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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기쁜 소리 들리니 252장 ♬. 행16:30-32, 눅2:10-11
'어둡고 절망에 사로잡힌 세상 사람들에게 한줄기 생명의 빛을 비추이듯 좌절과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주시고자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오셨다'는 내용을 담고있는 252장 "기쁜 소리 들리니"의 찬송은 프리실라 제인 오웬스(F. J. Owenes;1829-1907)여사가 1882년에 작시한 찬송입니다.
작시자 프리실라 오웬스 여사는 고향인 미국 벌티모아에서 공립학교 여교사로 49년간을 봉사할 정도로 가르치는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여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웬스 여사는 유니온 스퀘어 감리교회의 유년 주일학교 교사로서 봉사하며 어린이 찬송가를 많이 썼는데 252장의 찬송 역시 주일 학교의 전도용으로 사용키 위하여 작시한 것입니다.
찬송곡은 윌리엄 제임스 커크패트릭(W .J. Kirkpatrick;1838-1921)이 만들었다. 그는 미국 펜실베니아 출생으로 복음 성가 작곡자. J.R. 스웨니와 함께 음악 활동을 하면서 47권의 복음송집을 펴냈으며, A.S. 젠크스와 함께[Devotional Melodies]를 펴낸 이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성가집을 출판하였다.
1절 기쁜 소리 들리니 예수 구원하신다
만민에게 전하라 예수 구원하신다
주님 명령하시니 산을 넘고 물 건너
온 세상에 전하라 예수 구원하신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반갑고도 기쁜 소식을 학수 고대하며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에 이 세상에서 반갑고도 기쁜 소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는 지금 열리고 있는 2002년 월드컵에 한국이 폴란드에 이어 미국과 포루투갈을 실력으로 당당하게 이기고 16강에 올라가는 것이 최대소원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온 국민들이 운동장에서 거리에서 텔레비전 앞에서 밤잠을 설쳐가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한국이 월드컵 첫 승에 만족하지 않고 16강에 당당히 올라설 뿐만 아니라 8강까지도 올라서는 기적을 이루어내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둘째는 지금 밖에서 확성기로 자신의 출마소식을 전하며 한 표 찍어 달라고 뜨겁게 호소하는 기초단체장 후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모두다 당선되기를 바라지만 진정 하나님의 원하시는 귀한 선량들이 당선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한국경제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더 빠른 속도로 회복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창출되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많은 가정과 사람들이 카드 빚과 각종 빚에 시달리며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기쁨과 즐거움들도 시간이 지나면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어지는 잠시 잠깐뿐인 기쁨들입니다. 그러나 여기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영원한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복음 2장10∼11절에 나와있는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낮고 천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영혼을 살리사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귀한 구원의 소식은 남녀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은혜의 소식, 기쁨의 소식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이 귀하고 복된 좋은 소식이 있다 할지라도 전파하는 자가 없이는 어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면 어찌 전파되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록된 바 아름답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롬 10:14∼15)과 같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갖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사 52:7) 온 세상에 널리 전하는 복음의 증거 자들이
필요합니다.
선거 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산 넘고 물 건너 심지어 야채시장과 선착장 배 위에까지 올라가서 선거운동을 하듯이 우리도 믿음의 어깨띠를 두르고 아골골짝 빈들에까지도 복음 들고 찾아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생명의 복음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하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절 바다들아 외쳐라 예수 구원하신다
모든 죄인 나오라 예수 구원하신다
모든 섬아 일어나 메아리쳐 울려라
복음중의 복음은 예수 구원하신다
작시자 오웬스 여사는 무척 시적 감각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바다들아 외쳐라, 모든 섬아 일어나, 메아리쳐 울려라, 산을 넘고 물 건너라는 표현을 볼 때 마치 섬 마을 처녀가 아닌가?라는 착각을 가질 정도로 자연 감각이 뛰어난 것을 봅니다.
얼마전 기가연의 송길원 목사님께서 네 번째 가정 설교집으로 '땅은 꽃으로 웃는다.'라는 표제어를 달고 책을 내셨는데 요사히는 이렇듯 시적 감각이 없으면 책을 내기도 어려운 세상인가 봅니다.
