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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 논쟁만큼 병맛인 논쟁이 없다. 철학자들이 죄다 빡대가리가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만큼이나 아무말 대잔치다. 정의가 무엇인지는 집단이 합의해야 한다. 정의는 수학문제 풀이법 찾는게 아니다. 정의는 공간의 사물이 아니고 시간의 사건을 다루는 것이다.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가 중요하다. 두 번째 단추는 첫 단추에 연동된다.
같은 범죄에 같은 형을 선고하는게 정의다. 누구는 귀족이라고 봐주고 그러기 없다. 첫 단추는 합의된다. 성매매를 범죄로 규정하면 범죄가 되고 범죄가 아니라고 규정하면 범죄가 아니게 된다. 당신이 죄수 호송버스를 운전하고 있는데 죄수 세명을 죽이거나 아니면 지나가는 행인 한명을 죽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정답을 정하면 그게 정답이다. 그래서 헌법이 있는 거다.
윤석열은 혀 한번 잘못 놀렸을 뿐이다. 진짜로 대통령에게 이런 권한도 있다고 의회에 경고하여 알려줄 의도였다고 해도 사형이 아니면 무기라고 형법에 박아놓은 것이다. 약속이 곧 정의다. 의도는 중요한게 아니고 액션이 중요하다. 내가 마음 속으로 트럼프를 백번 죽였지만 죄가 안 된다. 자유의지 논쟁도 답답한게 사람들이 이 문제에 진지하지 않다. 말장난 하려고 한다.
대중은 정답이 없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게 자기소개다. 누가 당신 취향에 관심있냐고? 마이클 샌델의 약장수 기술이 먹히는 것도 정답이 없다고 솔깃한 말을 해서 바보들의 돈을 빼먹자는 수작이다. 정답이 없다면? 컨닝의 자유, 새치기의 자유, 얌체짓의 자유가 주어진다. 얼렁뚱땅 물타기 하면 된다. 나쁜 짓을 하려는 의도를 숨긴 자가 정답이 없다는 개똥철학 좋아한다.
정의가 집단의 합의라는 진실을 말하면 책이 팔리지 않는다. 배웠다는 자들이 이런 치졸한 짓을 벌인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말, 정의를 알 수 없다는 말은 도전과 응전의 회피다. 당면한 게임을 회피하고 마음 편하게 가자는 회피기동이다. 정답이 있으면 피곤해. 주택시장의 정답은 아파트 - 죄다 아파트를 지어서 보기가 안좋잖아. 중국은 더해버려. 단독주택은 건축을 금지.
왜 한강 주변에 고층아파트 때려지어서 한강뷰 막느냐고. 가성비라고 조건을 걸면 정답이 딱 나와버려. 아파트 하고도, 강남 하고도, 한강뷰가 부동산 투자에는 최고여. 내 자식은 비싼 학원에 보내고 외국 유학을 보내는게 최고여. 서울대만 붙으면 다되는거여. 검사 사위가 제일 좋은 사윗감이여. 이런 식으로 정답이 딱 나와버리면 우리네 인생살이가 피곤해진다는 말이다.
왜? 경쟁률이 올라가거든. 내 자식만 서울대 보내려고 했는데 다들 몰려와서 난장을 쳐버려. 정답이 없다는 말은 건물에 뼈대가 없다는 말과 같다. 모래성은 뼈대가 없어서 허물어진다. 건물은 뼈대가 있고 인생은 정답이 있다. 정답은 수학이다. 결국 뭐든 수학이 최종적으로 결론을 낸다는게 환원주의다. 인간들의 무의미한 자유의지 논쟁은 진지한 자세가 결여되어 있어서다.
자유의지는 권력의지로 바꿔야 한다. 자유와 권력은 동의어다.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유의지가 있는 것은 게임이 주어지기 때문이고 게임에 이기려는 권력의지가 있는 것이며 권력행동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 어떤 결정을 하든 청구서가 따른다. 자유의지 부정은 권력부정이다. 이게 정치권력만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인은 다 알지만 외국인은 모를 수 있다.
