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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를 누비다.
-강원도 여행 제2탄-강원도 평창, 인제, 고성(高城)군을 중심으로
1. 여행 일정 : 2012년 8/17일(금) -8/19일(일), 2박 3일
2. 여행지 : 경북 칠곡휴게소-강원도 원주(박경리문학공원)-대관령(양떼목장, 삼양목장)-인제군(방동약수, 방태산 자연휴양림)-고성군(건봉사, 통일전망대, 화진포, 왕곡마을, 송지호, 청학정, 청간정)-태백시 황지못(낙동강 발원지)-칠곡휴게소
● 프롤로그
이번(2012년 8월)여행에서는 그 동안 쌓였던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를 모두 털어버릴 수 있는 곳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여행 코스 짜기에 골몰했었다. 그러기를 한 달여, 결국 강원도 고성군이 나에게 반갑게 손짓을 했다.
여행은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또 아집(我執)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런 보람을 느끼며 여행을 하기에 여행은 항상 즐겁다. 지난 2011년에는 강원도 철원군과 화천군을 여행했다. 그리고 올해, 2012년 여름에는 강원도 고성군을 중심으로 여행했다. 이들 지역은 우리나라의 최북단으로 남북한이 접전해 있는 곳이며 우리 국토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게 해 주는 곳이다. 또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볼 때 항상 우리를 유혹하는 미지의 세계가 풍성하게 살아 있는 곳이다.
가자, 강원도로!
강원도 여행은 짧은 시간에 가슴 가득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는 곳이라는 강원도 고성군의 관광 가이드 함지수 씨의 안내를 머릿속에 은근히 떠올리며 달려가는 거다.
● 박경리 선생님의 체온은 뜨거웠다.
2012년 8월 17일 금요일, 오늘은 강원도 여행 첫날이다.
06:00 부산에서 출발하여 06:35에 마산톨게이트에서 일행과 만나 구마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대구를 지나니 강원도 원주로 가는 55번 중앙고속도로가 나타났다. 07:30 중앙고속도로에 진입 후 곧 칠곡 톨게이트에 내려 2대의 차에 분승했다. 내 차에는 경주에서 온 박원섭 형님 부부께서 타시고 이하원 형님 차에는 내 차를 타고 온 김종모 형님 부부가 탔다. 그리고 다시 중앙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대현휴게소에 들어가 아침 식사도 하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라는 환담도 했다. 그러고는 08:30에 다시 중앙고속도로 진입하여 2시간 이상 달렸다. 남원주 안내판에 따라 남원주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첫 목적지인 박경리문학공원을 찾았다. 참으로 내비게이션은 똑똑하였다. 초행길인데도 우리 일행을 정확하게 박경리문학공원으로 인도하였으니 말이다.
통영에서 태어나 하동을 배경으로 하는 대하소설을 집필했지만, 그녀의 삶의 뿌리는 원주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동에 토지문학관이 있고, 최근에 통영에 박경리문학관이 개관했지만 원주의 그녀가 살았던 이 공간이 박경리 선생님의 체온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것 같았다. 그만큼 이곳 문학관과 선생님의 집터였던 문학공원에는 작가로서, 인간으로서의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게 배어있었다.
기념관은 바로 옆으로 문학공원 산책로와 이어져 있었는데 바로 이 터가 생전에 박경리 선생님이 살던 집이어서 산책로를 따라 박경리 선생님의 글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글들이 어찌나 가슴에 파고들면서 사무치던지…….
이 사진은 어느 사진 작가가 시골 마을을 가다가 고추를 주워 담는 할머니 모습을 보고 그 모습이 넘 좋아 찰깍했는데 찍을 때는 사진의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고 찍었지만 그 주인공이 박경리 선생님인 줄 알고는 그 사진작가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박경리 선생님에게 기증한 사진이라고 했다.
