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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사랑하라 / 벧전1:18-22 / 이동원 목사
2002년 희망찬 새해의 첫 주일을 맞이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사랑하는 모든 성들과 가정과 일터 위에 주님의 풍성하신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작년 첫 주일예배를 드릴 때가 엊그제 같지만 벌써 새해를 맞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인생을 말하기를 한 경점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시90편에 보면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니라”고 하였고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라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일식간에 다 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세월은 빨리 지나갑니다.
우리가 94년의 출발선에 있다고 해서 얼마든지 많은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물어물 하다가는 그저 일년이 또 지나가고 맙니다. 시간을 낭비해선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금년에도 우리에게 시간과 생명과 물질과 건강, 그리고 귀한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맡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금년 한 해야말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맡겨 주신 것을 가지고 충성과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복된 한 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년 우리 교회의 표어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사랑으로 일하는 교회’로 다시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실천 목표로서 첫째는 희생이며 둘째는 관용이며 셋째는 존경입니다. 사랑이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희생과 관용과 존경이 없는 사랑은 거짓된 사랑입니다. 죽은 사랑입니다. 이제 우리는 희생과 관용과 존경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사랑으로 하나가 되지 아니하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일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믿음이 크고 소망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극심한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천국의 기쁨과 소망을 잃지 아니하고 주의 선한 사업과 선교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권면하는 말씀의 핵심이 바로 “마음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1. 사랑은 모든 환난과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가장 아름답고, 고상하며, 가장 복된 것이며, 가장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이 우리 가운데 어떻게 나타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피차 사랑할 때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역사 하는 것입니다.
<요일4:12>절에 보면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따사로운 태양 아래서 모든 만물이 소생하고, 힘있게 자라납니다. 그래서 겨울에 모진 강풍에도 견딜 수 있습니다. 태양은 사랑과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역사 할 때에 우리의 신앙은 힘있게 성장하며 강풍과 같은 모든 유혹과 모든 환난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왜 어머니는 강합니까? 바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는 한 절대 약하여 지지 않는 것입니다. 신자라고 하면서 왜 약해집니까? 왜 넘어지고 자빠집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형제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에 언제나 강하고 담대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요일4:18>절을 보면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서로 형제를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역사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는 곳이 진정한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에 있던 성도들은 위로 받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둘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 곁에 있는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서로 돕고 사랑하면서 환난과 핍박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가 어둡습니다. 인심은 날로 각박해져 가고 있고 살인, 강도 끔찍한 일들이 이곳, 저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십시오. 어디에서 위로를 찾고, 누구한테서 위로를 받을 수 가 있습니까?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오직 두 군데,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곁에는 형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더욱 더 인간들이 범죄하므로 인하여 사랑까지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바랐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할 터인데 오히려 이기적인 사랑으로 사욕을 채우며, 그래서 싸우고 다투고 나누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이 타락하면 질서가 파괴됩니다. 위계질서가 무너집니다. 지도자에게 반항하며 대듭니다. 자식이 부모를, 학생이 선생님을, 지도를 받아야 할 사람이 지도하는 사람을 무시하고, 대들고,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잘못되면 불량배들이 많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바로 서지 못하면 불량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정 생활의 법칙이요, 사회생활의 법칙이요, 교회 생활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으면 가정이 잘되고, 사회가 평안하며, 교회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교회 부흥의 암적 요소는 사랑을 파괴하는 행위요 바로 위계질서를 거역하는 행위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불안하며, 교회가 쇠퇴하게 되는 것은 바로 사랑을 파괴하는 사탄의 역사 때문입니다. 사탄은 항상 이것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 한때일수록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힘써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세력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다시 말해서 우리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희생입니다. 금년 사랑의 실천 목표 가운데 첫째가 희생입니다. 희생이 없이는 참된 예배가 있을 수 없고, 희생이 없이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1). 자신이 누리고 있는 온갖 좋은 조건들을 포기하신 사랑입니다.
참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즐거움으로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하늘의 보좌를 포기하시고 우리를 죄의 멸망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한없이 낮아진 사랑입니다. 참 사랑은 자신이 낮아지고 자신의 가진 것을 즐거움으로 포기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2). 생명까지 주신 사랑입니다.
