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도둑
고영옥(24. 6. 18)
영순은 매주 화요일이면 oo 부동산 앞에서 버스를 탑니다. 그 가게 앞에는 항상 잘 가꾸어진 화분들이 놓여있습니다. 영순은 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예쁘다.’ 칭찬해 주면 살랑거리는 꽃들과 정이 흠뻑 들었나 봅니다.
그중에서도 빨간 꽃이 다닥다닥 피어 꽃다발 같은 화분에 눈길이 더 갑니다.
“얘들아 안녕! 어머 일주일 새에 더 예뻐졌네.”
인사말을 건넵니다. 아무리 바빠도 그냥 지나치질 못합니다.
어느 날, 부동산 사장님이
“이 꽃모종 좀 나누어 드릴까요?”
“어머 그래도 돼요?”
“꽃을 사랑하는 분 같아서 드리고 싶었어요.”
사장님은 꽃을 예뻐하는 영순을 눈여겨보았었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잘 기르겠습니다.”
영순 내외의 정성을 먹은 꽃모종은 화분 가득 환하게 피어났습니다. 지는가 하면 또 피어나서 철도 없이 꽃을 보여줍니다. 남편은 그 꽃을 참 좋아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 모두 다 시들했습니다. 꽃을 돌볼 힘도 없었습니다. 화분들은 말라버렸고 그 모습조차 베란다에서 하나, 둘 사라져갔습니다.
며칠 전 영순은 사직동 충혼탑에 다녀왔습니다. 경내가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경건한 마음이 더해지더군요. 알게 모르게 경내를 가꾸는 시민들의 손길이 있어서 가능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간 그 꽃 화분이 생각났습니다. 정성 들여 가꾸어 순국 선열들께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오늘, 영순은 그 가게 앞에서 널따란 화분 가득 그 꽃 묘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지요. 화들짝 반가웠습니다. 가게 문을 밀었지요. 불은 켜있는데 문이 잠겼더군요. 얼마쯤 기다리다가 차 시간이 되어 아쉽게 돌아서야 했습니다.
‘저렇게 뵈게 나와서 좀 솎아주어야 하는데….’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영순은 이성을 잃었습니다. 꽃모를 손에 넣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으니까요. 엎드려서 몇 포기 솎았습니다. 그때.
“누구세요?”
“왜 남 물건에 말도 없이 손을 대는 거예요.”
날카로운 여자의 소리가 귓전을 찌릅니다. 멈칫하여 엉거주춤 일어섰지요. 아뿔싸! 영락없는 도둑인 거예요. 대낮에, 그것도 사람들이 빈번하게 차에 오르고 내리는 곳인데. 정신병자나 치매 환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미안해요.”
모깃소리보다 작은 소리를 내면서 쥐구멍을 찾는 영순은 참담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왜 그러고 계세요.”
그때 마침, 부동산 사장님이 오셨어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껄껄 웃으면서
“제가 언제든 필요하시면 솎아가시라고 한 걸 집사람이 몰라서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다 듣게 큰 소리로 말하는 거예요. 요즈음은 만난 적도 없는데…. 사장님은 꽃삽을 들고 와서 몇 포기 떠서 비닐에 잘 싸주시며,
“예쁘게 잘 기르세요,”
함박 같은 웃음으로 영순의 구겨진 마음을 쓸어 주시네요. 영순은 변변히 인사도 못 하고 도망치듯 버스에 오르며 중얼거렸습니다.
‘이분은 천사인가 봐!’
영순은 돌아오면서 어떻게든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궁리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낯 뜨겁기는 매한가지예요. 굳이 변명하라면,
‘정성스럽게 길러서 충혼탑에 올리고 싶었노라고. 남편 사진 옆에도 한 송이 놓고 싶었노라고’ 할 것입니다. 면죄부를 찾던 영순은 고등학교 교장선생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작은 선인장 화분을 들고 교실에 들어오신 교장선생님은
“일본에 회의차 갔다가 이 희귀 선인장을 보았지. 살 수도 없고 얻을 수는 더더욱 없는 선인장인데, 어찌나 탐이 나던지 몰래 잎을 하나 땄지. 주머니에서 선인장 가시가 찌르는데 정말 따갑더군. 마음은 더 따갑고, 그러나 학교 온실에 놓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서 도둑이 되는 것도 불사했지. 너희 일본은 나라도 훔쳤는데 이까짓 선인장쯤이야. 하면서 자신을 합리화했지,”
껄껄 웃으시며 학교 사랑의 마음을 무용담처럼 들려주셨습니다.
"정말 멋지시다."
우리는 환호했지만, 그건 60년 전에 정서였습니다. 지금은 다르지요.
목화씨 도둑 문익점 선생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붓 뚜껑 속에 목화씨를 숨겨오시며, 엄중한 경비에 얼마나 떠셨을까요. 그렇지만, 추위에 떠는 우리 백성이 따뜻해하는 모습만을 생각했을 겁니다. 그 마음이면 면죄부가 된다고 하는 건 우리 생각이고 원 나라 입장에선 도둑이지요.
꽃 도둑도 도둑입니다. 도둑은 밉습니다. 도둑 중에도 제일 미운 도둑은 사람의 마음을 훔친 마음 도둑이 아닐까요. 마음을 송두리째 흠쳐놓고 나 몰라라 가버린 사람, 그게 영순의 남편입니다. 호국 영령 역시 그 부모 형제 처자에겐 그렇습니다. 미운 도둑에게 바치고 싶어 도둑이 된 이 아이러니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영순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어 멍하니 하늘만 바라봅니다.
첫댓글 잔잔한 삶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거창하고 특별한 이야기도 좋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이야기를 일기처럼 늘어놓아도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필도 아닌 것이 동화도 못 되는 것이 등장했지요. 그럼에도 읽어주시고 용기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저 무언가를 자유롭게 시도해 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가능성을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라면 공유할 수 있고 조언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지면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