박경리 선생님의 문학공원에서 박경리 선생님에 흠뻑 빠져 있던 중,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문화관이 있다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호기심이 일었다. 토지문화관은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에 있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박경리문학공원에서 연세대학교 원주 캠퍼스 쪽으로 달렸다. 1-20분간 달렸을까 드디어 목적지!
박경리 선생님이 17년 동안 살았던 원주시 단구동 자택이 택지지구가 되면서 받은 보상금 7억 5,000만 원과 토지 공사의 기부금 40억 원이 문화관 설립의 재원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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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문화관 전경
토지문화관은 대회의실, 휴게실, 회랑, 도서실, 두 개의 세미나실, 식당 및 온돌방 등 숙박 시설로 구성돼 있었다. 사전 예약을 통해 시설을 빌릴 수 있다. 예술인과 학자들은 개인 숙박이 가능하다. 문화관에서 선정한 문인과 예술인, 학자들은 집필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문화관의 주요 활동은 학술 및 문화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다. 국내외 학자들과 예술가들을 초청해 세미나, 심포지엄, 강연회, 학술회의 등을 열고 한국 사회 현안과 관련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 또 신진 학자와 예술가들을 위해 연구 및 창작 활동 공간을 제공한다.
토지문화관 바로 옆에 있는 사택은 소설가 박경리가 1998년부터 2008년 5월 타계할 때까지 거주하였던 2층집(오른쪽)- 작가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도 함께 볼 수 있었다.
두 곳을 관광하고 나니 벌써 점심때가 되었다. 원주시의 변두리에 위치한 토지문화관이었지만 주변에 대학(연세대 원주 캠퍼스 등)가가 있어 점심 먹을 곳은 많았다. 그 중 박경리 선생님의 문화관을 찾아가는 도중에 보아 두었던 뷔페식당을 찾았다. 식당 이름도 재미있었다. 문학가의 도시답게 ‘안방뷔페식당’이었고 1인당 7,000원, 돈에 비해 음식이 꽤 괜찮았다. 시장하던 참이라 맛있게 먹고 다음 코스로 향했다.
● 대관령 양떼목장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내 고향 경남 고성(固城)에도 이만한 초지를 조성할 수 있는데, 이곳보다 따뜻한 남쪽 지방이기에 양들을 키우기에 더 좋은 조건일 텐데, 그러면 나도 이러한 목장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문득 양떼목장 주인이 되어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나는 양들을 바라볼 수 있는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으며 평화로이 지내고 있는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16:30경 대관령 양떼 목장을 출발하여 바람마을 의야지(삼양목장)를 찾았다. 찾아가는 도중에 차에 기름을 넣고, 길을 잘 몰라 헤매면서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가니 드디어 우리가 찾고 있는 삼양목장 입구가 나타났다.
삼양 목장 안내도
그러나 오후 5시 이전에 도착한 관광객만 입장을 허용하고 있어 우리가 애써 달려갔지만 허사(虛事)였다. 관리인을 붙들고 통사정(通事情)을 해도 소용없었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본래 예정 시각보다 자꾸만 늦어졌다. 아마 박경리 선생님에게 너무 많이 도취되었던 결과인 것 같다. 조금 서둘러야겠다. 늦어도 ‘숲속의 빈터 식당’까지는 20시까지는 도착해야겠다. ‘숲속의 빈터 식당’은 강원도 인제군 방동면에 있다. 목적지까지는 거의 6-70㎞가 될 것이다. 서둘렀다.
● 숲속의 빈터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아침뜨락 황토마을에서 꿈나라로 가다
17:30 황계톨게이트에서 영동고속도로 진입했다. 그런데 여름날씨 변덕은 아무도 못 말린다는 말이 실감났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진다. 그런 비속을 몇 ㎞나 달렸을까. 또 갑자기 햇빛이 쏟아진다. 쌍무지개가 떴다. 모두들 탄성이다. 너무나 크고 아름다웠다.
