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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랑집(파조 1자) 파 분담의 50% | 춘제공집 50% | ||||
종파집 문중 (선무랑 집 의 50%) 25% | 상주집25% | (파조 2자) 파 분담의 50% | |||
정산집 (종파집의 60%)15% | 주손 | (선무랑 집 의 5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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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천 후손 40%- 6% | 두추 후손 40%- 6% | 와룡집 20%- 3% | 울진집 (종파집의 40%)10% |
여기에 나오는 문중의 이름을 설명하면 우선 11세 파조(派祖)의 아드님 12세 두 분(형 선무랑 수(琇)일명 환(瑍)부군과 동생 춘재공 연( )부군 형제)의 후손을 선무랑집( 큰 집 문중) 과 춘재공 집(의성문중)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집 50%씩 일단 분담을 나눈다.
13세에서 응창(應昌) 부군과 생수(生洙)부군 형제분을 정산 문중 과 상주 문중으로 구분 한다.
여기서 50%분담을 다시 반으로 나누면 즉 전체의 25%씩 분담이 된다.
우리는 다시 18세 관(寬) 부군과 둘째 식(寔)부군 후손은 못 찾고, 셋째 주원(柱元) 부군 후손을 둘로 가르되 형 주손 집 이라하고 우리는 정산 집으로 나누었다. 정산 집은 15%를 분담하고 주손 집은 자손 수가 적다고 10%를 분담시켰다.
정산집은 다시 20세 신정(信鼎)부군과 동생 려정(呂鼎)부군을 와룡집으로 12%와 3%의 비율로 분담시키고 21세 두천(斗天), 두추(斗樞)형제분의 후손이 12%를 각각 6%씩 나누었다.
가승보에 상세한 분담의 예시를 해두었다 -실제로 한번은 실행하였고, 두 번은 풀이만 하고 실행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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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상진사공 11세 영균(永鈞)부군 | ||||||||
선무랑집 12세 수(琇) 일명 환(瑍) 후손 | 춘제공집 | |||||||
종파집 13세 응창(應昌) | 상주문중 | (파조 2자) 12세 연(瑌) 의성 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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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관(貫) | 18세 주원(柱元) | (선무랑의 2자) 13세 생수(生洙) | ||||||
주손집 울진 문중 | 정산문중 20세 신정(信鼎) | 여(呂)정 | ||||||
추곡파 문중 21세 두천 | 21세 두추 | 와룡집 | ||||||
22세 흥순 | 각순 | 속칭 아랫마을 | ||||||
덕근 | 도근 | 섭근 갑자회 | 등재 |
20세 신정(信鼎)부군의 두 아드님 두천(斗天), 두추(斗樞)형제분의 후손은 오래토록 소듬물 부근에 살아오면서 우리파의 모든 일을 책임을 지고 일해오시고 관리해 오고 있는 정정(鼎井)문중이라 불렸다. 우리 문중의 어른들은 태장과 소산, 작산을 다니시며 실제적인 상진사공파의 후손 역할을 해 왔음을 알고 긍지를 가져야 한다.
이제 못난 후손이 되다보니 조상의 시제를 찾는 사람이 드물고 관심도 멀어져 가는 자손이 안타깝다. 18세에 맏형이신 덕중 부군의 주손(상진사공 파의 장자후손)과 가까운 친척 몇 사람과 선무랑 둘째 아드님 생수 부군의 후손 상주 문중이 회장도 맡고 많은 청년들이 큰 역할을 하며 시제에 참석하고 있다. 어느 집 어느 문중이든 더 많은 후손이 조상의 산소를 찾아야 한다.
정산에 사시며 두천, 두추 부군의 형제 후손은 ‘웃마을 김씨, 아랫마을 김씨’하며 조상과 위토 산을 갈랐다. 특히 두천 부군의 후손은 할아버지 호(號) 추곡(秋谷)을 따서 ‘정정 추곡파 문중’으로 명명한다. 추곡 부군의 후손은 22세 흥순(興淳). 각순(覺淳) 형제분 후손으로 나누어지고, 23세에 와서 덕근(悳根), 도근(道根), 섭근(躡根) 부군의 집안으로 나누어 졌다. 섭근 부군이 갑자회 동자 항열의 5대조이시고, 고조부 병준(炳準) 할아버지의 양가(養家) 아버지 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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