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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나무 스크랩 김남준목사의 "목회자와 그의 아내"
비전메이커 추천 0 조회 41 10.03.30 10:1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남준목사의 "목회자와 그의 아내"
목회자와 그의 아내
김남준 목사 (열린 교회)


특별한 목회자 없이는 불꽃같은 교회가 없고,
특별한 목회자의 아내 없이는,
그런 목회자도 없습니다.



1.정말 목회자의 아내입니까?

치악산의 추억

어느 이른 봄 날, 아직 쌀쌀한 날씨에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의 구상을 구체화할 겸 혼자 산을 올랐습니다. 때는 국토가 가뭄에 바싹 말라있는 때였습니다. 어느 산이든지 야산에는 옹달샘까지 마른 갈수기였습니다. 깊은 산 계곡을 들어서면서 저는 제 눈을 의심하였습니다. 바싹 바른 산 밑 계속 사이로 어른 키 두어 길은 족히 되고도 넘을 깊은 개울물이 휘돌아 흐르고 있었습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으니까 그렇게 심한 가뭄에도 개울이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골짜기를 적시며 산아래 대지를 적시고 있었습니다.

목회자의 아내는 목회자와 함께 맑은 물을 기다리는 들판과 이어지는 산이요 계곡입니다. 그들의 영성이 골처럼 깊고 인격이 산처럼 높으면 아주 너른 들판과 같은 메마른 목양지라도 풍부하고 맑은 물을 흐르게 하여 푸른 초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아내의 영적인 삶은 산처럼 높고 계곡처럼 깊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벌판과 같은 너른 목양지의 양떼들이 그들을 토하여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부요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거룩에 이르는 감화



목회자의 아내가 거룩해지는 것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감화를 받는 것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목회자의 아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감회와 가장 먼 삶을 살게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목회자의 아내로서 지난 주 남편이 설교한 성경 본문을 기억하는 분이 몇 분이나 될 지 의심스럽습니다. 본문도 기억 못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을 리 만무하고, 그렇게 일주일을 살아가는 목회자 아내가 다음 주에 남편을 통하여 주실 하나님의 말씀에 감화 받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먼저 말씀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거기에 영적인 삶의 뿌리를 박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환경에 의하여 쉽게 흔들리지 아니하고 고난에 의하여 쉽게 꺼지지 않는 열심의 불은, 깨닫는 말씀에 의하여 연료가 모아지고 기도에 의하여 불 붙여집니다.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설교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성경읽기입니다. 교인들과 함께 설교를 통하여 깊은 은혜를 받고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으며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일이 든든하게 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에 감화를 받는 삶 없이는 많이 기도해도 깊은 기도 생활로 나아갈 수는 없습니다. 열렬히 기도하는데도 남편의 목회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는 목회자의 아내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



목회자의 아내가 갚은 기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대화하는 즐거움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기보다 하나님께 사람들을 사랑해 주시도록 간구하는 일에 더욱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목회자의 아내들이 이 일에 약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많은 시간을 애쓰고 수고하지만 적은 열매밖에 거두지 못하는 것입니다.

목회자 아내의 재능은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축복 받을 때에는 목회를 위한 귀한 밑천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오히려 목회에 욕이 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경계하는 약점을 인하여 넘어지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있어 하는 부분 때문에 훨씬 더 잘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표를 목회의 성공에다 두는 목회자의 아내는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기도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삶에 기쁨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과 대면하는 즐거움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도 생활은 깊이를 더할수록 목회자 아내의 삶과 생각을 거룩하게 합니다.



서로 보며 웃지요.



어디선가 전해들은 일화가 기억이 납니다. 어느 교회에 탁월한 기도의 열심을 품고 밤을 새워 기도하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형제에게 먼저 물으셨습니다. 주고받은 대화를 마음에 새겨 보십시오.

형제님, 엊저녁에 얼마나 기도하셨습니까?

쉬지 않고 여덟 시간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게 많습니까?

아닙니다. 네 시간 기도하면 다 합니다.

아니 그럼 네 시간 동안은 뭘 하십니까?

아! 예. 네 시간 동안 저는 하나님을 쳐다보며 웃고 하나님은 저를 쳐다보며 웃고 계십니다.

