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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 2023년 05월호(통권 339호) - 80~89
신화를 찾아가는 자연과 문학
장호병
수필가⋅문학평론가⋅사)한국수필가협회 명예이사장⋅북랜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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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류가 이 세상에 출현한 뒤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이어가는 질문이다. 우선 이 광활하고도 거대한 우주를 주관하는 이는 누구며, 우리가 생을 영위하고 있는 세상 지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삶의 무대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자연의 변화와 많은 현상들에는 어떤 원리가 작동하고 있을까. 이를 규명하고 설명하고자 애썼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초월적인 존재나 현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신화는 이야기에 이야기를 더하면서 체계를 이루어 나갔다. 공동체의 진로 안에서 구성원들의 불안을 잠재워 나가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자연이나 우주의 현상에서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법칙성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하늘의 문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피하기 어려운 자연재해는 어떻게든 수용하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이러한 연유로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절대적인 힘에 의탁하고 싶었을 것이다. 작은 사건의 해결에 결정적 기여를 한 용기와 불굴의 집념, 그리고 인간 삶의 이치에 체계를 더함으로써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보통사람들보다 초월적이거나 담대한 능력의 영웅이 가끔 나타났다. 이 영웅들은 실존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 다만 그들의 행적을 역사 적진실로 꾸며 불사신으로 신격화하고 인간 삶의 중심으로 불러왔다고 믿는 학자들도 있다.
인간세계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지만 그 이치는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어야 한다. 그리하여 천국과 지옥, 죽음과 부활, 천사와 악마, 영생의 신선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 등 이분법적 초월적 개념이 공고해지면서 신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신화는 단순히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 욕망, 투쟁, 협력과 배신 등은 물론 삶을 영위하는 산 강 바다와 같은 자연환경, 농사 목축 어업과 같은 생업 종사 방법, 그리고 종교적 제의와 관련하여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삶의 정신을 나타내는 인간상까지 은연중 구현해야 할 가치를 담으려 한다.
원시 인류는 물론 현생 인류, 나아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인간 삶을 밝히고 이해하려고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았는가 하는 점은 신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비록 과학 시대 이전의 신화라 할지라도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의 우리 못지않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신화는 특정 문화나 지역에서의 역사와 종교, 사상 등에 영향을 받아 탄생되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문화나 지역의 정체성이나 가치관, 인식, 도덕적 가치를 은연중에 심어주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해왔다.
표면적으로는 환상적인 이야기로 포장하고 있지만 신화는 공감대 형성을 위해 서사가 이루어지고 그 속에는 명백한 질서의 개념이 들어 있다. 과학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를 신의 의지로 돌리고,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없다는 인식을 수용함으로써 불안을 잠재워야 했다. 그래서 신화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어서도 안되고 너무 숨겨서도 안된다.1)
무한 상상력으로 빚어진 신화는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환상적이자 흥미로운 이야기로 인간 삶을 통찰한 교훈적 철학적 내용을 오랜 세월 동안 검증하여 왔기에 인간을 근원적으로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본고에서는 인간 삶의 무대인 자연이 신화에 어떻게 투영되고, 삶의 지혜가 스토리화되는 과정, 그리고 버전을 달리하여 신화가 계속 이어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이 어떻게 신화를 수용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https://addisstory.tistory.com/111,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정현 역, 1995, 현대미학사)
2. 신화의 탄생
인류는 어느 지역에서 생을 이어가든 세계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천체의 운동과 계절 자연의 변화, 생명체의 소멸 등에서의 일정한 주기의 패턴 등을 이해하고 상상을 보태어 흥미있게 그리고 경건하게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현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영웅과 신들의 탄생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그 정점에 닿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상상의 제1원인이 창세신화가 되고 이는 신들의 세계에도 계보를 형성하게 된다.
사람들의 상상력 발휘는 또 다른 창조적 이야기로 이어지고 가장 설득력 있는 지혜의 원천으로 수렴한 것이 신화다. 신화야말로 가장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극대화한 산물이라 하겠다.
