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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편 4번째 얘기는 "보드카 NO 맥주 OK, 달라진 러시아 주류시장"입니다.
요즘 러시아에서는 중소 맥주 전문점인 마이크로 브루어리 팝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맥주 생산시설을 갖추고 영업하는 생맥주집이 인기였는데 지금은 잘 볼 수가 없습니다.
러시아 대형 마트의 맥주 코너. <자료원: KOTRA 노보시비르스크 무역관>
‘술의 나라’ 러시아. 모진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인지 독주가 유명한 나라다. 러시아의 술이라면 가볍게 즐기는 맥주보다는 독주 보드카를 떠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영하 40도의 시베리아 혹한에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보드카 없이는 살 수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드카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전통술이자 하나의 생활 문화다. 그래서인지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에서 보드카의 인기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선호도와 음주 문화의 변화로 맥주가 인기를 끌면서 보드카의 자리를 대신해가고 있다.
2014년 2월 15~16일 실시된 러시아 주류 소비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는 러시아의 달라진 주류 소비 경향을 보여준다. 설문 응답자 중 12%가 일주일에 1회 이상 맥주를 마시고, 40%가 월 1회 이상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 1회 이상 와인을 마시는 소비자의 비율은 26%, 보드카나 집에서 담근 술(밀주)을 마신다고 대답한 사람은 20%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를 보였다. 가장 선호하지 않는 주류는 코냑과 칵테일로, 각각 60%, 80%의 응답자가 한 번도 마셔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주류 소비 설문조사 (단위: %)
러시아, 국가적 금주를 선포하다
러시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9~2013년 1인당 주류 소비량은 18리터(세계 평균 약 6리터)에서 13리터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주류 생산량도 코냑 23.9%, 보드카 12%, 맥주 8.5%, 와인도 7.7% 만큼 줄어들었다. ‘술의 나라’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러시아 정부의 주류 규제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국민들의 알코올중독을 중요한 사회 문제로 보고 크게 고민해왔다. 연간 4만여 명이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알코올중독을 ‘국가적 재난’으로 여길 만한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이와 관련, 러시아 정부는 젊은층 사이에 늘어나고 있는 알코올중독에 엄중히 대처하기 위해 ‘안티 알코올(anti alcohol)’법을 제정했다.
관련 법의 제정으로 러시아에서는 언론매체나 공공장소에서 알코올이 함유된 음료에 대한 광고를 내보내거나, 밤늦은 시간에 술을 사고파는 행위(밤 10시~오전 10시 사이에 상점에서 알코올 도수 15% 이상의 주류 판매 금지, 2010년 9월부터 시행), 길거리에서 음주하는 행위(2013년 1월부터 알코올 도수 0.5% 이상의 주류 음주 금지, 밤 11시~오전 8시 모든 공공장소에서 음주 금지)가 금지됐다. 또한 교육기관 및 문화시설과 주류 판매업소는 일정한 거리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규정들은 다소 융통성이 없어 보이나 법 제정으로 아동 및 청소년들의 주류 접근성이 줄고, 길거리 취객 수가 감소하는 등 러시아의 주류 문화는 대폭 개선됐다. 유사한 규정을 도입한 많은 선진국의 선례를 따른 안티 알코올 법의 제정으로 많은 주류업체가 타격을 받을 수도 있으나, 이것을 정부의 반상업주의적 공격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이는 그저 국민의 건강을 위한 국가적 조치일 뿐이다.