우리 둘이 서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네 시간은 금방 지나갑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움직이며 목회하는 사람이라면, 목회자의 아내는 하나님을 움직여 목회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아내는 매우 특별한 기도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는 가사를 돌보고 목회자의 가정을 지키는 사람이지만, 결코 한 남편의 아내일 수만은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드러나지 않는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의 또 다른 목회자입니다. 남편이 일에 치여 허덕일 때에도 목회자의 아내의 깊은 기도가 천사를 파송할 수 있습니다.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그를 위한 기도에 자신을 바치지 않는 것은 그가 남편을 하나님 앞에서 사랑하는 것인지 의심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로 부은 바 된 진정한 사랑은 목회자인 남편을 위한 기도에 자신을 드리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사랑은 염려입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염려는 하나님 앞에서 염려해 주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이 아니라면?



목회자의 아내는 목회자의 가정을 돌보도록 부름을 받았으나 궁극적으로 그의 섬김의 열매는 목회를 통하여 드러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목회자의 아내는 밥 잘하고 빨래를 깨끗이 빠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일도 매우 소중합니다만, 그가 만약 기도의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자신의 소명에 대하여 거의 아무 것도 아니하는 것입니다.

교회 부흥의 열쇠가 목회자의 아내의 무릎에 달려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목회자의 아내로서 부르심을 감당해 나가는 일 중 많은 부분이 기도에 달려있습니다. 토레이(Reuben A. Torrey) 목사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교회에 말할 수 없이 풍성한 축복을 가져온다. 기도는 우리 홀로 교회를 위하여 행하는 어떤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 기도는 모든 이단의 세력을 뿌리 채 뽑아버리며, 교회의 모든 문제와 분규와 오해를 타결하기 위하여 많은 회의와 회합을 갖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함으로 이 모든 문제와 오해와 알력들을 해결할 수 있다. 기도는 인간에 의하여 고안된 조직이나 흉내낸 부흥보다 훨씬 깊고 지속적인 부흥을 가져온다. 진정한 부흥은 인간의 어떤 노력이나 생각 혹은 활동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간구할 때 부어지는 것이다.



기도하는 목회자의 아내가 얼마나 소수인지 모릅니다. 목회자의 아내로서 목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신학을 전공하는 것은 필 수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기도의 학교에서 깊이 기도에 자신을 바치는 비결을 배우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누구도 그러한 기도의 삶을 살지 아니하고는 신령한 목회자의 아내가 될 수 없습니다.

목회자가 신령하지 못하고 세속적이고 경박하다면, 목회자의 아내는 남편의 결함이 목회에 덜 영향 미치게 되기 위해서라도 깊은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목회자가 신령한 사람이라면 목회자의 아내는 그러한 사역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깊은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래 기도합니까?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야 할 것은 진실한 기도생활의 태도이지만, 장시간 매달려 기도하는 영적인 끈질김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긴 시간의 기도가 반드시 깊은 기도는 아니지만 깊은 기도는 반드시 장시간의 기도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목회자의 아내는 이 기도의 섬김을 자신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목회자의 아내에게 가장 중요한 사역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단지 섬김을 위한 준비나 삶을 위한 준비 운동이 아닙니다. 기도 그 자체는 이미 섬김입니다.

목회자 아내의 기도 생활은 남편의 복음 사역에 깊은 뿌리가 됩니다. 아무리 크고 훌륭한 나무라도 뿌리가 흙 밖으로 드러나기만 하면 무성한 결실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저는 목회자 아내 가운데 훌륭한 기도의 사람들을 몇 분 알고 있습니다. 그 중 어떤 사람들은 이미 죽었고,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회자 아내들의 수는 제가 알고 있는 많은 수의 목회자의 아내들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목회자의 아내들은 평범한 가정의 아낙네들이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만큼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잡지를 읽거나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 떠는 시간만큼도 기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역은 늘 건조하고 신앙생활은 마치 뜨거운 태양 볕 아래 먼지 나는 신작로 길을 맨발로 타박타박 걷는 것과 같이 힘겹습니다. 기쁨으로 충만한 목회자의 아내들을 자주 만나십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반드시 견고한 기도의 골방을 가진 사람들일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Susannah Wesley)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열 아홉 명의 자녀를 기른 사람이었습니다. 다산(多産)으로 인하여 그는 늘 몸이 무거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존 웨슬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철들면서 나는 한번도 우리 엄마가 아이를 갖은 임신상태가 아닌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렇게 바쁜 일상생활 중에서도 매일 한 시간 이상씩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쁜 생활 속에서 기도할 시간을 찾을 것이 아니라, 무조건 기도 사역을 위한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사무엘 스티븐슨(Samuel Stevens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선조들 가운데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가장 성공적이었던 사람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들은 혼자서 여러 시간 동안 기도하곤 하였다. 그런 모범을 따르지 아니하고 어떻게 그들과 같은 성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선조들이 복음 사역을 위하여 헌신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고 외쳐도 좋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하나님의 이름을 믿고 순종하며 약속을 얻었던 사람들을 따라가기 시작하자.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여러 시간씩 울며 기도하였으며, 그들이 말씀의 검에 찔림을 받아서 새 사람 되기 전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였다. 강력한 성공의 비결은 바로 이것이다. 복음 사역이 지지부진하고 사람들이 간구한 은혜에 감화 받지 아니할 때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구원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로 씨름하였다.



