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하우스(Doll house), 단순히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인 인형의 집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제 대상물을 축소한 건물ㆍ가구ㆍ소품ㆍ장식품 등이 조화롭게 구성돼 있는 돌하우스를 보고 있노라면 “멋진 예술작품”이라는 찬사가 절로 나온다. 목재로 만든 건물 외관에 앤티크한 문, 창문, 벽체, 계단 등이 갖춰져 있고 마치 사람이 사는 듯한 방 내부엔 다양한 소품이 빼곡하게 들어차 저마다 개성을 뽐내고 있다. 목재로 만들어진 가구, 점토ㆍ섬유ㆍ피혁 등 각종 재료로 만들어진 조리기구ㆍ가전제품ㆍ커튼ㆍ전등ㆍ신발ㆍ가방 등 각종 소품을 보고 있노라면 사실성과 정교함에 입이 떡 벌어진다.
“돌하우스 작가는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지요. 작가의 손길이 깃들어 있고, 작가의 삶과 경험이 담겨 있으니까요. 돌하우스를 단순한 미니어처의 집합체를 넘어 입체미술로 봤으면 해요.”
한국돌하우스협회장이자 국내 1호 돌하우스 작가인 박은혜(40)씨, 그가 직접 운영하는 공방 ‘푸펜하우스’에 들러 돌하우스와 사랑에 빠진 행복한 이야기를 들었다.
2002년, 돌하우스에 미치다
“싱가포르관광청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7년차가 되던 해에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 가장 즐겨할 수 있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그때 몇 년간 제 책장에 꽂혀 있던 돌하우스 제작스킬이 담긴 책이 눈에 확 들어왔지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영국 유학시절에 들렀던 돌하우스박물관을 떠올렸다. 앤틱 돌하우스의 예술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났고, 그 길로 주저없이 돌하우스를 배울 곳을 수소문했다.
“2002년이었어요. ‘미니어처’로 검색하니 ‘미니어처 향수’같은 것만 나올 뿐이었지요. 당시 한국엔 돌하우스에 관한 개념조차 생소했던 때니까요. 가까운 일본에는 돌하우스협회가 있었기에 일본행을 택했지요.”
일단 배우기만 하자는 생각이었지만 처음 교육받던 날 실망감은 상당했다.
“초급단계였는데 솔직히 너무 쉬웠어요(웃음). ‘이런 장난감 만들자고 직장 버리고, 남편과 헤어져 일본까지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했지만, 이왕 왔으니 초급만 끝내자는 생각으로 버텼지요.”
하루 이틀 교육이 거듭될수록 그는 돌하우스의 작품세계에 빠져들었다.
“계속 해보니 장난이 아니었죠. 창조적이고 매우 정교한 작업이었어요. 공인강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선 1년 이상이 걸리는데, 저는 시간표를 빼곡하게 짜 1년 만에 강사자격을 취득했어요. 물론 교육시간 외에 혼자서 작품활동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지요. 돌이켜 생각하면 제가 어릴 때부터 미니어처 가구 등을 모아 스스로 스토리를 만들고 장면을 연출해 사진으로 남기고 하면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있어요. 제가 원래 갈 길이 정해져 있었나 봐요.”
푸펜하우스 열고 제자 양성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 푸펜하우스를 열었다. 2003년이다. 그의 작품이 인형 전문잡지에 소개되며 돌하우스를 배우고 싶다는 사람이 줄이어 그를 찾았다. 2005년엔 한국돌하우스협회를 설립, 현재까지 회장으로 돌하우스 작가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사실 초창기에만 해도 돌하우스라고 하면 ‘장난감이네’, ‘유치하네’ 하면서 업신여기는 분위기도 있었지요. ‘돌로 만든 집이냐’고 묻는 분들도 있었고요(웃음). 하지만 여러 번의 전시회와 언론 소개 등을 통해 돌하우스의 저변이 많이 확대됐다고 봅니다. 단순히 취미생활을 넘어 돌하우스를 작품으로 인정하는 시대가 온 거지요. 푸펜하우스를 통해 작가도 20여 명이 배출됐고요. 한번은 수강생이 돌하우스에 사용될 가구를 만드는데, ‘자기가 DIY가구를 제작했던 것과 방법ㆍ절차가 똑같다’며 놀라더라고요. 크기만 작을 뿐 정교함은 실제 사용되는 제품과 견줘도 손색없지요.”