주류 생산 및 소비가 감소한 또 다른 원인은 소비세(주류세) 인상과 주류 최저 가격제의 시행이다. 그 결과, 보드카의 가격은 2014년 대폭 올랐다. <라시스카야 가제타(Rossiyskaya Gazeta)>에 따르면, 보드카 가격(0.5리터당)은 2014년 1월 1일 170루블, 3월 11일 199루블, 8월 1일 220루블로 올랐다. 그만큼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2014년 러시아 소비자들은 보드카를 구입할 때 절반 이상이 한 번에 200루블 이상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소비자들의 보드카 구입액(0.5리터당)
대부분의 러시아인은 주류 소비세 인상이 저품질 불법 주류(surrogate alcohol)의 소비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주류 불법 거래가 만연할 것이라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앞서 설명한 주류 시장의 어려운 상황 때문에 대부분의 보드카 제조업체가 생산량을 현저하게 줄였다. 보드카 브랜드 상위 5개 업체 중 생산량이 늘어난 유일한 업체는 주식회사 타츠비르트프롬(Tatspirtprom)으로, 2013년 이 회사의 생산량은 전년 대비 35.6% 증가했다. 타츠비르트프롬의 주요 브랜드는 악도브 오리지널(Akdov original), 올드 카잔(Old Kazan), 코바(Koba) 등이다. 타츠비르트프롬은 러시아 보드카 시장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러시안 알코올(Russian alcohol), 그리고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시네르기야(Sinergija)와 계약하고 두 회사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로부터 얻는 이윤이 상당하다.
모든 업체가 이처럼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4년 보드카 판매 마진율은 전반적으로 대폭 감소했다. 닐슨(Nielsen)의 통계에 따르면, 가장 싼 가격대의 제품(200루블 선)은 45%, 가장 많이 팔리는 가격대의 제품(230루블 선)은 14%, 중급 제품(250루블 선)은 마진율이 15% 감소했다. 고급 제품(700~900루블)은 다른 제품들과 달리 높은 마진율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2012~2013년 새로 출시된 브랜드 중 고급 제품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2년간 판매량이 23%나 늘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적어도 2년 동안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대표적인 고급 제품인 벨루가(Beluga)는 보드카 시장에서 부동의 선두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 2년 동안 86%의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역시 고급 보드카인 바이칼 아이스(Baikal Ice)와 단자카(Danzaka) 역시 2013년 각각 115%, 90%의 성장률을 보이며 이율을 각각 1.8%, 1.9%로 상승시켰다.
러시아 맥주 시장은 지각 변동 중
높은 이율을 자랑하는 고급 보드카 제품들. <자료원: www.sostav.ru>
맥주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음료 중 하나다. 러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는 1인당 맥주 소비량이 높은 30개국 중 하나로, 2010년 기준 1인당 맥주 소비량이 66리터로 26위를 차지했다(상위 3개국은 체코(1인당 131리터), 독일(1인당 107리터), 오스트리아(1인당 106리터)다).
그러나 주류 시장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맥주 양조업자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정부는 맥주의 가판대 판매를 금지하고, 지정된 장소에서만 판매를 허용하는 등의 규제로 맥주 소매시장의 전반적인 구조를 바꾸어놓았다. 게다가 주요 주류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맥주 생산업자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반면 지역의 중소 규모 양조업자들은 로열티를 얻은 특화된 판매로 어려운 시장 상황에도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역 양조업자들의 활약에 힘입어 지난 몇 년간 러시아의 주요 도시를 포함해 중소도시에 작은 펍(Pub)과 맥주 바(Bar) 들이 생기면서 새로운 맥주 문화 및 여가 문화가 조성되었다. 이런 주점들이 다양한 풍미와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를 제공하면서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 중소 맥주 전문점의 활로를 열다
2011~2014년 러시아 맥주 생산량 및 생산 증가율 (단위: 만 리터(좌), %(우))
가판대에서의 맥주 판매가 금지된 후 맥주 시장은 전통적인 소매 네트워크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모색을 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러시아에서는 맥주 가게의 새로운 형태인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Micro Brewery Pub, 소규모 생맥주 양조주점)’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은 그 수가 점점 늘어 맥주 가판대의 대체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에서는 대개 중소 규모 지역 양조업자의 맥주를 판매하는데,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긴 브랜드 병맥주 대신 지역별로 생산된 다양한 풍미의 신선한 생맥주를 즐길 수 있다.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은 2008년 경제위기와 2013년 유럽 경제위기로 인한 러시아 경제 위축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소 규모 지역의 양조업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다.
