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군복무기간과 재수시절 전기도 들어오지않는 조그마한 산사에서 책과 씨름한 8개월을 빼고는 오랜동안 집 대문밖을 떠나 본적이 없다.그만큼 일상 생활은 서울이라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부모님또한 조상 대대로 서울에서 사신분들이었기에 지방에는 인척이 없었다. 남들처럼 시골에 가고 싶어도 갈곳이 전무했다.학창시절 방학때가 되면, 지방 인척집에 가는 반친구들은 철도청에서 발행한 기차 할인권을 학교에서 지급 받았다.나는 그게 몹시 부러웠고 부모님을 한때 원망 하기도 했다.
중학교때 젊은 국어 선생님이 한분 계셨는데,하루는 수업시간에 서울이 고향인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셨다. 60명중 절반정도가 손을 들었다.다시 3대이상 서울에서 산 사람만 손을 들라고 하셨다.손든 사람은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선생님이 "너희는 불행한 놈들이다" 하시기에 마지막까지 손든 친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의아해 할때, 칠판에 "고향"이라고 크게 쓰신후 "우리 한국인의 마음속 고향은 집 뒷쪽으로는 나지막한 산이나 동산이 있고,집 앞으로는 작은 시내물이 흐르고 논,밭이 펼쳐진 서정적 모습이 마음의 고향이다.그것이 없는 너희는 불행한 놈들이다" .나는 졸지에 기차활인권도 받을수 없는 불행한 놈이 되고 말았다.그 이후 재수시절부터 주말이나 방학,휴가 때가 되면 여행과 산행은 생활의 중요 일부이자, 주된 취미가 되어 삶의 크나 큰 활력소로 자리메김 되어 왔다.기회있을 때마다 시도되는 서울탈출은 묘한 마력이 있었다.
성년이 되어 마음속으로 다짐했다.결혼은 반듯이 시골색시와 하겠다고.자식이 태어나면 방학때는 갈곳이 있는 외가집이 있어, 기차할인권도 받을수 있고,서정적 시골모습도 함께 느낄수 있어 정서적으로 성장에 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허나 어머님의 완강한 반대로 끝내 뜻을 접어야 했다.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뇌리속에는 늘 정년퇴직후 전원생활의 꿈을 그리며 살아 왔다.마침내 사회생활을 접은후 본격적으로 꿈을 펼치기로하고 집사람 설득에 들어 갔다.그 이전에도 종종 나의 뜻을 밝혀 왔기에 별 문제가 없다고 믿었던터라, 예비단계로 정착할 곳을 찿아 강원도는 물론 소백산 지리산 남해안 바닷가 주변등을 한달여에 걸쳐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그러나 강원도만한 곳이 없었다. 가족 친지 친구들이 있는 서울에서도 가깝고, 거리상으로도 차로 2시간 범위내에 이동할수 있는 장점과 함께 전원생활의 분위기도 함께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번에는 집사람 반대에 부디쳤다.지리한 공방끝에 집사람은 외동딸 내외와 함께 지내기로하고 결국 나는 쏠로 탈출을 결심하기에 이르고 말았다.
한쪽 날개죽지가 꺾인 서울 촌놈이 강원도에 둥지를 튼지도 해가 바뀌면 벌써 3년째 접어든다. 집을 오가는 불편함 이외에도 이곳 생활이 아직 익숙하지 못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개의치 않는다.처음에는 많이 불편했으나 차없이 지내는 생활도 새롭고,장거리 이동시 경로우대 할인까지 받으며 누리는 기차여행의 맛 또한 여유롭고 쏠쏠하다. 비록 산중생활은 아닐지라도 이루지 못한 그간의 꿈에 좀더 다가서 보려고 ,주변의 시골 5일장, 각종 향토축제,산행 그리고 무엇보다 매력적인 동해안 바닷가,항포구 어시장등을 계절에 관계없이 자주 찿는다.한겨울 양미리,도루묵 철이 돌아 오면 항포구 어시장을 찿아 즉석구이에 소주한잔 기우리는 그맛과 정취는, 서울의 일류 일식집 어느 생선요리나 ,목로집 생선구이에 비할바가 아니다. 매월 3,8일 열리는양평 5일장을 찿으면 수수부끄미 1-2개,전기멧돌로 갈아 부친 빈대떡에 '지평막거리'는 단골 메뉴가 된지 오래고, 5,10일에 서는 용문 5일장을 찿는 날이면 산행과 함께 장날 국밥을 놓치지 않는다.1,6일에 열리는 횡성장에서는 맛은 다소 뒤지나 더덕구이에 소주 한잔을 걸친다.나는 아직도 사람사는 냄새가 짙게 묻어나고 정감이 오가는 장날 모습이 좋아 돌아오는 길은 예외없이 양손엔 푸성귀,과일봉지가 들려 있음을 발견하고 나물 파는 할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나는 같은 물건이라도 가장 나이가 많은 할머니의 노점 물건을 사는 버릇이 있다) 장날 할머니들 모습속에는 우리네 어머니의 그림자가,세상살이의 고단함이,그리고 대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따뜻하고 훈훈한 정이 베어 나온다. 지금 쓰고 있는 효자손,귀후비개,골무,때밀이수건, 나무주걱 ,과일용 대나무 바구니,1.000원 주고 산 묵직한 흰색 머그잔 등도 모두 5일장에서 구입한 것들이다.하나같이 애착이 가는 용품 들이다.
<이어지는 글은 차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죄송합니다. '이어지는 글은 차후 올리기로' 약속 드린바가 있습니다.
허나,개인사정으로 부득이 올리지 못하게 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다 통하지 않아요,저도 시골 좋아서 전원주택 좋아해서 끼니도 잊은체 땅에 이것저것 심었지요. 남편은 잔듸만 관리하고 그래서 결국 전원주택도 못 지켰어요 파주쪽 제주도 전원주택 좋아해서 처음엔 마련했다 내가 너무 흙에서 지내므로 불평많은 남편 다 처분하고 아파트로이사갔었네요, 황선생님과 다른취미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