< 요 15:13>에 보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나니” 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돈을 주는 것도 사랑일 수 있습니다. 시간을 내주는 것도 사랑일 수 있습니다.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생명을 우리 위해 물과 피와 함께 다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이에 더 큰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것은 우리가 잘나고 가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엇을 내다보시고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로 허물로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소망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 롬 5:8>절에 “우리가 아직 조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을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무조건 우리를 사랑 하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들은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도려 마땅하며 우리의 전 생애를 주님 위해 드려도 부족한 것입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마음이 뜨거워진 성도라면 우리도 형제를 무조건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날이면 날마다, 기도 시간마다 암송하면서도, 성가대 제대로 못하고, 교사도 제대로 못하고, 집사도 제대로 못하고, 십일조도 제대로 못하고 주일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에 뜨거운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나누어야 할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자기를 포기하신 사랑이요, 한없이 낮추신 사랑이요, 자기 생명을 버리시되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3.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벧전1:22>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1). 거짓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롬12:9절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엔 거짓이 없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22절 중반에서 “거짓없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참 사랑은 거짓이 없습니다. 속이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언제나 사랑은 정직하고 진실합니다.
(2). 서로 믿고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은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면 또한 믿을 수 가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3:7절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서로 불신하는 가운데는 절대로 사랑이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고 사랑한다는 말은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서로 믿고 존경하고 신뢰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라고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3).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22절 끝 부분을 보면 “마음으로”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사랑이 없으면 진짜가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마음으로 미워하면서 입술로는 사랑을 말하는데 있습니다. 마음은 닫아 놓은 채 입술만 놀리는데 문제가 큰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은 몸과 마음이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권면합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라” 그 뜻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4).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뜨겁게”라는 원문의 뜻은 긴장감을 가지고 열심히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전하거나,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함에 있어서 마음에 뜨거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뜨거움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사람다운 삶을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언제나 마음에 뜨거움이 생깁니다.
뜨거움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뜨거움이 없이 사는 인생이라면 정말로 가련하고 불쌍합니다. 마지못해서 사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피곤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덥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뜨거움이 없는 사람은 구역질나는 인생밖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인생을 무엇에다가 쓸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토하여 내처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쓸모 없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이 불같이 뜨거워질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뜨거움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성경 말씀을 읽고 잘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고, 따라서 우리의 마음에 뜨거움과 감사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눅24:32절에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 ” 그랬습니다.
이 말씀은 낙심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의 대화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힘없이 잡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보고 낙심과 두려움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도망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찾아와 함께 가시며 성경을 풀어 들려주실 때에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게 된 것입니다. 사명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담대하게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뜨거워지며 사명감에 불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에 우리의 마음에 성령의 불이 뜨겁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39:3절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그 가운데 역사 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심령은 뜨거움과 감사와 감격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4. 사랑의 결과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서 예비해 주신 만가지 축복은 성도가 뜨겁게 피차 사랑할 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잘 한다 할지라도 사랑에 결격 사항이 있다면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복을 누리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은 사랑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복입니다.
그러면 어떤 복이 임합니까?
(1). 평강의 축복이 임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자 가운데 은혜와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그 결과 영육이 강건하여 집니다.
딤후2:1절에 보면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삼서2절에 있는 말씀같이‘영혼이 잘되니까 범사가 잘되고 평강의 축복이 임하는’것입니다.
(2). 막혔던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그 누군가를 증오하고 시기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 기도가 막힙니다. 기도뿐 아닙니다. 예배도 성립이 안됩니다. 그러나 피차 사랑하면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시온의 대로가 열립니다. 예배가 은혜스럽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이 꿀같이 달게 됩니다. 그러니까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3). 아름다운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구성원이 좋은 가정이라 할지라도 사랑을 빼 버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전13:1절에 보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가정도 교회도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소란할 뿐입니다. 사랑은 사람의 영혼과 인격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교회가 훈훈해지고 가정과 직장도 훈훈해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뜨겁게 피차 사랑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위해 준비해 놓으신 만가지 은혜와 축복을 다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내 자신이 잘되고 가정이 잘되고 교회가 흥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