반찬이 짜다, 맵다, 싱겁다 라며 트집을 부렸다. 아들이 제 입에는 맛이 좋다고 하면, “그래 너 말 잘했다. 에이, 못난 놈 같으니....색시가 고우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더니, 너야말로 바로 그런 놈이로구나.”최씨 부인이 시어머니를 달래고자“어머님 제가 잘못했으니 노여움을 푸십시오.”라고 하자 “흥,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더니 꼭 그꼴이구나. 어이구 서러워라. 내 팔자야! 내 청춘이 억울하고 허무하다 허무해......”잠 자리에 누웠다가도 몰래 아들 내외의 방을 들여다 보곤 했다. 사실 시어머니는 아직 40도 채 안 된 나이였다. 잠자리에 누우면 도란거리는 아들 내외, 그리고 이따금 운우지정을 나누는 듯 한 소리에 몸을 뒤척 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열일곱 나이로 아들을 낳았다. 바로 다음해에 말단의 무관이었던 남편이 홍건적을 막으러 나갔다가 불귀객이 되고 말았다. 각별히 금술이 좋았던 홍씨 부인은 그후 남몰래 피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오로지 똑똑한 아들만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가끔 잠든 아들을 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 마다 아들이 깨어나 물었다. “어머니, 울지마세요, 어디가 편찮으세요?”“아니다, 네가 너무나 의젓해 보여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렸나보구나, 유생아, 너는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으냐?”“저에겐 오로지 어머니 한 분 뿐이지요, 부디 오래 사세요. 제가 꼭 효도하겠습니다.” “그 녀석, 이쁜 소리만 하는구나. 귀한 내아들.....”홍씨 부인은 며느리가 들어온 이후로 아들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을 느끼고 본의 아니게 며느리에 대한 미운 감정이 늘어만 갔다. 그날 밤도 한밤중에 잠을 못 이루고 괜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건넌방에서 아들 내외가 다정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튿날 아침 아들과 며느리를 불러 앉히고 말했다.
백운거사는 지난날의 꿈같은 일화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다음에 계속 이어짐(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