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성 항저우에서 동남쪽으로 차로 2시간반 정도 달려 도착한 이우(義烏)시는 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도매시장이었다.
이우시는 LG화학이 진출한 동쪽 연안의 닝보(寧波)나 남쪽 상하이에서도 4∼5시간 걸리는 내륙지역으로, 2시간 더 내려가면 원저우(溫州)가 나온다. ‘음식점 이외에는 전부 도매상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눈길이 닿는 곳마다 도매상점 천지다.
‘중국소상품성(中國小商品城)’이라는 이름이 붙은 체육관만한 잡화전문 도매시장에 들어서자 여기가 바로 한국이나 일본의 1000원(100엔) 숍을 비롯해 전세계 시장에 쏟아지고 있는 중국제 잡화의 발원지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곳을 운영하는 ‘중국소상품성집단’의 정샹쥔(鄭向軍) 총경리는 “연면적 50만㎡인 소상품성에는 2만7000개의 부스에 7만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하루 화물수송인원 16만명, 하루 상품처리량 3000만t 규모로 중국 최고”라며 “취급하는 상품종류도 10만가지가 넘는다”고 설명했다.
2평 남짓한 크기로 빼곡이 들어선 각 부스의 간판에는 저장성이나 인근 푸젠성의 지역명이 붙은 공장 이름이나 대리점 이름이 적혀 있다. 이곳에서 단가와 주문수량 등의 교섭이 이뤄져 중국 전역과 전세계로 상품이 퍼져나간다.
소상품성집단은 신장성 위구르자치주의 우루무치시나 러시아 국경지역인 헤이룽장성의 헤이허(黑河)시에도 시장 지점을 개설해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파키스탄 등으로의 판매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우시에는 중국소상품성뿐 아니라 넥타이, 여자속옷, 피혁제품, 공예품, 안경, 액세서리 전문점 등 각종 일상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대형 전문시장이 8개가 더 있다. 또 거리 곳곳마다 일상용품을 파는 상점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우시는 랴오닝성의 선양(瀋陽)시, 후베이성의 우한(武漢)시와 함께 중국 3대 도매시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이곳에 머물면서 비즈니스를 하는 한국의 유통업자만도 500여명에 달하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최근에는 중동지역에서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우시장 발전국 뤄자오밍(駱照明) 부국장은 “이우시에는 중국과 한국, 일본,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4000여개 기업의 대리점과 저장창고가 몰려 있다”며 “이우시 거주인구는 66만명이지만 일거리를 찾아 유입된 인구를 포함하면 실제 인구는 이보다 몇배 더 많고 이곳을 찾는 유동인구만도 하루 40만명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이우시는 95년부터 매년 10월 이곳에서 소상품박람회를 열고 있다. 2000년의 경우 1300개 기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지난해 새로운 전시관이 완공된 것을 계기로 2002년부터 이를 ‘국제소상품박람회’로 규모를 확대해 개최할 방침이다.
◇이우시 발전 배경=대규모 소비시장인 상하이에서 100km나 떨어진데다 항구에서도 먼 내륙의 농촌지역이었던 이우시가 중국최대의 도매시장으로 발전하게 된 배경은 취재단에게 불가사의하게만 여겨졌다.
외사판공실 펑메이란(馮美蘭) 주임은 “이우 사람들은 가난했던 지난 시절에 어려서부터 닭털로 사탕을 바꿔먹을 수 있는 장사기법을 배우며 자랐다”면서 “이같은 장사기질이 시 정부의 적절한 정책과 맞물려 빠른 성장을 일궈냈다”고 말한다.
이우시의 잡화시장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이 시작된 80년대 초 농민들이 이우시 교외에 개설한 밀매시장과 같은 형태로 시작됐다. 이후 80년대 후반들어 이곳의 장래성에 주목한 시당국이 이우시를 도매시장가로 변신시키기 위한 정책을 취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발전했다.
80년대 후반 이후 대만기업이 저장성과 인근 푸젠성에 무수하게 많은 중소 제품생산공장을 만든 것도 이우시 발전배경 가운데 하나다. 이들 중소기업은 처음에는 주로 대만으로 수출했지만 중국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점차 중국내수를 대상으로 하는 제품생산에 나섰으며, 이 과정에서 이우시가 전국유통의 허브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또 저장성 산간지역이나 남부 해안지역에서는 문화대혁명 시대부터 중앙의 눈길이 닿기 어렵다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 이미 농가에서 단추 등 경공업제품을 만들어 파는 ‘자본주의’를 해왔다는 점도 이우시 발달배경으로 거론된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에는 원저우를 중심으로 농촌지역에서 경쟁적으로 향진기업을 만들었으며, 이곳에서 대량으로 생산된 각종 제품들이 이우시로 흘러들어간 후 다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2000년 이우시 국내총생산(GDP)은 199억위안으로, 매년 15%씩 성장하고 있다.
펑주임은 90년대 중반부터 “시장을 근간으로 한 상업으로 공업을 촉진하고 공업이 시장을 발전시킨다는 ‘인상전공(引商轉工), 공상관동(工商關動)’ 전략을 구사한 것이 적중했다”고 설명했다.
전체의 98%가 민간기업인 이우시의 기업은 개인기업에서 주식회사로, 기업관리방식도 가족주의에서 선진적 경영구도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저장성은 성 전체가 시장=저장성은 이우시 이외에도 도처에 전문시장이 많아 ‘시장대성(市場大省)’이라고도 불린다.
중국의 주요한 상품집산지로 통하는 저장성은 전문 도매시장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시장이 전국 각지의 시장들과 연결돼 촘촘한 시장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99년 말 현재 상품교역 시장이 4347개, 교역액은 3606억위안으로 전년 대비 12.4%가 증가했다. 연간 교역액 1억위안 이상 시장이 409개, 교역액 10억위안 이상 시장이 69개, 교역액 100억위안 이상 시장이 3개다. 시장수량과 연간교역액, 시장교역규모 등은 모두 중국 1위다.
시장의 발전은 저장성 경제와 사회발전에 활력을 불어넣어 농촌공업화, 도시화를 가속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취급상품도 농산물에서 화섬원단, 복장, 실크, 신발, 가죽 등 소상품과 가전제품, 자전거, 가구, 건축자재, 통신, 컴퓨터 등 공업품에 이르기까지 손이 안 닿는 곳이 없다.
저장성에는 손기술이 뛰어난 장인들이 사는 마을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들의 손기술은 외국의 유명브랜드 모조품들을 대량으로 만들어냈다.
저장성 외사부의 한 관계자는 보석상가를 가리키며, “여기서 판매되는 보석은 100% 가짜”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외국에서 첨단장비와 원자재를 들여와 ‘진짜를 뺨치는 모조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현재 차이나고는 이 곳에 현지 사무소 개설로 보다 원활한 제품공급과 신속한 신상품 정보망 구축 및 현지 제품품질관리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 양질의 제품을 국내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