니체의 권력의지가 꼭 정치권력은 아닌데 히틀러가 멋대로 해석한 것이다. 먼저 인생이 게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의지라는 것은 당신이 어떤 결정을 하든 상대방이 거기에 맞대응을 한다는 말이다. 잼있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는 거다. 가스라이팅이 가능하다. 사랑도 가스라이팅이다. 만화 타짜에서 고니가 말했다. 따지고보면 사랑도 구라야.
게임의 규칙을 내가 정할 수 있다. 견주는 개를 사랑해서 좋은 개로 만들 수 있고 개를 유기해서 나쁜 개로 만들 수도 있다. 타인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환원주의가 오히려 자유의지와 통한다. 환원주의는 상부구조, 곧 선행단계가 있다는 말이고 자유의지는 개인에게 권력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관점의 문제가 제기된다. 능동적 태도냐 수동적 태도냐다. 갑이냐 을이냐.
을의 수동적 포지션 - 환원주의는 단계가 있다. 이전 단계가 영향을 미친다. 이전 단계에 모두 정해져 있으므로 자유의지는 없다.
갑의 능동적 포지션 - 환원주의는 단계가 있다. 이전 단계가 대부분을 결정한다. 이전 단계를 통제하여 상대방을 조종할 수 있다.
수동적 태도로 보면 환원주의는 이게 다 누구 때문이다 하고 남탓하게 된다. 능동적 태도로 보면 환원주의는 이게 다 나의 영향력이다 하고 자랑하게 된다. 같은 것을 다른 방향에서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핵심을 장악해야 한다. 그것을 장악한 사람은 환원주의가 좋고 장악못한 사람은 환원주의가 싫다. 결국 그것은 바보의 자기소개다.
바보들 생각 - 모두 연결되어 있다면 핵심을 장악해야 하는데 핵심을 몰라서 손해봤다. 열심히 살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했으니 헛살았다.
영리한 사람 - 모두 연결되어 있다면 핵심을 장악해서 다른 사람을 종속심킬 수 있다. 수순을 잘 지켜 지도자나 예술가 사업가로 성공할 수 있다.
상부구조가 있으니까 권력이 있다. 이게 좋은 소식인가 나쁜 소식인가? 문제는 세상의 널린 바보들이다. 개인의 자유는 좋지만 상부구조는 싫다는 식의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한다. 월급은 받고 싶지만 취직은 하기 싫다는 말과 같다. 어쩌라고? 환원주의가 무서운게 무슨 일이든 사전 포석단계가 있으며 미리 상황을 맞춰놓지 않으면 수렁에서 갇힌다는 게임의 규칙 때문이다.
환원주의가 있다면? 내 자식은 학교 보내기 전에 선행학습을 다 시켜놨지. 이런 식으로 사전행동을 한다. 중국 축구는 감독이 선수를 선발하는게 아니고 뇌물순으로 대표팀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하긴 히딩크도 이 때문에 많은 압박을 받았다. 축협에서 참견하여 박지성 같이 축구 못하는 선수는 쓰지 말고 특정 선수를 쓰라고 압박한다. 뒷돈을 받지 않았다면 왜 그랬겠나?
우리가 환원주의를 싫어하는 이유는 이런 부분에 스트레스 받기 때문이다. 환원주의를 아는 애들이 미리 반착과 꼼수와 협잡으로 회의를 하기도 전에 다 내정해놨다면? 공산당 회의가 그렇다. 주민들은 박수로 통과시키고 결론은 사전에 정해져 있다. 필자가 김민석이나 송영길을 싫어하는 이유도 그런 운동권 짜고치기 버릇이 남아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똥파리 동원했지.
