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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들어온 자를 경계하라
유다서 1:1-25
1. 서론
유다서는 베드로 후서와 맥을 같이하여 당시 초대교회의 가장 골칫거리 중의 하나였던
"영지주의" 곧 기독교를 성경보다 지적으로 추구하여 여러 가지 교묘한 교리들을 가르치는 거짓교사들을 경계하고 바른 복음으로 자신을 지키고 성도들을 구원하도록 권고하기 위하여 방어와 적극적 대처를 위하여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며 도덕적 부패를 집중 공격한 사도들의 애타는 심정이 담긴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저자는 당시 초대교회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야고보의 형제 유다로서 예수의 형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하실 때는 따르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체험한 후 예수님을 믿게 되어 초대교회의 큰 일꾼으로서 초대교회 공동체를 걱정하고 이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자” 곧 이단들은 영지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자로서 성도들을 미혹하여 금욕주의를 주장하고 도덕적 윤리를 무시하여 육신의 소욕대로 쾌락을 누리라는 잘못된 가르침을 전파하는 자들 이였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있었던 이단을 막아내기 위한 사도들의 노력이 담긴 본서를 통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단과 맞서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으며 또 우리는 이단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점검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우리 또한 이러한 이단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2. 본론
1) 인사말 - 1,2절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유다서 1절은 편지 겉봉투에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는 글입니다.
지금 우리는 편지의 겉봉투에 발신자의 주소와 이름 그리고 수신자의 주소와 이름을 기록하고 특별한 경우에 내용물을 알리기 위해 간단히 명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인편으로 보내는 편지이기에 지금과 같이 주소는 기록되지 않았으며 수신자와 발신자만을 밝히고 있습니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유대의 문헌 형식상 사람을 소개 할 때에는 대부분 조상이나 아버지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상례이지만 유다는 자기의 형의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이는 그 당시 야고보가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지도자로서 잘 알려져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유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좋은 모범정도가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요 순종의 대상이었으며 구주로 믿고 절대적 순종과 헌신을 해야 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특정 수신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지만 어느 지역 초대교회 기독교 공동체를 향하여 이 편지가 보내어졌을 것입니다.
유다는 이 편지를 받을 사람들을 세 단어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그들을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로 그들을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은 자”를 말합니다.
세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의 죄를 씻으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만 받은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 공동체에게도 같이 임하였습니다. 유다는 특정지역의 이 공동체를 향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가정교회가 많았으며 또한 같은 환경과 같은 문제를 가진 교회끼리 서로 돌려가며 읽음으로 인해 특정 수신자는 희석이 되고 공동으로 읽는 공동서신이 되었습니다.
2절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2절은 1절과 같이 편지 겉봉투에 쓰여 진 것으로 인사말이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긍휼과 평강과 사랑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가운데 항상 받아 누려야 할 기본적이며 또한 축복된 삶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미 지키심을 받고 사랑을 받고 평강을 누리는 자들이지만
세상은 악하고 우리는 약하여 늘 넘어지기에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긍휼과 평강과 사랑을 필요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편지를 쓰는 목적 - 3, 4절
3, 4절은 편지를 쓰는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3절 .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이 편지의 발신자 유다는 수신자를 위해 이전부터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위하여 편지를 쓰려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 문제보다도 더 급한 일이 생겼기에 “일반으로 얻은 구원”에 관한 내용은 뒤로 미루고 본 편지를 쓰게 되었음을 본 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말로 권하여야 할 필요를 더 크게 느꼈기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자”들에 의하여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란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가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름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갈 1:7-9) 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 진리는 변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대속 사역, 그리고 그의 부활이 모두가 단번에 이루어 졌으며 완전하게 이루어 졌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예수님 이외에는 예수가 없으며, 성경이 전하는 복음 이 외에는 다른복음이 없고, 성령 또한 한분 이십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 온 자들은 이러한 불변적인 진리를 부정하고 성도들을 미혹케 하는 자들로서 옛적부터 멸망의 판결을 받기로 된 자들이며,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었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본서의 저자인 유다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격려하는 그 주된 목적은 가만히 들어 온 몇 사람(순회 전도자)이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을 대항하여 힘써 싸워 그들에게 빠지지 말라는 권면의 편지 입니다.