돌하우스 외곽과 가구 등을 만들기 위한 주재료는 나무지만 소품을 꾸미는 데 재료의 제약은 없다. 요구르트병의 윗단을 자르고 버려지는 천을 붙여 조명의 갓을 만들고, 치약 뚜껑을 뒤집어 쓰레기통을 만드는 식이다. 단추 구멍을 막아 색을 칠하면 멋진 식기로 변신한다. 이런 돌하우스는 실제 크기의 1/12, 1/24 크기로 축적해 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1/12 축적이 사용된 건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규격은 미니어처에 심취했던 메리 영국 왕비의 돌하우스에 처음 등장했어요. 당시 왕이었던 조지 5세는 왕비를 위해 5층 규모의 초대형 돌하우스 제작을 지시했는데,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 경이 이를 주도했다고 합니다. 한 채의 돌하우스 제작을 위해 보석상, 와인 제조업체, 엘리베이터 제작회사, 롤스로이스 자동차 생산업체 등 각 분야 전문가가 모두 참여해 국가적 프로젝트가 됐지요. 이 돌하우스는 도르레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5대의 롤스로이스와 차고, 손잡이를 돌리면 온수가 나오는 급탕설비, 웨지우드사의 도자기 소품 등을 갖췄었다고 해요. 지하의 와인보관실에는 실제 빈티지 와인이 든 와인병을 마련했고요. 셜록 홈스의 작가 아서 코넌도일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 책장에 꽂을 책을 만들 정도였어요. 이 모든 게 실제처럼 정확하게 들어맞기 위해선 축적이 필요했고, 이때부터 1/12 스케일이 돌하우스의 불문율처럼 전해 내려오게 된 겁니다. 현재는 작품의 용이한 이동을 위해 1/24 규격도 사용하지만 그래도 1/12 규격에 주로 맞춰 제작하지요.”
그는 외국에서는 돌하우스가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돌하우스는 당시 시대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지요. 마치 역사책을 보듯이 말입니다. 17세기에는 이런 가구가 있었구나, 화장실은 이랬구나 하는 것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물이 되기 때문에 유럽의 국립박물관에 가면 돌하우스가 꼭 소장돼 있지요. 이런 돌하우스는 값을 매기기도 어렵습니다. 지난해 런던 돌하우스 페스티벌에선 소더비 경매에서 고가에 팔렸던 가구를 본떠 미니어처로 만든 의자가 등장했는데, 이 의자 하나가 300만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돌하우스의 진가를 아는 이들에겐 아까운 게 아니지요.”
돌하우스 박물관 설립이 목표그는 돌하우스가 감상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교육과 치료를 위해 쓰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정신과에서 지적장애아동 등을 상담할 때 돌하우스를 활용해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고 치료에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 교육용으로도 그만이지요. 제가 돌하우스로 ‘에디슨 과학연구실’을 제작, 에디슨이 발명한 말하는 인형, 열풍기, 헤어 고데기, 광부용 모자 등을 실험실 내부에 넣어 꾸몄어요. 그리고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돌하우스의 교육효과를 알아본다며 이 돌하우스를 유치원에 가져갔지요. 유치원 교사가 에디슨 과학연구실을 직접 보이며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니 그 자리에서 다 외우더라고요. 저도 놀랐지요. 돌하우스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시각적 효과가 상당하잖아요. 이런 까닭에 앞으로 교육용 돌하우스 제작에도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이달 말 일본 이케부쿠로에서 열리는 돌하우스 전시와 올해 말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인형전시회 준비로 분주한 그는 멋진 돌하우스를 만들기 위한 팁을 묻자 이야기를 중요 요소로 꼽았다.
“우선은 본인이 살고 싶은 집을 만들도록 권합니다. 하지만 멋진 외관과 소품을 넘어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킬 스토리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는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고 재미를 찾을 수 있거든요. 저 역시 그런 멋진 돌하우스를 창조하기 위해 작품활동에 매진, 좀더 나이가 들었을 때 돌하우스 전시박물관을 만들어 더 많은 이들에게 돌하우스의 매력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글=홍연정기자 hong@ 사진=안윤수기자 ays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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