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칸트-헤겔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 가운데 논란스러운 부분입니다.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인식 주체에 대한 반성을 칸트는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하는 데에 그쳤다. 그것은 '지배계급의 사상이 지배적인 사상'이라든가, 사회적 존재 혹은 토대가 의식 혹은 상부구조를 규정하는 측면에 대한 강조, 권력과 무의식과 언어에 대한 반성 등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선험적 감성형식이나 범주 그 자체의 유효성에 대한 논의와 별개로 인식주체의 인간학적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에 대한 반성은 유물론적 인식론에서도 건너뛸 수 없어 보인다. 이를 칸트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상정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그 의의를 부인하는 것도 잘못일 것이다.
칸트의 칸막이. 감성/지성/이성, 과학/인간학, 곳곳에 등장하는 칸트의 청결한 분립 방식은 실제 사태(의식을 포함)에 대한 기술인가, 아니면 그저 그럴듯한 칸트의 틀이며 현실은 칸막이 사이를 드나들거나 아예 칸막이 자체를 허무는 현상들로 넘쳐나지 않는가. 과학을 자처하는 '자본론'을, 나아가 칸트의 비판서들을 정치적 관심 등과 분리해서 보는 것 자체가 실천적 관심의 산물 아닌가. 보편 타당 필연적인 인식은 주객동일자와 마찬가지로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 지향점 아닌가. 인식이라는 것이 사물의 물질적 중복이 아닌 한 일정한 오차, 왜곡, 결함 등은 선험적 조건 아닌가.(그렇다고 개별 인식들마다의 인식가치가 동일하다고 보자는 뜻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