숲속의 빈터 식당의 전경과 손님들
이 ‘숲속의 빈터 식당’은 내 여동생 부부가 경영하는 식당으로 다행히 봄부터 가을까지는 손님으로 북적거린다고 했다. 과연 그랬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밤 8시에 가까운 데도 손님들이 이곳저곳에서 삼삼오오로 모여 즐겁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여동생 내외는 우리를 반기며 늦은 시간에 출출할 거라면 맛있는 음식을 가득 챙겨 주었다. 일행 모두는 술과 함께 그 동안의 여독을 풀면서 즐겁게 배불리 먹었다.
펜션 바로 앞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소나무 숲도 있으며 정원에 텃밭까지 잘 꾸며 놓고 펜션 주변으로는 조그만 냇가도 흘러 펜션 앞 돌탁에서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식사나 차도 즐길 수 있었다. 황토 찜질방 등 부대시설도 나름으로 잘 갖춰진 펜션이었다. 우리는 8인용 방에 4명이 편안하게 하루 저녁을 보냈다. 그리고 아침(2012. 8. 18, 토, 둘째 날)에 일어나자마자(06:00 기상) 그 유명한 ‘방동약수’를 찾았다.
← 방동약수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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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10여분 차를 타고 방태산 자연휴양림 쪽으로 갔다. 안내판이 우리를 반긴다. 직진으로 가면 방태산 자연휴양림, 좌측으로 가면 방동약수라 안내하고 있었다. 들어가는 길은 좁았지만 약수터에서 100m정도 못 미쳐 10여 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과 아담하고 깨끗한 화장실이 우리를 맞았다. 약수터 주변은 깨끗했다.
약수가 나오는 곳은 입구에서 깊숙한 곳이었다. 주변은 온통 붉은 색으로 철이 발갛게 녹슬어 있었다. 약수 한 바가지를 떠서 먹으니 마치 사이다를 먹는 기분이다. 이 물이 위장병에 좋단다. 그래서 배가 불룩하도록 마시고 빈병에 담기도 했다.
← 방태산 이단 폭포
이제 방태산 자연휴양림으로 가자. 방동약수에서 내려와 펜션이 즐비한 곳으로 찾아가니 자연휴양림 관리 사무소가 나오고 거기서 산 속으로 들어가니 펜션과 오토 캠핑할 수 있는 곳, 여기저기에 텐트들도 보이고 개울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어느 가족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아마 방태산 자연 휴양림의 아름다운 모습과 어울려 만들어낸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기에 그렇게 느껴졌으리라. 나도 한가한 시간을 택하여 이곳에서 하룻밤 자면서 물소리 바람소리에 취하고 우리를 조용히 포용하고 있는 숲과 대화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산속으로 더 들어가니 방태산 등산안내도가 있었다.
방태산 자연 휴양림 안내도 →
● 내린천의 래프팅과 번지 점프
언젠가 방태산 자연휴양림을 다시 찾아 숙박도 하고 등산도 할 날이 있으리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숙소로 되돌아 왔다. 숙소인 ‘아침뜨락 황토마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시켜 먹고 래프팅으로 그 이름도 유명한 내린천을 따라 차를 몰았다. 그 때가 2012. 08. 18. 둘째 날 08:30 경이었다.
← 인제군 방동면 내린천에서의 래프팅
다시 차를 타고 인제읍 가까이 가니 번지점프대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인제 합강정유원지에 있는 번지점프대였다. 인제군에 와서 래프팅과 번지점프의 스릴에 마음을 졸이며 그 기분을 이렇게 담아 보았다.
거친 물살을 머금은
인제 내린천.
계곡마다 젊은 함성이 가득합니다.
고무보트에 몸을 맡긴 채
빠른 물살을 가르며 모험이 시작됩니다.
사정없이 내리치는 급류 따라
엉덩이가 들썩이고,
흩어지는 물줄기로 온몸은 흠뻑 젖습니다.