아무튼 작시자 오웬스 여사가 보여준 바다와 섬을 주 배경으로 하여 2절의 가사를 썼음에는 분명 무슨 뜻이 숨어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부족하지만 번뜩 스쳐 가는 영감 속에서 느끼기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가장먼저 전한 곳이 어딘가?를 생각해볼 때 바로 그곳이 갈릴리 바다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고기 잡는 부두였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시며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는 사명을 심어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베드로와 같은 천하고도 천한 어부를 부르셔서 복음증거의 사명자로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마태와 삭개오 같은 세리장도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이런 모습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힐난하며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막2:16)며 불평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2:17)하시며 오히려 예수를 힐문하는 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이 같은 부르심의 원리를 기억하며 고린도전서 2장 26절부터 31절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는 우리의 처지나 신분 환경을 부끄럽게 여겨 담대히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그런 나약함에서 벗어나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를 보라 그가 죽지 아니 하시고 말씀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부활의 산 증인이 되셨느니라."는 생명의 복음을 베드로처럼 담대하게 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귀한 성도 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 환난 중에 하는 말 예수 구원하신다
다시 살아나시어 예수 구원하신다
지은 죄를 인하여 슬픈 맘이 있어도
숨질 때에 내 할 말 예수 구원하신다
3절에서는 우리가 주님의 자녀가 되어지고 주님의 일꾼으로 헌신 봉사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기쁜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슬픈 일도 당하고 괴로운 일도 당하며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난과 환난 중에서도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살전5:16)
그것은 첫 번째: 주께서 우리의 질고(疾苦)를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기 때문에 (사53:4-6) 그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고 우리 속에 찾아 오셔서 대신 그 모든 것들을 위로하시고 싸매시고 치유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 "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케 하시는"(고전10:31)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며 평안할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어제 외삼춘의 칠순 잔치가 있어 하남시를 갖다오는데 그만 부동액이 없어서 엔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채 2분도 못 가서 주유소를 발견하여 바로 물을 보충시켜 무사히 집에까지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만일 조금만 더 갔으면 고속도로로 접어들게 되는데 고속도로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더욱이 6시에는 입주예배가 예정되어 있는지라 떠날 때 1차선을 타려고 고향손님 두 분을 일부러 수소문하여 태웠는데 도중에 큰 어려움을 당하였으면 난감한 상황에 빠질번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6월 6일 현충일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충주댐을 들러 청풍과 단양을 둘러 왔는데 그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다가 이런 일을 당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찔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무사히 다녀오게 하시고 입주예배도 은혜가운데 마치게 하시고 너무나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매사에 우리가 감당할 시험밖에는 허락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진하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두려워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환란을 당할 때마다 항상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서(요16:33) 나를 붙드시고 굳세게 지켜 주시기 때문에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부끄럽게도 죄를 짖고 잘못을 할 때가 많이 있는데 그럴 때에라도 "우리의 죄를 주님께 자백하기만 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기 때문입니다."(요일1:9)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산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3절-7절에 우리를 주님의 자녀로 부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산 소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이 땅에서만이 끝이라면 얼마나 안타깝고 억울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여 예수님께서 마련해주신 천국 잔치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주님께서 부활의 산 증인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며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숨질 때에라도 내 할말은 예수 구원하신다."(3절가사)는 구원의 찬양입니다.
4절 바람들아 외쳐라 예수 구원하신다
기뻐하라 나라들 예수 구원하신다
구원하는 소리를 산과 들에 전하라
우리들의 승전가 예수 구원하신다
우리가 252장 찬송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첫째: 우리 주님께서 우리 죄를 구원하시고자 육신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눅2:10-11). 그리고 두 번째: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서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산 소망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4절의 가사에 나오는 보혜사 성령 님의 은혜입니다.
4절에 "바람들아 외쳐라!", "기뻐하라 나라들아!" 의 표현은 성령의 강하고 급한 바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을 다섯 가지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첫째가 : 물과 같은 성령으로 둘째: 불과 같은 성령, 셋째: 비둘기 같은 성령, 넷째: 기름 같은 성령, 다섯째: 바람과 같은 성령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문을 걸고 두려움에 떨며 앞으로의 일들에 대하여 대책회의를 하고 있을 때 그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부활의 형체로 찾아와 주셔서 위로하여 주시며 "너희가 몇 날이 못되어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하자 사도들이 권능을 받고 담대히 나아가 "주는 그리스도 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임을 담대하게 증거 하였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늘찬양교회 성도 님들도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늘찬양교회가 성령 충만을 강조하며 능력사역을 맨 처음 강조하다가 이제 가정사역으로 돌아서면서부터 성령사역에 대한 강조가 약해졌는데 우리는 결코 성령을 앞세우지 않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기도하며 전도하는 일에 총력을 경주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6월 12일과 17일에 있을 두 번의 솜사탕 전도에 우리 여전도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하여 많은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부모님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 귀한 부흥의 불길이 성령 충만의 기쁨을 통하여 더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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