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그대)여 이것이 바로 제법(諸法)이 모두 공(空)한 모습이라는 것으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고, 불구부정(不垢不淨)이며, 부증불감(不增不減)이 되는 것이다.
1) 舍利子 是諸法空相에서 사리자여 이것이 바로 제법(諸法)이 공(空)한 모습이라고 한 것은
오온(五蘊)이 모두 공(空)이 되었으므로 자신의 의식인 제법(諸法), 만법(萬法)이 공(空)으로 되어 의식의 대상경계인
만법(萬法)도 모두가 청정하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부처님이 말씀하신“나는 한 중생도 구제(救濟)하지 않은 중생(衆生)이
없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법(萬法)이 공상(空相)인 것이고 공상(空相)이므로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지혜가 싹이 트기 시작하므로 문수동자, 아기부처라고 하여 모두가 존경하는 초발심(初發心,
佛心으로 전환하는 지혜)하는 이것을 정각(正覺)이라고 하는 것이다.
너무 쉽게 풀이하면 자만하기 쉬운 일이지만 지금의 시절은 너무 혼탁하여 풀지 않으면 모르게
되어 파괴하려고 외도들이 설쳐대니 할 수 없이 하는 일이지만 공(空)을 너무 깊게 파고들어 무(無)나, 석공(釋空)으로 알지는
않아야 한다.
대전께서 시제법공상을 다음과 같이 설했다.
若能徹底無依, 直下承當, 亦無人, 亦無佛.
만약에 능히 철저하게 무의도인(無依道人)이 되면 곧바로 승당(承當)하게 되니 역시 인아(人我)상(相)이 없는 것이고, 역시 대상으로 아는 부처는 없게 되는 것이다.
제바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했다.
舍利子, 是諸法相空*. * 相空經作空相
此則疊前所說, 印一切法, 同空性相.71)
사리자여 이것이 제법(諸法)의 모습이 공(空)한 것이다.
이것은 곧 앞에서 설한 것과 중첩되는 것으로 일체법(一切法)이 공성(空性)인 모습과 똑같다고 인가(印可)하는 것이다.
2) 不生不滅은 오온(五蘊)이 공(空)이라는 관점에서 만법(萬法)을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청정하게 보이고 번뇌망념이 하나도 생기는 것이 없게 되므로 불생(不生)이라고 하는 것이고, 불멸(不滅)이라고 하는
것은 청정한 만법(萬法)에서 이제부터는 번뇌망념의 만법(萬法)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되므로 불퇴전의 경지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불멸(不滅)이라고 하는 것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왜 성자(聖者)의 지위(地位)나 경지라고 하느냐 하는 것은 이것 때문인 것이다.
만약에 불생(不生)이기 때문에 불멸(不滅)이라고 하는 것은 불생(不生)이 아니면 불멸(不滅)도 아니라는 말이 되어 불생(不生)에 얽매일 수 있는 것이다.
생멸(生滅), 생사(生死)는 윤회하는 모습으로 번뇌망념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고 무생멸은 번뇌망념의 생멸(生滅)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불생불멸(不生不滅)은 번뇌망념의 생멸(生滅)을 초월한 공(空)의 경지에서 살아가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전께서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을 다음과 같이 설했다.
四大五蘊, 從它虗生虗沒, 於自己法身, 總無交涉. 和光塵不染, 三界獨為尊. 此長劫虗空, 不壞之身. 會麼. 竹影掃堦塵不動, 月輪穿海水無痕.72)
사대(四大)와 오온(五蘊)도 망념에 의하여 허망(虛妄)하게 생기고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으로 자기의 법신(法身)과는 모두가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
진여의 지혜와 화합하면 번뇌에 오염되지 않으므로 삼계(三界)에서 독자적으로 생활하므로 존귀한 것이다.
이것은 장겁(長劫)동안에도 허공(虛空)과 같으므로 파괴되지 않는 지혜의 법신(法身)인 것이다. 알겠는가?
대나무 그림자로 섬돌의 먼지를 청소해도 먼지는 부동(不動)이고, * (법신은 不動, 번뇌망념의 근본은 없는 것)
둥근 달이 물을 투과해서 비춰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네.
제바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했다.
不生不滅, 即於法性中, 本自不生. 今即無滅, 無終無始. 故言不生不滅.73)
불생불멸(不生不滅)은 즉 법성(法性) 중에서 본래 제법(諸法)에 대한 망념(妄念)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지금 바로 망념이 사라지는 것도 없는 것이므로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법(諸法)은 생기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는 것이다.
3) 不垢不淨은 오온이 공(空)이므로 만법(萬法)이 번뇌망념으로 오염되지 않게 되는 것을
불구(不垢)라고 하는 것이고, 만법(萬法)은 처음부터 청정했기 때문에 다시 청정하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부정(不淨)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전께서는 불구부정을 다음과 같이 설했다.
眾生法身, 清淨無瑕, 無染無污, 壞不得, 燒不得, 如蓮華不著水, 心清淨.74)
중생들의 법신(法身)도 청정(淸淨)하여서 흠(瑕)이 없는 것이고, 오염되지 않은 것이고,
더럽지도 않고, 파괴할 수도 없는 것이고, 태워서 없앨 수도 없는 것이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 처럼 마음(佛心)은
청정(淸淨)한 것이다.
제바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했다.
不垢不淨.