유시민이 그걸 모르겠냐? 척 하면 삼천리지. 뒷구멍으로 무슨 수작 하는지 우리 세대는 다 안다. 요즘 2030이 모르고 낚이는 거다. 자기들이 조종되고 있다는걸 모른다. 운동권은 원래 겉으로 드러난 조직과 배후의 조직으로 이원화 되어 있다. 회의는 쇼일 뿐 윗선에서 사전에 다 정해준다. 환원주의라는게 악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원주의를 부정한다고?
nice라는 말의 어원은 셈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셈하지 않아도 된다? 좋다. 나이스! 왜 셈하지 않는게 좋지? 그야 백인들은 셈을 잘 못하니까 그렇지. 백인들의 자기소개다. 셈을 잘해야 한닥? 그럼 인도 형님들이 다 먹잖아. 걔네들은 구구단도 20단까지 외운다며? 환원주의 혐오는 수학혐오와 정확히 같다. 그러나 어쩌리. 세상은 결국 수학 잘하는 넘이 먹게 되어 있다.
환원주의가 알려준 정답대로 인간들이 죄다 아파트를 때려지어서 꼴보기가 싫은 것은 인간들 잘못이지 이론 잘못이 아니다. 수학을 아는 백인들이 모피거래를 하며 셈을 모르는 이누이트를 속이는 것은 백인 모피상들의 잘못이지 수학의 잘못이 아니다. 수학은 싫어. 환원주의는 나빠. 이런 투정은 어린이의 투정이다. 현실은 냉정하다. 알잖아. 억울하면 싫어도 수학 배우라고.
인간들의 욕망은 다섯가지다. 욕망을 귀납적으로 분류하면 300가지가 되지만 연역적으로 분류하면 초월욕, 권력욕, 관계욕, 정신욕, 신체욕 다섯 뿐이다. 모든 욕망은 이겨먹는 것 하나로 환원된다. 문제는 게임에 져도 승복하지 않겠다는 얌체다. 환원주의는 상부구조다. 상부구조란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전투가 벌어져 있다는 거다. 엥? 이게 바로 오청원의 신포석이다.
초반 몇 수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늘 놓는 자리에 놓는게 바둑판의 예의인데 그게 아니고 첫 수부터 계산하고 들어간다고? 이런 비열한. 이런 악귀 같은. 오청원 싫어. 이런다. 당시는 첫 한 수는 소목에 놓는게 규칙이었다. 화점이나 삼삼에 놓으면 무례하다. 처음 시작부터 상대의 의도를 헤아리고 머리를 써야한다는게 피곤한 거다. 그게 피곤하면 바둑을 두지 않으면 된다.
조선인들은 한술 더 떴다. 순장바둑은 아예 포석이 없다. 잔대가리 굴리기 없기. 그게 옳은 태도일까? 인간의 욕망은 이겨먹으려는 것이다. 쉽게 이기려고 한다. 그런데 진다. 포석을 생략하면? 머리 좋은 사람보다 바둑을 많이 두어본 사람이 유리하다. 노력파가 유리하다. 모든 사람이 노력을 쏟아부으면 낭비가 아닐까? 전 국민이 자녀를 서울대 보내려 하는게 과연 좋냐?
초월욕 - 천하를 이긴다.
권력욕 - 집단을 이긴다.
관계욕 - 주변을 이긴다.
정신욕 - 마음을 이긴다.
신체욕 - 신체를 이긴다.
게임의 종목이 다섯인데 공통적인 규칙은 이겨야 핸들 잡는 것이다. 지면 나가리다. 자신한테 지면 알콜중독, 담배중독, 도박중독, 섹스중독에 걸린다. 극기복례의 의미다. 몸을 이기는데 그치지 말고, 마음을 이기고, 주변을 이기고, 집단을 이기고, 신을 이겨야 한다. 이기면 룰을 정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 인생의 승부는 피해갈 수 없다. 하지 않으면 당한다.
먹지 않으면 먹힌다. 중국은 사천개의 나라가 먹힌 결과다. 먹었다고 자랑할게 아니라 먹혔다고 슬퍼해야 한다. 멸망한 4천개 나라 중에 백개 나라가 중국에 먹히지 않고 살아남았다면? 중국이 먼저 유럽을 정복했다. 인간의 자유의지 타령은 게임을 회피하려는 기동이다. 게임은 곧 의사결정이다.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으면 먹힌다. 셈을 하지 않으면 손해본다.
