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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35~51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세례요한은 엄청난 영권을 받아서 사람들을 회개시켰는데,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소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물로 세례를 베풀면서,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았는데, 세례요한은 그가 메시야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다고 하였고, 나는 그의 신발끈 조차도 풀 수 없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적어도 2번이나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또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유월절 어린양을 말하는 것으로, 요한복음은 굉장히 유대적입니다. 사도 요한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 곧 메시야는 무엇보다도 ‘유월절 어린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복음서가 공통적으로 선포하는 공통주제이기도 합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나오기 전에 가정마다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인방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를 구워 먹으라고 하였는데,
출12:21~23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피가 발린 집은 죽음의 천사가 피를 보고 그냥 패스하였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패스오버라고 합니다. passover 통과하다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피를 보십니다. 우리의 어떠함보다, 피가 발라져 있는가를 보십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가를 보십니다. 죄의 경중을 볼 때, 모두가 죄인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교도소에 있는 죄인이나 교도소 밖에 있는 죄인이나 죄인입니다. 회개가 중요합니다. 경건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그런데 죄는 엄밀하게 볼 때, 율법으로도 부족합니다. 회개로도 부족합니다. 그것은 준비이거나,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는 방법은 그가 보내신 자 곧 메시야를 죄의 대속물로 주셔서, 그 피를 믿는 자를 구원하신 방법입니다. 피가 죄를 속합니다. 피가 발라져 있습니까. 예수의 피가 발라져 있습니까. 그것을 보십니다. 예수의 제사는 영원한 제사입니다.
히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거룩하게 된’이란 뜻은 완료 진행령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마치 성도의 삶은 붉은 양탄자 위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피가 사람을 살립니다. 에이즈가 무서운 병인 이유는, 피가 고장나는 것으로, 면역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이즈를 감기처럼 보면 안 됩니다. 아주 허무하게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성애로 대부분 에이즈에 걸립니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 같은 것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와 가정과 사회 심지어 나라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피는 죄를 용서해주시는 효력이 있습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람이 피가 없으면 죽게 되는데, 이유는 피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그러나 죄인의 피로는 죄를 속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 없으신 이를 보내셨는데, 그 분이 바로 여자의 후손입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자의 후손이란, 메시야, 죄 있는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죄 없는 예수님,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잉태해도 여자도 죄인인데, 예수님도 죄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성경에서 죄를 대표적으로 나병으로 묘사하는데, 나병환자가 정상인과 결혼하면, 정상인이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 없는 분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메시야 곧 대제사장으로 묘사하고, 로마서는 예수님을 대속죄일 화목제물로 묘사하는데, 복음서는 예수님을 무엇보다도 유월절 어린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더더욱 유대적으로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죄 없는 피’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2장에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고향 가나에서 혼인잔치를 하는데, 물이 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피로 성도를 사셔서 결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충격적인 것은, 대개 메시야를 다윗이나 모세 여호수아같이 죄를 때려잡고, 악을 섬멸하고, 죄인들을 밟아버리는 군왕적인 메시야를 연상하였는데, 이는 절반의 메시야를 본 것입니다. 심판주로 오실 때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의 기자들이 보니, 예수께서 처음 오셨을 때의 메시야는 성경에서 알려졌으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야’ 곧 대속물로 오신 메시야였습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구약에는 기름부음을 받은 왕 선지자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메시야는 기름부음이라는 뜻인데, 그러나 이분 메시야는 그런 메시야가 아닙니다. 성경이 처음부터 예언하여 가리키는 딱 한 사람 곧 유일무이한 메시야 곧 예수님입니다.
성경에 여기에 대한 예언이 많은데, 그것을 대표적으로 성경 몇 군데서 보면, 먼저 다윗입니다. 다윗은 왕들 중 유일무이한 왕이었는데, 그는 제사장 역할, 왕 역할, 선지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역대 왕 중에서 웃시야 왕이 나도 다윗처럼 해볼까 따라하다가 나병에 걸리기도 하였는데, 다윗은 수많은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메시아와 관련된 예언을 보면,
시2:7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시40:6~7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또한 모세는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는데,
신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유월절을 생각할 때, 예수님의 가장 큰 증인은 모세입니다. 모세 또한 예수님을 예언하였습니다.
신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선지자 중에서는 많지만 대표적으로 이사야가 예수님의 탄생과 고난을 예언하였습니다.