중국의 신화집 『산해경』에 등장하는 제강(帝江)은 자루처럼 생긴 몸매에 얼굴이 없는 혼돈의신이다. 그래도 여섯 개의 다리와 네개의 날개로 노래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남해를 다스리던 숙(儵)과 북해를 다스리던 홀(忽)은 만날 때마다 제강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다. 눈 코 입 귀가 없는 제강이 얼마나 불편하겠는지 안타깝게 여겼다. 둘은 이목구비를 뚫어주기로 했다. 하루에 한 구멍씩, 마지막 일곱째 구멍이 뚫리는 순간 제강은 그만 죽고 말았다.
숙과 홀은 제강을 카오스의 몸통으로 여겼다. 카오스, 거기에는 우리가 읽지 못하고 있을 뿐 나름의 코스모스가 깃들어 있다. 그들은 이 코스모스를 간과한 것이다.
카오스는 우리가 밝혀야 할 궁극적인 그 무엇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우리의 해석을 기다리는 삶이다. 결국 코스모스를 그 안에 내포하고 있었던 카오스의 신 제강이 죽음으로써 코스모스의 세계가 열렸다. 여기에서부터 해석이 시작된다. 카오스의 해석을 통해 얻게 되는 코스모스는 순서화 질서화 가치화 조화를 도모한다. 그 해석의 길은 다양하다. 정답만 있는 게 아니라 해법도 있다. 정답보다 더 실제적인 명답도 있다.
한편 서양에서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에 따라 밤낮의 구분이 생기고 계절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거스를 수가 없다.
카오스라는 무질서 상태에서 대지의 신 가이아가 탄생하였다. 그녀는 스스로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낳고 이들은 부부가 되어 자식들을 낳는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신 가이아의 막내아들 크로느스는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신들의 지배자 자리에 오른다. 우라노스는 아들 크로노스에게 자식 키워봤자 앙갚음이 아니라 앙갚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비난과 저주를 퍼부었다. 크로노스는 자신도 자식에 의해서 지배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녀 다섯 명이 태어나는 족족 그들을 삼켜서 몸속에 가두었다. 아내 레아는 자식들을 사랑했기에 가이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가이아의 조언에 따라 레아는 크레타섬으로 가서 여섯째 아들 제우스를 분만하였다. 아기를 내놓으라는 크로노스에게 레아는 돌덩이를 싼 강보를 전했고 그는 그것을 삼켰다. 가이아의 보살핌으로 성장한 제우스는 크로노스를 찾아갔다. 가이아와 첫 아내인 지혜의 여신 메티스에게 토하는 약을 받아 크로노스에게 먹여 자신의 남매들을 구하고 아비 크로노스를 올림푸스 동산에서 몰아냈다.
아비가 자식에게 밀려난다는 이야기를 통해 신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과거-현재-미래. 신화는 우리에게 어떤 힘으로도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이 밀려난다는 것을 웅변한다.
동서양의 창세신화를 종합하면,
인간이 코스모스에 이르는 길은 정답보다는 시간과 공간에 따른 해법이 더 유용한 명답으로의 과정이 될 수 있으며 인간은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많은 신화들이 창세신화와 무관하지 않다.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지역 에서의 창세신화는 종족의 경계를 초월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반면에 섬나라는 섬의 수만큼 신화의 수가 존재한다는 설이 있고 또 실제로 그러한 지역이 많다.
인간 집단 규모에 관계없이 이 세상은 어떻게 탄생하였으며, 또 인간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 공통적으로 이문제에 대해 인류가 천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신들의 세계를 통하여 인간세계가 추구해야 할 질서를 보여주었고 이에 따라 인간과 신들의 관계도 정립되었다.롤랑 바르트는 『신화론』에서 인간 집단이 어떤 가치의 기치를 내거느냐에 따라서 신화는 생겨나기도
하지만 소멸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화는 역사에 의해 선택된 빠롤이다. 신화는 사물들의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상태(자연)으로부터 솟아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인식이 개입되어야 하는 것이 고, 인간의 인식이란 역사에 의해서 형성된다. 현실을 언어화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이므로, 오직 역사만이 신화적인 언어의 생과 사를 결정한다. 신화가 역사적인 것이라면 신화는 영원하지 않다. 피었다가 사라지는 게 신화인 것이다.”