가장 중요한 섬김



잊지 마십시오. 목회자의 아내는 보이지 않는 교회의 영적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의 권위는 깊고 충분한 기도의 세계에 의하여 유지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의 가장 중요한 표본이기 때문입니다.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생애에 있어서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지도력과 영감의 원천이 육십년 동안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기도하던 초인적인 기도 생활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그는 비극적인 가정생활과 다른 지도자들의 비난 속에서도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고 믿었던 불굴의 신앙의 원천은 강대 아래 마루판이 뚫어지도록 무릎을 꿇었던 기도생활이 젖줄이 되었습니다.

남편의 설교 사역에 영감이 마르기 시작할 때 당신이 도울 일은 없습니다. 교인들에게 사악한 모독과 근거 없는 비난으로 교회를 떠나고 싶어할 때 당신이 도울 일은 거의 없습니다. 교회가 냉랭하여지고 쓴 뿌리 같은 패역한 교인들이 일어나서 목회상황을 고통으로 몰고 갈 때, 주위의 핍박이 남편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게 할 때도 당신의 도움이 될 영역은 거의 없습니다. 오직 하나, 기도를 빼놓고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아내인 당신이 기도의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은 목회사역에 있어서 거의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에 태만한 목회자 아내들이 치러야 할 쓰디쓴 대가는 기도하기를 쉬면서 맛본 안일함을 능가합니다. 한 교회의 목양지가 얼마나 풍성하고 안전한 지는 목회자의 부부의 기도의 눈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도의 눈물의 분량이 다 차기까지 결정적이고 위대한 목회의 축복은 지연됩니다. 그래서 축복된 부흥을 누리던 시대의 선조들의 탁월한 기도생활을 호러시우스 보너(Horatius Bonar)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넘치도록 주를 위하여 수고하고 성도들을 많이 심방하였으며 늘 연구에 힘쓰던 자들이었으나, 그들은 또한 힘에 지나도록 기도하였다. 그들은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섬겼다. 그들은 자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생명수 강물을 넘치도록 흘려 보낼 수 있게 하시는 근원이 되는 생명샘으로부터 자신들의 영혼을 충만히 채우며, 많은 시간을 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데 썼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 점에 있어서 실로 심각한 실패들을 하고 있다. 실로 양떼들을 돌아보고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기도와 금식으로 자신들의 영혼을 부요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고 충만하게 하고 고양하게 하는 것을 외면하고, 눈에 띄는 의무들을 이행하고 수고하는 일에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사용하여 탈진하게 된다. 이로써 많은 시간은 낭비되고 섬김은 헛수고가 되곤 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불 붙여진 입술로부터 흘러나오는 한 마디의 말은 그렇지 못한 천 마디의 말 보다 낫다.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일꾼들이 이 같은 원리에 충실한 삶을 산다면 그들은 곧 자신들의 모든 사역에 보다 풍부한 열매가 깃들이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인 전 날인 토요일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성령 부어짐을 위하여 간구하고 죄를 깨닫고 겸비해지는 데 바친다면 우리의 주일은 더욱 빛날 것이며, 우리의 설교는 더욱 성공을 거둘 것이다. 우리의 얼굴은 모세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들의 회중들 앞에서 더욱 빛을 발할 것이며, 열심히 일해도 열매가 별로 없다는 불평도 사라지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힘을 쓰는 일도 사라질 것이다. 공교한 작문이나 문체나 논쟁을 정교하게 하는데 소진한 힘은 갑절의 성령의 능력을 받음으로써 보상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능력을 받기를 소망해야 한다.



