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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달님'
어구어구 귀여워라 경수ㅠㅠㅠㅠ 이게 무슨 경수지옥입니까ㅠㅠㅠ이렇게 귀여운데ㅠㅠㅠㅠ엑스표시를 해놔도 경수 웃는 모습 보니까 그것 마저 나비넥타이로 보이네요ㅋㅋㅋㅋㅋ 너무 귀여운 로고인 거 같아요ㅠㅠㅠ 특히 핑크색으로 지옥을 표현해주셨는데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예쁜! 예쁜 표지 감사합니다ㅎㅎㅎ
'꿀단지님'
언제봐도 신기한 움짤 표지...! 더군다나 움짤에 제 블로그와 저희 카페 주소도 써주셨어요ㅠㅠㅠ 이런 센스쟁이ㅠㅠㅠㅠ 경수 얼굴 합성해서 경수지옥 표현해주신 거 너무 참신해요ㅋㅋㅋㅋㅋ 본받고 싶어요! 예쁜 표지 너무 감사드립니다!
'익명님'
원래 이거 말고 다른 버전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게 끌려서 이걸로 첨부했어요! 뭔가 진짜 글씨체나 효과도 그렇고 정말 무서운...! 제목 강조해주셔서 너무 좋아요ㅎㅎ 감사할 따름입니다ㅠㅠㅠ 특히 벗어날 수 없는, 이라는 문구가 참 와닿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 야, 그거 그거 세상에 이런일이 그런데 제보해야하는 거 아니냐? "
" 아, 무슨 세상에 이런일이야 또……. "
" 그럼 안녕하세요는? 아, 스타킹 제보할래? "
" 그런 거 아니라니까? "
" 그런 거 아니기는 무슨 존나 신기……야, 그럼 궁금한 이야기 Y는? "
취기에 뻐근하게 당겨오는 뒷목을 느릿하게 한 바퀴 돌렸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술잔을 따르고 있어도 쉽게 믿을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게 참 기막혔다. 내가 지금 누구랑 나란히 앉아서 사람 좋게 술을 마시고 있는 건지, 미친 거지 미친 거야. 아무도 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계속해서 곱씹었다. 할 수만 있다면 아주 멋지게 김종대를 향해 불꽃 싸다구를 날리고 싶다만.
" 야, 얘는 존나 신기해 진짜. 오세훈 너 주변에 같은 이름 몇 명있냐? "
" 느아? 나……야, 내 주변에 민지라는 애 존나 많은데 민지. "
" 민지 많아봤자 얼마나 많아 시발, 이 새끼는 경수가 그냥 득실댄다니까? "
" 아니 그러니까 나랑 안녕하세요 나가자니까? "
" 아, 안녕하세요는 무슨 안녕하세요야? 야, 김종대 얘 술 못 마셔? 왜 벌써 상태가 이래? "
" 아, 쟤 거의 세 잔 마시면 바로 취해. "
" 뭐? 근데 왜 그거 미리 말 안 해줘? "
" 말하면 너 안 올 거잖아. "
거침없이 하이킥에 나오는 박하선 표정이 튀어나왔다. 날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김종대의 뻔뻔함에 생각 없이 들이부었던 독한 소주가 다시금 역류할 지경이었다. 부들부들, 술잔을 잡고 있던 한쪽 손에 집중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보다 술이 약한 탓에 늘 부축 받기만 했던 나인데도, 오늘만큼은 제대로 반대 입장에 서서 극한 체험을 경험할 것 같았다. 목부터 얼굴 전체가 빨개진 상태로 연신 안녕하세요만 나가기를 재촉하는 오세훈의 병신스러움에 진득하게 얼룩진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래, 다시 생각해도 미쳤지. 내가 오세훈이랑 친하기라도 하냐, 뭐 하냐. 더도 덜도 아닌 어정쩡한 사이에 뭐가 좋다고 술까지 마시러 온 건지. 다시 한번 생각해도 이 모든 원인은 한 사람뿐이었다. 아, 저 김종대 개새끼.
그때였다. 더듬더듬 거리는 한쪽 팔을 무작정 앞으로 뻗어 덥석 내 손을 잡아버리는 오세훈 아니겠냐.