이야기는 말로 전승되면서 인지의 발달과 사회환경에 따라 변형 발전되어 신화의 형태로 전해졌다. 신화는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인 요인으로 영향을 받아 새로운 영웅과 신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기존의 신들은 사라진다. 신화는 전승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야기나 인물이 추가되는 것은 당시 주류사회의 문화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따라서 신화는 시대에 따라 변천의 역사를 가진다.
3. 자연과 신화, 신화와 자연
모든 생명체는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인간 또한 자연의 한부분으로서 자연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자연을 이용하거나 개발은 하지만 자연은 정복이나 지배의 대상이 아니다. 분노한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처절하게 무력한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공존하고 가꾸고 이용함으로써 삶을 살찌운다는 것을 일찍이 터득해왔다.
자신을 지켜줄 비늘이나 털이 있는 것도 아니며, 사나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으며, 상대를 위협할 뿔도 없다. 생존을 위해서는 무리생활을 하여야 하고, 의사소통을 통하여 강한 유대관계를 가지면서 서로를 챙겨야 한다.
그럼에도 교만과 탐욕으로 낭패를 당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아왔으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때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의존해야 할 자연의 품 안에 안기고자 한다.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면서 자연과 소통하고 경외심을 가진다.애니미즘은 이런 자연에 대한 숭배의 일환이라 하겠다.
신화 속의 신들은 어쩌면 자연을 대변하는 존재로, 인간들에게 감사와 외경심으로 자연에 다가갈 것을 가르친다.
대지에 발을 디딘 인간은 대지에 뿌리내린 곡식과 과일 채소를 먹고 또 대지의 동물들을 사냥하여 생존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오랜 경험으로 대지 위의 삶은 예측이 가능한 시간의 말미를 주었다.
그러나 하늘에는 어떤 노력으로도 닿을 수없었다. 또 시시각각의 변화에는 인간이 손조차 쓸 수가 없었다. 천둥 번개는 아주 강력한 자연현상으로 많은 신화에서는 불행을 가져온다. 번개를 통해서는 신들이 인간들을 벌하기도 하고 더러는 축복을 하기도 한다.
어떤 사다리나 높은 산을 올라도 인간에게 하늘은 닿을 수 없는 신비한 곳으로 인식되었다. 초월적인 힘을 지닌 신이 하늘에 있다고 믿었다. 빛과 따뜻함을 선물하는 태양, 대지와 식물들의 목마름을 적셔주는 구름과 비, 밤을 밝혀주는 달 등 하늘은 지상의 인간과 만물들에게 베풀어 주는 갑의 위치에 있다. 인간과 지상의 숨탄것들을 양육하는 큰 자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는 성역, 거기의 신들은 막강한 권위와 위엄으로 추앙을 받는다.
인간은 그 신들을 닮고 싶었고 그 능력을 갈구하였다.
프로메테우스는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한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가 전해준 불로 발전할 수있었다. 작은 불씨가 주변을 불태우며 식물이건 동물이건 가리지 않고 모두 흡수하여 태움으로써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불 속에서는 어떤 생명체도 온전히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인간이 불을 손에 쥐게 됨으로써, 어떤 무력 앞에서도 끄떡하지 않던 거대 포식자들은 불 앞에서 도망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은 불에 타지 않으면서 불을 이용하는 인간은 마침내 최상위의 포식자가 되었다.