상처보다 깊은 기도를



목회자의 아내가 교인들에게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심하면 성품까지 변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만족스러운 기도 생활이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깊은 기도가 가져온 신령한 은혜의 물에 잠기는 것은 교인들의 독한 말이나 행동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상처를 더 이상 덧나지 못하도록 해독하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은혜로운 해독의 비결을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몇 해 목회하는 동안에 부실한 교회와 변하지 않는 영혼, 망가진 자신의 영혼만이 재고처럼 남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목회자의 아내는 누구보다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런 불행한 상태에 빠지지 않고 자기를 지키는 길은 오직 상처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를 현재적으로 누리며 사는 길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 18세기의 기도의 사람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의 일기에 실린 고백은 영원한 가치가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세상과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대하여 무감각해진 나를 발견하였다.중보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내 가슴은 인간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부드럽기 그 없었다. 나의 친척들과 훌륭한 사역을 감당하는 목사들에 대하여 특별한 사랑을 느꼈다. 사랑스러운 믿음의 사람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였다.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서도 열심히 기도하였다. 비열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점에 대해서까지 잔인한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그들을 원망하는 대신 용납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영혼은 하나님을 새롭게 사랑하고 찬양하였다. 하나님께 은밀히 속삭이고 있었다.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나는 그들 앞에 엎드리고 싶었다. 그들이 나보다 훨씬 귀한 존재로 여겨졌고 사랑하며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순수하게 일어났다. (1744년 3월 10일)

안일한 삶으로 기도의 영이 약해지는 사람들에게는 형통한 생활이 재앙입니다. 젊은 시절 가난을 벗삼아 개척교회를 하던 시절에는 열렬히 기도하다가 교회가 커지고 목회가 안정되면 기도의 영을 잃어버리는 목회자의 아내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모두 기도의 목표 자체도 성공에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자신의 삶의 성패를 목회의 성공 여부에서만 본다면 기도 생활에 있어서도 곧 영적인 공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아내는 복음 사역자이며 보이지 않는 교회의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기도에 대한 이해부터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욱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더 깊은 기도의 세계를 그리워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기도 속에서 성공에 대한 응답보다 더 많이 체험하여야 할 것을 거룩해지는 기쁨입니다. 기도 속에서 날마다 정결해지고 거룩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만큼 그리스도를 더 잘 본받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없습니다. 많이 일하고 그리스도로부터 더 멀어지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 모릅니다.

일은 성취하고 자신은 무너지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얼마나 모욕을 받는지 모릅니다. 기도하는 목회자 아내가 무엇을 참 행복으로 삼고 살아야 하는지 브레이너드(David Brainered)의 고백을 하나 더 들어봅시다.



아침에 나의 마음은 추하고 무가치한 벌레와도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 속에 녹아들고 있었다 하나님께 진적인 신뢰감을 가지고 매달려 기도하였다. 나의 영혼은 죄를 깊이 슬퍼하고 있었고 거룩해지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내가 아직도 좋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빌미로 얼마나 그릇 행하는가를 생각해 볼 때 마음 깊은 곳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슬퍼하시지 않도록 온전히 거룩해지고 싶었다. 주님은 내가 당신의 사랑을 빌미로 그릇 행하며 사는데도 길이 참으시고 줄곧 사랑해 주셨다.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보다 거룩해지는 일을 위하여 힘을 써야 하겠다. 내게는 이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1744년 10월 26일)



음식점 같은 교회



성공이 목표가 된 목회자 아내의 기도는 후일 인간적인 보상을 교회와 목회자로부터 원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사랑만이 동기가 된 기도생활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자신 ?문에 만족을 누립니다. 이것이 진정한 영적 생활입니다.

가난한 전도사의 아내 시절뿐만 아니라 큰 교회의 담임목사의 아내가 된 후에도 더욱 열렬한 기도의 영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교회는 음식점과 같습니다. 개업을 할 때는 주인도 종업원도 겸손하고 음식에도 정성이 깃듭니다. 그렇지만, 가게가 번창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오면 음식도 정과 같지 않고 주인과 종업원들의 태도에도 교만이 드러나게 됩니다.