" 도경수 그 새끼가 진짜……진짜 개새끼거든? 내가 김예희 존나 좋아하는 거 우리 학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 근데 저번 학기 방학 끝나자마자 도경수 걔가 김예희랑 떡하니 사귄다고 손잡고 오는데……. "
" ……. "
" 와……말로는 사귄다면서 내가 김예희한테 말 걸고, 부르고, 선물 주는 거 옆에서 보고서도 한 마디 안 하더라. 근데 그게 진짜 사람 더 미치게 만드는 거 알지. "
" ……도경수 걔 원래 싸가지없는 거 유명하잖아, 그냥 얼굴 좀 잘생겼으니까 여자들이 꺅꺅 거리는 거지. "
" 와, 진짜 너 좀 아네. 역시 사람은 통해야 친구가 되는 거야. "
" ……하, 너 집에 갈 수는 있어? "
" 내가 왜 그동안 같은 수업 들으면서 너랑 말 한번을 못했지? "
그건 다 네가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초해서 그런 거겠지. 번지르르한 얼굴과 존경받는 키를 가지고 있음에도 오세훈은 우리 과 여자아이들 중 그 누구하고도 친하게 지내지 않는 놈이었다. 아, 잘난 얼굴에 함부로 누군가와 친해지지 않는 도경수도 마찬가지였지만. 여자들끼리 남몰래 외모 이야기가 나오면 도경수와 오세훈은 나란히 꼭 투톱을 이뤘지 아마. 취기가 잔뜩 올라 간지러운 말을 잘도 뱉어내는 오세훈을 향해 가식적인 잔웃음을 비추는 나였다. 그냥 다 정리하고 그냥 빨리 집이나 가고 싶다. 가뜩이나 이번 조별 과제도 망해서 학점 잘 나올까 말깐데……. 이번에 유통경영 A학점 못 받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저번 학기 때 C가 나왔으니까……아, 유통은 그냥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구나.
" 이야, 오늘 이렇게 또 한명의 친구가 탄생합니다. 도증모 창시자는 이렇게 또 뿌듯해요. "
" 넌 도경수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왜 도증모하고 지랄이야? "
" 야, 친구 따라 강남간다지. "
" 싫어하는 명분 없으면 받아줄 마음도 없어요. "
" 야, 도증모 만든 거 나거든? 어디서 받아준다 만다야. "
" 누가 만들래? 그리고 난 경수라는 이름 자체를 싫어하는 거지 도경수를 싫어하는 건 아니거든? "
" 너 도경수한테 개쪽당한 적 있다며, 저번에 조별과제 점수 따지러 갔을 때. "
" 야, 그건……, "
" 그때 나한테 도경수 쌍욕 존나 했으면서. "
설혹, 김종대라는 쇠창살에 꼼짝없이 갇힌 죄수라도 된 듯했다. 지끈지끈 울려오는 머릿속 고통에 한 팔을 들어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내가 진짜 김종대 시발놈 앞에서 다시 한번 누구 욕 하나 봐라. 요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는 손목시계를 보기 위해 느릿하게 한쪽 팔을 올렸다. 남들보다 좀 더 멀리 위치해있는 집임에도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는 내겐 늦게까지 가져야 하는 술자리는 늘 곤욕이었다. 막차 시간을 맞춰서 타려면 지금 막 성급하게 출발해도 아슬아슬할게 뻔한데. 황급히 널브러져 있는 테이블 주변을 치우고 굽혔던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아, 그와 함께 술과 함께 진탕 떡이 돼버린 오세훈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지만.
