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5월 4일) 조나단의 발인과 납골당 안치를 지켜보고, 몇 시간 전에 청주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조나단의 친형님께서 장례식 절차 내내 동생을 잘 떠나보내려고 여러모로 애쓰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조나단의 기일은 음력 3월 13일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해마다 조나단의 기일을 잊지 않고 잘 챙겨주고 싶습니다.
제게 조나단(강호덕)은 각별합니다. 그냥 잊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나이는 저보다 9살 아래지만, 지난 5년간 조나단은 저를 아버지처럼 느끼고 믿고 의지하고 따랐습니다. 저 또한 비록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지만, 조나단을 종종 제 아들처럼 느꼈습니다. 아껴주고 위해주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조나단의 부고를 접하고, 조나단의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확인해보니 "파란마음 하얀마음" 카페의 <조나단의 문학세계>게시판에 올렸었던 자신의 글들을 3월 23일(월)에 스스로 모두 삭제했더군요. 그리고 우리 카페에 올렸었던 자신의 문학작품들도 모두 삭제했는데 아마도 그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을 당시에 알아채지 못한 저의 무심함이 서글픕니다. 지금 와서 되짚어볼 때, 아마도 조나단은 그 무렵에 자살결심을 굳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조나단은 그 전 주에 화상병원에서 자의퇴원하여 저하고 며칠 같이 지냈습니다. 아마도 세상살이에 지치고 절망한 가운데, 마지막으로 제게 실낱같은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저는 조나단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조나단이 제 옆에 있었지만, 절박한 심정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고, 제 일에 몰두해 있었습니다. 몸은 함께 있었지만, 제 마음은 조나단을 향해 있지 않았습니다. 3월 24일(화)에 저는 서울에 일이 있어서 다니러 갔고, 3월 25일(수)에 돌아왔을 때 조나단은 떠나고 없었습니다. 뒤에 알고보니, 조나단은 그 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으로 갔더군요. 그리고 3월 28일(토) 저녁 6시경에 자살시도를 했고, 그 후 쭉 뇌사상태로 있다가, 5월 2일(토)에 사망한 것이지요.
저는 조나단의 장례절차를 마치고 어제 저녁에 청주의 "꽃동네치료공동체" 숙소로 돌아와서, 혹시나 해서 다음카페 "싸이미디어(http://cafe.daum.net/siandpeople)"를 둘러봤습니다. 조나단이 출연했던 "로드무비"(KBS1, 2009. 8. 1 방영)를 제작한 서기원 다큐작가의 카페이지요. 이 곳에 조나단이 올린 글이 20편 가량 남아있더군요. 기뻤습니다. 희망이 생긴 거지요. "조나단의 삶"을 기억하고,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줄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지요. 이 곳의 글들을 스크랩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여기저기에서 조나단의 글들을 발견하게 되면 이곳 "조나단 추모 게시판"으로 스크랩해올 생각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책으로 엮어낼 생각입니다.
저는 조나단의 삶은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48년간의 생을 자살로 마감하기는 했지만, 조나단은 강한 의지력으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잡초인생이라는 책에서 저는 조나단을 "증상의 종합백화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증상으로만 보자면 조나단은 지역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평생을 정신병원에서 지내야 할 정도로 온갖 심한 증상들을 모두 다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로써 환시, 환청, 망상, 건망증, 기억착오(허담증), 사고정지증상, 피동증, 신체이상감각 등등입니다. 아마도 조나단은 20여년의 투병기간 동안 증상 없이 지낸 날이 단 하루도 없었을 듯합니다. 하지만 조나단은 강인한 정신력과 치열한 노력으로 지역사회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조나단에게는 사회적 지지망이 너무나 빈약했습니다. 7남매 중 4명이 조현병이었기에, 부모도 형제들도 조나단을 도와줄 여력이 없었습니다. 한두달 일을 하면 증상이 재발했기 때문에 꾸준히 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조나단의 꿈은 소박했습니다. 글을 써서 좋은 문학작품을 남기는 것, 이를 위해서 언젠가는 대학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는 것 (조나단은 40대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야학과 검정고시를 통해 마쳤습니다.), 좋은 여자 만나서 같이 사는 것 (발병 전에 결혼해서 딸을 뒀지만, 정신병 발병 이후 이혼당했습니다. 그 딸이 올해 23살이지만 서로 연락없이 지냈습니다. 40대에 3~4년 정도 동거생활을 했지만, 작년 3월경에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쉼터를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조나단은 이 모든 자신의 꿈에 도전했습니다. 비록 단 하나도 결실을 맺지는 못했지만, 조나단은 용기를 내어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본인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믿음이 컸고, 의미부여가 컸던만큼 난관에 봉착했을 때, 실망도 크고 좌절도 컸던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간은 조나단의 꿈과 희망, 그리고 좌절과 절망의 한 가운데 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믿고 따라왔지만, 더 이상 저를 믿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조나단은 삶의 무게를 견뎌내기가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슬프고 착잡합니다.
저는 조나단이 살았던 삶의 단편들을 모아보려 합니다. 그리고 조나단의 삶을 재구성해보려 합니다. 비록 조나단은 더 이상 여기에 없지만, 저는 그의 삶을 헛된 삶, 별 볼일 없는 삶, 기억할만한 가치가 없는 삶이 아니라, 강인한 정신력으로 치열하게 살다간 열정적인 삶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을 추적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 게시판을 우리가 다 함께 만들어가기를 희망합니다. 누구든 조나단이 쓴 글을 발견하시면 이곳으로 스크랩해 주십시오. 조나단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면, 이곳에 올려주십시오. 조나단과의 어떤 추억이 있다면, 그것이 좋은 내용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이 곳에 게시글로 올려주십시오. 마침 제 컴퓨터 사진첩에 작년 10월에 조나단과 찍었던 사진이 들어있기에, 이를 첫 기록으로 올립니다.
첫댓글 저 분 안지가 오년이 넘었네요.
예전에 종찬씨랑 말티노형이랑 스카이프 그룹 통화도 종종했던 기억이 납니다.
호덕이형 대할때마다 느낀점은 아! 이 분은 정말 법없이도 살겠구나란 생각이 들곤 했죠.
많이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해맑게 웃는 사진 속의 표정처럼 말입니다.
이번에 부음 듣고선 제게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촛불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남을 해치는 나쁜 놈들은 오래도 사는구만,
왜 이런 착한 분들이 인생을 이렇게 일찍 마감하나란 생각이 줄기차게 들더군요.
좋은 사람,착한 사람이기에 좋은 곳에서 편히 계시겠죠?!
삭제된 댓글 입니다.
붐님! 고맙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너무 슬퍼하지는 않으셨음 싶네요. 힘내세요.
그런 사정이 있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