기독교는 초대 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잘못되게 가르치는 거짓교사들이 수없이 있어 옴으로 얼마나 많은 교인들을 멸망으로 인도하고 있는지, 실로 이보다 통탄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4절 . 이는 가만히 들어온 몇 사람이 있음이라
이단의 특징 중에 첫째가 자기가 이단이 아닌 것처럼 조용히, 가만히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단이 들어오면서 “내가 이단이다”라고 밝히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깨어 있 어야 하고 또한 이단을 영적으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 능 할 것입니다. 말씀에 깨어있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이들은 옛적부터 정죄를 받기로 작정된 자들입니다.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작정 되었다’라는 말은 ‘정죄를 받기로 미리 작정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단은 하나님의 종들이 아니고 마귀의 종들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은 자들이 아니고 만세 전부터 정죄를 받기로 작정된 자들입니다.
세 번째로 경건치 아니하며 정욕 적이며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서도 같은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짓교사들 곧 “가만히 들어온 자들”의 가르침은,(호크마 주석참고)
첫째는 진정 경건치 않고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 하게합니다.
헬라의 철학자들은 "신들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을 참된 경건으로 보았으며, 순수하고 숭고한 신성의 세계에 대한 경외, 제의적인 예배, 질서에 대한 존경으로서의 덕으로 말하였습니다.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에게 정중한 태도 즉, 하나님을 예배하고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그리고 신약에서는 창조를 악한 것으로 여기며 창조질서를 소멸시키는 영지주의와 금욕주의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속주로 경외하는 일상적 생활방식으로 말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이 이와 같이 경건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거짓된 가르침과 거짓된 신앙입니다. 경건한 영성생활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시인하되 진정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행위로 부인하는 것이며(딛1:15,16)
가만히 들어 온자들은 신앙생활을 종교적으로 하면서 이득의 수단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들 중 몇 사람은 생계의 수단으로 복음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경건치 않은 잘못된 가르침과 신앙에 물들지 않도록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긍휼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곳으로 이끌려 가고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욕망을 향하도록 바꾸게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행함은 구원받는 것과는 상관없다”고 가르치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며 진정 거듭남이 어떤 것인지 체득하지 못한 채,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은 받았으니, 성화는 점차 되는 것이니, 자위하고 세상의 욕망과 육신적 욕망과 기질은 여전히 남아 있어 그것을 추구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 거의가 모두가 그러합니다. 이러한 것을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꾼다는 말입니다(4절).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과 신앙에서 바른 복음으로 자신을 바르게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재림하시는 주님으로부터 긍휼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된 데 이끌려 가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을 부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복음의 내용은 모두 무시해 버리고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구원과는 상관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나 실제의 행위로는 부인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많은 자들이 예수님께 말하기를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치 아니하였습니까? 할것이나 주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기를"내가 너희를 전혀알지 못하였으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가라"하리라 (마7:23) 하실 것입니다
저들이 분명히 예수님의 이름을 시인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왜 저들에게 “불법을 일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까? '불법'이란 말은 법이 없는, 법을 행치 않은, 법을 어긴, 이라는 말입니다.
'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마7:21)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복음과 가르치신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며 법입니다.( 6:38, 12:47-50,)
가만히 들어온 자 곧 이단들은 이러한 법이 없는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할 자들이었습니다.
3) 이단들을 죄악과 심판을 폭로함 5-16절
여기서는 거짓교사 곧 가만히 들어온 자들을 정죄 하는 것입니다.
본서의 저자인 유다는 자기의 요지를 증명하기 위하여 구약의 예를 인용합니다.
① 그들이 당할 운명 (5-7절)
5절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 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유다는 겸손하게 자신이 권면 하는 말이 새로운 것이 아니고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다시 생각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유다는 이단자들의 죄악과 심판을 역사상 몇 가지 사실에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5절에서 이단자들의 죄악과 심판을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소멸한 이스라엘의 선조들에 비교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기 백성들을 애굽에서 큰 능력의 손을 펴서 구원하여 내셨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의심하고 믿지 않고 대항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다 멸망을 시키셨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 속한 것 같은 이단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다 멸망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형적으로 형식적으로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면적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6절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 셨으며
둘째로 유다는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자들을 자기 위치를 떠난 천사들에게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고 자기자리를 떠난 천사들은 곧 사탄과 악령을 가르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 날 영원한 흑암에 가둘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2:4절에서도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아니 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 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라고 하였습니다. 사탄과 악령들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위치, 즉 하나님을 섬기는 피조물의 위치를 지키지 않고 교만함으로 타락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섬기도록 만드셨던 천사들이라도 타락을 할때는 이렇게 벌하셨듯이 이단자 거짓교사들도 지옥에 던지실 것입니다.
7절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 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셋째로 가만히 들어온 자 곧 이단자들을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과 심판에 비교를 합니다.