" 야, 일단……종대야 우리 얼마 나왔지? "
" 별로 안 마셨어, 삼만원 조금 넘었나? "
" 한 사람당 만원씩 내면 되는 거지? "
" 일단 내가 카드로 낼 테니까 돈은 내일 밥으로 사던가. "
" 일단 계산 좀 해주라, 나 오세훈 이 새끼 일으켜서 밖에 나가있을게. "
" 걔 절대 못 데리고 나갈걸, "
" 왜? "
" 걔가 왜 우리 과 단합 때나 술자리 때 한 번도 안 나오는데, "
" ……뭔 소리야? "
" 오세훈 술버릇……, "
" 아, 안 가……집 안 갈거야. "
" 걔 술버릇이야, 그거. 집 안 가고 버팅기는 거. "
쾅, 커다란 돌덩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뒤통수를 강타했다. 양쪽 볼이 벌게진 채로 내 한쪽 손목을 잡고 어린아이마냥 칭얼거리는 오세훈의 처참한 꼴에 허탕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아니, 뭐 이런 개같은 술 버릇이……난 지금 막차 놓칠까 봐 일분일초가 급한 사람인데. 원래 이럴수록 더 담담해지는 거랬다. 결국 마음 약하게 먹는 사람이 피 보는 꼴이 되지 않겠느냐. 큼큼, 독한 소주에 처연할 정도로 갈라진 목을 가다듬고 두 다리를 굽혔다. 취한 행동이 딱 어린애니, 나도 놈을 그렇게 대해야 할 것 같았다. 참, 이러다 유아교육과로 전향하는 거 아닐지 모르겠다.
" 오세훈? 너 지금 많이 취했거든? 일단 일어나지? "
" 안 가……나 안 가. "
" 넌 안 가도 되지만 난 가야하거든? 우리 집이 여기서 거의 두 시간 거리라니까? "
" ……씨발, 안 간다고. "
" 아, 일단 일어나봐 좀. 아니, 미치겠네 진짜. "
" 아, 안 간다고! "
" 아니, 니가 가야 내가 가지! 그럼 너 여기에 두고 그냥 가? "
" 아, 진짜……, "
" 야, 오세훈. "
" ……안 간다고. "
느꼈다, 줘패고 싶은 충동을. 다시금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누르며 애써 차오르는 울화통을 몇 번이고 눌러 담았다. 그래,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오세훈이 왜 우리 과 동기들이 있는 술자리에 죽어도 안 나오는 건지, 왜 엠티도 안 왔던 건지, 왜 한 번도 여자아이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없던 건지. 그건 모두 다 제가 제 술 버릇을 알고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다시금 한 팔을 들어 촉박함에 숨통을 조여오는 시간을 확인했다. 망했다. 완전 망했다. 지금 맘잡고 뛰어가도 탈까 말……,
" ……내가 도경수를 김예희랑 사겨서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아니야. "
" ……. "
" 내가 그거보다 더 싫은 게 뭔지아냐……, "
" ……. "
" ……. "
" 그래, 들어나보자. 뭔데. "
축축하고 비참한 시선이 안타깝게 맞닿았다. 알고 있었다. 적은 나이에 나도 누군가를 좋아도 해봤고, 사랑도 받아봤고, 상대방은 알아줄 리 없는 짝사랑도 해봤지. 찰나의 인연이 지나갈 때마다 느낀 건 단 하나였다. 아, 그래도 이만큼 겪어봤구나. 누군가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할 경험들을 난 이만큼이나 겪었구나. 인생은 그렇다. 슬픈 일이 있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모든 것이 다 언젠가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야 할 경험이다. 난 그걸 조금 더 빨리 깨달았던 거고, 오세훈은 아직 그걸 느끼지 못하는 거겠지. 그래서 이렇게 처절하게 또는 제 자신을 죽이면서까지 잔인하게 아파하고 있는 걸까.