一切法生者是垢, 滅者是淨. 若我人見者, 即有淨, 有不淨. 解脫之人, 無淨, 無不淨. 故言不垢不淨也.75)
불구부정(不垢不淨)에서 일체법(一切法)이 생기는 것을 더러움(垢, 때, 망념)이라고 하고, 사라진다(滅)고 하는 것을 청정(淸淨)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에 인아견(人我見)을 가진 사람은 곧 청정(淸淨)과 부정(不淨)의 견해가 있게 되는 것이다. 해탈한 사람은 청정(淸淨)도 없고 부정(不淨)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러움도 없고 청정함도 없다고 하는 것(不垢不淨)이다.
4) 不增不減은 오온(五蘊)이 공(空)이므로 만법(萬法)은 모두가 청정(淸淨)하게 되어 어느 누구에게나 평등(平等)하여 조금의 차별도 없게 되므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한 것이다.
부증불감(不增不減)이므로 늘지도 줄어들지도 않으니 누구든지 부처이고 평등한 자유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새로운 불국토가 건설되는 것이다.
대전께서는 부증불감(不增不減)을 다음과 같이 설했다.
虗空之體, 在聖而不增, 在凡而不減, 如如不動, 無欠無餘.76)
허공(虛空)의 본체(本體)는 성자(聖者)에게 있어서도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범부에게 있어서도 감소하는 것이 아니며, 어디에서나 여여(如如)하여 부동(不動)한 것이니 모자라거나 넘치는 것이 없다.
제바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했다.
不增不減,
他方入此無礙, 則不增. 廣濟有情不虧, 名不滅. 故言不增不減.77)
부증불감은 타방(他方)에서 이곳(피안)에 들어오는 것도 장애가 없는 것이므로 즉 늘어나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널리 유정(有情)들을 구제(救濟)하여도 줄어드는 것이 아니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不滅)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혜충께서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을 다음과 같이 설했다.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忠云, 諸法是心, 心無體段, 有何生滅, 垢淨增減.78)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을 혜충국사(?-775)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법(諸法)이 바로
불심(佛心)의 지혜로 생활하는 것이니, 이 마음(佛心)에는 본체라는 조각도 없는데 어찌 생멸(生滅)이 있겠으며 더럽고 청정하고
증감(增減)이 있겠는가?
부용선사도해(1043-1118)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했다.
楷云, 舍利子, 乃至不增不減者, 此再喚舍利子, 明本圓自性同大虗, 無所從來, 生箇甚麼. 亦無所去, 滅箇甚麼. 淨亦不主垢, 從何來垢. 本無依淨, 從何立增著. 即頭上安頭. 滅著即斬頭覓活, 所謂萬法不修, 元具足也.79)
부용선사도해(1043-1118)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리자 부터 부증불감까지 에서 이와 같이
다시 사리자를 부른 것은 근본적으로 원명한 자성(自性)이 대(大)허공과 같다는 것을 밝힌 것이어서 어디에서 온 것도 없는데 생기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라고 한 것이다. 역시 가는 것이 없는데 사라지는 무엇이 있겠는가?
청정(淸淨) 역시 더러움의 주(主)가 아닌데 무엇을 따라 더러움이 올 수 있겠는가? 근본적으로는 청정(淸淨)의 의지처가 없는 것인데 무엇을 따라 증착(增著)이 있겠는가? 즉 머리 위에 머리를 얹는 것이 된다.
멸착(滅著)도 즉 머리를 없애고 머리를 찾으면서 소생하게 되는 것이므로 소위 만법(萬法)은 수증(修證)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구족 되어 있는 것이 된다.
자수선사회심(1077-1132, 혜림, 혜심)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했다.
深云, 不生不滅者, 諸法從緣生, 真空不生. 諸法從緣滅, 真空不滅. 佛云, 一切法不生,
一切法不滅, 若能如是解, 是名真見性也. 凡夫迷此, 空寂之體內, 為筋骸所桎, 外為山河所眩. 故見有生滅也. 不垢不淨者, 生滅已乃
不真垢淨 安可得耶. 不增不減者, 譬如有人, 於虗空中, 畫作種種色相, 反作種種音聲, 然彼虗空 終無受入, 變動之體. 未畫之時,
虗空體, 未嘗滅, 已畫之後, 虗空之體, 未曾增. 故名不增不減也.80)
자수선사회심(1077-1132, 혜림, 혜심)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생불멸(不生不滅)이란
제법(諸法)은 인연(因緣)에 따라 생기는 것이지만 진공(眞空)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제법(諸法)은 인연(因緣)을 따라
소멸(消滅)되지만 진공(眞空)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체법(一切法)은 불생(不生)이고 일체법(一切法)은 불멸(不滅)이라고 하셨다. 만약에 능히 이와 같이 여시(如是)하게 깨닫는 것을 이름 하여 진실로 견성(見性)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범부(凡夫)들은 이것에 대하여 미혹하여 공적(空寂)의 본체 내부에 근골(筋骸, 筋骨)이 가로 막고 있다고 하고, 외부에는 산하대지에 현혹(眩惑)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생멸(生滅)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불구부정(不垢不淨)은 생멸(生滅)이 이미 이와 같이 진실한 것이 아니면 구정(垢淨)이 어찌 있겠는가?
부증불감(不增不減)은 비유하면 어느 사람이 허공(虛空)중에다가 갖가지 색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온갖 음성으로 허공에다가 반작용하게 소리를 쳐도 그 허공(虛空)은 끝내 변동(變動)하는 그것의 본체(本體)를 받아들이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때에도 허공(虛空)의 본체(本體)는 일찍이 멸(滅)한 적이 없었고, 이미 그림을 그린 후에도 허공의 본체는 일찍이 늘어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증불감이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