창세기 19장에 등장하는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의 죄가 넘쳐서 하나님이 유황 불비를 내려 멸망시켰습니다. ‘같은 모양으로’ 라는 말은 ‘같은 종류의 범죄를 통하여’ 멸망당하였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색’이라는 말 또한 ‘다른 육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소돔과 고모라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다른 육체와 성관계 즉 동성애를 원한 것과 천사들이 땅에 내려와 여인들과 성관계를 맺은 것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가증한 일이라고 표현을 하였으며 유다는 거짓교사들 역시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는 행위를 결코 용납하시지 않을 것이며 지옥의 영원한 심판에 처하실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② 그들을 탄핵함 (8-10절)
8절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 하는도다.
위의 5-7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단자 곧 거짓교사들이 범한 세가지중요한 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육체를 더럽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하나님이주신질서를 무시하고 다른 육체와 성적인 행동을 함으로서 자기 육체를 더럽힌 자들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권위를 업신여기는 자들입니다. 혹자는 인간의 권위, 혹자는 천사의 권위, 혹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말하고 있으나 세 번째의 하나님의 권위가 가장 타당할 것입니다.
유다가 거짓교사들의 특성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이미 4절에서 언급을 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그들은 영광을 훼방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천사를 통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모세에게 전달하여 준 율법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하고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공동체에게 주신 교회의 권위를 지칭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교훈과 치리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마16:19,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 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9절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 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망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유다는 거짓교사들이 ‘영광’ 즉 천사들을 비방한 것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는 모델로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사단들을 대적하는 자로 알려진 천사장 미가엘을 들고 있다. 이 예는 “모세의 승천”에서 인용한 것이며 여기에 의하면 사단은 모세가 살인자(출2:12)라는 이유로 모세의 시체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였다. 천사장 미가엘은 분명히 권세와 능력과 위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훼방하는 판결’ 즉 비방하거나 고소를 하지 아니하고 사단에 대한 판결과 심판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 버렸다.
10절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 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적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거짓교사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전달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천사들에 대해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함부로 비방하였다. 그러한 그들의 행동은 이성이 없고 단지 본능으로 살아가는 짐승의 행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결굴 이들은 출애굽을 경험하고도 원망과 불신앙으로 인해 멸망당한 이스라엘이나 소돔과 고모라 같이 짐승과 같은 행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 것과 같은 것이다.
③ 그들의 죄악과 심판 (11-16절)
11절 화 있을 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 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쫓아 멸망을 받았도다.
유다는 5-10절에서 이단자들을 출애굽 후 멸망 받은 이스라엘 백성과 창세기 6장의 타락한 천사, 창19장의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모세 승천기라는 위경을 들어서 4가지를 예로들은 후
11절에서 다시 이단자들을 3명의 멸망 받은 구약의 인물을 예로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창4장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지 않은 가인이며
둘째는, 탐욕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와 음행에 빠지게 한 발람이며
셋째는, 모세의 신적 권위에 도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던 고라입니다.
이들이 다 멸망을 받았듯이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단자들도 멸망 받을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12절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 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유다는 거짓교사들이 애찬을 남용하여 자신의 탐욕이나 음란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함(벧후2:13)은 물론 두려움 없이 불경건한 자세로 애찬에 참여함으로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쳐 위험하게 만들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암초는 배 즉 교회를 파선시키는 무서운 존재를 말하며,
목자가 양을 돌보지 않고 자기 몸만 돌보듯 스스로 교회의 지도자라고는 하나 성도를 돌보지 않고 자기만을 돌봄으로서 양들이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물 없는 구름이란 잠25:14절을 인용한 것으로서 비를 뿌리지 않고 바람에 밀려가는 구름처럼 이단자들의 주장과 교훈이 허망한 약속에 불과하며 전혀 쓸모가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죽고 또 죽어 뿌리 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는 말은 가을에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이 이단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맺어야 할 열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뿌리가 뽑혔기에 즉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생명과는 연관이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13절 자기이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이사야 57:20을 반영한 것으로 바닷가에 파도에 의해 더러운 오물이 밀려오듯이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오직 수치스러운 행위와 언어만을 내어 놓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들어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이 말은 거짓교사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상징합니다.