" ……이미 한번 뺏긴 그새끼한테 다시 예희를 뺏어올 자신이 없다는 거야. "
" ……. "
" 김예희가 도경수 존나 많이 좋아하잖아……. "
" ……. "
" 도경수랑 손잡고 학교 처음 나왔을 때 처음으로 본 사람이 나였거든? 그때 지 혼자 입이 귀에 걸려서는 병신이……, "
" ……. "
" ……좋아하는 사람 비참하게. "
한 손을 위로 들어 놈의 머리 위로 올려놓았다. 잔잔히, 또는 천천히 놈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 키는 나보다 한참이나 큰 애가 왜 여자 하나가지고 난리야? 야, 너 좋아하는 여자애들 우리 과에 되게 많아! 잘 찾아보면 김예희보다 예쁜 애들 많을걸? 그리고 여자 예쁜 게 다냐? 남자들은 무슨 다 성격본다고 해놓고 결국엔 다 얼굴이더라! "
" ……. "
" 그러니까 김예희 걔한테 연연하지 말라고, 너 정도면 걔보다 좋은 애들 다 사귈 수 있다니까? "
" ……도경수, "
" 응? "
" 너 도경수라는 이름하고는 다 악연이라고 그랬지……. "
" 응? 아니, 도경수 말고 경수라니까 경수. "
" 씨발, 그거나 그거나지. "
" 그거나 그거나? 야, 너 그거 학교 가서 그렇게 말하면 애들 다 오해……, "
" 나도 그건가 보다, 악연인가 뭔가. "
" ……. "
" 도경수랑 악연……그건가 보다. "
이번엔 다른 의미로 징하게 울려대는 내 머리였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모로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늘 아무렇지 않게 제 감정을 표현하고 다니던 오세훈의 속마음이 내가 알던 사람보다 더 여리고 약하다는 것과 유난히 울적한 오늘이라는 것. 경수라는 이름에게 거부반응을 느끼는 나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나와 같은 이야기를 공유해줄 사람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결론은 우리 두 사람에게 도경수가 악연이었다는 것까지. 삐딱하게 얼룩진 삼각형 중앙엔 이렇다 할 선명한 꼭짓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 중앙에 있는 꼭짓점을 향해 달려들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더 멀어져야 할 것인지 적당한 선을 그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도경수가 내 인생에 있어 피해야 할 사람인지 가까워져야 할 사람인지 알려줄 수 있는 적당한 계기 같은 것.
" 집이 어디라고? 안산? "
" 아아……아. "
" 아? 종대야, 아로 시작하는 동네가 어딨냐? "
" 아……아, 아파트 아님? "
" 시발, 뒤져라 그냥. "
" 뭐 집에 데려다주려 해, 그냥 찜질방에서 재우면 되지. "
" 아, 오세훈만 가냐? 나도 막차 끊겨서 찜질방에서 자야하는데 나랑 얘랑 지금 찜질방에서 같이 자라고? "
" 누가 같이 자래? 따로 자면 되잖아? "
" 아, 그건 당연한 거고! "
" 왜, 좀 잘생기니까 어떻게 해보고 싶고 막 그래? "
" 아직도 안 뒤졌어? 언제 뒤질 예정이야? "
흐흐, 얄미운 웃음을 터뜨리며 내 속을 왕창 뒤집어놓는데 일가견이 있는 듯한 김종대였다. 김종대와 내가 오세훈의 양팔을 하나씩 담당하고 있는 힘껏 끌어당겨도 그 쉬운 한 발자국 하나 내밀기 어렵다는 사실에 온 세상이 까맣게 얼룩져갔다. 내가 진짜 미쳤지……뭐가 좋다고 술을 마시러 와선.
" 아……씨발, "
" 응? 뭐? "
" 토 나올 거 같애……, "
" 뭐? 미친, 야 김종대 얘 토할 거 같대! 어떡해? 야, 비닐봉지있어? 아니, 어떡하지? 일단 구석에 좀 데리고가봐! "
" 아, 오세훈 이 새끼 진짜 진상도 적당히 부려야지 별걸 다……야! 시발 여기서 토하면 뒤진다 개새끼야 너! "
" 아……죽을 거 같아. "
" 야, 잠깐만 아 제발 여기서 하지 마! 미친, 야 종대야 일단 저기로 끌고가자! "
" 저기 사람 존나 많이 지나가는 골목인데? "
" 아, 그럼 어떡해 여기서 해? 아, 존나 왜이렇게 무거워……! "
" 흔들지 말라고 개새끼들아……토할 거 같……웁, "
" 아, 미친! 뛰어! "
" 웁, "
" 아아아아! 시발놈 진짜! "
