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작은 성채였다④
《⑧작가의 긴 여행》#260702 미지의 세계를 걸어간다
by여유시간
3시간전
신도림동 1064번지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제법 눈에 띄는 집이었다.
열 평 남짓한 흙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마을에서 우리 집만은 시멘트 벽돌로 지은 큰 집이었다.
문창국민학교에 다닐 무렵, 아버지는 백 평 남짓한 대지 위에 40평 규모의 집을 새로 지으셨다.
다져지지 않은 땅은 시간이 지나면 내려앉는다며 벽을 유난히 높게 쌓으셨고, 덕분에 집은 마치 작은 성채처럼 우뚝 서 있었다.
어린 내게는 대문턱조차 높았다.
두 칸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마루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펼쳐졌고, 부엌과 안방, 건너방, 대청마루를 지나 사랑방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안방 앞 작은 소마루는 여름이면 가족들이 잠시 앉아 바람을 쐬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집 안에서 가장 특별한 곳은 사랑방이었다.
네 평 남짓한 작은 방이었지만, 그곳은 아버지의 공간이자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마을 어른들이 모여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크고 작은 일을 의논하던 곳이었다.
어느 날 우리 집에는 유선 라디오가 설치되었다.
잡음 섞인 뉴스와 음악이 흘러나왔고, 드라마가 시작되는 시간이 되면 이웃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어린 나는 라디오 안에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그 작은 스피커 하나가 세상과 연결되는 창문이었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않으셨다.
명절이 되면 돼지를 잡아 이웃들과 나누었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우리 집을 든든한 버팀목처럼 여겼고, 아버지를 동네 어른으로 존중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저 그런 모습을 당연하게 바라보며 자랐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작은 성채보다 더 큰 울타리가 바로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다음 이야기는 아버지가 내게 남겨준 엄격한 가르침과, 어린 시절에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사랑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 브런치 작가 여유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