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시를 쓰는 일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림을 즐기는 사람 모두를 화가라고 부르지 않듯 언어를 가지고 노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시를 쓰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지만 훌륭한 시인이 되는 것은 타고난 재능과 무관하지 않다. 사물에 대한 인식의 감각, 상상력, 언어 구사의 능력 등 그런 탁월한 시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을 때 세계적인 시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세계적인 위대한 시인이 되겠다는 너무 큰 꿈을 갖지 않는다면 조금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당신의 친구와 이웃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시들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 당신이 시를 좋아 한다는 것이 어쩌면 시를 잘 쓸 수 있는 소질을 갖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 도대체 시란 어떤 글인가?
그동안 역대의 수많은 시인들과 시 이론가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에 대한 정의를 해 왔다. 그러나 그 많은 정의들 가운데 보편타당한 정의는 아직 하나도 없다. 그들이 내린 정의는 다만 그가 살았던 당대의 그가 체험한 시에 대해 주관적인 견해를 피력했을 뿐이다. 앞으로의 그 누구도 시공을 초월한 금과옥조의 시에 대한 불변의 정의를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시는 계속 변해 갈 것이니까.
<역대 시에 대한 정의들>
-시는 운율적인 언의에 의한 모방(Aristotle, 『Poetics』)
-좋은 시는 힘찬 감정의 자연적 발로(W. Wordsworth 『Lyrical Ballads』)
-시는 영원한 진실 속에 표현된 삶의 이미지(P.B. Shelly)
-시는 상상과 정렬의 언어(W. Hazlitt)
-시는 미의 운율적 창조(E. A. Poe)
-시는 언어의 건축이다(김기림)
-시는 생소한 소재들로 이루어진 논리성이 약한 구조물이다(J. C. Ransom)
-詩言志 歌永言(書經)우리들의 의지(소망)를 말에 담은 것이고 노래는 그 말을 길게 늘여 놓은 것이다
-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詩經) 시란 뜻(소망)에서 빚어진 것, 마음속에 있을 땐 뜻,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된다.
시는 우주의 생명적 본질이 인간의 감성적 작용을 통하여 표현되는 통일한 구상이다(조지훈)
3. 영롱한 언어의 舍利函
좋은 시란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이다. 그러나 아무리 심오하고 훌륭한 내용을 담았더라도 독자를 감동시킬 수 없는 글이라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없다.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을 ‘아름다움’으로 잡는다. 바람직한 시 곧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시가 되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어야 한다. 즉 시란 ‘아름다운 언어들의 결집’이어야 한다.
절에서 스님들이 세상을 떠날 때 다비를 한다. 육신이 다 타고 남은 재 속에서 영롱한 결정체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것을 사리라고 부른다. 불타는 육신 속에서 만들어진 영롱한 결정체, 사리는 참 신비로운 보석이다. 그 사리는 고승의 육신과 정신과 불과 그 밖에 우리가 얼 수 없는 수많은 요소들이 협동하여 빚어낸 아름다움이다. 사리는 고승의 육신으로 빚어낸 詩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수십만 어휘의 숲 속에서 작업을 한다. 그들은 마치 직녀가 필요한 색실을 하나씩 뽑아 비단에 아름다운 수를 놓아가듯이 필요한 언어를 하나씩 선택하여 아름다운 언어의 결정체를 만들어 간다. 선택된 언어와 언어들이 잘 결합하여 諧調를 이루면 영롱한 빛이 난다. 시는 수만 개의 어휘들 가운데서 선택된 몇 개의 언어들이 아름답게 결합된 영롱한 결정체 곧 언어의 사리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