인간의 한계치, 그래. 딱 그 감정이었다. 내가 살면서 성인 남자 한 명을 거뜬히 끌 정도로 힘이 넘쳤던가, 그것도 아니면 내가 이렇게 달리기를 빠르게 한 적이 있었던가. 거구와 맞먹는 듯한 큰 키의 오세훈을 끌고 목표지점으로 달리는 중에도 생각나는 건 단 한 가지였다. 아, 나 지금 오세훈 이 새끼한테 제대로 말렸구나. 제대로 시간 낭비를 했구나. 제대로 험한 꼴을 겪는구나. 엉덩이에 부스터를 달기라도 한 사람처럼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가장 빛이 없는 그득한 곳으로 놈을 던지듯이 밀어 넣는 김종대와 나였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애석한 숨소리에 허망할 만큼 한심함이 느껴졌다. 내가 진짜 이게 뭐 하는 건지. 미리 전화 안 하고 외박하면 엄마한테 엄청 혼나는데……두 시간 거리까지 차 타고 데리러 올지도 몰라. 아, 미친 생각할수록 열받네. 이게 다 오세훈이랑 김종대 개새……,
" 아, 짜증나게 사람 있는데서 토하고 지랄이야. "
" ……. "
" 나 비위 존나 약한데 진짜. "
" ……. "
날 선 목소리와 함께 혼잡했던 정신 줄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불규칙하게 어긋났던 숨소리가 점차 일정한 속도로 빠르게 회복된 건 다름 아닌 눈앞에 있는 두 놈들 때문이었다. 꽉 쥐고 있던 두 손에 느슨하게 힘이 풀렸다. 그와 동시에 나만큼이나 당황스러운 얼굴로 내 쪽을 바라보는 김종대였다. 그득하고 고요한 좁은 골목 안에 코끝을 역하게 찌르는 뿌연 담 배향이 자욱하게 번져갔다. 놀란 두 시야의 폭이 흐릿하게 넓혀졌다. 그 둘 중의 하나는 딱 봐도 전형적인 양아치의 분위기가 풍기는 기분 나쁜 인상을 가진 한 남자였고, 또 다른 하나는 제 친구가 던지듯이 버린 담배 하나를 그대로 밟아 비비며 느릿하게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 ○○○, 오세훈, 김종대……셋이 꽤 친한가 봐? 오세훈하고 같이 있는 건 한 번도 못 봤는데. "
" ……. "
" 시험이 일주일 뒤라는 건 알고 이러고 있는 건가? "
도경수. 그래, 놈이었다. 오늘 술자리의 메인 안주. 전혀 관계없던 오세훈과 내가 이렇게 급만남을 가진 계기. 내 조별 과제를 무참히 짓밟고, 오세훈의 짝사랑 또한 무참히 뺏어가버린 악연 역할을 제대로 해주시는 도경수다. 역한 담배 잔향에 반사적으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나였다. 언제나 적응하려야 적응할 수 없는 냄새다. 꼭 그게 내가 도경수를 생각하는 무언가와도 같았다. 좋게 생각하려야 좋게 보이지가 않는, 편안히 생각하려야 편안하지가 않은, 적응하려야 적응할 수 없는 그런 표정. 시니컬의 공기가 각각의 다른 지점에서 공통적으로 맞물렸다. 구석에선 여전히 제가 먹은 술을 거침없이 개워내고 있는 오세훈의 역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윙윙, 적절한 먹이를 찾았다며 환희의 노래를 불러대는 모기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어색한 이 침묵을 깨려 하지 않았다.
"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시험이 일주일 뒨데. "
" 그럴리가, 난 술 마신 적도 없는데. "
" 우리가 시험 공부를 언제 하는 것까지 일일히 네 눈치를 봐야해? "
" 눈치보란 말 아닌데? 그냥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
" ……. "
" 내가 알기론……, "
한 걸음, 또 한 걸음. 꼭 내 목을 조르러 오려는 사람처럼 종대와 내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도경수를 보고 있자니 엄청난 공포감이 엄습했다. 한 여름날의 공포체험을 제대로 겪고 있는 듯했다. 어깨 부근에 묵중한 압력이 가해졌다. 종대를 지나쳐 내 한쪽 어깨 위로 제 손을 올려놓고 무채색의 표정을 띠고 있는 도경수였다. 신경질적인 표정과 함께 그곳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때였다. 내 어깨에 올려있는 도경수의 손을 아플 만큼 쳐내고 뚫어져라 도경수를 응시하는 김종대였다.