"내려오면서 돌에도 몇 번 걸렸는데요,
그러면서 물살을 헤쳐 나오는 것이
정말 재밌다"
구불구불 강가를 따라 내려가면
노송이 우거진 피아시계곡과 기암절벽 등
내린천의 비경이 속살을 드러냅니다.
내린천과 인북천이 만나는 합강 인근에는
국내 최고 높이의 63미터 번지점프대가
배짱 두둑한 관광객을 기다립니다.
"밑에서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너무
무섭고 미칠 것 같습니다"
22층 높이에서 뛰어내려
용수철 튀듯 다시 오르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전율이 느껴집니다.
전쟁영화에서나 보던 수륙양용차도
바로 옆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장갑차처럼 길도 없는 수풀을
거침없이 달리고 보트처럼 짙푸른 소양강도
단숨에 건넙니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인제 내린천이
하늘과 땅, 강에서 즐기는 모험레포츠로
올 여름 무한 스릴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합강정유원지의 번지점프대
●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 관광 안내소에서 온 편지
안녕하세요?
화진포 관광 안내소 함지수입니다.
고성군은 들어오는 입구부터 나가는 길목까지 모든 곳이 관광지입니다.
우리 고성군에서 가족분들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 가시기 빕니다.
◈. 옛건물
1. 금강산 건봉사
2. 고성 왕곡마을
3. 천학정
4. 청간정
◈. 한국 전쟁 및 별장
1. 통일전망대
2. DMZ 박물관
3. 화진포 안보 전시관-
강원도 고성군의 관광 안내도
● 진부령 미술관에서 이중섭 화백을 찾다.
← 진부령 미술관
이 건물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인 진부령미술관이다. 세련된 외모의 이 미술관은 지난 1999년 ‘진부령문화스튜디오’로 개관했다가 2009년 11월, 경암건축의 설계로 ‘진부령미술관’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영화제작가였던 전석진 관장의 개인 소유이고 무료 관람이었다. 이 건물은 본래 고성읍 간성읍 흘리 출장소였는데 1997년 그 출장소가 문을 닫자 이곳에 별장을 갖고 있던 전석진 씨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렇게 미술관으로 개관하여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건물은 3층으로 제3전시실까지 있었다. 진부령 정상에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아 현재 활약하는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중섭 작품은 상설 전시관을 따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고, 박수근 같은 작고한 유명인들의 작품도 많았다. 미적 감수성을 향상시키는 좋은 기회가 되어 진부령을 굽이굽이 돌아 내려오는 길의 곳곳에 작품들이 환영을 이루어 눈앞을 가렸다.
● 금강산 자락에 자리 잡은 옛 가락의 흔적 - 건봉사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의 의병 승별 봉기처이기도 했던 호국사적지로서 ‘의승병기념관’이 있었다. 융성기에는 3,183칸의 대가람이었다고 하나 6.25 전쟁 때 거의 소실되었는데, 근래에 들어 신도들이 힘을 모아 건봉사지와 사찰의 복원사업이 한창이었다. 특히 건봉사에는 신라 자장율사가 당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와 무지개 모양의 능파교(보물 제 1336호), 바라밀 문양의 돌기둥, 불이문(강원도 문화재자료 제 35호)이 옛 건봉사 터(강원도 기념물 제 51호)에 남아 천년이 넘는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는 누구나 볼 수 있게 전시해 두었는데, 전시실의 경건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배에서 쪼르르 소리가 나서 어디서 점심 요기를 할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건봉사에서 점심 공양을 하고 있었다. 일행 중에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가 있어 절밥을 먹겠나 걱정했지만 모두들 좋다고 했다. 음식에는 종교의 구별이 없는가 보다. 차례를 지키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던 별미가 나온다. 누군가가 큰 재(齋)를 올린 모양이다. 우리 일행뿐 만 아니라 다른 관광객들도 점심 공야에 참여하였다. 과일까지 곁들인 만찬에 감사드리며 이번에는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 망향과 분단의 설움을 달래는 살아 있는 안보교육의 장 - 통일전망대
