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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앵두색 연지를 옅게 바른 은하는 어떤 색의 한복을 입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미호야-.. 전하는 어떤 색 한복을 입으신대?’
‘전하는…먹색이나..그러게요..먹색 말고는 입으시는 걸 못 봤어요’
‘먹색…그럼 지금 가서 일러드려. 나는 아이보리색 저고리에 옅은 하늘색 치마를 입을 거라고’
며칠 사이 일러두겠다는 전하의 말버릇이 옮은 은하다.
‘아..아이..보리가 뭡니까 마마..?’
아차차 외래어
‘그니까…약-간 노란색을 띠는 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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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갈 채비를 마친 은하는 궁 한 가운데 서서 전하를 기다린다. 오늘 날씨는 공기가 조금 쌀쌀하지만 내려오는 햇빛이 따뜻하다. 해를 가만 보다가 눈이 부셔 손으로 가려보려던 찰나다.
‘..오래 기다렸습니까’
어느새 곁에 온 전하에 은하는 부신 눈을 가리려던 손을 내리고 전하를 가만 본다.
여전히 검은색과 남색으로 이룬 전하의 복장에도 은하는 웃는다.
‘아니요. 가요’
허리쯤에 묶여 달랑거리는 장신구의 색깔이 아이보리와 하늘색이었던 걸 은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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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는 볼거리도 사람도 많고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진짜 애들이 많네요-..’
‘…궁 밖을 나와보지 않은 사이에 아이들이 더 늘었습니다’
그 와중에 물건을 팔겠다고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도 사겠다는 사람들에게도 남녀를 불문하고 등에 한 명, 손에 한 명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고 모든 아이가 울고만 있으니 모든 어른들도 거기에 얽매여 어쩔 줄을 모른다.
‘..어쩌면 얘기 나눴던 유치원..이라는 곳이 한시 빨리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하는 예상보다도 우는 소리로 가득한 저잣거리에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 한동안이나 아빠를 보채는 한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전하에게 은하는 말한다.
‘오늘은 나랏일 하러 나온 거 아니에요! 저 놀려고 나온 겁니다..?!’
그런 은하를 보며 전하는 못 말린다는 듯이 웃는다.
‘…알겠습니다’
전하와 은하는 그렇게 들려오는 울음 소리를 애써 지우고 저잣거리를 한참이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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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얼마예요?’
나열된 장신구를 보며 묻는 은하다.
‘열 냥인데 여섯 냥만 주세요’
뒤져볼 것도 없이 돈 한 푼 없는 은하는 현실에서 하던 것처럼 ‘좀 더 둘러보고 올게요~’를 시전한다.
‘..갖고 싶습니까?’
‘예쁘긴 한데 괜찮아요. 액세서리 별로 안 하고 다니니까’
‘액..세서리..’
아차차 외래어
‘장신구요. 장신구’
‘원하신다면 하나 선물하겠습니다’
‘…그럼..잠깐만요’
하더니 아까 그 가게로 뛰어가는 은하는
‘아저씨 이거 여섯 냥말고 다섯 냥에 주시면 살게요!’
여전히 현실에서 하던 버릇을 못 버리고 흥정을 한다.
아저씨와 한참을 깎다가 결국 아저씨가 ‘부인이 이기셨습니다. 다섯 냥만 주세요’ 하고 장신구를 내어주고 전하에게도 ‘부인께서 이기셨습니다’ 한 마디 건넨다.
부인…부인..
청동거울에 비춰 받은 비녀를 이리저리 대보느라 바쁜 은하는 그 말을 못 들었다.
그대로 여섯 냥을 건네는 전하에게 아저씨는 부인이 이렇게 열심히 깎았는데 노력을 무시하면 안 된다며 한 냥을 다시 돌려준다.
‘대신 부인 모시고 또 오세요. 그때는 안 져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토끼 같은 부인에 참 즐거우시겠습니다’ 말을 더하면서.
은하는 그제야 꽂을 자리를 찾은 듯 약간의 머리카락을 모아 잡아서 돌돌 말아 높게 올렸고 그걸 보던 전하는 은하의 비녀를 가져가 높게 올린 머리에 은하 대신 비녀를 꽂아주며 말했다.
‘..잘 어울리십니다’
토끼 같은 부인을 바라보는 지아비의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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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조금은 그림자가 짙어졌다.
‘…바람이 차지는 않습니까’
‘해가 지니까 좀 쌀쌀하긴 하네요. 이제 들어갈까요?’
‘...예. 그럽시다.’
밀린 나랏일이 본인 방에 쌓여있을 걸 알면서도 오늘따라 조금은 늦장을 부리고 싶은 마음에 대답이 늦어버린 전하다.