" 너 지금 뭐하냐? "
"내가 알기론, "
" ……. "
" ○○○ 넌 여기서 좀 멀리사는 걸로 알고 있는데. "
" ……. "
" 걱정돼서 그러지. "
웃어도 소름이 끼치는 면상이란 바로 이런 건가 싶었다.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고 있어도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지독히도 거슬렸다. 방금 그 말 뭐지. 절대 날 걱정해주는 듯한 표정은 아니었는데. 그럼 날 비꼬려고 그런 건가? 내가 저한테 뭘 잘못했다고 비꼬는데?
" 니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 "
" ……. "
" 내가 집에 어떻게 가던 말던 너한테 걱정 받아야 할 입장은 아니지? "
" 너 내가 꽤나 맘에 안 드나 봐? "
" 그건 내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인데? 너야말로 내가 많이 맘에 안 드나 봐? "
" 난 대부분 사람 먼저 안 싫어해, 그 사람이 날 싫어하면 나도 싫어하는 거지. "
" ……. "
" 평소에 같이 다니지도 않던 오세훈과 오늘 같이 술을 먹었고, 넌 더군다나 저번에 교수님한테 조별과제 문제로 따지러왔을 때 나한테 아주 개쪽 당했잖아. 김종대는 뭐……, "
" ……. "
" 친구 따라 강남간다 그건가? "
기분 나쁜 짧은 조소가 콧잔등 끝을 날카롭게 스쳐 지나갔다. 이번엔 전보다 더 심각하게 두 눈썹이 사정없이 대각선으로 꺾여갔다. 기분 나쁜 느낌이다. 놈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딱 그랬다. 여지껏 내가 만났던 수많은 경수들과는 특히나 다른 존재였다. 더럽다고 피하면 그만이고, 아니라고 부정하면 그만이고, 싫다고 거부하면 그만이던 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도경수는 선명하리 만큼 내가 저에게 품고 있는 앙심을 먼저 캐치하고 있었다. 다시금 오스스 소름이 돋쳤다. 내가 자기 싫어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난 이렇다 할 티를 낸 적도 없는데. 두어 번 짧게 내 어깨 부근을 두드리고 빠르게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도경수와 그의 친구였다. 그들이 이곳을 나간 후에도 여전한 잔향과 알싸한 잔상이 뭉게뭉게 퍼져가고 있는 듯했다. 아, 순간적으로 뇌리에 스치는 무언가가 하나 있었다.
도경수는 지옥이다. 내 주변에 경수라는 이름이 득실대서 지옥이라는 말이 아니라, 단순한 말 그대로 지옥. 도경수는 지옥, 그 자체였다.
뻐근한 고개를 반복적으로 돌렸다. 어제 오세훈을 김종대네 자취방에 버려놓고 혼자 20분 거리의 찜질방까지 걸어가 늦은 쪽잠을 청한 탓인지 오전 내내 쉽게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이것들은 오늘 정말 학교를 오지 않을 생각인지 어젯밤 새벽에 김종대가 급결성한 도증모 단톡방엔 민망할 정도의 정적이 흐른지 오래였다. 아무 생각 없이 다음 시간표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다음 시간이……아, 유통 경영 김경수 교수구나.
" 아, 죽겠다. 너 돈 얼마 있냐. "
" ……. "
" 나 어제 택시에 지갑 놓고 내려서 지금 개거지됐어, 초코우유 좀 사먹게 돈 좀 줘봐. "
" 너 왜 내 옆에 앉아? "
" 아, 치사하게 아무데나 앉으면 어때서. "
" 여기 민정이 자리거든? "
" 민정이가 누구야, 우리 과야? "
웬 대학에서 어떤 양아치 새끼가 일진 코스프레를 하나 싶었지. 아, 그게 오세훈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누가 봐도 '나 어제 거하게 한 잔 했어요' 라는 단어를 자동 연상시키는 반폐인모드로 뻔뻔하게 돈을 뜯어내는 모습에 기가 찬 헛웃음이 터져 나올뻔한 나였다. 어제 그 술 한번 마셨다고 이렇게 막 대하는 거야? 이럴 거면 왜 그동안 우리 과 여자애들이랑 친하게 안 지냈나, 아주 절친급으로 친해져서 틈만 나면 삥 뜯고 다니지.
