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 창비시선 392 |2015년 09월 25일 출간
이현승 시인의 세번째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 이 시집은 사물을 골똘하게 바라보는 날카롭고 지적인 통찰과 예민한 감성이 어우러진 가운데 논리정연하면서도 단정한 시편들이 신선한 공감을 일으키며, 새로운 각도로 일상을 들여다보며 세상의 양면적 속성과 존재의 본질을 파고드는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위트와 유머 속에 슬픔이 깃든 삶의 아이러니가 돋보인다.
저자소개
저자 이현승은 1973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다. 2002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이스크림과 늑대』『친애하는 사물들』이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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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김민정(시인)
아이인데 아버지다. 소년인데 아버지다. 청년인데 아버지다. 오빠인데 아버지다. 선배인데 아버지다. 박사인데 아버지다. 남편인데 아버지다. 선생인데 아버지다. 참새들에게는 비호감인 허수아비인데 아버지다. 빗방울의 입장인데 아버지다. 에고이스트인데 아버지다. 개그맨인데 아버지다. 여행자인데 아버지다. 소진된 복서인데 아버지다. 아픈 사람인데 아버지다. 처형을 기다리는 자인데 아버지다. 전생을 믿는 심리학자인데 아버지다. 주검의 얼굴인데 아버지다. 술김에 불을 질렀던 방화범인데 아버지다. 아무도 안 아픈데 혼자 다 아픈 척 능력자인 아버지다. 눈을 감고야 그대를 보는 아버지다. 아무도 안 보는 시를 명을 줄여가며 쓰는 아버지다. 만세 자세로 서 있는 아버지다. 역기를 들어 올리는 사람의 얼굴로 간신히, 알았지 아빠? 할 때 그 아버지다. 그렇게 같이 살자, 하는 이현승은 정말이지 아버지다.
출판사 서평
삶의 가장자리에서 시를 길어올리다
생동하는 몸의 세계를 꿰뚫는 투명하고 냉철한 현상학적 시선과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미지로 독특한 시세계를 펼쳐온 이현승 시인의 세번째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이 출간되었다. 『친애하는 사물들』(문학동네 2012) 이후 3년 만에 새롭게 펴내는 이번 시집은 “몸을 위한, 몸에 의한, 몸의 것일 수밖에 없을 나날의 삶의 육체성이 어떻게 조직되고 통제되는가를 바닥까지 들여다보려는 몸의 헌정서”(이찬, 해설)이다. 사물을 골똘하게 바라보는 날카롭고 지적인 통찰과 예민한 감성이 어우러진 가운데 논리정연하면서도 단정한 시편들이 신선한 공감을 일으키며, 새로운 각도로 일상을 들여다보며 세상의 양면적 속성과 존재의 본질을 파고드는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위트와 유머 속에 슬픔이 깃든 삶의 아이러니가 돋보인다.
꿈이 현실이 되려면 상상은 얼마나 아파야 하는가./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절망은 얼마나 깊어야 하는가.//참으로 이기지 못할 것은 생활이라는 생각이다./그럭저럭 살아지고 그럭저럭 살아가면서/우리는 도피 중이고, 유배 중이고, 망명 중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뭘 해야 한다면//(…)//고독이 수면유도제밖에 안되는 이 삶에서/정말 필요한 건 잠이겠지만/술도 안 마셨는데 해장국이 필요한 아침처럼 다들/그래서 버스에서 전철에서 방에서 의자에서 자고 있지만/참으로 모자란 것은 생활이다
- (「생활이라는 생각」 부분)
구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현승의 시에는 말 그대로 생활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시인에게 삶이란 “언제나 선택의 편에서 포기를 합리화하는 일”(「허수아비 디자이너」)이기도 하지만 “구할 수 없는 것만을 기도하”(「빗방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는 영혼들이 “서로 권하고 축이고/또 이렇게 밥 한끼 얻어먹고 다음을 기약하는 일”(「다단계」)이다. “불행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삶”(「씽크홀」)의 비애 속에서 시인은 “기다리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늘 각성과 졸음이 동시에 육박해”오는 “절박한 삶”(「봉급생활자」)을 살아가는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생활인의 애환에 연민의 눈길과 “차가움에서 시작해 뜨거움으로 가는 악수”(「저글링」)를 건넨다.