사53:1~6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런데 구약 마지막 주자 세례요한은 성령의 계시로, 예수께서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그것을 알렸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저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지도 못한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유월절 어린양이다! 그러자 드디어 세례요한의 제자 중 두 명, 곧 사도요한으로 보이는 한 사람과 안드레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요한은 굉장히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그는 모세보다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예수님께서 이들을 만나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무엇을 구하느냐?’ ‘와서 보라’ 였습니다. 하나님 속에 계셨던 아들이 나타나셨을 때, 하신 말씀은, 시내산 꼭대기에서 천둥번개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꼭대기에서 천둥번개 바람을 맞을 때, 그 앞에서 다리가 후들후들거리면서 얼굴을 가리고 두려워 떨면서 겨우 말씀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백성들을 올라오지 못하도록 경계를 정하시고 자주 주의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또한 백성들도 너무 두려워서 모세여 당신만 올라가서 독대하시오! 우리는 그를 대면할 수 없소, 하마터면 죽을까 하나이다. 하였는데, 신약에서는 하나님 가슴 속에 있던 아들이 땅에 내려오셨을 때, ‘무엇을 구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와서 ‘선생님 어디 사세요?’ 묻자 ‘와서 봐라’ 너무나도 고요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성자는 나를 보는 자는 성부를 보는 것과 같다고 하셨는데, 그러므로 같은 하나님이지만,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안드레는 예수님을 따라가서 기쁘고 들떠서 돌아왔는데,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소리를 쳤는데, 그러므로 들떠서 자기 형제 시몬에게 메시야를 알리는데, 안드레는 형제 베드로 곧 시몬에게 전도하여 그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시몬을 보고, 장차 베드로 곧 게바 곧 반석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척 보고 아셨습니다. 너는 반석이다.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뱃세다 사람이라
예수님은 이튿날, 빌립을 만나셨는데, 빌립은 벳세다 사람 곧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은 동네 출신의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자석처럼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를 따랐습니다. 벳세다는 ‘어부의 집’이라는 뜻으로, 빌립은 어부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빌립도 예수님을 만나고, 그가 메시야임을 알았고, 그러므로 빌립은 나다나엘을 만나 예수님을 소개하였는데, 빌립과 나다나엘은 친구였던 것 같습니다.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를 소개하면서, 나사렛 예수라고 소개하였는데, 나사렛 예수라는 말은 변방의 변두리의 예를 들면, 논산, 삼척 출신이라면 서울, 부산 출신과 얼마나 대조가 됩니까. 그런데, 나사렛이란 말은, 사11:1에서 나온 것일 수 있는데, ‘가지’라는 뜻입니다. 나다나엘은 바돌로매일 수 있는데, 항상 바돌로매는 빌립 다음으로 나오는데, 둘은 친구였을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고 감격하여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모세가 예언하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를 내가 만났다! 고 흥분하면서 그가 나사렛 예수라고 알렸습니다.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에게 와서 봐라 와서 봐라 나사렛 예수는 모세가 말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그 메시야다 라고 타령을 하는데, 그러나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느냐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은 한 마디로 논산, 삼척 같은 깡촌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는 무시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나사렛’은 가지라는 발음 ‘나지르’와 유사한데, 이는 예수는 연한 가지라는 뜻과 동시에 종말론적인 메시야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렘23:5~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빌립도 예수님을 만나서, 참기쁨을 갖게 되었고, 들떠서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는데, 우리가 지금은 성경을 읽을 때, 혹은 기도할 때, 구원을 체험하기도 하며 이런 기쁨을 만나기도 합니다.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예수님은 사람을 꿰뚫어보셨습니다. 나다나엘은 간사한 것이 없었습니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말씀을 암송하거나 묵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화과는 꽃이 열매인데, 꽃이 안에서 피는 것이며 동시에 열매로 겸손함과 묵상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솔로몬의 타락 전 태평시대처럼, 종말에 메시야를 통해서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왕상4:25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그러므로 나다나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가져올 메시야를 대망하며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이스라엘의 평안을 구하며 말씀을 묵상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나다나엘의 모습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자기의 진심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모시었습니다.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나다나엘은 예수님 만나 그가 구약이 대망하는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를 왕으로 알았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는데,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이는 종말론적인 말씀으로, 야곱이 벧엘에서 잠들었을 때 보니 천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한 것처럼, 이제는 인자 곧 사람의 아들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올 때에 천사들이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24:29~31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아멘.
이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의 모습으로, 최후 심판의 때를 가리킵니다. 인자가 다시 오실 때, 천사들이 사방에서 그의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르락 내리락 할 것입니다.
살전4:16~18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그러므로 나다나엘은 안 그래도 로마 식민지 시대를 살고 있고, 나라가 엉망인데, 예수님을 만나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도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을 때, 우리나라가 이제 회복되느냐고 물었었는데, 예수님은 그것은 너희가 알 바 아니라고 대답하셨는데, 그런데 다만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될 때가 이스라엘의 진정한 회복의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림으로 치면 이스라엘은 화룡정점의 나라입니다.
행1:6~8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스데반은 나사렛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모세의 가르침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모세는 오경의 저자이고, 제사장 왕 선지자를 세운 사람인데, 모세가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유월절을 제정하고, 피를 발라 재앙을 피하고, 어린양을 먹으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가는 체험을 하였고, 또한 홍해가 갈라지는 체험을 하였는데, 그리고 마침내 모세의 예언대로, 메시야가 오시게 되었는데, 그는 놀랍게도 메시야는 곧 유월절 어린양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받는 메시야였습니다. 그는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물로 오신 메시야였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것을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요3:14~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당신의 영혼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발라져 있습니까? 예수께서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까?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김을 받습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아멘.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