‘저 때문에 돈 써서 어떡해요?’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좋은 구경했으니 보답이라 생각하세요’
정말 어두워져 바람이 차진 탓인지 궁으로 돌아가는 길목 짙어진 두 사람을 늘어트리던 그림자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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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에 돌아온 은하는 한지에 붓으로 급하게 줄줄이 써 내려간다. 한참을 까만 글씨들을 적어 내려간 지 몇 시간쯤이 지나고서야
‘…다 됐다..’
하며 겨우 잠에 든다. 여전히 비녀를 풀지 않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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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둥근해미친것또떴네’ 현실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배웠던 밈으로 하루를 시작한 은하는 어제 밤 내내 써 내려갔던 빼곡한 한지를 여러 장 챙겨 전하를 찾는다.
‘전하-! 저 들어갑니다!’
이제는 하루가 멀다하고 여전히 예를 갖추지 않고 전하를 찾는 마마 때문에 전하의 방 문턱이 닳고 닳겠다고 궁인들은 말한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런 은하를 타박하기보다 웃으며 맞이하는 전하도 요즘 따라 묘하게 웃는 일이 잦아졌다고도 한다.
‘제가 동화라는 걸 썼습니다’
‘..동화..’
‘..이것도 있는 거 베낀거긴한데..아직 여긴 없는 거니까’
‘손에 든 게 동화..라는 겁니까’
‘네. 여기요. 한 번 읽어보세요’
전하에게 종이 뭉치를 건네며 말한다.
‘아이들을 한 곳에 모아 동화라는 걸 읽어주고 시간을 보내주다 보면 마냥 울면서 엄마아빠에게 매달리지는 않을 거예요. 물론..어느 한 곳에 모아야 할지는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어쨌든 읽어보세요’
하며 돌아가려던 은하에게 전하는 말한다.
‘다과라도 내놓으라 하겠습니다. 온 김에 차라도 한잔하고 가세요’
따뜻한 차가 간절할 만큼 날씨는 춥지 않았지만 차를 권하는 전하도 그에 응하며 자리를 지키는 은하도 아직 차 한 잔 정도는 괜찮은 날씨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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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한 한글들로 빼곡히 적힌 종이 뭉치를 쳐다보던 전하는 웃으며 은하에게 말한다.
‘서체가 꼭..글씨를 어제 배운 아이같습니다’
‘..한글을 어제 배운 게 아니라 붓을 어제 처음 쥐어본 거예요’
연필 볼펜 샤프 단단한 심들만 싸봤지. 힘을 주는 대로 이리저리 휘어버리는 붓으로 글씨를 쓴다는 게 여간 쉽지 않았던 은하는 그래서 어제 늦은 잠을 잤나 보다.
‘..이걸 쓰느라 늦게 주무셨습니까’
‘얼른 안 쓰면 또 이야기를 까먹을까 봐서요’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번엔 어떻게 보답할까요’
‘내일 아침은 소 말고 돼지고기를 올려주세요’
‘… 내 그리 일러두겠습니다’
여전히 가장 예쁜 색의 다과를 은하 접시 올려주는 전하다.
‘전하는 붓을 맨날 쓰세요?’
‘아무래도 서신에는 답신을 내려야 하니 붓이 마를 날이 없긴 합니다’
그 말을 인증이라도 하듯 전하 옆에 놓여있는 벼루에는 여전히 갈리다 만 먹과 까만 물을 머금은 붓이 그대로 있다.
‘그럼 보답으로 글씨 쓰는 거 보여주세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은하는 오늘도 생각도 못 한 보답을 요구하고 전하는 그런 은하가 못 말린다.
‘어떤 글씨를 써드릴까요’
그리고 그런 은하에게 순순히 응하기도 한다.
‘음…전하 이름?’
은하의 말을 듣더니 붓을 털고 새로운 한지에 슥슥 적어 내린다.
이름을 써 달랬더니 쓰긴 썼는데 한자로 쓴 이름에 어느 방향이 맞는지도 모르겠는 은하는 그니까.. 전하 이름이 뭐냐고 다시 물을 수도 없고 그저 그 종이를 접어 챙긴다.
‘저도 한번 써볼래요’
전하의 붓을 챙겨 든 은하는 답장이라도 하듯 자기의 이름을 한글로 한자 한자 적어 내린다.
고
은
이름 마지막 자만을 남겨둔 그때 전하는 은하의 손 위를 겹쳐 쥐고 함께 마지막 자를 써 내린다.