거진읍에서 북쪽으로 얼마간 가니 어느덧 차는 통일전망대에 가기 위해 안보교육을 받는 장소인 통일안보공원에 도착했다. 통일전망대 출입을 위해서는 일행 중 한 명이 주민등록증을 지참하고 사무실에 가서 출입신고서를 작성하면, 일행 모두가 통일안보공원교육관(600석)에서 슬라이드를 관람하는 등 안보 교육을 받은 후 타고 온 차량으로 통일전망대 이동한다. 안보교육을 받는 입장료는 어른 한 사람 당 2,000원이었고 주차료도 내야 했다. 그래도 통일안보공원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 국민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는 연간 1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드는 고성군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절차에 따라 신고서에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입장료를 지급하고 나오니 모두 강당에 집합하란다. 그 강당에서 10여 분간 안보교육을 받고 나니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밀물처럼 빠져 나가 통일전망대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차로 약 10분간 달려가니 통일전망대 주차장이 맞아 주었다.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통일전망대(T.033-682-0088), DMZ와 남방한계선이 만나는 해발 70m고지의 통일전망대에 서니, 금강산의 구선봉과 해금강이 지척에 보이고, 신선대, 옥녀봉, 채하봉, 일출봉, 집선봉 등 천하절경의 금강산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엔, 북녘에 두고 온 산하와 가족을 그리는 실향민과 통일을 염원하는 이들을 위한 성모상, 미륵불상, 전진철탑 등 종교적인 부대시설과 장갑차, 탱크, 비행기 등 어린이 안보교육용 전시물도 있었다. 발아래에는 2004년 12월 개통된 동해선 남북연결 도로도 보였다. 저 도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한 관광객들이 금강산을 다녀오던 길인데, 지금은 그 길이 막혔으니 언제쯤 길이 열릴까? 빨리 열리고 마음대로 오가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과연 전망대이고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전망대이지만 그 이름을 통일기원대라 붙이면 어떨까. 그래야만 하루 바삐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는지. 저 멀리 휴전선 철책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초소는 남북한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구나.
● DMZ박물관에서 분단의 비극의 반추로 강렬한 통일을 염원하다
← DMZ박물관 전경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2004년 6월 남북장성급회담 합의에 따라 철거된 대북심리전 확성기 및 문자전광판이었다. 예전에는 이러한 것으로 대북심리전을 치열하게 하고 북한도 대남심리전을 했는데, 이처럼 서로를 위해 무엇 하나라도 철거된 것만으로도 남북통일을 위해 한 발자국 다가선 것이 아닐까. 다행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차에서 내렸을 때, 주차장 등 건물의 일부 기반이 내려앉은 것이 눈에 띄었다. 부실 공사였다. 부실 공사의 현장을 보고 열 받는 사람이 나뿐이겠는가? 아닐 것이다. 다른 관광객들도 나처럼 열 받지 않도록 빨리 보수되기를 바라며 DMZ박물관에 들어섰다.
DMZ박물관은 비극적인 한국전쟁의 산물인 DMZ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박물관으로 암울했던 분단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리고 통일의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2009년 8월 14일에 개관했다. 사실 아직 미완의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북쪽지역을 포함한 DMZ의 모든 것들이 채워지지 않아서라고 했다.
DMZ(비무장지대)란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된 지역을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DMZ는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 정해졌는데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 북으로 약2km씩, 서해안 임진강에서부터 동해안 고성군 명호리에 이르는 248km의 지역이 현재 비무장지대로 설정되어 있다.
2000원에 입장을 할 수 있었다. DMZ박물관 관람료는 통일전망대 입장료와는 별도로 지불한 셈이다. 매표 마감은 하절기 17:00에, 동절기 16:30이었다.