안하려고 하는게 비겁하다. 조선이 뭘 잘못한게 아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게 잘못이다. 국힘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외부인 전한길이 당을 접수해도 언더찐윤 40명은 눈만 멀뚱히 뜨고 수수방관이다. 국힘이 망할수록 경상도 금뺏지는 더 견고해지니까. 자기 집에 불이 나서 활활 타버리니까 오히려 좋아한다. 이제 남들이 집적댈 일은 없지. 불난 집에 누가 찾아오냐.
어차피 중국과 싸워서 못이긴다. 그래도 우리는 5천년간 살아남았다. 환원주의가 없다면 누가 패배한 게임에 승복하겠는가? 아무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승리도 없다. 나의 자유는 남의 자유와 충돌한다. 이 게임은 미리 손을 쓴 사람이 먹는다. 뒷구멍으로 미리 손 대는 자가 있다고? 회의를 하기 전에 미리 결론이 정해져 있다고?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이 이유있다.
과학혐오와 같다. 원시인 시절이 좋았지. 학교 안다녀도 되고 빵점 맞아도 종아리 맞을 일 없고. 문명은 진보하는데 살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받아들여야 한다. 환원주의 반대는 자유의지 반대다. 환원주의가 있으므로 게임이 있고, 게임이 있으므로 승패가 있고, 승패가 있으므로 승리자는 자유의지를 노래하고 패배자는 청구서를 받는다. 게임은 이기고 청구서는 안받겠다?
자유의지로 신호위반은 하겠지만 환원주의라는 이름의 범칙금은 물지 않겠다면 도둑놈 심보다. 환원주의는 권한 만큼 의무가 따른다. 영끌은 자유이나 고금리는 어쩌겠는가? 정답 - 집을 팔면 된다. 문제에 정답이 있는게 싫어. 집을 팔고 싶지 않아. 응애 응애. 이러면 쳐맞아야 한다. 언제나 이전단계가 있다. 미리 손을 써두어야 한다. 사실이지 환원주의는 두려운 세계다.
적응하게 된다. 조선시대 초가집 좋잖아. 낭만이 있어. 틀린 말은 아니다. 진지하지 않을 뿐.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뺏지 않으면 뺏긴다. 이기지 않으면 진다. 하지 않으면 당한다. 세상은 게임이고 당신은 게임을 피할 수 없다. 이기려면 미리 조치해야 하는데 그게 심적인 부담이 된다. 그러나 결국 적응하게 된다. 세상은 머리 좋고 선제대응하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환원주의는 결정론적이지만 결정론이 아니다. 많은 부분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많은 부분을 미리 결정하여 대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세상은 동작 빠른 사람에게 유리하다. 영국인들이 동작이 빨라서 한때 세계를 호령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도 동작이 굼뜨지 않다. 물론 백년전 선교사들은 한국인이 세계에서 제일 게으른 민족이니 식민지 되는게 맞다고 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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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걸 따질수록 세상은 머리 좋고 친구 많은 놈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한다. 머리 나쁜 노력파에게 유리해야 한다. 우직하게 한우물만 파는 사람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 남이 컴퓨터 배울 때 주산학원 다닌 사람이 대접받고 남이 영어 배울 때 서당에서 한학을 배운 사람이 대접받아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사고를 한다.
문제는 실제로 퍼스널 컴퓨터가 보급된 이후인 1980년대가 우리나라 주산학원의 전성기였다는 거. 개화기 이후 일제강점기에 뒤늦게 서당이 대박을 쳤다는 거. 인간들은 뒷북을 치는데 재주가 있다. 조갑제가 뒤늦게 한문타령 하는게 그때 그시절 서당이나 다닌게 아까워서인듯. 생명의 진화든 문명의 진보든 궁극적으로 에너지의 법칙이 정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