‘붓을 쥐고는 생각보다도 손의 힘을 빼셔야 합니다’ 나즈막이 말하며 이름을 다 써 내린 그때 서야 은하의 손을 놔준다.
마지막 ’하’ 글씨만이 가장 가지런히 쓰여져 완성된 이름 석 자를 은하는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전하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 종이를 웃으며 은하에게 내밀 뿐이다.
‘서체 연습을 하고 싶거든 언제든 건너오세요’
어떤 감정 때문인지 전하를 따라 웃을 수 없는 은하였고
전 날 늦은 밤까지 촛불이 꺼지지 않고 주황빛을 내보내던 은하 방을 전하는 멀리서 지켜봤기에 알고 있었지만 속으로 삼키며 웃을 뿐 굳이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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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방으로 돌아온 은하는 이름 석자가 적힌 한지를 바라만 보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상한 기분에 상 위에 종이 펼쳐놓고 잠에 들었다.
‘마마- 일어나셔서 아침 드세요-!’
차려진 아침에는 양념 된 돼지고기가 올라와 있는 걸 본 은하는 웃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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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전하가 아침 드시고 와달라 하셨어요’
‘그래? 동화를 다 읽으셨나 보다’
‘동화요? 그게 뭐예요?’
‘아이들을 위한 소설 같은 건데 읽어주면..아이들이 시간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몇 장써서 남겨드렸어’
‘동화..그거 나중에 저도 들려주세요’
‘그래’
‘오늘은 어떤 색 연지를 바르실래요?’
‘….앵두색 바를래’
‘며칠째 그 색만 고집하시네요-? 맘에 드셨나 봐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웃으며 밥 한술을 입에 대는 은하의 눈은 비녀로 향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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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익숙한 궁 내부를 휘휘 젓고 단박에 전하의 방을 찾아내는 은하다.
‘전하- 들어갑니다’
방에 들어가자 보이던 얇은 천이 보이지 않고 곧장 전하가 보인다.
‘아침은 잘 드셨습니까’
‘돼지고기도 맛있던데요? 그나저나..’
천이 가리고 있던 자리를 손으로 가르키며 은하가 묻는다.
‘천이 없어졌네요?’
‘..들어올 때마다 걷어내야 하는 것이 불필요한 것 같아 내리라 했습니다’
‘..좋네요’
딱히 뭐가 좋은지는 말하지 않는 은하다.
‘어제 써 왔던 이야기들 읽어봤습니다’
‘..어떠셨어요?’
‘교훈이 있고 재밌었습니다’
‘…다행이다’
내심 긴장하던 은하는 맘을 놓고 앞에 놓여있던 약과를 문다.
‘..하나 걸리는 게 있습니다’
‘..뭔데요?’
‘..이.. 동화라는 걸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 싶습니다’
‘서재 책들처럼 목판으로 파고 찍어내기에는 어렵나요?’
‘글의 양도 많고, 어떤 영향을 불러낼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목판을 파는 인력조차 쓰기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생각만큼 동화에 흥미 없어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나랏일이다 보니 전하가 전하는 말들이 길어짐에 은하는 먹던 약과를 다시 내려놓고 함께 진지하게 임할 수밖에 없었다.
은하는 키즈크리에이터였다. 동화 구연쯤이야 그 어느 것보다 쉬운 직업이라는 말이다.
‘…그럼 저 한번 믿어보실래요?’
토끼같은 얼굴로 믿어보겠냐는 여인을 안 믿는다기에는 전하의 마음이 너무도 물러서.
‘…믿겠습니다’ 하며 웃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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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에는 옥새가 찍힌 공문이 내렸다.
토요일 오후 2시 저잣거리 끝 쪽에서 아이들만을 위한 연극이 열릴 테니 모두가 모이라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맡기고 해야 할 일을 해도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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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 오기까지 은하와 전하는 바빴다. 은하는 동화 구연에 필요한 손 인형을 한 땀 한 땀 만드느라, 전하는 은하가 말한 유치원이라는 곳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지 작은 것부터 제대로 구상해 내느라.
‘전하- 이거 봐요. 셋째 돼지까지 다 만들었어요. 어때요. 귀엽죠?’
‘둘째 돼지는 코가 좀 삐뚤어진 것 같습니다’
‘..의도 한 거예요’
의도한 거라 해놓고도 ‘..되게 날카롭네..’ 뒤돌아 중얼거리는 은하를 보며 그게 아무리 자기를 향한 투덜거림이래도 못 말린다는 듯 웃기만 하던 전하도 묻는다.
‘..유치원이라는 곳에 상주할 선생님들을 어떻게 뽑는 게 좋겠습니까’
‘음-…우선 애들을 사랑하는지가 중요하겠죠?’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그니까.. 지금 보는 시험문제들처럼 너무 사회지식 같은 공부를 잘하기보다는-…’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대화를 나눈다는 건..