목회자가 교회의 성장을 자신의 업적으로 생각하고 교만해지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목회자의 아내가 그러한 성취가 마치 자신의 헌신의 열매인 양 생각하며 부요한 마음이 되어 안일에 빠지는 것을 더욱더 자기 분수를 모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지는 이것입니다.고통스러운 형편이 지나고 평안의 때가 오면 목회자나 목회자의 아내나 모두 태만한 기도생활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아내는 영적인 분별력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보이지 않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섬김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적인 분별력은 말씀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기도의 영의 영향 아래서 살아감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다면 남편의 목회를 밥벌이로 생각하는 것에 다름이 아닙니다.



너무나 무거운 짐



그러나 목회자의 아내의 삶을 보십시오. 그는 정말 기도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녀들을 양육하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경우도 있고 교인을 심방하고 돌보는 일에 때라 나서야 하기도 하고, 교회의 규모가 작을 때는 교회의 궂은 일에서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전도하는 일도 게을리 할 수 없고 남편이 교회를 비워도 자신은 떠나기 어렵습니다. 목회자의 아내들은 과로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삽니다. 더욱이 만성적인 질병이 있거나 몸이 매우 허약한 경우에는 어려움이 더욱 가중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아내는 교회에서 자신이 꼭 서지 않으면 안 될 자리가 어디인 줄 알고 거기에 서도록 하여야 합니다. 선 자리가 정확하면 그만큼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 목회자 아내에게 고유하게 부과된 일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기도시간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일 저 일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목회자의 아내가 고독한 기도 속에서 깊은 영성을 지닌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사교에 지나치게 흥미를 느끼는 사람은 영적인 삶이 결핍되기 쉽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의 고유한 자리를 찾으십시오. 목회자의 아내인 당신이 아니면 아무도 대치할 수 없는 그 일이 바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하고 고유한 일입니다. 그 중 중요한 자리 하나가 바로 기도입니다. 목회자 아내의 기도는 누구에 의하여서도 대치될 수 없습니다.

때때로 과중한 가사와 교회 일로 도저히 기도할 수 없을 때는 남편이나 가족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도록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은 목회자 아내의 그같은 요청을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살고 자기들이 사는 길입니다. 기도의 세계를 유지하는 일에 있어서 만큼은 목회 초기부터 환경과의 타협을 단호히 부인하는 강인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이들 때문에 기도하기에 어려움을 느끼면 아이를 들쳐 업고라도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섬김을 다하도록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것은 부끄러운 자기의 의무를 져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아내와 직업



제가 만난 어느 목회자가 자기네 교회 교인들을 향한 불평의 말을 제게 늘어 놓았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중학교 영어 선생을 하고 있는데, 교인들이 목회자 아내가 왜 직업을 버리지 못하느냐고 항의한다는 것입니다. 그 목회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참 웃깁니다. 개척교회 시절에 제 사례금도 제대로 못 줄 적에는 오히려 아내가 우리 집을 먹여 살려주는 것을 은근히 다행스럽게 생각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는..아니 변호사나, 의사, 교수가 목회자의 아내일 경우는 말도 안 하는 사람들이.교사니까 우습게 보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회자의 아내가 직업을 갖는 일에 대해서 말입니다. 어느 직업은 타당하고 어는 직업은 곤란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목회자 아내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셨을 경우에 받은 바 은사를 따라서 직업을 자기고 활동하는 것을 막는 것은 비신학적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이런 식의 논리에 타당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소명에는 매우 특별한 윤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자 아내에게도 소명을 묻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목회자 아내에게는 매우 특별한 소명감이 필요합니다. 목회자 아내의 길은 그 사역을 자기 인생 가운데 행하는 이 일 저 일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 아마추어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만, 그는 목회자와 동일한 특별한 부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목회자 중 어떤 사람은 이전에 야구 선수였던 사람도 있고 과학자였던 사람도 있습니다. 교수였던 사람도 있고, 영화 감독이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의사였던 사람도 있고 변호사를 하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그 방면에 달란트가 없이는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목회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 모두 버렸습니다. 여전히 그 직업을 가지고 목회를 하려드는 사람들은 목회가 무엇인지를 아직 맛을 못 본 사람들입니다.