" 김종대는? "
" 걔 오늘 수업 안 들어온대, 어제 술 존나 많이 먹었나 봐 그 새끼. "
" ……니가 할말이야? "
" 왜? 나 어제 심했어? "
" 아, 말을 말자 말을. "
" 왜? 아, 나 안 그래도 눈 뜨니까 김종대 집이라서 불안하다 했는데 나 또 집 안 간고 버팅겼냐? "
" 너무 스스로 니 죄를 잘 알고 있어서 더 빡치는 거 알지. "
" 그래도 어제 재밌었잖아? "
" 설마 재밌었어? "
" 설마 재미없었어? "
" 그럼 재밌었겠어? "
" 야, 나 그래도 어제 도경수가 우리 존나 무시했던 건 기억해. 시험기간인데 뭐하냐고 그러지 않았냐? "
" 아, 앞에 도 붙이지 말라고 그랬지! 괜히 학교에서 애들 오해한다고! "
" 오해하라 그래, 지가 오해하면 뭐 지랄이라도 한대? "
아, 골이 당겨왔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분명 어제까지도 오세훈과 이렇게 나란히 같은 자리에 앉아 도경수에 대한 토론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반포기하자는 심정으로 아예 대놓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쿵하고 전공 책을 책상 위로 올려놨다. 하마터면 김경수 교수. 울고 싶다. 경수라는 이름만 보면 더더욱 그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각각의 지방방송들이 판을 이루던 시점에 드륵, 하고 강의실 앞문이 열렸다.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고 있던 오세훈의 사소한 잡담은 이미 한 귀로 흘린지 오래였다.
" ……. "
갸우뚱, 고개가 돌아갔다. 도경수랑 오후 수업이 겹친 적은 월요일이나 금요일 말고 단 한 번도 없는데. 한 손에 두꺼운 유통 경영 책을 들고서 느릿하게 빈자리를 둘러보는 놈의 모습에 저릿한 긴장감이 일렁였다. 놈은 어제 새벽에 날 만난 걸 기억이나 하긴 하는지,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 또한 굉장히 기분 나쁘게 내 심기를 툭툭 건드려왔다.
" 이야, 도경수도 지각을 하네, "
" 야, 너 왜 그래. "
" 뭐가, 그냥 어제 우리보고 시험 공부 안 하고 놀러다니냐고 훈계했던 새끼가 지는 지각하니까 웃기다 싶어서. "
" ……. "
" 그래, 그래야 사람같지 좀. "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강의실 안이 싸하게 굳어져갔다. 몇몇의 아이들은 제 벌침을 곤두세우며 난감한 이 상황에 대해 수군거리기까지 시작했다. 그제야 제 고개를 우리 쪽으로 돌리고 기분 나쁜 입꼬리를 올리는 도경수가 보였다. 지금 웃은 거야, 웃은 거지?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나? 과 애들 앞에서 대놓고 꼽준 오세훈을 보고 웃음이 나와?
그때였다. 굽혔던 허리를 느릿하게 펴고 천천히 우리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도경수 아니겠냐. 아, 나만 이게 뭔가 싶었다. 애초부터 도경수를 피하려 했고, 애초부터 도경수가 별로라며 김종대한테 말한 죄밖에 없는데. 애석한 상황을 차단하기 위해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사실 나도 같이 욕했으면서 모른 척한다는 게 제일 못된 부류라는 걸 알지만 대학교는 공부하는 곳 이전에 많은 개인들의 모여 공동체를 이루는 작은 사회였다. 이 치열한 작은 사회에서 괜한 소문에 연루되거나 괜한 사건에 개입되면 결국 피를 보는 건 나 자신이다. 그걸 명심해야 한다. 난 절대 이 싸움에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세뇌하고, 또 세뇌하……,
" 둘 다 어제랑 옷이 똑같네? "
" ……응? "
" 어제 잠깐 도서관 갔다가 담배 피러 나왔을 때 만났잖아. "
" ……. "
내 인생에서 경수라는 이름은 가히 조선시대 유물 164호 앙부일구 급이었다. 사실 이렇게 표현해서 좋다는 거지, 실제로 말하면 그들은 내게 있어 질긴 악연과 다름없었다. 지겨울 만큼 경수라는 이름을 가진 그들은 나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내 주변 곳곳에서 날 위협하곤 있었다. 한 번은 대체 왜 난 경수라는 이름과 계속 악연으로 엮이는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고, 또 그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에 따른 해결 방법이 다행히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난 그날 하루 종일 축가와 풍악을 울려대기도 했었다. 그들과 악연으로 엮이지 않는 방법은, 내가 어떻게든 경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피해 다니고, 숨어 다니고, 어떻게든 마주치진 않는 쪽으로 노력한다면 굳이 그들과 악연으로 끝나지는 않는구나, 라는 거였다.