많은 전시 코너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몇 코너를 소개하고 싶다. 먼저 다양하게 글을 적어놓고 손자국을 남겨놓은 코너가 있었는데, 대부분 어린아이들의 글과 손자국이었고 이는 우리 젊은 어린이 세대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DMZ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은 상설전시실에는 총 4가지 테마로 이루어진 전시실로 축복받지 못한 탄생. DMZ에 대한 설명, 냉전의 유산인 분단과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상황, 전쟁의 흔적, DMZ의 생태계. 남북교류와 협력사업 관련 자료들로 가득했다.
DMZ박물관은 우리나라가 정말 비극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주었고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의 KAL기 폭파사건,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의 자료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더욱 북돋웠다. 아울러 DMZ박물관의 다양한 자료는 어린이들의 통일교육 장소로 정말 제격이었다.
그런데 귀순한 북한군 병사가 우리 군의 생활관 문을 두드릴 때까지 그 누구도 몰랐다고 하니 앞서 본 통일전망대나 DMZ박물관을 방문 한 사람이라면 상상이 안 되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우리 군의 기강이 너무 해이해졌다. 이래가지고 어찌 후방의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겠는가. 좀 달라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 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 할 수 없다.”라고 말한 맥아더 장군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야외 전시장으로 나오니, 아름다운 바람개비가 우리를 맞는다. 이곳이 DMZ의 지형을 정원으로 만든 생태저류지인데, 바람개비에 어린아이들의 통일의 염원을 담아 통일공원으로도 조성해 두었다. 남북통일이라고 적힌 바람개비가 우리와 힘차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 DMZ박물관 정보
위치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로 369(통일전망대의 900M거리)
규모 : 부지 150,945㎡, 건물 연면적 10.759㎡
주요 시설 : 전시관 및 다목적 센터 야외 전시 시설 등
주차장 : 대형 버스 36대, 승용차 200대 동시 주차(주차료 무료)
관람 시간 : 3~10월(09:00~18:00), 11~2월(09:00~17:00)
매표 시간 : 오전 9시부터 관람시간 종료 1시간 전까지.
휴관일 : 1월 1일 매주 월요일
*단, 여름 성수기(7.23일~8월20일), 가을 단풍철(10월1일~10월22일)은 상시(매일)개관
● 송림과 해당화가 어우러진 철새도래지 - 화진포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발해 화진포라 불린다는 이곳은,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원당리, 현내면 죽정리·초도리·산학리 일대에 걸쳐 있는 호수로 면적은 2.39㎢. 둘레가 약 16㎞나 되는 동해안 최대의 호수로, 50~100년생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겨울에는 백조(천연기념물 제201호)가 도래하고, 여름에는 해안을 따라 해당화가 피며, 맑은 호수와 기암괴석, 푸른 바다, 하얀 모래밭이 한데 어우러져 경치를 수려하다고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남았다.
수천 년 동안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서 이룩된 이 호수는 후빙기 해면 상승으로 해안이 침수됨에 따라 하곡을 중심한 낮은 곳이 만입으로 변하고 그 입구가 중평천과 월안천의 토사공급으로 이루어진 석호라 한다. 북동쪽이 바다 쪽으로 트여 있어 잉어 등 민물고기와 도미·전어와 같은 바닷물고기가 많아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 모래 빛이 하얗기로 유명하며, 모래에 모나즈 성분이 있어 개미 등의 곤충류가 서식하지 않는 넓은 백사장으로 여름철에는 해수욕을 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그래서 이곳은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었다. 1991년에는 국민관광휴양지로 지정되어 동해안의 대표적인 국민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1992~2001년에 도로 및 주차장 등을 정비하고, 각종 숙박시설·위락시설·토산품점 등 관광유인 편의시설 등을 조성했다. 2000년도에 ‘가을 동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화진포의 성, 김일성 별장