목회자처럼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신령한 영적 생활의 기초, 그 위 부어져야 할 자신을 부수는 진지한 열심과 변하지 않는 영혼들을 부여안고 몸부림쳐야 하는 해산의 고통과 진리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닫기 위한 헌신적인 탐구가 요구하는 시간과 인내, 장기간을 드려야 하는 기도의 섬김이 목회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안다면 목양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회는 아무리 적은 규모라도, 그가 아무리 말씀에 능하고 목양에 유능하다고 해도 아르바이트처럼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종종 아직도 세속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들을 봅니다. 그분들은 두 번 실수를 한 것입니다. 자신이 신학을 공부하였어도 그런 일에서 손 뗄 수 없는 상황이면 목회에 손대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목회에 손을 댔으면 다른 직업을 버려야 했습니다. 목화자의 아내도 그러합니다. 만약 목회자의 아내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달란트나 특별한 은사들을 활용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목회자의 아내가 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아내가 되었다면 그 일을 버려야 했습니다.

목회자 부부는 그렇게 특별한 목양의 섬김으로써 자신들이 미처 하지 못했던 세상을 위하여 봉사할 사람들을 세우는 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가장 보람되고 그 일을 위하여 자신을 드리는 것이 가장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목회자의 아내입니다.



쓰레기 같은 보람 위에



저는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규모가 큰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교회의 목회자 아내가 엄청나게 컸을 목회자의 아내의 직무를 버리고 지방 대학의 음악 교수로 임용을 받아서 가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외관상으로 목회자 부부의 결혼 생활에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이혼한 것도 아닙니다. 부부간의 사정을 부부 외에 누가 알겠습니까만.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도 한창 교회가 한국교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서 넘치도록 많이 일하고 목회자에게 소진되도록 요구하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무슨 고통스러움 상황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목회자의 아내로서 살기를 포기하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살기도 포기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남자의 아내가 아니라 목회자의 아내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로 부르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쓰레기 같은 보람을 위하여 거룩한 영광을 버리는 것은 자기 사랑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 아내의 이같은 외도(?)는 종종 남편과의 골 깊어진 관계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두 마디의 충고로 바로 잡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내는 직장 일에 열중하고, 남편은 목회에 열중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직업의 세계를 이해할 시간이 없고, 아내는 남편의 목회의 고통에 동참하기에는 마음이 너무나 분주합니다. 과연 그 부부가 한 마음으로, 목자 잃은 양 같이 고생하고 유리하는 영혼들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을까요? 변화되지 않는 영혼들을 끌어안고 씨름하는 목회자의 아픔과 거기서 오는 하나님의 위로를 얼마나 잘 느낄 수 있을까요? 과연 그렇게 나뉜 삶을 살면서도 목회라고 하는 하나의 목표를 향한 절실한 연합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목회자의 결혼함



목회자의 아내는 목회자와 결혼한 사람입니다. 목회자라는 존재 중에서 남편만을 빼내서 소유하는 일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허락하실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목회자로 소명하신 사람은 목회자로 살 때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전념해야 하는 직장을 갖는다는 것은 목회자 부부의 이 같은 소명에 비춰볼 때 옳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혼자서 목회라는 기능을 꾸려갈 수 있고 없고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교인들이 양해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욱이 남편과의 관계에서 지칠대로 지친 갈등의 도피처로서 이런 식의 길을 택한다면 그것은 실수를 넘어서서 패역한 것입니다. 그는 목회사역이 얼마나 철저히 목회자 부부의 전부를 요구하는 지를 잊고 있는 사람입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되는 이유 하나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는 기도의 섬김을 다할 수 없습니다. 직업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목회를 도우면서 깊은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으나 쉽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목회자의 아내, 그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불러주셨고, 그 특별한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려고 애쓰기 때문에 특별해져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로잡고 계실 때에만 특별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맺 는 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께 인도하는 것만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가치 있고 좋은 것들을 위하여 살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든 가치들, 학문이나 예술, 문화나 이웃을 위한 봉사, 인정으로 넘치는 사회 봉사 이 모든 것들도 역시 세상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세상과 함께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영원한 것들이 아닙니다. 물론 거기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고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영혼을 구원하고 섬기는 목회를 통해서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배와 그물을 다 버리고 이 길로 들어 선 사람들입니다. 목회자인 자기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부름 받아서 동행한 아내와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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