그날 해결 방법을 터득한 후로, 난 지겹게도 경수라는 이름을 피해 다니기만 했다. 덕분에 1년 정도는 그 지긋지긋한 이름을 볼 확률이 거의 줄어들긴 했지만 트라우마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 명이 사라지면, 또 다른 경수가 나오고, 그 경수가 사라지면 이 경수가 나오는 식으로 끊임없이 그들은 내 곁을 맴돌곤 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경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 내게 있어 도경수라는 이름은,
" 둘이서만 새벽까지 같이 있던데……, "
" ……. "
" 아침 일찍 같이 나왔나봐? "
내가 피하려 해도, 숨기려 해도, 거부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설혹, 온몸에 찌르르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전율이 일어났다. 확신에 찬 눈으로 오세훈과 내 쪽을 번갈아 바라보는 놈의 눈빛에 벙어리마냥 어버버거리며 멍청한 두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오세훈과 내 사이를 의심하며 도경수가 말한 어제 새벽에 대해 온 관심을 두고 있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건 놈이 한 말이다. 분명 도경수는 둘이서만, 이라고 했지만 어제 놈이 우리를 본 건 종대까지 함께 셋이 있는 나였다. 그럼 놈의 말에 명백해지는 건 단 하나다.
아, 이 새끼 지금 우리가 자신을 싫어하고 있다는 걸 확신하고 있구나.
아, 실제로 대학교에서 오세훈같은 술버릇 가지고 있는 친구 만나면 정말 개고생입니다...저는 주로 챙겨주는 입장이라 항상 저런 친구들을 챙기곤 했었는데 진짜 너무 힘들어서 아직도 고생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그래서 결론은 경수 무서운새뀌.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01 01:1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04 23:0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13 16:57
경수하하하하허하하
경수야....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23 11:12
아이무셔..
ㄱ...경수야.....무섭다.....
경수 무셔....
경수야 ..무슨짓이야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1.29 19:51
와 경수 왜 저런담ㅎㅎㅎㅎ
아 도경수 한대 때리고 싶다 ㅋㅋㅋㅋ 왜이렇게 얄밉게 나와ㅋㅋㅋㅋ 그래도 많이 아낀다 경수야♥
경수야...^^
대다나다ㅋㅋㅋㅋ아옼ㅋㅋㅋ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1.01 16:20
소름돋아
와 경수 졸무섭....으앙
경수 뮤셔워퓨ㅠ
갱수 덜덜쓰...
경수 ...너 ...이새끼가....
으어 담편에 어떤내용이 나올지 상상이안가요ㅋㅋㅋ
...오 도경수...무서워..경수지옥 웰컴투헬..?ㅋㅋㅋ
경수짤 개소름....안그래도 추운데 닭살돋네 막... 어후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1.26 19:08
이야 경수야......
경수야...
경수 무섭다 덜덜이다
경수 넘나 못된 놈...ㅠㅠ
경수 넘나 소름인것
와...도경수 소름돋았어...
어우 진짜 넘나시렁..
헉 경수...
경수야 난 너의 소름도 사랑해줄수있어(진지
개소름...경수야...
경수야...(소름)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4.26 02:32
경수.....무섭네....
오어ㅓㅓㅓㅓ 넘나 무서운것...소름이 갑자기;;;
왜때무네 일부러 저렇게 말을..
와 ... 경수 .... 그렇게사는거아냐 ...
ㄷ.ㄷ...ㄸ.....완전 싸가지킹인데요
완전 좋아여!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6.12 18:20
경수...왜..왜그래
ㄱ경수야...
경수 개약았다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9.28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