인형 만들기도 유치원을 구상하는 것도 모두 전하의 방에서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며칠째 은하는 잠잘 때 빼고는 전하의 방을 찾는다.
전하가 묻는 말에 해답을 주기도 하고 인형을 만들다가 해가 저물면 저녁을 먹기도 하고 지쳐있다 보면 새참을 먹기도 하고.. 가끔은 배부른 은하가 졸다가 전하 방에서 잠에 들기도 한다.
그렇게 은하가 잠들 때마다 자기 자리에 눕혀 이불을 덮어주고 ‘..좋은 꿈 꾸세요’ 하며
딱딱한 바닥에서 밤을 새워가며 나랏일을 보던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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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후..왜 이렇게 떨리지’
카메라 앞에 서지 않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긴장이 되는 은하다.
토요일이 온 거다.
‘잘할 수 있을 겁니다’
‘..그죠? 잘할 수 있겠죠 저?’
‘제 앞에서 하던 대로만 하십쇼. 아이들이 좋아할 겁니다’
긴장해서 입술을 가만히 두지 못하던 은하의 연지가 번졌다. 전하는 번진 연지를 엄지로 닦아 정돈해 준다. 지금 떨리는 심장이 앞둔 동화 구연 때문인지 자기 입술을 건드리는 전하 때문인지 모르겠던 은하는
‘..전하는…뭘 보고 저를 이렇게 믿으세요?’ 물었고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클 테니까요. 지금은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전하는 답했다.
5년을 일해도 마카롱대표 그 새끼는 그걸 몰라줬는데…하며 눈물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뛰던 심장이 조금 더 빠르게 뛰는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정답은 모른 채 궁의 문이 열렸고 시끄러운 저잣거리로 다시 발을 딛는 은하와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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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곳에는 아이들이 복작였다. 드문드문 엄마나 아빠와 함께 온 아이들도 있었고.
1부는 아기돼지 삼 형제, 2부는 금도끼은도끼, 3부는 해님달님
이야기를 진행하는 내내 아이들은 울음을 멈추고 은하의 이야기를 들었다.
동화가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아이들은 늘어났고 어느새 아이들과 함께 있던 부모님들은 자리를 비웠지만 아이들은 사라짐 엄마아빠를 찾을 기색이 없었다.
‘그래서~ 어두운 밤을 무서워하는 아직 어린 동생 대신 오빠가 대신 달님이 되고
동생은 해님이 되어 오랫동안 우리를 지켜주고 있답니다~’
마지막 동화가 끝나자 박수를 치는 아이들에 은하는 간만에 느껴지는 뿌듯함을 느끼다가 저 멀리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을 전하를 찾는다.
전하와 눈을 마주치며 은하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웃음으로 답하던 전하의 마음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계속 빠르게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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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너무 재밌었대요’
‘아가씨 덕분에 오랜만에 걱정 없이 장사했어요. 고마워요’
아이들을 데리고 저잣거리를 벗어나는 부모님들은 은하에게 한마디씩 건낸다.
궁으로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이 유독 가벼운 듯한 은하다.
‘저 잘했죠?’
‘잘하셨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동화를 할까요?’
‘…목소리가 많이 상했습니다’
‘…오랜만에 큰 소리로 말하다 보니까’
‘당분간은 몸을 챙기세요’
‘그럼…동화구연은요?’
‘동화의 효과가 어느 정도 보였으니 동화구연을 전문적으로 맡을 선생을 뽑을까 합니다’
‘그럼 저는 동화를 더 써놔야겠어요’
‘서체를 적을 붓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오세요’
전하의 방에도 은하의 방에도 먹과 붓이 있지만 은하의 방의 붓은 젖을 날이 없었다.
‘전하 고마워요. 덕분에 아이들 웃는 것도 직접 보고 오랜만에..사는 것 같고 뿌듯하네요’
‘…나야말로 덕분에 오늘 저잣거리 백성들 얼굴이 한결 편해진 걸 오랜만에 봤습니다. 애써줘서 고맙습니다’
집집마다 울음 소리로 가득했던 마을에 오늘만큼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대화 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엄마 그래서 가장 낡은 도끼를 떨어트렸다고 솔직하게 말한 나무꾼에게는-뭘 줬게’
‘뭘 줬는데? 금은보화를 줬을까?’
‘아니야- 부러지지 않는 금도끼를 줬대-‘
‘또-?’
‘또-옛날에..’
옥군의 가장 문제였던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멈춰질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