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⑱지적 말고, 오지랖》 #260711 오지랖이 때로는 나를 품는다.
by여유시간
입대 전이니 아주 오래전 일이다.
집은 성남이었고 직장은 뚝섬이었다.
그 시절 나는 570번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다.
입대 전 휴일 날, 친구들과 뚝섬에서 고별 탁구를 치고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은 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류장이 시끌시끌해졌다.
덩치 큰 두 사람이,
호떡을 팔던 아주머니를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동안 빌려간 돈을 갚으라며 아주머니를 협박하고 있었다.
호떡 틀과 양푼을 들쑤시고, 손수레를 밀치고, 발로 툭툭 걷어차며 집기를 들어 내려칠 듯 위협했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옆에는 어린 아들이 서 있었지만 겁에 질린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도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그 시절 570번 시외버스 요금은 100원이 채 안 됐고, 호떡은 100원에 네 개쯤 하던 때였다.
밀가루 한 포대도 몇천 원이면 살 수 있었지만, 그 시절 만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당시 일반 직장인의 한 달 월급이 10만 원 남짓하던 시절이었다.
주머니를 뒤져 보니 만 원짜리 한 장이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집 아들에게 돈을 쥐여 주며 말했다.
"이걸로 먼저 갚으세요."
그리고 마침 들어온 버스를 타고 그대로 성남 집으로 향했다.
이름도 묻지 않았다.
돈을 돌려받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도 그날은 문득문득 떠오른다.
왜 나는 거기서 그렇게 했을까.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내 일이었던 것도 아니다.
아마 그날 내가 도운 것은 호떡집이 아니라, 공포에 떨고 있던 한 사람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그런 일이 내 삶에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오지랖이었다.
누군가는 참견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선택만큼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