혹독한 추위는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였다. 따뜻한 불은 가장 큰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조심하여 관리하지 않으면 자신도 불에 타 죽는 최후를 맞 이해야 하기에 인간은 불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닿을 수 없는 하늘에 연기가 닿을 수 있음을 눈여겨보았다. 특히 신에게 제사 지낼 재물을 불에 던져 넣으면 일시적으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는 하늘이나 신께 제사를 지낼 때 불을 피우고 제물을 불에 던지는 의식을 행한다. 하늘과의 소통을 염두에 둔 것이다.
4. 신화와 문학, 문학과 신화
고대의 대부분 국가는 건국설화 내지는 건국신화가 존재한다. 단군신화를 예로 들더라도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줄거리는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흥미를 돋우기엔 충분하다.
신화는 한나라나 민족, 또는 문화권에서 입으로 전승된다. 과거에는 종교적 제의를 통하여 공동체의 안녕과 정체성을 도모하였다. 신화는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을 포함하여 종교적 유기적 체계의 서사로 매우 방대한 구조를 지녔다.
신화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도 영향을 끼쳤다. 즐거움의 여신 Muse는 Music(음악)과 Museum(박물관)에 남아 있으며, Siren(경보,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에서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위험에 빠뜨리는 요정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또 태양계 행성인 Jupiter(목성) Venus(금성) Saturn(토성) 등에는 올림포스 신들의 이름을 붙였다.
신화는 오늘날의 문학 연극 미술 음악 조각 영화 등으로 옷을 바꿔 입고 대중 속으로 깊숙이 자리하면서 새롭게 새롭게 문화예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지역과 공동체의 문화권 등이 체험 사실을 바탕으로 하기에 신화는 그때의 사실을 추적할 때도 매우 요긴하다. 공통 유형의 신화를 가진 종족들은 떨어져 있어도 혈통이나 언어에서 같은 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다. 민족적 대이동의 역사를 추론할 수도 있다. 신화가 역사와 구성원들의 정체성으로 변형되었다 하더라도 언어의 원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수메르(Sumer)는 서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존재했던 고대 문명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인류 최초의 문명이다. 역사상 최초로 문자를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는 민족이다. 물로 존재하던 태초의 우주에서부터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고대 수메르인들의 신화와 전설은 그리스와 히브리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그리스 신화와 유럽 초기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일군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이 우리 민족의 갈래라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수메르어와 우리 말의 유사성을 연구한 국내 언어학자들이 다수 있고,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검은 머리 사람들’이라 했다. 교착어로서의 언어적 특색, 청회색 토기, 순장 풍습, 씨름 등 우리 민족의 원형질을 유지하고 있어 수메르문명이 한민족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고 볼 때 수메르인과 우리 민족을 한 갈래라 제시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윤정모 작가는 한민족의 기원을 수메르문명에서 찾는 『수메르 역사』라는 저술을 접하고 가설이긴 하지만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2)라는 사회소설을 썼다. 그녀는 10년 동안 자료를 찾고 현장답사를 하였다. 우리 고대사에 등장하는 시월 제천의식, 첨성단, 천부경, 홍익인간 등의 요소를 가미하였다.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연상케 한다.
5. 로그아웃
신화는 세계의 근원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에서 탄생하였지만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역사 인식의 토대 위에서 출발한다. 신화 속 신들은 인간들에게 자연이나 생명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느낄 것을, 그리고 신들에게는 경외심으로 다가갈 것을 가르친다. 이는 곧 그 공동집단의 이데올로기와 연결된다.
따라서 신화의 원형은 시대의 가치나 공동체의 정체성에 따른 역사 인식에 의해 진화하기도 하고 진로를 바꾸거나 폐기될 수도 있다.
신화에는 새로운 이야기와 상상력을 활용하여 한 시대의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시대정신이 투영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후세들에게까지 유효하게 그것을 전달하고 또 전통을 이어나가는 힘을 필요로 한다. 이는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견고히 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학할동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윤리적 가치를 전달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역사 인식의 새 이미지를 창조하는 영감을 제공할 수 있을 때 그 작품은 신화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작가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신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