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은 실용적인 물건은 창고에 숨겨 놓는다고 한다. 대신 많은 쿠션으로 손님용 침대를 장식하고 조화로 거실 테이블을 장식한다고. 쓸데없는 것에 돈을 쓴다. 세탁기나 청소기 같은 실용적인 도구가 눈에 띄면 안 된다. 왜? 집에 손님을 초대할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차를 깨끗하게 쓴다는 말이 있다. 조수석에 손님을 태울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교양은 자기만족이 아니다. 나 그 음악이 너무 좋았어. 교양없는 사람의 천박한 말투다. 내가 문장의 주어가 되면 스노비즘이다. 손님을 내 문장에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교양은 그 자체로 스노비즘이다. 교양은 속물을 비웃는 것이면서 그 자체로 속물행동이라는게 아이러니다. 교양이 있는 사람만 모이면 교양이 없어지는 역설을 알아야 한다.
제왕무치라 했다. 귀족은 교양이 없다. 교양은 하인들을 경쟁시켜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버리는 기술이다. 과거제도가 없는 유럽은 면접을 봐서 군주를 설득해야 했다. 군주는 귀찮게 구는 취업지망생 식객을 물리쳐야 한다. 3분 안에 군주의 관심을 끌어내려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두루 섭렵하고 더하여 자기만의 전문분야를 가져야 한다. 그게 교양이다.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다니는게 속물행동이다. 상대가 나를 얕잡아볼까 싶어 자신을 과시한다. 콤플렉스라는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있다. 점원이 콤플렉스를 건드리면 발끈하여 충동구매를 한다. 그렇게 인간의 마음은 조종된다. 자기소개 하면 안 된다. 나 이런 사람이야. 나 돈 있어. 나 이대 나왔어. 내 아들 서울대 다녀. 그런 열등감 때문에 낚이고 마는 것이다.
교양은 상대방이 내게 말을 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손님을 만났는데 서로 할말이 없으면 민망하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풀어가는 방법은? 서재를 꾸며도 자기 취향대로 꾸미면 안 된다. 난 이게 좋아. 내 방은 이렇게 꾸밀래. 미친거다. 프랑스라면 서재를 인디언풍이든, 일본풍이든, 인도풍이든, 이국취미를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손님이 내게 말을 걸 수 있다.
책상 위에는 책을 읽다가 덮어둔 것처럼 연출한다. 책을 매개로 손님이 내게 말을 걸 수 있게 유도한다. 명품을 사는 것도 이유가 있다. 그거 어딨어 샀어? 하고 말을 걸게 하는게 목적이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그렇게 해야 한다. 매일 머리모양을 바꾸고 옷을 바꿔입어야 한다. 너도나도 루이비똥 가방을 사면 그걸로 말을 걸 수가 없잖아. 남들과 차별화해야 한다.
한국인은 식당에서 10분만에 밥을 먹고 할 말이 없어서 잔소리나 한다. 너 언제 취직할거니? 서먹서먹해진다. 교양인들은 언제든 두시간은 떠들 수 있는 대화거리를 장만해둔다. 영화를 재미로 보나? 교양인은 영화를 대화거리로 본다. 흥행영화보다 영화제 영화를 본다. 흥행영화는 남들도 다 봐서 할 이야기가 없다. 특이한 영화를 봐야 두 시간 동안 떠들 수 있다.
일본음악은 장르가 다양한데 한국음악은 다 똑같다. 한국은 자기만족을 위해 음악을 듣고 일본은 대화의 소재로 삼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관점이 다르다. 중요한 것은 원인이냐 결과냐다. 일본은 원인지향적이고 한국은 결과지향적이다. 결과는 나다. 내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게 한국인 생각이다. 이게 속물이다. 자기소개를 해서 대화 분위기를 깨는 것이다.
교양인은 나를 배제하고 인류에게 좋은 것을 말한다. 그래야 손님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이한 장르를 찾아다닌다. 한국인 중에 서울역에 전시되었다가 철거된 황지해 작가의 슈즈트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안 된다. 대부분 저게 예술이냐며 화를 낸다. 백남준이 피아노를 때려부수면 내가 좋은게 아니고 대화거리가 되는 것이다.
교양은 교묘한 인간차별이다. 타인을 차별할 권리를 획득하게 한다. 원래 에티켓이라는게 무도회에 어울리지 않는 촌놈들을 걸러내려고 만든 장치다. 규칙을 슬쩍 바꿔놓고 촌놈에게는 통보하지 않는다. 남들은 다 무도회의 드레스코드에 맞는 복장을 하고 왔는데 혼자 가면무도회인데 가면이 없다고? 귀찮게 하지말고 눈치껏 알아서 돌아가라는 거절의 표시다.
애초에 배제할 의도가 있다. 한국인은 교양이 없다. 바보들을 엿먹이는게 교양의 본질이라는 것을 모른다. 한국인은 내게 좋은 것을 찾는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좋아하는 것을 고른다. 미친 거다. 영국 귀족이 정원을 열심히 가꿔놓고 자랑하는게 교양이다. 내 취향대로 정원을 꾸미면 안 된다. 정원은 손님을 위한 공간이다. 이색적인 볼거리가 있어야 손님이 온다.
프랑스인은 밥을 두시간씩 먹으면서 주구장창 떠들어댄다. 대화 소재가 고갈되면 곤란하므로 손님이 지루하지 않게 최신 영화, 최신 도서, 최신 음악, 최신 유행의 트렌드를 꿰고 있어야 한다. 교양은 본질에서 속물이며 새로운 속물로 낡은 속물을 밀어내는 것이다. 자기소개 곤란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 미술, 영화, 소설 피곤하다. 공유하는 것을 들고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