화진포 콘도
다음에 들린 이기붕 별장은 콘도 뒤쪽 소나무 숲에, 호수와 약간 떨어져 위치했다. 이기붕의 부인인 강릉출신의 박 마리아의 별장이었으나 함께 사용했기에 이기붕 별장으로 불리고 있었다. 1920년대 건축된 것으로, 외국인 선교사의 주거 공간, 북한군 간부 휴양소 등으로 사용되다 육군사령부의 휴양소로도 이용되었으며 1999년에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 이승만 별장
이승만 별장에는 침실과 거실, 집무실, 평소에 끼던 안경과 여권, 편지 등 유품을 볼 수 있었으며 그 뒤로 새로 지어진 기념관에는 이승만의 친필 휘호와 의복, 소품, 관련 도서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승만 별장을 구경하고 아래로 호숫가에 갔더니 화진포 지명과 관련된 며느리 동상이 우리를 맞아 옛 전설을 생각하게 했다. 전설에 의하면 고약한 부자 시아버지의 못된 행동을 막지 못해 살던 집과 논밭이 모두 호수로 변해 오늘날의 화진포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화진포 관광을 마치고 찾아든 곳은 화진포 호수에서 약간 떨어져 있지만 거진항의 삼호장여관(T.033-682-2534)이다. 이곳에서 여장을 풀고 여관 주인 아줌마에게 저녁 먹을 좋은 횟집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바다횟집을 추천해 주었다. 동해 바다의 회맛과 서비스가 즐거운 회식맛을 더 해 주었다.
● 19세기 전후의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이 군락을 이룬 왕곡마을을 찾다
2012년 8월 19일 07:00
숙소 주변을 한 바퀴 산보하면서 거진항이 어촌임을 새삼 느끼며 숙소로 돌아오니 숙소 맞은편의 식당에 ‘아침 식사 됩니다.’라는 간판이 있어 메뉴를 보니 ‘복국’이 있었고, 간밤에 먹은 술로 해장국을 먹고 싶던 차라, 이를 두고 ‘안성맞춤’이로구나 하고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구미가 당겼다. 1인당 1만원이나 하는 복국을 돈 가치보다 더 맛있게 먹고 나오니 벌써 시계는 08: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부랴부랴 행장을 챙겨 09:00에 거진항아 안녕! 하며 일행들 모두 송지호로 향했다.
그런데 해변을 왼쪽으로 두고 삼포해수욕장→백도→교암을 지나니, ‘왕곡마을’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그렇지 강원도 고성군의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왕곡마을’에도 가기로 했잖아, 가자. 송지호를 눈앞에 두고 먼저 왕곡마을을 찾았다.
왕곡마을은 해발 200m 내외의 봉우리 형태인 야산 다섯 개에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골' 형태의 분지였다. 마을 북쪽에 위치한 산에서 남서방향으로 마을을 관통하며 흐르는 왕곡천 좌우에 종심이 깊은 촌락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 중앙의 개울을 따라 이어져 있는 마을 안길을 중심으로 가옥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으며 가옥과 가옥 사이에 비교적 넓은 텃밭이 있어서 따로 담이 없고 텃밭을 경계로 가옥들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19세기 전후에 건립된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 군락이 원형을 유지한 체 잘 보존되어 왔기에 전통 민속 마을로서의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0년 1월 중요민속자료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다고 했다. 왕곡마을은 고려 말, 조선 초이래 양근 함씨와 강릉 최 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600년 세월을 정주해온 전통 있는 마을임을 자랑했다.
위와 같은 지형적인 특성과 풍수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지난 수백 년간 전란과 화마의 피해가 없었던 길지 중의 길지로서 한국전쟁과 근래 고성군지역에서 발생했던 대형 산불 때에도 왕곡마을은 전혀 화를 입지 않았다고 했다.
왕곡마을
마을 입구 첫집부터 끝집까지 돌아보며 우리의 전통 마을에 대한 긍지로 더욱 보존하고 가꾸기를 바라면서 송지호로 향하여 차를 몰았다.
● 청명한 물빛, 울창한 송림, 겨울 철새의 군무 - 송지호
왕곡마을에서 나오니 곧 철새관망대가 눈에 띠였다. 철새관망대는 왕곡마을에서 흘려 내린 물이 바다와 접한 곳의 호수를 이룬 곳에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철새관망대를 향해 달렸고 파란 호수, 바로 송림호가 우리를 반가이 맞는 듯 한없이 푸르렀다.