14절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 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라는 표현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유다는 당시에 인정을 받고 널리 알려진 위경인 에녹서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은 자들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15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 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고 하 심이라하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는 파루시아때에 천사들과 함께 임하셔서 불경건한 자의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이다. 유다서 원문에서 아세베스(불경건한)에 관련된 네 개의 단어 즉 투스 아세베이스(경건치 않은 자), 에세베산(경건치 않게), 아세베이아스(경건치 않은), 아세베이스(경건치 않은)를 사용해서 재림하실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아니한 자의 행위와 말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호크마)
16절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유다는 본 절에서 다시 한번 거짓교사, 이단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했듯이 이들도 주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원망하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자유를 남용하여 율법을 멸시하고 도덕폐기론도 주장하였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들의 뜻을 따라 행동하였으며 하나님께 대하여 거만한 태도를 취하였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교회내의 부자나 권위자들에게 아부하는 자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4) 성도에 대한 권면 (17-25)
본문에서 저자는 구약성경과 위경에서 손을 떼고 신약시대의 사도들을 말씀으로 관심을 바꾼다. 그리고 독자들을 향하여 강경한 어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① 경계의 말씀 17-19절
17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한 말을 기억하라.
유다는 4-16절까지 이단자들에 대한 비판과 책망을 한 후 본 절에서부터는 수신자들에게 권 면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유다는 자신을 사도의 대열에서 제외를 시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의 권위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 다. 그리고 지금유다는 이미 사도들이 거짓교사들을 향해서 경고한 말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18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는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사도들이 미리 경고한 “마지막 때”는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히1:2) 기롱하는 자들이란 신앙과 도덕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경건하게 행동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기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었다.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등장은 마지막 때의 특징이다.
19절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거짓교사들이 교회 안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구분하였음을 시사한다. 구약의 고라와 같이 애찬은 함께 참여하면서 자신들만이 참된 영을 소유한 것처럼 당을 형성하였다.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육에 속한 자는 성령이 없는 자와 동일한 의미의 말입니다.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단지 세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소유하지 못한 비 그리스도인이었다.
② 권면의 말씀
a.우리자신을 위한 권면 20-23절
유다는 이제 마지막으로 수신자들에게 우리 자신을 위해 할일과 다른 사람을 위해 할일을 몇 가지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20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먼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할일로서 우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우리 자신을 건립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수신자들이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되지 말고 옹직 복음에 근거해서 영적성장을 이루며 거룩한 생활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라’라고 권면을 합니다. 이 말씀 또한 엡6:18절의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라는 말씀처럼 성령은 보혜사 곧 우리의 위로자입니다. 그는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 또한 그분의 도움을 입어야 합니다.
21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글휼을 기다리라.
유다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고 권면을 합니다. 자기를 지키라는 말은 이단사상과 부도덕한 죄로부터 자신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유다는 편지서두에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한다고 언급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단사상으로부터 우리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이단 사상에 물들지 않아야 하며 더덕적인 죄도 이길 수 있어야 하며 모든 종류의 도덕적 물결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b.다른 사람을 위한 권면 22-23절
22절과 23절은 다른 사람을 위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22절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먼저 그는 어떤 의심하는 자란 믿음이 연약한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를 구별해야 하며 또 확고한 믿음이 있는 자와 믿음이 연약한 자를 구별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이 연약해서 범죄 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23절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 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유다는 또 다른 자들을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고 권면한다. 아마 이들은 22절의 어떤 자들보다 잘못이 심한 경우를 가르키는 것 같다.
‘더럽힌 옷’이라는 표현을 보아 아마 이들은 도덕적인 죄로 임해 자신을 더럽힌 자들일 것이다. 이런 자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③ 송영 24-25절
유다는 이 송영에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교리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수신자들을 위로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24절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의 시작과 지행과 완성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하셨습니다.
25절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 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 지어다 아멘
유다는 놀라운 축복기도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강조하며, 우리를 구원하며 끝 날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3. 결론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구원의 확신을 갖고 주위의 거짓교사들이나 우리를 미혹케 하는 것들을 물리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우리에게 항상 미끼를 던지고 우리를 노략하며 영적인 전쟁을 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불평하게 하고 원망하게 하며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지옥에 밀어 넣으려 하며 하나님의 축복의 자리에서 제외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전쟁에 말려들지 아니하고 넘어지지 아니하고 싸워 이기려면 먼저 적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무장을 해야 합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서 능히 악한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4-17)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말씀으로 기도로 영적 무장을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죄와는 거리를 먼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유다서에서 초대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보내는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곧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으시고 내 주위에는 가만히 들어와 우리를 미혹하는 자가없는지 우리들에게 거짓 영을 퍼뜨리는 자가 늘 살피며 내가 깨어 기도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사모하는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참고>
호크마 종합주석 유다서강해 <영지주의에 대한 경계>참고
박윤선박사 공동서신주석 유다서 참고
인터넷 성경강해 유다서강해 <진리를 위한 싸움>참고 김 효성 목사(Th.M. ,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