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2:12~17 운명 앞에서 드러난 실체
12 내가 돌이켜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보았나니 왕 뒤에 오는 자는 무슨 일을 행할까 이미 행한 지 오래 전의 일일 뿐이리라 13 내가 보니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도다 14 지혜자는 그의 눈이 그의 머리 속에 있고 우매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만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는 것을 나도 깨달아 알았도다 15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 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16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다 잊어버린 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17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예수님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부자는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고 있고, 거지 나사로는 부자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어 먹고 사는데, 심지어 개가 와서 나사로의 헌 데를 핥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둘이 같은 날 죽었는데, 거지 나사로는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고, 부자는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삽이라는 시인은 왜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한가. 악인이 형통하고 그들이 죽을 때도 고통이 없고 사람들의 죽음이 일반이더라 내가 의롭게 살 필요가 있는가. 그런 탄식을 하였는데,
시73:3~1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그의 질문에 대해서 전도서가 대답을 준다. 또한 아삽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다.
시73:17~20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리이다
신기한 것은 지혜자 솔로몬에게는 이 눈이 닫혀 있었다. 다만 그는 죽음이라는 공동의 운명을 두고, 죽음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긍휼로 하나님을 모르고 죽는 자들이 겪는 허무를 미리 겪었다는 점이다. 솔로몬은 아주 깊은 허무에 빠졌는데, 그의 땅에 있었던 모든 영광이 미끄럼틀에서 흘러내려가듯이 다 사라져 버렸다. 예수님은 솔로몬의 영광이 꽃 하나만 못하다고 하였는데,
마6:29~30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솔로몬은 땅의 영광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 그가 죽을 때가 되어 보니, 정말 아무것도 남는 것이 그에게 없었다. 반면에 예수님은 땅에 계실 때, 머리 둘 곳도 없이 아무것도 없이 사셨다. 그런데 이렇게 하신 이유는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땅에 보물을 쌓기보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 하셨는데,
마6:19~24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이야 말로, 이 원리로 볼 때, 하늘에 가장 큰 보물을 쌓으신 것이다. 솔로몬은 내세를 알지 못하였을까. 그는 왜 이렇게 허무한 것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비유로 유추할 수 있는데,
눅12:15~21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박용규 목사님이란 분이 천국에 가보니, 땅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엄청난 보상을 받더란 것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일반으로 받지만, 얼마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천국에서 집이 각각 다르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달란트 므나 비유에서도 그러한데, 그 이유는 예수께서 각 사람의 처소를 예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전도서가 이렇게 허무한 이유는 무엇인가. 솔로몬은 영적으로 볼 때 잘못된 터 곧 혼합된 터에 집을 지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는 한 때 일천번제를 지낼만큼 열심이었으나, 혼합된 후에는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어떤 분이 솔로몬의 집을 보았는데, 넝마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위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터 문제인데,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고후6:14~18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터가 잘못되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혼합 시대를 이렇게 진단하였는데, 참으로 시대를 꿰뚫는 진단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정확성과 정의들을 싫어하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반신학적이고 반교리적이며 정확한 지식을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게으르며 감상적이고 나태하며 즐기기만을 원하지 어떤 노력을 기울이기를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삶 전반에 있어서 원리가 되고 있는데,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원리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 전반에 퍼져 있으며, 우리 난제들을 대부분 설명해 주는 요인입니다. 그러한 관점이 기독교에도 드러나는데, “기독교는 어떤 사람의 정신의 문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인 반응이다.” 이 세대는 믿음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느냐 보다 무엇을 느끼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악명 높은 사람이 복음전도기관에서 서적을 팔고 있었는데, 그는 기독교에 대해 아주 유명한 책을 썼는데, 그는 사실상 기독교 신앙의 중추적인 모든 조항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로이드존스)는 책방 주인에게 이 분을 만나보셨나요?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하였든지 간에 나는 그의 집에 가서 기도회를 드렸고, 그 예배는 하나의 축복이었으며, 그 사람보다 더 경건한 사람은 만나 본 적이 없어요. ” 라고 대답하였는데, 나는 “선생님이 뭘 느끼느냐에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가 성경을 부인하는 말을 했어요” 라고 대답하였는데, 여기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알게 된 것은 이 시대의 사람들은 그 저자가 성경의 가르침과 신조를 부인하더라도, 책에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뭐라고 하든 말든, 무언가 느낌을 받았으면 그 사람은 결국 옳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현대적인 추이에 대해서 발견되는 것은, 천성적인 성품이나 멋진 모습이나 아름다운 교양을 기독교 은혜로 착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은 결코 비평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저는 그보다 더 위험스러운 것을 알지 못합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바로 이 소위 은혜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나 사도 바울보다 훨씬 멋진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보다 더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저는 그리스도인이 기독교 신앙 전체에 관해 완벽한 이해를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있는 바는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최소한의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위험한 것은 율법주의를 피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장벽과 표지판들을 다 때려 부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든지 다 좋다는 식입니다. ”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다 함께 하나의 몫을 차지하며 함께 하나의 놀라운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 로마 카톨릭 교도들이 지금 갑자기 변하고 있다. 모든 것은 기이하다. 우리는 이제 하나의 큰 보편교회를 가지게 될 것이고 더 이상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런 식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서를 통해서 확인되는 것은, 혼합된 지혜를 가졌던 솔로몬이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서 만난 자신의 지혜의 허무함이다. 이런 것들이 소위 이단이라고 불리는 자들인데, 솔로몬은 한 마디로 이단에 빠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도 이렇게 말하였다.
딤전6:20~21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