호수만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앞산을 보니 송지호 건너편 언덕 위에 있는 송호정(누)이 우리를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자연생태공원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송지호 산책로를 따라 살포시 오라고 재촉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앞서 송호정(누)으로 가지 않았고 그저 눈으로만 바라볼 뿐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모양이다. 송지호가 정든 연인이 되어 눈을 흘기며 떠남을 만류하는 듯 그 누구도 떠날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마냥 송지호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는 것, 일행들을 재촉하여 차를 몰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니, ‘천학정’이라는 이정표가 너무도 선명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 이정표의 안내에 따라 주차장에 도착하니 프로급 머큐리들이 바다에서 막 나온 모양이다. 그들이 잡아 온 구미를 돋우는 해산물이 가득하다.
해산물에 침만 삼킬 수밖에 없어, 꾹 참고 오른쪽 언덕(산)으로 올랐다. 6-70m 가량 올랐을까 동해 바다를 향해 우뚝 서 있는 정자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그 정자가 바로 청학정이었다. 비지정 문화재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정자이지만, 송림에 둘러싸인 기암절벽 위에 서 있는 청학정의 일출은 가히 천하절경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청학정에서 내려 보이는 고운 모래사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천학정 앞 기암절벽은 저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어, 천학정에 전시되어 있는 패널을 구경하며 여러 이름의 기암절벽을 직접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또 천학정이 있는 동산의 소나무들이 많기도 하고 연륜도 있어 가히 장관이라 해도 손색이 전혀 없었다.
● 관동 8경 중 수(首)일경, 설악 일출 8경, 고성 8경. 명소 중의 명소 - 청간정
● 태백의 황지못(낙동강 발원지)으로 달려가다
이번 여행은 말 그대로 여행이다. 벌써 이틀 전 아침의 출발(出發)지인 부산으로부터 800여km를 달렸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갈 길이 멀다. 7번 국도에 들어서 속초를 거쳐 양양의 낙산사 앞 대형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동해 바다의 마른 해산물을 구입하고 강릉을 지나, 13:00 삼척에서 자장면으로 점심 요기를 하고 곧 바로 7번 국도를 벗어나 태백으로 가는 38번 국도로 달렸다. 솔직히 어디가 어디인 줄 모르고 내비게이션 아가씨의 지시대로만 차를 몰았다. 1시간가량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큰 다리가 앞을 가로 막는다. 그 건너편을 바라보니 어마어마한 건물이 있었고 그 건물이 박물관이라 했고 그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어보니 대금굴, 환선동굴로 가는 길이었다. 대금굴에 잠시 들리자는 의견에 찾아들어 갔더니, 어찌 그리도 먼 지, 그리고 대금굴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은 어찌 그렇게도 많은 지, 주차 후 매표소를 찾아가서 매표하려고 했더니 벌써 표는 모두 매진되었고 인터넷 예약자에게만 매표할 수 있단다. 헛수고!
황지못 →
황지못의 물에 발 담그고 , 아니면 손이라도 씼었으면…, 그런데 그럴 수 없도록 만들어 둔 태백시 황지못 관리자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16:00, 중앙고속도로 진입하여 잠시 안동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차를 몰아 달리다가 칠곡 톨게이트 하차하였다. 칠곡의 별미(찜)로 저녁식사 후 2박 3일간의 아쉬움을 남기고 겨울 연수 때까지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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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수열씨 욕보는데, 여행기 쓰는데 신경쓰다 여행이 스트레스는 안될지? 후후 꼭 내거치 게으른 사람이 수준인가?ㅠㅠ
작년에 1박2일 트레킹 했던곳(송지호 합강정....)과 낙동강 도보할때 가본 황지못 얘기가 나오니 주변 그림이 그려져읽기가 참 좋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