주요 주류 시장의 네트워크 환경은 중소 규모의 양조업자들에게 불리한 게 사실이다. 이들의 유통 채널은 매우 좁다. 이런 이유로 중대형 마트 선반의 진열대는 주요 브랜드 맥주들이 독차지해 중소 규모의 양조업자들은 이윤을 남기기는커녕 진입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의 확산으로 이들이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이들 양조업자는 자신만의 생맥주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 노력에 힘입어 현지뿐만 아니라 다소 먼 거리의 가게들까지 판매처를 확대하고 있다.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이 아니었더라면 중소 규모 양조업체들의 발전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의 어제와 오늘
러시아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의 본 고장은 시베리아라 할 수 있다.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시장 통합 기간에 국제적인 주류 회사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 현지 양조업자들은 다른 지역 회사들보다 더 많은 지분을 차지했다. 오늘날 상대적으로 큰 매장 규모를 가지고 있는 도시들 역시 시베리아 지역의 도시들로 케메로보(Kemerovo), 바르나울(Barnaul), 노보시비르스크(Novosibirsk) 3개 도시가 손꼽힌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생맥주를 팔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으로, 러시아 양조업자들이 생맥주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보시비르스크와 다른 도시들에서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의 수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이는 단지 지역 맥주를 선호하는 사람들에 의한 지역 내의 제한적 현상에 가까웠다.
2004년, 노보시비르스크의 NPM그룹은 맥주를 따를 때 거품 없이 잔을 채울 수 있는 장치를 발명해 시들해져가던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의 확산을 가속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이전 러시아 주류 시장에서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의 위상은 미약했다. 하지만 2006~2007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들 특화된 맥주 상점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은 꽤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다. 많은 사업가가 경쟁자가 적고 높은 수익률을 내는 새로운 형태의 사업에 자극을 받았다. 그 결과, 2009~2010년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 붐이 일기 시작했다.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이 정착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정부의 엄격한 규제였다. 일례로 사마라(Samara)와 스베르들롭스크(Sverdlovsk) 지역에선 정부 당국이 상업용 비거주 아파트 건물에 위치한 주류 판매점에 법적 제재를 가했다. 맥주 가게 입구가 주택 정면에 위치하게 될 경우, 다른 가게들의 상권을 넓혀 이를 막은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두마(Duma, 러시아연방국회 하원)는 주류 판매를 제한하고 아파트 건물에 주점을 개점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같은 규제가 도입된다면 아파트 건물에 있는 수많은 술집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 동안 러시아 맥주 시장의 경쟁 구도와 주류 소비 성향은 크게 변화했다. 메이저 맥주 생산업체들의 경쟁 상황을 살펴보면, 위상의 재배치가 명확히 관측된다. 2007년까지 시장을 독차지하던 대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중소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 전역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들과 더불어 노보시비르스크에서는 몇몇 되지 않던 맥주 전문점이 놀라운 속도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2GIS 에 따르면, 2010년 초반 맥주 전문점 수는 99개에 불과했으나 2013년에는 266개로 증가했고, 2014년 8월 현재 20개의 체인점을 포함해 총 343개의 가게가 성업 중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 형태의 맥주 바(Bar)나 레스토랑이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최근 노보시비르스크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틴코프(Tinkoff, 노보시비르스크 등 러시아 전역에서 10여 개의 체인점을 운영 중이다)’는 직접 양조한 신선한 생맥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자체 로고가 새겨진 기념품 판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외에도 피보팩토리(Pivofactory), 비어호프(Bierhof), 켈러스(Kellers) 등 유사한 형태의 레스토랑들이 유행하고 있다.
맥주 소비자들은 비슷비슷한 대형 브랜드들의 평균적인 맛과 공격적이고 화려함만을 내세운 맥주 광고에 싫증을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독특한 개성으로 무장한 색다른 맥주에 대한 선호도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마이크로 브루어리 펍 붐에 발맞추어 현지 기업에 양조 관련 장비 및 시설을 납품할 수도 있겠고, 러시아 중소형 양조장과 합작으로 신규 브랜드를 출시하거나 한국산 생맥주 바를 프랜차이즈화해 현지진출을 모색해보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다만 진출 시에는 현지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콘셉트 있는 매장의 인테리어 및 특색 있는 마케팅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는 방법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제품 중에 컵라면과 초코파이류가 러시아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가 언론매체에 종종 등장하고 있다. 머지않아 ‘한국 생맥주, 러시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다’란 제하의 기사를 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