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미술관이 미술인만을 위한 공간이 될수는 없다
김섭 교수의 견해에 대한 반박문
복합공간화해 성공한 사례도 많아
세계 유명 미술관도 복제품 전시
김종수 문화도시울산포럼 고문
울산대학교 김섭 교수가 21일자 경상일보에 게재한 칼럼에서 문화도시울산포럼이 발표한 시립미술관 시설과 운영 방안을 비판한 데 대한 답이다.
먼저 김 교수가 이 사안에 신속하게 의견을 개진한 것에 주목한다. 발표회 현장에서 그림을 곁들인 설명을 듣고 그 자리에서 의견을 냈으면 좀 더 쉽게 설명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든다. 그럼에도 지면을 통해 의견을 제시했으니,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다.
김 교수의 비판은 조목조목이 틀렸다. 안쓰러운 말이지만, 붓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관견(管見)이다. 본 포럼은 시립미술관의 시설과 운영에 대해 복합문화공간 개념을 도입할 것, 복제품과 디지털 그림으로 혁명적 청소년 프로그램을 구상할 것, 건축설계를 국제공모할 것, 예산이 부족하면 기부문화를 활성화할 것 등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김 교수는 복합문화공간과 복제품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김 교수가 ‘무엇보다 우려된다’며 공력을 들여 비판한 ‘미술 복제품’에 대한 견해부터 검토해보자.
김 교수는 “창작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예술을 다루는 곳에 복제품을 걸고 시민과 학생들에게 관람을 시키겠다는 것이 어떻게 ‘혁명적 프로그램’이 될 수 있겠는가”라며 비판했다.
러시아 푸쉬킨미술관은 국립이다. 1920년대까지 모작의 조형물로 학생교육을 했다. 그 이후에 걸린 고흐의 ‘마차와 기차가 있는 풍경’ 역시 모사품이지만 그것을 탓하지 않는다. 교육을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2010년 파리 시립미술관 ‘프티 팔레’에서 ‘원화 없는 전시회’로 청소년 교육의 일대 전환기를 열었다. 그 프로그램을 가져와 작년 여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시크릿 뮤지엄’이란 이름으로 전시했다.
김 교수는 ‘누구에게 허락받고 복제할 거냐’ 또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허접한 그림을 복제할 거냐’며 선동적으로 비판했는데, 다음 사례를 보기 바란다. 지금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품 50여점이 모두 복제품이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첨단 복원술을 갖춘 미술관에 허가를 주어 복제했고, 진품을 소장한 레오폴드박물관이 그 사실을 공식 보증한 것이다.
그리고 김 교수는 시립예술관부지가 좁아 복합문화시설을 갖출 수 없다고 비판했는데, 이것 또한 틀린 관점이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은 800평 밖에 안 되지만 내용이 알차서 세계적이다. 시립미술관 예정지는 4000평이다. 운동장만 2500평 정도로 광주, 경남의 공립미술관 넓이와 비슷하다. 울산미술관에 채울 내용이 얼마나 많길래 부족하단 말인가.
김 교수는 “문화예술을 백화점식으로 늘어놓고 눈요깃거리로 만들어서도 안된다”고 주장했는데, 시립미술관은 시민의 요구가 있을 때는 어떤 전시도 할 수 있다. 뉴욕 구겐하임은 시립이 아니어도 패션 전시회까지 연다.
파리 ‘퐁피드센터’는 현대미술에서 뉴욕의 ‘모마’와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퐁피두는 이미 1977년에 복합공간을 세워 성공했다. 그곳은 음악관, 도서관, 공업창작센터, 음향연구소, 쇼핑센터도 있다. 지역 미술관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그런 모델이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또 중구도서관 문제도 그렇다. 뉴욕 링컨센터를 보자. 이곳은 연주, 무용, 오페라, 음악학교, 극장 등이 있는 복합예술지구다. 그곳에 있는 도서관은 뉴욕의 여러 시립도서관에서 문화예술 분야의 도서를 이곳에 집중시켜 예술자료조사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 배려로 문화예술분야의 세계적 도서관을 만들었다. 김 교수는 울산초등학교 교사(校舍)의 레지던시 공간활용안을 비판했는데, 이 또한 틀렸다. 국내외할 것 없이 도시의 폐공간을 문화접목으로 재생시키고 있다. 더 설명할 여지가 없다.
김 교수는 ‘미는 뭉치면 부패한다’고 했다. 미를 추구하는 존재들이 뭉치면 꼭 그런가? 정말 그런가? 그럼 그룹전을 하면 부패하나? 자극과 정보교류를 통한 융합적 선기능은 없는가?
세계 모든 박물관(역사, 과학, 산업, 미술 할 것 없이)이 청소년 프로그램개발과 운영 활성화에 골몰한다. 시립미술관 문제는 희망과 우려가 섞인 거시적 사업이다. 이번 발표의 주안점은 복합공간과 청소년 프로그램개발에 국한했다. 김 교수가 공개적으로 비판한 부분이 모두 틀렸다고 설명했다. 더 좋은 어떤 대안이 있는가? 응답을 기대한다.
울산시는 대체로 문화예술분야의 업무를 처리할때 전문가(?) 의견을 우선시했다. 반면에 문화예술을 향유할 실수요자인 시민들의 의견은 낮잡아본게 통례였다. 이번 논쟁이 시립미술관을 잘 짓는 방안을 이끄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전문가와 실수요자 가운데 누가 더 절실하고 진지하게 검토하는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경상일보 2014.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