이즈음의 삶이라는 것도 부황 자국 같다./살겠다고 제 피를 뽑은 자리의 피멍처럼/죽을 힘으로 살고 사는 힘으로 죽는다는 생각.//생각이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결국은 생각이 없어지는 방식으로,/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비가 왔다./지지도 못하고 매달린 목련의 부황 자국 같은 얼굴.//(…)//한주에 세 번 문상을 하고 나서/죽음이 얼마나 가까운지 깨닫는 일은 공교롭고 새삼스럽다./죽음은 너무나 당연해서 생략 가능한 문장 같지만/생략된 것을 더듬을 때마다 가슴이 눌린다.(「부끄러움을 찾아서 2」 부분)
이렇듯 우리의 삶은 “피차 빤하고 짠하기만 하”고 “질문이 뭐였는지/답이 안 나오는 삶”(코뿔소」)처럼 무력하기만 한데, 세상은 또 어떠한가. 온통 모순덩어리이다. 시인은 “죄 안 지은 자들이 더 많이 회개하고/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기부하고/상처 많은 사람들이 남의 고통에 더 아파”(「일생일대의 상상」)하는 부조리한 세상의 단면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겉은 젖고 속은 타들어가는 이곳에서/지금 살아 있다는 것보다 끔찍한 재앙은 없다”는 절망을 내비치면서, “죄송의 말이 재앙보다 더 잔인하게 들”리는 그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용서라는 말을 없애버리면 좋겠다”(「인정도 사정도 없이」)는 시인의 말은 세상에 던지는 절규에 가깝다.
먼바다는 아이들이 가라앉아 아직 시퍼렇고/사람 죽는 소리에 질린 하늘 아래/백일 동안 멍든 얼굴로 누운 그늘을 보면서/생각한다. 용서가 먼저인지 망각이 먼저인지./견디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견딤에 대해.//사람들이 곡기를 끊고 시나브로 제 생을 말리는/이곳은 어디인가./죽은 사람이 떠나지 못하는 세상은 구천 같다./세월은 더 흘릴 눈물도 없는 사람들을 울려서 눈물을 짜낸다./사람이, 역기를 들어 올리는 사람의 얼굴로 간신히.
- (「고통의 역사」 부분)
이 세계에서 “선망이란 언제나 현실의 반대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고 “욕망이란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해 자라나는 손가락”(「일생일대의 상상」)이다. 시인은 “아픈 사람을 빨리 알아보는 건 아픈 사람”이고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위로도 잘한다는 생각”(「오줌의 색」)에 이른다. 시인은 또 “극빈의 번데기를 열고 나온” “극악”이라는 절망의 극점에 다다른 삶 속에서 “순결을 경매하는 여대생”이나 “신체포기각서”(「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소름 끼치는 현실에 끝없이 절망하면서도 희미하나마 희망의 불씨를 “어떤 암시처럼”(「코뿔소」) 간직한다. “내 손은 두개뿐이지만/여러개의 손을 잡고 있다”(「저글링」)는 발언은 고통이 없는 것은 윤리적일 수 없다는 저 레비나스의 윤리학적 시선에 가닿는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죽지 못하고/살아 있지만 산 것도 아닌 세월에는 어떤 이름이 필요한가./충격과 분노, 비참과 울화를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라면/너무 비싼 삶이 아니라 가치 없는 삶이 아닐까.//그러므로 기억도 망각이다./할부금을 갚느라 원금을 잠시 잊는 조삼모사,/정치적 무능과 부패를 덮는 대형 참사처럼/하나를 보느라 다른 하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 맹목이지만/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다른 하나가 아니다.//기억해야 할 억울이 너무 많은 삶에서/망각이 가장 흔하다는 것은 웃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죽음조차 놀랍지 않은 세상에서 무가치해진 것은 충격이 아니다.//자연이 실수를 한다면/우리는 실수조차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그렇다면 실수하는 것은 여전히 자연이 아니다.
- (「도그마」 부분)
세상 어디를 둘러본들 “구원도 없고 심지어 절망도 없”고 우리의 삶은 “낙관 자체가 곧 절망”(「고도를 기다리며」)이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제는 “아무도 시를 읽으면서 울지 않고 격앙되지도 않는” 이 불우한 시대에도 “아무도 안 보는 시를 명을 줄여가면서 쓰”(「천국의 아이들 2」)는 것 아니겠는가. 세상이 절망의 그림자일 뿐일지라도 “꿈조차 없다면 너무 가난한 것 같”고 “절망조차 없다면 삶이 너무 초라한 것 같”(「이것도 없으면 너무 가난하다는 말」)기에. 더 나은 삶을 향하여 “인생 역전을 꿈꾸는” 것이 비록 “한심하게” 보일지라도 “시작하기엔 이미 늦었지만/아직 포기하기엔 이르”(「에고이스트」)기에.
상처는 상처로만 열린다./잔뜩 풀어 헤쳐논 이 상처들은 다 뭔가./요즘은 아무도 시를 읽으면서 울지 않고 격앙되지도 않는데/아무도 안 보는 시를 명을 줄여가면서 쓰고,/조금 웃고, 조금 끄덕이고, 들렸다 가라앉았다 하면서//뚫어지게 보고 있는 사람은 역시 쓰는 사람이다./여기 통증은 조금 안다는 사람들은 다 모였는데/봉인된 저 상자는 누가 무엇으로 열었는가./하긴 아픈 사람만 봐도 같이 아픈 곳이 천국일 테지.
- (「천국의 아이들 2」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